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6호 특집기사 3
광화문에서 장애인투쟁을 만나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교육국장 남병준 (namtoosa@naver.com)
“장애인복지 그래도 많이 좋아지고 있지 않나요?”
“장애가 경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장애가 중증인 사람은...”
“우리도 도와주고 싶지만...”
“장애인이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아나?”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선에서 요구를 해야지...”
“아무리 사정이 억울해도 그렇지, 법을 어겨서야...”
# 광화문광장
광화문광장에 들어오려는 중증장애인들을 경찰이 막아선다. 휠체어가 움직이지 못하게 방패로 막고 1인시위라도 할라치면 경찰이 에워싸서 전혀 보이지도 않고 꼼짝도 못하게 한다. 매일같이 벌어지는 싸움이다.
장애인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신문고를 울려 자신들의 한을 알리려 하지만, 신문고를 두드리려줄 장애인들은 경찰에 막혀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비장애인들은 아무런 제재 없이 다니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만 보이면 이유없이 통행이 금지된다.
지난 4월 20일에는 충돌이 컸다. 정부가 만든 소위 ‘장애인의 날’에 장애인들이 신문고를 두드리며 ‘장애인차별철폐투쟁’을 외치려 했으니 이명박정부가 가만 놓아둘 리 있겠는가.
이런 모습에 시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무거운 표정으로 외면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경찰에게 따지는 사람들도 있고, 서명을 해주며 힘내라고 한마디 해주는 사람, 합리적인 선을 지키라며 장애인을 나무라는 사람들도 있다.
# 오해와 진실
장애인의 손과 휠체어에는 “이명박정부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죽이지 말라”는 작은 현수막과 피켓이 들려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일까?
장애인복지가 좋아지고 있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반대로 이명박정부하에서 장애인복지는 개악되고 있다. 정부가 중증장애인의 일상생활을 지원하는 활동보조서비스를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신규신청을 금지하고, 서비스 이용료를 인상하고, 엄격한 장애등급심사제도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을 서비스대상에서 탈락시키고 있는 것이다.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은 35만명이나 되는데, 정부는 1급장애인으로 대상을 제한하고, 터무니없이 부족한 시간을 제공하다가, 2010년에는 고작 3만명을 대상으로 한 예산을 수립하고, 이제는 그것마저도 선착순으로 잘라내고 있다. 활동보조 신규신청이 금지되면서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장애인들,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꿈꾸던 장애인들이 꿈을 접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서비스이용료 인상은 장애인으로 하여금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도록 만들 뿐 아니라, 사회서비스의 공적인 성격과 장애인의 권리를 부정하는 위력적인 무기로 작용하고 있다.
장애의 사회적 성격을 무시 혹은 은폐하고, 장애인의 몸을 의료적 기준만으로 평가하는 장애인등록제도는 그 자체로 차별적 시스템이다. 장애인등록제도 혹은 등급제도를 폐지하고 개인이 필요로 하는 사회서비스를 파악하여 제공하여야 할텐데, 정부는 반대로 등급제도를 강화하고 있다.
장애인을 의학적으로 혹은 법적으로 명확히 규정하고자 하는 오만한 시도들은 실패하거나 혹은 인간을 차별하고 억압하는 결과만을 가져왔다. 사실 장애인이란 그냥 특별한 요구(special needs)를 가진 사람들에 불과하고, 그 요구들은 사회에 따라 다를 것이 자명한 일인데 말이다.
#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활동보조서비스(PAS. Personal Assistant Service)란 장애로 인해 하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의 일상활동을 유급보조원을 파견하여 지원하는 서비스이다.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가 어떤 의미인지 알기 위해서는 활동보조가 없는 삶의 현실을 이해해야 한다.
2007년 활동보조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이전인 2005년 장애인통계조사에는 10만이 넘는 장애인이 1년에 10회도 외출을 못한다고 보고되었다.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은 전국적으로 35만명이나 되는데 90%이상이 가족에 의존하고 있었다. 장애인가족들은 1년에 3가구 꼴로 자살을 한다. 그리고 생활시설에 있는 장애인들의 77%이상이 본인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에 의해 입소했다고 답했다.
다른 나라에서는 60,70년대부터 활동보조제도가 만들어져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지만, 이러한 기본적 사회서비스가 없는 대한민국의 환경은 장애인에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의 비극적 삶만을 강요해왔던 것이다.
# 투쟁의 기억
유난히 추웠던 2005년말, 경남 함안에 살던 장애인이 방안에서 얼어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애인들은 더 이상의 비극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 투쟁을 시작한 것이다.
2006년 3월, 활동보조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수십명의 중증장애인들이 서울시청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울시청 경비와 남대문경찰서에서만 관심을 보였다. 활동보조라는 요구도 생소해서 꽤 긴 설명이 필요했고, 정부의 예산타령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아 투쟁의 전망은 그다지 밝지 않아 보였다.
장애인들은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에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비가 와서 노숙이 더욱 고통스런 날엔 놀랍게도 더 많은 장애인이 모였다. 수십명이 삭발을 했고, 한강다리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을 했다. 결국 43일간의 서울시청앞 농성투쟁의 결과 서울시로부터 활동보조제도화를 약속받았다.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은 곧바로 인천시와 대구시 등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고, 복지부가 2007년부터 전국적 시행을 약속하기에 이르렀다.
2007년초, 복지부의 활동보조 사업계획이 저소득층에게 고작 월최대80시간에 엄청난 자부담을 강요하는 기만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장애인들은 목숨을 건 무기한 집단단식농성에 돌입했다. 결국 23일간의 단식투쟁 끝에 소득기준을 없애고, 월180시간까지, 자부담의 상한을 두는 성과를 만들게 되었다.
# 속사정
이러한 투쟁의 행위는 그 자체로 위대한 것인데 그 속사정을 알면 더욱 그렇다. 가정과 시설에서 씻기기 편하게 하려고 머리를 빡빡 밀어버려 성장기를 빡빡머리로만 살아야했던 어떤 이도, 이제는 멋지게 길러 맵시있게 염색한 머리카락을 삭발하겠노라고 자청을 했다.
한강다리를 기어서 건너는 투쟁을 했던 이들에게 결단이 필요했던 이유는 아스팔트길을 맨몸으로 기어가는 고행보다, 기어다니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더욱 힘들었던 때문이다.
일상생활을 혼자서 하기 힘든 중증장애인이 목숨을 건 단식을 결의했다. 23일간의 단식기간 동안 그/그녀들은 당장의 허기와 탈진보다 나중에 행여 몸의 거동이 더 불편해지지는 않을까하는 공포와 싸워야 했다.
※ 꿈꿀 권리
현행 활동보조서비스는 1급장애인만 신청가능하고, 최중증장애인의 경우 고작 한달 최대 180시간에 불과하다. 그것도 월최대 8만원의 자부담을 내야 하고, 엄격한 장애등급심사를 통해 장애등급이 2급, 3급으로 하락되면 서비스가 중단된다.
이명박정부의 시나리오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소위 ‘장애인장기요양’이라는 제도를 만들어 활동보조서비스를 노인요양보험방식으로 통합시키려는 음모까지 꾸미고 있는 것이다. 장애인에게 노인요양보험방식의 사회서비스란 오직 본인부담금의 엄청난 인상, 그리고 정부의 책임을 없애고 사회복지사업을 영리단체의 시장경쟁에 내던지는 사회서비스 시장화를 의미할 뿐이다.
장애인의 요구는 매우 단순하고 명쾌하다.
활동보조서비스를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권리로 보장하라”는 것이다. 활동보조를 필요로 하는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서비스는 기본적 권리이다. 활동보조가 보장된다면 중증장애인도 먹고싶은 것을 먹고싶은 때 먹을 수 있고, 가고싶은 곳을 가고싶은 때 갈 수 있고, 하고싶은 것을 하고싶은 때 할 수 있게 된다.
활동보조서비스는 자립생활의 꿈을 실현시켜주는 도구이다. 더 이상 가족에게 짐스러운 존재가 아닌, 더 이상 사회에서 버려져 시설에 격리된 삶이 아닌,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여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 있는 기회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인간으로서 이토록 기본적이고 절박한 요구가 또 있을까? 동정과 시혜를 거부하고 보편적 권리로서 자립생활을 꿈꾸는 장애인들의 투쟁은 또 얼마나 당당한가?
골방과 시설이 아닌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장애인들의 투쟁은, 자신들의 모습 뿐 아니라 세상의 모습도 크게 바꾸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