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ActOn] 개정 저작권법 - 법적 상상력의 한계

옆집 새 차론에 대한 비판*

저작권법은 수많은 이의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강화되어 가고 있다. 작년 12월 1일 본회의를 통과하고, 올해 2007년 6월 29일부터 적용되고 있는 개정 저작권법 또한 그러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공간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은 이제 몽상적 혁명가들의 구호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나 이러한 ‘자유’에 대한 열망이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감성적인 설득력을 부여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초기의 사이버 공간의 운동가들은 인터넷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이상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러한 사이버 공간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관료주의적이며 근대적인 규제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국가 및 (자본) 권력은 새로이 창출된 공간을 오프라인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법’과 ‘기술’을 통한 울타리를 치기(배타성 확보)를 시작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법이라는 것은 네트워크상의 저작권을 규율할 수 있는 ‘저작권법’을 비롯한 지적재산권에 관하여 규율하고 있는 법을 의미하고, 기술이라는 것은 그러한 법을 뒷받침해 주고, 더 나아가서는 법의 도움 없이도 배타성을 획득하게 해 줄 수 있는 ‘기술적 보호조치’ 등을 의미한다. 이는 서구의 근대 초기 ‘인클로저 운동’에 비유될 수 있을 것이다.

전자 프론티어 재단(EFF)의 자유로운 블로깅을 위한 포스터
http://eff.org/bloggers/

근대 이후 재산권 관련 법이라는 것은 배타적인 권리를 중심으로 형성이 되어왔다. 이용을 원활하게 하는 것은 이와 상반되게 배타적인 권리를 설정받은 자의 이익을 침범하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그 배타성을 어느 정도의 범위로 설정하여, 재화의 이용이라는 것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항상 문제 되어 왔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사상적인 분화를 불러왔으며,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너무나도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대립이다. 그러나 이것은 배타적인 권리 설정이 가능한 유체물들이 모든 재화의 중심을 이루던 시절의 이야기이다. (물론 아직도 상당부분은 이러한 가정하에 논란이 지속된다고 할 수 있다.)

상황은 바뀌었다. 유체물의 속성에 기반한 재산권 관련 법들이 적용되기 힘든 영역이 생겨났으니, 그것이 바로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공간이다. 말 그대로 커뮤니케이션(소통)이 중심을 이루는 공간으로 이곳에서 배타적인 권리를 설정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 과거의 법들이 만들어낸 규제구조를 그대로 적용하기 위해 두 가지 종류의 울타리 치기가 행해진다. 그 중 하나는 바로 ‘기술적 보호조치’와 같은 기술적 울타리이며, 다른 하나는 기존에는 없었던 배타적인 울타리를 설치하기 위한 저작권법과 같은 법적 울타리이다.

그 결과 사실상 네트워크 상의 많은 지식 정보들이 이제는 거래의 대상인 지식 및 정보 상품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상황은 개인적인 기호나 취미를 위하여 만든 정보, 예를 들면 UCC까지도 특정 자본의 이윤을 위해 활용될 수 있게 만들었고, 결국 블로거나 네티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본을 위한 정보 노동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취미 활동 및 여가 활동조차도 이제는 자본을 위한 암묵적인 노동의 역할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우리 헌법 제22조는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아니하고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하는 소극적인 의미의 기본권뿐만이 아니라, 저작자와 발명가 등의 권리를 보호해 줌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는 보다 적극적인 내용의 기본권도 규정함으로써 저작권법의 명시적인 헌법적 근거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저작자·발명가·과학기술자와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22조 2항에서 ‘권리’라는 것은 어떤 권리를 의미하는가? 당연히 재산권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자본주의의 욕망 속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권리라는 것은 분명 재산권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보장받을 수밖에 없음을 불가피하게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을 거부하는 많은 저항의 움직임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은 좀 더 다른 논의를 요한다.

그렇다면, 헌법 22조가 상정하고 있는 권리라는 것이 상정하고 있는 재산권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가? 근대 이후 재산권이라는 것은 ‘배타적인 의미의 소유권’이라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 그러나 재산권에 관하여 궁극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우리의 민법 조항들을 살펴본다면, 다양한 유형의 재산권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재산권들은 사용, 수익, 처분에 관한 권리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 저작권법이 규정하고 있는 재산권은 반드시 ‘배타적인 소유권’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전자 프론티어 재단(EFF)의 블로거의 표현의 자유를 위한 법률 가이드 포스터
http://eff.org/bloggers/lg/

그렇다면, 저작자 및 창작자에게 보장되는 권리, 즉 재산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학문화 예술의 발전, 궁극적으로는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재산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핵심은 소위 말하는 인센티브의 보장이다. 인센티브를 보장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지금 저작권법에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배타적 소유권’의 성격은 그러한 보장 방법 중 하나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배타성은 지식과 정보가 소통 속에서 더욱 발전한다는 기본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다. 오히려 자유로운 공유와 활용에 바탕하여, 저작자들에게 어떻게 인센티브를 보장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개정 저작권법은 이러한 새로운 소통을 가로막는 가장 대표적인 입법례라고 할 수 있다. 아무런 울타리가 없던 곳에서 배타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감행하다 보니, 각종 개념 정의를 비롯한 규제조항들로 넘쳐난다. 곳곳에서 지식과 정보의 기본적인 공유적 속성을 살릴 수 있는 조항들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다분히 장식적인 측면 그 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다.

배타성 강화를 위한 최근 일련의 지속적인 저작권법 개정은 결과적으로 학문과 예술, 더 나아가서는 문화의 증진에 이바지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저해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크의 속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 기인한 바 크며, 또한 재산권의 개념을 논함에 있어 ‘배타적 소유권’이라는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입법 및 위정자들의 상상력의 한계에 기인한다.

각주 :
* 이 글은 <저작권과 옆 집이 새로 뽑은 차>에 대한 반론입니다.


출처: 웹진ActOn
덧붙이는 말

심우민 : <정보꼬뮨> 운영자. http://www.infocommune.net/C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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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법 , U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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