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차별에 저항하라!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5호 후일담 2

 

차별에 저항하라!
- 여덟번째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후기

 

재영
(문화연대 자원활동가)


누군가에게 차별당한 기억은 쉽사리 잊혀 지지 않는다. 일상에서의 사소한 차별에 더해 사회적 지위가 다르다는 이유로, 혹은 타인의 모습과 다르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져야만 하는 경우는 언제든 사람의 마음을 불쾌하게 만든다. 그러나 당신이 누군가를 차별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쉽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될까. 희미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해도, 그럴 의도는 없었다며 애써 회피하지는 않을까. 그만큼 타인에게 차별을 가하는 건 우리 관심의 밖이며, 그로 인해 소외 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자신이 차별 받았던 순간의 기억만큼이나 크다.

 

인권에 대해 관심이 있다는 나도, 혹시나 그러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이 될 때가 많다. 은연중에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채 나 자신에게만 초점을 둔 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그리하여 세상의 아픔에 점점 무뎌져가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구도 묻지 않는 괜한 부채의식은 올해 열린 8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로 나를 이끌었다. 장애인인권과 관련한 영화를 보며, 그리고 그들의 축제를 보며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을까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곧, 나는 어떤 오류에 빠져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가 진행되었던 종로3가 피카디리 3관은 분주하고 활기찬 분위기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행사의 진행을 돕는 자원봉사자들과 영화제를 구경하러 온 관객들은 이곳이 일종의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개막식에서 들려오던 흥겨운 음악소리도 역시 이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듯했다. 웃으며 말을 건네는 사회자와 박수로써 화답하는 관객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일종의 동질감은, 그래도 아직은 숨을 쉬며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안도감을 주었다.

 

그러나 안도감도 잠시, 역시 현실의 무게는 비켜갈 수 없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더욱 어두워진 사회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기회를 감추어버렸다. 낮은 이들의 편에 섰다는 이유 로 감옥에 들어간 박래군의 편지, 미디액트에서 들려주었던 문화예술에 대한 정부의 냉정한 탄압은 한국이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임을 증명해주었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인을 평가하는 사회,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무한경쟁 사회에서 힘없는 사람들은 그저 피해자일 뿐이었다. 이러한 잔인한 정글 속에서마저도 소외받는 장애인들은 그래서 여전히 숨통이 필요하다고 외치고 있었다.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환하게 웃으며 저항하고 있는가. 타인에 대한 차별에 무감각한 사람들 사이에서 소외의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희망을 믿으며 미래를 향해 손짓을 하고 있는가. 그것은 보통사람들이 지니지 못하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사람 사는 세상을 꿈꿀 수 있는 풍부한 감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를 통해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고 싶은, 대중들에게 다가가고픈 진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들이 모여 축제를 만들었기에, 웃음이 넘치는 영화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내가 발견한 오류는, 장애인들은 마음의 짐을 가져야 하는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공식엔 이미 ‘다르다’라는 전제가 붙어있으며, 장애인들은 무조건 보호 받아야 하고 챙겨주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잘못된 답을 산출한다. 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라는 잔인한 이분법적 단어를 만든다. 약간의 불편함을 동반한다는 것 외에는, 다를 것이 없는 이웃을 말이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도 문제지만 타인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관점도 문제다. 이 모든 부조리를 털어낼 수 있는 방법은, 이기적인 당신을 이해한다는 듯 건네는 따뜻한 손길이다.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는 그 손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서.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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