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5호 후일담 3
여전히 알쏭달쏭한 사회공공성? 하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사회공공성!
- 사회공공성학교 참가 후기
조경옥
(철도지하철네트워크)
“사회공공성...”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첫 번째 강연 강사님께서 첫 질문을 던지셨다. 음... 급 썰렁해지는 분위기...
여전히 사회공공성이란 한마디로 딱 정의하기 애매한 그 무엇인가보다. 사회공공성을 이야기하며 쟁취하기 위해 활동한지 수년이 지났고, 2008년 촛불의제의 중심에 있었지만 아직까지 계속 그 자리를 맴돌고 있는 듯한 느낌은 왜일까? 특히 요즘은 4대강, 언론탄압, 노조탄압 등 MB가 하는 짓이 영 꼴통인지라 사회공공성 이야기는 또 다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게 한다.
이런 와중에 ‘서울지역 사회공공성연대회의’에서는 4월 3일, 10일 이틀간, 사회공공성 총론부터 사회복지, 주거, 의료, 교육, 정보공공성 등 총 6강으로 구성된 사회공공성 학교를 개최했다. 나의 느낌이 맞는 것인지 참여율은 저조했지만, 나에게 사회공공성학교는 그 동안 이슈가 됐던 것만을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각 의제별 내용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고, 삶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공공성 운동을 절대 포기해서는 안되다는 것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초반부터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졌던 사회공공성 총론의 강사님은 사회공공성 운동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며, 왜 여전히 애매한 것인지에 대해 3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사회공공성 운동 자체가 연역적 이행운동이 아닌 귀납적 이행운동이라는 것. 즉 사회를 어떻게 구성하고 작동시켜야 하는지 모델이 정해져 있어 그것을 만들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적으로 활동하는 과정속에 새로운 대안운영체제의 토대와 주체를 형성해 나가는 운동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한국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공공성이라는 것을 실제로 체험하지 못한 국민들이 사회공공서비스를 생산하고 있는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이 큰 상황이라는 것. 셋째는 사회공공성 운동을 중심적으로 제기하며 주체가 되어야할 노동조합들이 공공성을 명분으로 하면서, 실제로는 고용조건 의제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때문에 노동자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시민들도 관심을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나는 특히 세 번째 이유가 가장 절실하게 다가왔다. 국민을 위한 노조, 시민을 위해 노력하는 노조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 공공성관련 요구안이 전면에 걸리고, 실제로 시민사회단체들을 두루 만나면서 지원하는 활동들도 전개하고는 있지만 파업 등을 앞둔 투쟁시기에 반짝일 뿐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일상적인 사업을 지속하고 있지는 못하다. 물론 노조가 가지공 있는 특성상 단협과 노동조건이 우선일 수밖에 없겠고, 실제로 투쟁에 돌입하게 되면 노조 자체일을 처리하는 인력도 모자른 판국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노조의 투쟁을 이기기 위한 수단으로 사회공공성이 이용되어서는 안된다. 사회공공성 운동을 동의하고,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다면 진정성과 의지를 가지고 일상적으로 현장의 조합원들을 설득시키는 과정부터 차근차근 밟아가야 하지 않을까?
사회공공성은 따로 뚝 떨어져있어 잡을 수 없는 그 무언가가 아니다. 나의 삶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자본과의 싸움이므로 아주 구체적이고, 치열해야 한다. 교육공공성을 강연하셨던 강사님은 연금보험을 포함한 사보험들을 다 해지했다고 한다. 의료시장이 개방되어 건강보험이 무너지고 영리병원이 허용될 상황에서 내가 직접 피해를 당해야만 진정으로 분노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시란다. 나 개인적으로는 살길을 마련해 놓고, 당위만을 가지고 머릿속으로 외치는 공공성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며 분노했을 때 진정한 행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생·학생은 교육공공성만을, 의사·간호사들은 의료공공성만을 위해 활동하면 노동조합이 자신의 투쟁에 갇히는 한계를 보이는 것처럼 사회공공성운동은 종합적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대안마련 등 구체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논쟁이 발생하고, 다양한 의견들로 일치가 안되는 부분이 바로 사회공공성 운동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합체할 수 없고 갈라서는 것이 아니라 내 삶과 직결된 문제인 이상 나만 잘 살고자 하는 이기적인 모습들을 인정할 수 없다면, 서로가 불편함 혹은 불리함을 감수하면서 이해할 수 있는 정말 작은 부분부터 실천하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했을 때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주거 등 뜬금없어 보이는 생뚱맞은 요구들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