교육희망

혁신학교, 열매 먼저 따면...안타깝다

[농사일로 배움 들여다보기] 늦게 심는 게 더 좋아

텃밭 5평정도 하는 거라서 농사라 이름 붙이기는 가당치도 않지만 텃밭 농사를 어느덧 10년 넘게 했네요. 한때는 제가 속한 환경교사모임에서 주관하여 밭을 임대한 뒤 시민들에게 분양하는 일도 했었는데 요즘은 여기저기 도시텃밭 붐이 일어 곳곳에 주말농장이 생겼더군요.

텃밭 농사 10년 넘게 지어보니

비닐로 땅을 덮지 않고, 해충약이나 제초제를 뿌리지 않으면서 코딱지만 한 땅에서 1년 농사 제대로 하기가 참 어렵더군요. 봄부터 초여름 한철 잘 먹고 나면 장마 뒤 무성한 풀을 도저히 감당하지 못해 그냥 풀숲에서 방울토마토 찾아 따먹는 재미정도만 얻는 몹쓸 농부가 되고 말더군요. 현재 먹을 채소 주체할 수 없고 오이, 고추도 달리고 방울토마토 무성히 자라 따먹을 상상 재미에 행복해집니다.

농사일과 배움! 자식 농사라고도 하는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요? 가만 생각해봅니다.
첫째 적절한 시기를, 순리를 따라야합니다. 옛 우리 조상들은 농가월령가에 농사법을 담아 지혜로운 농사를 지었더군요. 텃밭이라도 너무 일찍 심게 되면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일찍 심었다가 꽃샘추위라도 맞는 날에는 영락없이 한파를 맞아 시들시들 오므라들더군요. 살아난다 해도 온전히 열매를 알차게 맺지도 못하더군요. 특히 밤에는 기온이 뚝 떨어져 볕 좋은 낮만 생각해서 덜컥 심었다가 낭패 보는 경우 많더군요. 둘러보면 특히 초보 농사꾼이 그러더군요. 차라리 좀 늦게 심으면 그래도 더 낫습니다. 늦되기도 하니까요. 올해 제가 좀 게으름피우다 늦게 심었지만 쑥쑥 잘 자라고 있어 따먹기 바쁩니다.

조기교육, 선행학습에 대한 경종이 아닐까 싶네요. 최근 조기교육 실패에 대한 후회막급의 사례가 속출한다고 합니다. 선행학습도 독일에서는 이런 염려 때문에 아예 금하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일찍 심으면 일찍 잘 자란다는 착각에서 조기교육, 선행학습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둘째, 씨앗에서 나온 작물은 추위나 병해를 훨씬 잘 버텨냅니다. 온실에서 틔운 모종은 추위, 가뭄, 병충해에 약해 계속 신경을 써야합니다. 학교 옥상 텃밭도 물이 너무 잘 빠져 옮겨 심은 모종은 뿌리를 내릴 때까지 계속 물을 주어야합니다. 조금만 신경을 안 쓰면 시들시들하고 뿌리를 내리지 못해 결국 고사하고 말더군요. 그런데 희한하게도 작년에 저절로 떨어져 자생적으로 올라온 녀석들은 물을 주건 말거 쑥쑥 자라 올라옵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싶어 아이들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네요.

부모나 선생님 간섭이나 관리에 의해 키워지고 가르침 당하는 것과 스스로 자라며 배우는 것의 차이가 이런 것이다’라고요. 아이들도 옥상 텃밭에서 자라는 작물들을 자기들 눈으로 확인시키며 말해주니 금방 이해하는 눈빛이더군요.

셋째, 우선 ‘먹기 좋은 게 곶감이다’라는 발상으로 꽃부터 피우고 보자는 생각이 농사를 망친다는 것입니다. 방울토마토 예를 들면 모종을 심고 나서 금방 꽃이 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꽃을 바로 따줍니다. 그렇지 않고 그 꽃을 피워 열매를 따먹을 생각으로 그냥 두면 결국 잘 성장하지 못해 그 다음에 많은 열매를 수확할 수 없습니다. 꽃을 피우는데, 열매를 맺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게 되면 줄기, 가지를 잘 뻗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줄기, 가지를 쭉쭉 사방, 팔방으로 뻗어야 꽃이 많이 나고 열매가 많이 생기는 법이니까요.

혁신학교를 돌아보면 여기저기 학교에서 성급하게 꽃을 피우고 몇 개 열매 먼저 따서 보여주고 싶은 조급함이 보여 안타까울 때가 많았습니다. 뿌리부터 잘 내리고 줄기와 가지를 잘 뻗게 해서 한 두 개 열매가 아니라 알찬 수백, 수천 개의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지혜가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슈퍼 히어로가 아니더라도 배우고 나누고 협력하며 서로서로 성장해서 더 알차고 많은 열매가 맺도록 하는 것이 더 느리지만 튼실하게 지속적으로 피워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입니다.

넷째, 비바람도 맞고, 쨍쨍 뙤약볕도 쬐어야  알차고 맛납니다. 온실하게 편하게 자란 것과 하늘, 바람, 비, 햇빛에 온몸 그대로 드러내고 자라야 참으로 자랄 수 있고 알알이 차고 찰지고 달디 단 열매를 맛볼 수 있습니다. 방울토마토를 따먹어도 위쪽에서 그대로 드러낸 열매와 아래쪽 그늘진 곳의 열매가 빛깔도 다르고 맛도 다릅니다. 위쪽 것이 훨씬 좋지요.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넓은 세상에서, 고통과 고난을 이겨낸 과정을 겪으며 자라야 제대로 자랄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이 이런 말 할 때 가장 흐뭇합니다. ‘힘들었지만 재밌었어요!’ 성장의 뿌듯함이 느껴지는 말입니다.

덧거름보다 밑거름이 중요하더라

다섯째, 씨앗으로 뿌렸을 때와 모종을 심었을 때 바라보는 기쁨과 갖는 관심 정도 차이가 큽니다. 씨앗인 경우 그 조그만 씨앗이 흙을 비집고 싹을 틔울 때 아이들은 놀란 눈이 됩니다. 그리고 더욱 큰 관심, 흥미, 사랑을 쏟습니다. 모종을 심는 경우 이미 온실에서 자라나온 녀석이라 그냥 크기만 할 뿐이라서 아이들에게 그다지 신비감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합니다. 부모나 교사가 온실에서 키워낸 것처럼 아이들을 키우면 별 감동이 없을 것입니다. 씨앗을 뿌리 듯, 씨앗이 자기 힘으로 세상에 나오듯 키워야 더 큰 관심과 사랑이 가리라 생각됩니다.

여섯째, 덧거름보다 밑거름이 중요합니다. 농작물은 밑거름을 좋은 거름으로 충분히 다져두면 굳이 덧거름을 주지 않더라도 잘 자랍니다. 아이들도 밑거름 닦아주고 깔아주는 일이 중요합니다. 부모나 교사가 밑거름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가 뒤늦게 덧거름을 많이 주려는 방식은 자칫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기초, 기본을 잘 다져두면 훨씬 잘 자랍니다. 기본 생활이 평화롭고 안정적이면 훨씬 배움이 많이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아이들 잘 자라게 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가르쳐주고, 간섭하고, 강제하고, 욕심내면 더 어려워지고 꼬인다는 것이 경험으로 알게 됩니다. 첫 아이보다 둘째가 더 손이 덜 가고 둘째보다 셋째가 더 손이 덜 가지만 자라는 걸 보면 셋째가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랍니다. 우리 아이들 잘 자라게 하는 비결 특별한 게 있는 것이 아니라 농사처럼 제때 딱 꼭 해줄 일만 해도 오히려 더 잘 자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