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ActOn] 선거법이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려서야 쓰겠는가

실명제와 UCC 지침 폐기해야

1995년 지방선거 때 일이다. PC통신 ‘천리안’에 개설된 ‘온라인 선거운동광장’에 당시 정원식 민자당 서울시장후보를 비방하였다는 혐의로 한 네티즌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컴퓨터 통신에 선거법이 적용된 첫 사례이자 ‘일반인’이 처음으로 구속된 사례로 알려졌다. 즉 컴퓨터 통신의 발전이 일반국민의 선거 ’관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일반 국민이 선거에 관여하는 방식이란 ‘선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전엔 표현의 자유가 말뿐이었다. 언론에 발표하거나 출판할 수 없는 일반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표현의 자유는 매우 제한적이었다. 자기 주변의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들과 대화를 하는 정도가 자기 발언이 미칠 수 있는 최대한의 범위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널리 전달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 과거에는 술집에서 선거에 대해 대화하고 자신의 견해를 토로했다면, 지금은 인터넷에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토론할 수 있다.

우리 선거법은 이런 시대의 변화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본래 선거법은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과 선거운동을 규제하려고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선거법을 일반 국민에게 마구 적용하는 것은, 일반인의 정치적 표현을 선거운동으로 간주, 규제하는 것이다. 얼마 전 중앙선관위에서 발표해 논란을 빚고 있는 ‘선거UCC지침’이라는 것도 이같은 규제의 일환이다.

권위주의 독재 정권 시절에도 술집에서 정당과 정치인을 거론했다고 해서 처벌하진 않았다. 선거 시기에 유권자인 국민이 선거에 대해 이야기하고 의견을 갖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 선거법도 ‘단순한 의견개진이나 의사표시’는 정당한 국민의 권리로서 보장하고 있다. 문제는 선관위가 이를 다른 불법 선거운동과 구분하기 어렵다며 매우 폭넓게 규제하고 있는 점이다.

사진 : 인터넷참여연대


게다가 선관위는 다분히 편의적으로 인터넷을 규제하려고 한다. 지난 2004년부터 선거 시기 실명제가 도입되었다. 선거 시기에는 인터넷 언론에서 실명을 확인받아야만 토론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 독자가 일반 언론에 투고할 때 행정자치부에 들러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본인 확인을 받아오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표현의 자유 탄압이자 국가에 의한 감시 통제라는 비판이 일 법하다. 그런데 이런 정책이 인터넷에서는 가능하다. 기술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이다.

기술적 규제는 더욱 강해지고 있다. 선관위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 단속 활동을 하고 있다. 자동검색 로봇과 정보검색사들이 포털 사이트를 비롯해 정치관련 사이트와 관공서 홈페이지, 언론사 게시판, 시민단체 홈페이지 등 선거 관련 게시글이 오를 만한 곳을 모두 모니터링하고 있다. 과거보다 규제 대상이 많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수천 건의 사이트에서 수십만 건의 게시물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사된다.

그러나 법률적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정보검색사’가 기계에 의존하여 규제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일차적으로 검색된 대상을 전문가가 판단한다고 하지만, 그 많은 양을 면밀하게 판단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남발된 삭제 요청이 포털과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 ‘뿌려지고’ 그 삭제 요구가 대부분 수용되는 상황은, 말 그대로 검열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공정한 선거를 치르자는 데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대의제에서 금권과 관권의 개입을 막고 선거운동을 공정하게 감독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그러나 유권자의 정치 참여 또한 중요한 민주주의 근간이다. 실명제와 UCC 규제는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선관위는 선거법 핑계만 대지 말고 변화한 시대에 일반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게 본래 선관위가 할 일이다.


출처: 웹진Ac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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