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머리 아픈 건 남보다 더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입니다!”
국정홍보처의 TV 광고를 보고 대경실색(大驚失色)하여 그만 뒷골 당겨 괴로워하고 있으니 바로 뒤따르는 두통약 광고. “당신이 머리가 아픈 건 남보다 더 열정적이기 때문입니다.”

1960년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인 ‘존슨앤존슨즈(Johnson and Johnson's)’가 아세트아미노펜(acetaminophen)이라는 성분으로 만든 초대박 상품인 ‘타이레놀’의 광고이다. 타이레놀은 존슨앤존슨즈의 한국 내 의약품 사업 담당인 한국얀센에서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경동제약이나 동광제약에서도 타이레놀을 만들고 있다. 이 약의 특허기간이 만료돼서 흔히 ‘복제약’이라고 부르는 ‘제네릭(Generic) 의약품’ 출시할 수 있어졌기 때문이다.

카피가 나쁘다는 편견은 버려!
여기서 잠깐! 제네릭 의약품을 복제약으로 번역한다고 해서, 효능도 알 수 없고 뭔가 의심쩍은 호랑이 연고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네릭 의약품은 특허를 받은 의약품, 즉 오리지널 의약품(또는 신약)과 품질, 용량, 효능 등이 같아야만 시판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제네릭 의약품은 반드시 ‘생물학적동등성 시험’을 거쳐야 한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제네릭 의약품의 최고 효능은 바로 가격에 있다. 제네릭 의약품이 나오면 그 가격이 오리지널 의약품 가격의 절반 가까이 후려쳐진다(!) 하니 이보다 기쁜 일이 또 있을까? 20년이나 되는 특허기간이 만료됨과 동시에 신약의 독점 판매권이 없어지고 수많은 제약회사가 같은 약을 만드니 가격이 인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한미 FTA 협상 결과가 그대로 국회에서 비준 절차를 거친다면, 현재 2,500원에 사먹는 타이레놀 한판 가격이 피자 한판 가격이 될 수도 있다. 이제 당신은 열정적이어서가 아니라 돈 없어서 머리가 많이 아플 것이다. “에이~ 뻥도 심하셔~!”라고 웃는 사람들에게 누군가 손을 흔들며 따라오라고 말한다. 화이자(Pfizer), 애보트(Abbott), 브리스틀마이어스스큅(Bristol-Myers Squibb) 등 이름도 외우기 어려운 미국의 다국적 제약회사다. 어디로 우리를 끌고 가려는 것일까?

이 소란스러운 유통분야를 벗어나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입구에 쓰인 은밀한 생산의 장소로 들어가 보도록 하자. 이곳에서 우리는 자본이 어떻게 생산하고 있는가 뿐 아니라 어떻게 자본 그 자체가 생산되고 있는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윤창조의 비밀도 드디어 폭로되고 말 것이다.
- 칼 마르크스, <자본론 : 정치경제학비판Ⅰ(上)>, 230p, 비봉출판사, 김수행 역 (2003)

이윤창조의 비밀 : 특허로 제네릭 죽이기
‘지우개 달린 연필’을 비롯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은 특허가 있었거나, 있다. 이처럼 수많은 특허제품 중 한미 FTA 협상의 뜨거운 감자는 바로 의약품이었다. 웬디 커틀러(Wendy Cutler) 미국 협상단 수석 대표의 옆자리를 늘 지키고 있었던 애로우 오거롯(Arrow Augerot) 부대표는 의약품 분과 작업반장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10개의 신약 중 무려 7개가 미국 제약회사가 생산할 만큼, 미국은 전 세계 의약품 시장에서 범접할 수 없는 1인자이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맹주국인 미국이, 제네릭 의약품 생산이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80% 이상을 점한 한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를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지난 5월 25일에 공개된 한미 FTA 협정문의 ‘제18.9조(특정 규제제품과 관련된 조치) 제4항’이다.

§18.9(4) :당사국[한국과 미국]이 의약품의 시판을 승인하는 조건으로, 안전성 또는 유효성 정보를 원래 제출한 인[신약 특허권자 또는 제약사] 이외의 인[제네릭 제약사]이 그러한 정보 또는 당사국의 영역 또는 다른 영역에서의 이전 시판승인의 증거와 같이 이전에 승인된 제품[신약]의 안전성 또는 유효성 정보의 증거에 의존하도록 허용하는 경우, 그 당사국은
가. 제품 또는 그 승인된 사용방법[신약에 대한 물질 또는 제법 특허]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승인당국[식약청]에 통보된 특허존속기간[특허 출원일로부터 20년] 동안 시장에 진입하기 위하여 시판승인을 요청하는 모든 다른 인[제네릭 제약사]의 신원을 특허권자가 통보받도록 규정한다. 그리고
나. 제품 또는 그 승인된 사용방법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승인당국[식약청]에 통보된 특허존속기간 동안 특허권자의 동의 또는 묵인[§18.9(4)의 적용 제외] 없이 다른 인[제네릭 제약사]이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시판승인 절차에서의 조치를 이행한다.
- [ ]부분은 필자 표기 부연설명

제18.9조 제4항을 보통 ‘허가-특허 연계(Patent Linkage)’ 조항이라고도 부른다. 말 그대로, 의약품을 허가하는 일과 특허 심사를 연계하는 것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이 의약품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해당 의약품이 기존의 다른 의약품의 특허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미리 확인한 다음에 허가를 내주라는 뜻이다.

사돈의 팔촌 관계로도 안 보이는 식약청과 특허청의 업무가 통합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지만, 허가-특허 연계조항의 가장 큰 악영향은 특허권자 또는 신약 제약사들의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을 장려한다는 점이다. 수잔 잭스(Susan Jacks)의 아름다운 노랫말이 생각나면서 왠지 좋은 일인 듯한 ‘에버그리닝’이란 과연 무엇일까?

허가-특허 연계 제도가 없을 때, 제네릭 의약품이 식약청의 심사과정을 밟고 있으면 특허권자 스스로 특허 침해 행위를 감시하고 소송을 통해 후발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막아야 한다. 특허권도 다른 지적재산권처럼 개인의 사적 이익을 위해 만들어진 권리이기 때문에 그 보호도 개인의 책임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허가-특허 연계 제도가 도입되면 특허권을 가진 제약회사가 다양한 특허를 식약청에 통보하기만 하면 식약청이 제네릭 의약품의 시판 허가를 알아서 막아준다. 하지만, 이렇게 등록된 특허의 질을 담보할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우리나라에서 의약품 특허가 무효로 되는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되고, 미국은 무려 70% 이상의 사건에서 특허권자가 질 정도로 ‘나쁜 특허’가 많다. 허가-특허 연계는 특허의 질을 구별하지 않기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가능한 많은 특허를 통보함으로써 제네릭 의약품의 생산을 막으려 할 것이다. 하나의 의약품에 대해 하나의 특허만 등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형을 바꾸거나 구조를 조금 변경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특허를 계속 등재하면, 연계되는 특허는 ‘늘(ever)’ 살아있게 된다. 쉽게 말해서 ‘에버그리닝’이란 특허가 강시처럼 죽지 않고 ‘늘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게 만든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봐도 무방하다.

질이 낮은 특허의 무분별한 양산과 이로 인한 특허의 확장(patent extensions)은 제네릭 의약품 생산이 대부분인 국내 제약산업을 초토화 시킬 것이다. 나아가 종국에는 의약품에 대한 민중의 접근권을 부당하게 가로막는다는 점에서 허가-특허 연계는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조항이었다. 수잔 잭스가 부른 <에버그린(Evergreen)>이 사랑의 영원함을 노래하면서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면, 허가-특허 연계제도가 부를 '에버그리닝(evergreening)'은 특허의 영원함을 노래하면서 인간의 생명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

특허의 확장? 특허에 환장!
제네릭 의약품의 생산을 막고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에 환장’한 조치들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미 FTA 협상에서는 신약의 품목허가를 얻기 위해 식약청에 제출하는 신약의 안전성 및 유효성에 관한 자료들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 즉 ‘데이터 독점권(Data Exclusivity)’도 인정했다. 자료독점권은 특허권과 별개로 취급되기 때문에 어떤 의약품의 특허 보호 기간이 만료 혹은 정지되어도, 그 약은 데이터 독점권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데이터 독점권의 인정은 결국 정부가 이번 FTA 협상에서 지켜냈다고 자랑하는 ‘강제실시권’1)도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다. 어떤 의약품이 데이터 독점권으로 보호받고 있다면 강제실시권자(제네릭 제약회사)가 의약품에 대한 허가를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복제의약품의 개발예외(Bolar Exception)를 인정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사실상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보호 기간이 연장되게 되었다. 우리나라 특허법 제96조 제1항 제1호의 규정에 의하면 순수한 목적의 연구 또는 시험에 대해서는 특허권이 존속하더라도 이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나아가 상업적인 이용, 즉 제네릭 제약회사가 특허 보호 기간 만료 전에 제네릭 의약품을 미리 제조하거나 시험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특허권 침해가 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협상에서 이러한 예외 규정을 두지 못하게 함으로써, 특허 보호 기간이 만료된 후 2~3년이 지나서야 제네릭 의약품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 이는 결국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보호 기간이 실질적으로 연장되는 효과를 낳는다.

한미 FTA 협정에서 의약품 특허와 관련된 조항들이 국내법적 효력을 갖게 되며 발생하는 피해는 단순히 액수 상의 문제가 아니다. 특허의 무차별적인 적용은 인적 '물적 자원의 낭비를 초래하면서 시장 경제를 비효율적으로 왜곡시킨다. 무엇보다 생명보다 이윤에 무게를 두면서 민중의 약에 대한 통제권을 무력화시킨다. 지난 2006년 11월 30일 태국에서 에이즈 치료제인 에파비렌즈(Efavirenz)와 칼레트라(Kaletra), 혈전 치료제인 플라빅스(Plavix)에 대한 강제실시를 발동하자, 칼레트라를 생산하는 다국적 제약회사인 애보트 사는 2007년 3월, 태국에서 팔리는 모든 애보트 제품의 시장 철수를 선언하였다. 이에 태국 정부는 애보트와 로열티 협상을 하려고 했으나 애보트는 이마저도 거부했다. 이런 일이 과연 FTA 체결 이후의 한국에서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을까?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한미 FTA는 우리의 미래입니다.”라는 빛바랜 현수막들이 종종 보인다. 암울할 것만 같은 미래를 그려보다가 머리가 아파지면 두통약을 사러 가야 한다. 아직은 2,500원이다. “당신이 머리 아픈 건 남보다 더 돈이 없어서입니다.”라는 광고가 나오는 살 떨리는 시대가 오기 전에 우리는 무언가, 아니 무엇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각주

특허권자의 허락을 받지 않고도 정부나 정부의 허락을 받은 제3자가 특허발명을 사용할 수 있는 제도. 각국의 특허법 대부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나 국가 긴급 사태에 대응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우, 수요에 비하여 공급이 부족한 경우에 강제실시를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의약 발명의 경우 강제실시를 허용하면, 국영기업이 약품을 생산하여 무상 제공하는 것이 가능하고, 제3의 제약회사가 정부 허락을 얻어 저가의 제네릭 의약품 판매가 가능하다. 강제실시를 하는 경우에도 특허권자에게 합당한 보상은 하게 된다.



출처: 웹진Ac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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