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ActOn] 자본의 문화 해적질, 어떻게 저항할까?*

불법복제 근절과 (한류를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의 발전. 이는 저작권법을 비롯한 국내 문화관련 법제도를 움직이는 절대 반지이다.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문화산업계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나 국회의 정책 입안자들의 이데올로기 역시 반지의 포스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불법복제 근절과 문화산업 발전이라는 절대반지

우선 불법복제 근절을 보자. 개념 자체부터 ‘불법’이라는 딱지가 있으니, 여기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좋다. 불법복제를 근절하고 저작권 보호하자. 그런데 지금 문제가 이렇게 단순한가?

예를 들어 보자.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서점에서 책을 읽는 것(책의 내용을 눈을 통해 머리에 복제하는 것!)을 금지해야 하는가? 친구가 산 음반을 공짜로 빌려 듣는 것은 불법인가? 분명 아니다. 책을 읽거나 음반을 빌려주는 행위에 대한 권리를 저작권자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이건 어떤가? 온라인 시 동호회에서 시를 올려놓고 토론하는 것은 불법인가? 음반을 사서 내 미니홈피 배경음악으로 사용하는 것은 불법인가? 영화를 보고 블로그에 영화평을 쓰면서 스틸 샷과 영화 음악을 포함하는 것은 불법인가?

디지털 환경은 사람들이 저작물을 이용하고, 소통하며, 창작하는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이때 저작권자의 권리는 어느 정도 범위까지 보호해야 하며, 혹은 제한해야 하는가? 문제는 이것이다. 무엇이 불법복제인지 합법복제인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불법과 합법은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 달렸다.

그러나 때는 이미 많이 늦었다. 사람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는 인터넷 상의 소통 행위들이 이미 저작권 위반으로 ‘법적으로’ 규정되고 있다. (위에서 든 사례 역시 이미 불법복제로 규정되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황당해하고, 또 분노했지만, 이제는 ‘불법복제’라는 위협에 압도되고 있다. 그리고 ‘그래 문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모든 저작물 이용에 대해 돈을 내야 해’라는 자기 최면의 단계에까지 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책입안자들의 논리는 명확하다. 디지털 환경에서도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문화산업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질문 : 온라인 시 동호회입니다. 출판된 시를 올려서 함께 보고 토론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답변 : 그냥 오프라인에서만 토론하시오. 돈 내지 않으면 무조건 불법 복제!

질문 : 비영리로 라디오 방송을 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답변 : 권리자들에게 사용료를 내시오. 돈 내지 않으면 무조건 불법 복제!

질문 : <불멸의 이순신> 팬인데 커뮤니티에서 스틸 샷과 동영상을 즐기고 싶습니다.
답변 : 닥치고 그냥 보기나 하시오. 돈 내지 않으면 무조건 불법 복제!

질문 : 독립 다큐멘터리 만들려고 하는데, 방송 영상 좀 사용할 수 있을까요?
답변 : 돈을 내시오, 돈을. 돈 내지 않으면 무조건 불법 복제!

질문 : 도서관이 주변에 없어서 온라인으로 열람하고 싶은데요?
답변 : 도서관을 찾아서 산 넘고 물을 건너시오. 아니면 주변에 도서관이 생기길 무조건 기다리시오. 아무튼지간에 돈 내지 않으면 무조건 불법 복제!


정책입안자들의 머리속에서 문화의 발전은 곧 문화산업의 발전이다. 그래서 문화산업을 이끄는 자본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모든 행위는 위험한 행위이며, 따라서 저작권 위반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문화적 다양성, 정보에 대한 접근권, 커뮤니케이션 권리 등은 죽은 개 취급을 당하는, 그저 교과서에나 나오는 개념일 뿐이다.

우상호 네티즌 죽이기 법안의 문제

지난 6월 29일 발효된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 역시 마찬가지다. ‘잦은 개정으로 흐트러진 법체계를 바로 잡는다’는 취지 아래 만들어진 ‘저작권법 전부 개정안’이지만, 이번 개정안 역시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이용규범 마련’과 ‘국제조약 가입’이라는 명분으로 권리자의 배타적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내용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 내에는 전부 개정안 초안 외에 일부 의원들이 발의한 저작권법 개정 제안도 포함하고 있는데, 특히 열린우리당 우상호 의원이 제안한 내용들이 독소조항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우상호 의원의 치적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정보인권단체들은 이 법안을 <우상호 네티즌 죽이기 법안>이라고 명명했다.

우선 이 법안은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제공자’를 규정하고, 이들은 (권리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불법적인 전송을 차단하는 기술적인 조치를 취하도록 하고 있다. 우상호 의원은 P2P나 웹 하드 업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라 설명하지만, 법 규정은 훨씬 광범위하여 이메일, 메신저, 게시판 서비스 등도 포함될 수 있다. ‘특수한 유형의 온라인 서비스 제공자’를 ‘다른 사람들 상호 간에 컴퓨터 등을 이용하여 저작물 등을 전송하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온라인 서비스제공자’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관광부장관 고시를 통해 그 범위를 더욱 구체화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개념이 추상적이어서 그 폭이 넓기는 마찬가지다.

기술적인 조치가 어느 정도 수준을 말하는 건지도 모호하다. 예를 들어 <괴물>이라는 영화가 있다. 파일 제목에 ‘괴물’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다 차단하라는 것인가? 그럼, 누군가 만든 <괴물>이라는 독립 다큐도 차단될 위험이 있다. 아니면, ‘괴물, 봉준호’가 들어간 파일을 차단할 것인가? 그런데 만일 누군가 monster-bong.avi 로 올린다면? 파일 내용을 판독하여 영화 <괴물>과 동일한 경우 차단하도록 한다면, 서비스제공자는 이런 고비용의 시스템을 도입하느니 차라리 다른 사업을 해야 할 것이다.

또 다른 핵심 쟁점은 ‘비친고죄’ 조항이다. 지금까지 저작권 침해는 친고죄였기 때문에, 권리자가 고소를 해야 형사처벌이 가능했다. 이에 대해 영리, 상습적인 행위는 고소 없이도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바꾼 것이다.

이해가 안 간다. 설사 권리자 허락 없이 저작물을 이용하더라도 이는 ‘절도’와는 다르다. 절도는 권리자로부터 물건을 빼앗는 것이지만, 저작물은 그것을 허락 없이 이용했다고 권리자에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저작물 이용 자체는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이기도 하다. 때로는 권리자가 자유로운 이용을 원할 수도 있다.

영리, 상습적인 행위라고 하지만, 일반 네티즌들이 MP3 파일을 주고받는 행위도 영리적인 행위로 여겨지고 있으며(음반 구입비용을 절약할 수 있으므로), 2번 이상 이러한 행위를 하면 상습적인 것으로 간주될 것이다. 즉, 상업적 목적의, 기업적 규모의 행위만이 아니라 일반 네티즌들의 통상적인 파일 교환 행위까지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권리자들이 손발이 묶여 있었나? 아니다. 권리자는 이미 민사적인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도 있고, 형사 고소를 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의 행정력을 이용해서 굳이 형사 처벌하겠다는 것은 과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역시 정부는 자본의 하수인임을 증명하는 많은 사례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면, 납득하지 못할 바도 아니지만 말이다.)

법 통과 과정에서의 비민주적 절차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겠다. 문화관광부에서 전부 개정안을 준비할 당시부터도 ‘대외비’라며 공개를 꺼려왔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전부개정안 초안을 단지 하루 전날 토론자들에게 전달하는 등 공청회도 형식적으로 진행하였다. 2005년 12월 6일 상임위인 문화관광위원회를 통과하였는데, 당시 상임위 회의록을 보면, 여기서도 의원들의 충분한 검토 없이 졸속으로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다. 법안 검토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없었다는 의원들의 문제제기가 있었지만,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이었던 우상호 의원은 얼렁뚱땅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했다.

손봉숙 의원 : 위원회 대안으로 올라오는 법안을 현장에서 받고 심사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적어도 하루 전날이라도 위원들한테 배포가 돼서 어떤 대안이 어떤 조문으로 확정됐는가를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오늘 가결을 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우상호 의원 : 이번 법안은 크게 정책적 쟁점이 된 것은 없고, 이 법안이 진행되면서 올 수 있는 여러 가지 실효성에 대한 논의는 많이 했습니다만 그것은 많이 보완을 했습니다. 주로 문화산업 관련된 법안이 주이기 때문에 크게 쟁점은 없습니다... 다음부터 법안심사소위를 거쳤다고 해서 형식적으로 통과시키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릴 테니까, 오늘은 양해해 주시면 문화산업과 관련된 5대 입법안이 통과된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어이가 없다. 우상호 의원이 큰 정책적 쟁점이 없다던 이 법안은 인권사회단체들의 문제제기로 법사위 처리가 계속 지연된 끝에 (결국 큰 틀에서의 변경은 없었지만) 1년이 지나서야 통과되었다.

한미FTA가 결국 체결되어 저작권법이 이를 수용한다면, 저작권 보호기간의 연장, 일시적 복제에 대한 권리 인정, 기술적 보호조치 강화 등 권리자들의 배타권은 다시한번 획기적으로 강화될 전망이다.(웹진 액트온 2호 특집 ‘한미FTA 지적재산권 협상, 우리가 잃은 것’ 참고)

자본은 문화 소비사회만 꿈꾼다

Capital by Viktor Deni (1919)



저작권법을 비롯하여 현행 문화 관련 제도가 지향하는 사회체제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영화사, 음반사 등 문화기업들이 콘텐츠 창작의 주된 생산자가 되고, 일반 대중들은 무선 인터넷이나 IPTV 등 더욱 다양해진 채널을 통해 그것들을 더 많이 소비하는 체제일 것이다. 일반 대중들은 더 다양한 콘텐츠를 ‘소비’하기 위해 문화기업들의 수익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물론 모든 문화기업들이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니고, 그 내에서도 다국적 기업의 독점력은 더욱 커질 것이다.

미래에는 UCC(이용자 창작 콘텐츠)를 주목해야 한다고? 천만에! 도대체 문화 창작을 위한 원천 자료의 이용을 이렇게 제한하면서, 사용료를 낼만한 자본이 없는 일반 이용자들이 어떻게 창작을 한단 말인가? 스스로 찍은 사진이나 동영상과 같은 단순한 1차 창작이 증가할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문화적 소스를 필요로 하는 고급 콘텐츠의 제작은 불가능할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서의 저작물 이용이 제약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욱 암울한 것은 저작권 체계 자체가 저작물 이용을 근본적으로 저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나치게 긴 저작권 보호기간이 그 한 예이다. 도대체 저작자 사후 50년 동안 상업적인 가치를 갖는 저작물이 얼마나 될까? 상업적 가치를 갖지 않는 대다수의 저작물조차도 현행 저작권법에 의해 자유로운 이용이 제약되고 있다. 그러나 월트 디즈니와 같은 다국적 문화기업은 전 세계적인 보호기간 연장을 시도하고 있다. 2004년 지에 의하면, 미키마우스의 연 매출액이 6조 900억 원에 달하는데, 보호기간이 1년 연장될 때마다 월트 디즈니는 수조 원의 추가 수입을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 추가수입은 당연히 소비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이와 같은 문화자본의 ‘해적질’을 고려하면, 헐리우드 영화의 불법복제는 소비자들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생각될 정도다.

어디서부터 저항할까?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의 성과로 그누/리눅스(GNU/Linux) 운영체제가 MS 윈도에 위협이 될 정도로 성장한 것 만큼, 정보공유라이선스(http://freeuse.or.kr)나 크리에이티브커먼스라이선스(http://creativecommons.org)와 같은 대안적 라이선스의 확산을 통한 공유정보 영역의 확대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공유정보의 영역이 정보상품 시장을 대체하기는 어렵겠지만, 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중요한 운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공유정보 영역의 확대가 현행 저작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현행 저작권 체제 내에서 이용자의 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사실 이것은 일반 대중의 창작 환경을 개선하는 투쟁이기도 하다!)은 여전히 중요할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국회에는 천영세 의원의 저작권법 개정안이 잠자고 있다. 이 개정안은 저작권자가 부당한 손해를 입지 않는 범위 안에서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을 보장하는 ‘공정이용 일반조항’, 디지털 도서관 활성화를 위한 조항 등을 포함하고 있다. (문화관광부는 한미FTA 타결 이후 내놓은 후속 대책에서 ‘포괄적 공정이용조항’의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왜 인제 와서야?)

근본적으로는 저작권 체제 자체에 대한 개혁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저작권 보호기간을 단축하고, 저작권 등록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국제적인 저작권 협정의 개정이 필요하다. 저작권법에 대한 개혁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국제연대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주 :
* ‘해적질’이란 용어는 주로 문화 자본이 이용자를 비난할 때 사용하는 용어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글에서 진짜 해적질하는 것은 이용자들의 주머니를 노리는 자본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해적질’의 의미를 비틀어 보았다.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오병일 : 진보네트워크센터, 정보공유연대 IPLeft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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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복제 , 저작권법 , FTA , U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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