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당신에게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 ‘Me, too!'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16호 밥보다 문화

 

당신에게 하고 싶고, 듣고 싶은 말, ‘Me, too!'

 

최미경(문화사회연구소 활동가)

 

어느 금요일 밤, 동네친구와 함께 프라이데이 나잇을 즐기기 위해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영화를 보기 전 선입관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줄거리, 감독, 작품비평 등 영화에 관한 자료를 전혀 읽지 않고 영화를 선택하는 탓에, 그냥 시간과 장소가 적절하게 맞는다는 이유로 보게 된 영화 ‘me, too',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드는 생각,󰡐참 따뜻하고 현실적인 영화󰡑라는 결론,"따뜻"하다는 단어와 "현실적"이다는 단어가 서로 모순적이지만, 이 영화는 현실적이고 따뜻하다.(왜인지는 영화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이유를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me, too", 이 영화를 단순하게 설명하면 다운증후군을 갖고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사랑,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이야기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다룬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다."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아름답지"만" 현실적이고 쓸쓸했다면,"me, too"는 아름답󰡐고󰡑 따뜻하며 현실적이다.

 

    ▲영화 <me, too>, 2009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

 

아름답지‘만’과 아름답‘고’에서 ‘만’과 ‘고’ 한 음절의 차이가 문장의 의미 전체를 바꾸듯, 일상에서 우린 조사 하나 또는 단어 하나의 차이로 갈등과 이해 사이를 넘나든다. 단어 하나의 차이로 우린 타인의 말 혹은 현실을 일정부분 이해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그런 의미에서 언어 메커니즘이 현실적인 것을 구성하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누군가를 이해, 공감한다는 것, 누군가와 싸운다는 것, 그리고 그 누군가를 포기한다는 것, 우린 쿨하게 살고 싶지만 쿨하게 살 수 없기에 ‘관계’는 귀찮고 계속 힘들다. 힘들어서 신경쓰고 싶지 않지만, 신경은 계속 쓰인다. 아쉽게도 인간은 혼자서는 완전할 수 없어서 다른 그 무엇으로 채워야 하기에, 물론 그 무엇은 꿈, 문화, 일, 예술, 지식 등등도 있지만, 따뜻한 체온을 가진 사람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으니 싫든 좋든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싫은 관계도, 확 끊어버리고 싶은 관계도, 어떻게 소통하고 갈등을 해결할지 우리는 끊임없이 고민한다.

 

한국사회에는 노동자와 자본가, 여성과 남성, 장애인과 비장애인, 정규직과 비정규직, 한국노동자와 이주노동자 등 다른 환경과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다른 경험과 조건, 다른 물적토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정치적 입장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린 끊임없이 논쟁하고 싸운다. 이때, 싸워야 할 때, 딜레마가 생긴다. 나와, 나와는 다른, 또는 (내가 생각하기에) 올바르지 않은 그 사람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데, 한국사회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아야 한다는 것, 이것이 딜레마다. 딜레마는 해결할 수 없기에 딜레마인데, 해결할 수 없어서 그래서 어쩔 것인가? 물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싸울 의지가 있다면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우리에겐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4월은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투쟁의 달이라 장애인 인권영화제, 장애인의 날 등이 있었다. 오늘(4월 20일) 광화문광장에서 전경버스 차벽에 둘러싸인 장애인들을 본다. 그리고 웹서핑을 하다 천안함 장병들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사진을 본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 등이 보장되고 있지 못한 현실에, 그리고 집회 시위의 자유마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에, 그리고 작년 뜨거운 불길 속에서 죽어야만 했던 용산 철거민들의 죽음 앞에 한 번이라도 눈물 흘린 적 있었는지...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리고 나도 대답은 알고 있다.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는 것을. 왜? 청와대안 지하벙커와 청와대밖 광장은 전혀 다른 세계이기 때문이다. 

 

물론 난 ‘너’가 아니기에 ‘너’를 완전하게 느끼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와는 다른 어떤 사람의 행동과 주장을 반대하더라도, 그 사람의 상황과 처지를 알기 위해 노력할 수는 있다. 주장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또는 위험한 사회적 타자라고 결론 내리기 전) 그 주장 속에 전제된 세계관과 이유를 보려 하는 것, 주장, 결과, 행동만을 보지 않고, 원인, 상황, 처지를 함께 보고 느끼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공감능력일 것이다. 타인의 고통과 죽음 앞에, (그 죽음이 사회적 죽음이라면 더욱더) 눈물 흘리지 않고 사과하지 않는 자, 당신에게 필요한, 그리고 듣고 싶은 말이 바로 me,too다. 우린 다르지만 다르지 않다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 우리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me, too'라고 말해줄 수 있다면 비록 혼자 휠체어를 타고 장을 보고, 홀로 집에서 생선을 구워 밥을 먹더라도(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그리고 이별 후 혼자 기차를 타더라도(영화 미투), 쓸쓸하지만, 쓸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신에게 크게 말해 주고 싶다. "me, too"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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