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나누기

불법/탈법/횡법의 예술, 그리고 저항의 미디어

문화연대 소식지 "상상나누기" 2010년 20호 후일담 2

 

불법/탈법/횡법의 예술, 그리고 저항의 미디어
: 뻔뻔한 미디어 농장 쇼‘사이방가르드’ 저자와의 대화 후일담

 

홍성일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운영위원)

 

지난 6월 8일 오후 여섯시. 홍대근처의 허름한 지하 클럽 <공중캠프>에서 이광석 박사의 따끈따끈한 새 책 <사이방가르드-개입의 예술, 저항의 미디어>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딱딱하고 짐짓 격식을 먼저 챙겨버리는 출판기념회라는 말은 이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다. 문 앞에 거대한 축하화환이 놓여 초대한 이들을 압도하는 것도 아니었고, 모인 이들 또한 티셔츠에 청바지와 같은 활동적인 복장이었다. 저자 이광석 박사 또한 예의 캐주얼한 차림으로 사람들을 맞이했다. 저자의 자리에 올라 글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사람들과 수평적으로 글을 나누고 공감하려는 것이었을까. 장소 또한 젊음과 자유의 거리 홍대 근처니 <출판기념회>보다는 <새 책 맞이> 혹은 <북 파티>란 말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아니면 그냥 문화연대가 주관한 이 행사의 공식 명칭 <뻔뻔한 미디어 농장 쇼-‘사이방가르드’ 저자와의 대화>라고 해두자.


<뻔뻔한 미디어 농장>은 지난 2009년 7월 초부터 시작해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집단 좌담회로 이번이 11번째다. <뻔뻔한 미디어 농장>(이하 <뻔뻔>)이란 말이 다소 튀는데, 재미있는(fun), 그러면서도 기존의 상식적 잣대에 ‘뻔뻔하게’ 물음표를 제기하는 행동주의를 표방한다. 11번째 <뻔뻔>의 주인공이었던 이광석 박사는 1회부터 참여하며 <뻔뻔>에 애정과 열정을 기울여온 터줏대감이다. <뻔뻔>과의 인연을 말하자면, 필자 또한 3차 모임에 토론자로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주제는 <촛불, 용산 참사, 그리고 미디어 행동주의의 미래>로 용산참사가 있었던 남일당 건물 뒤 레아미술관에서 열렸다(레아미술관은 용산 참사의 희생자 고 이상림 씨가 운영하던 레아호프를 이후 행동가와 예술가들이 결집해 용산 참사에 대한 추모의 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뜨거운 여름 오후, 냉방기 없이 땀을 흘리며 용산 참사와 그에 대한 예술인들의 개입, 사회적 실천을 이야기하는 자리였는데, 정작 토론 보다는 <뻔뻔>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하루로 기억한다. 이처럼 뻔뻔은 개입주의, 행동주의를 표방하며 순발력 있게 문화적/시사적/예술적 국면에 반응하고 새로운 의제를 확산하려는데 노력하였다. 회고컨대, 지난 1년은 MB 시대 국가와 자본의 침탈로 황폐화된 문화/예술 공간과 시민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동분서주였다. 멈춤 없이 지난 1년을 달려온 <뻔뻔>에 축하의 말을 전하고, 멈추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전개된 지난 1년에 안타까움과 분노를 느낀다.


주변적인 소개를 하다 보니 책 소개가 늦었다. <사이방가르드>는 ‘사이버’와 ‘아방가르드’를 한국식으로 조합한 말이다. 정보의 바다 사이버 세계에서 펼쳐지는 발랄하고도 창조적인 예술 전위들의 저항과 개입의 실천을 학문적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강단에 갇히지 않을 생생한 어휘로 풀어내고 있다. 이 자리가 본격적인 서평의 자리는 아니고, 필자 또한 서평을 할 만큼의 내공은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첨언을 한다면, 한국의 인터넷 문화에 익숙한 이들이 자칫 가질 수 있는 시간적/공간적/사고의 편협성을 개방시키고, 국적과 계급,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의 자유로운 접속과 연대를 고무하는 내용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거대 자본의 지적 재산권에 대한 거부와 저항에서부터 인간과 기계/이종생물체와의 융합에 이르기까지 책이 다루고 있는 소재는 다양하고 아방가르드적이다. 허나, 이러한 외양상의 다종다기는 “만국의 넷티즌들이여, 단결하되 분열하라.”로 한 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공식적 생활은 말할 것도 없고 은밀한 일상생활에까지 퍼져있는 자본의 통제, 권력의 통제에 대해 단지 온라인에서의 상징적 저항뿐만 아니라,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넘어들며 실재적 저항을 꾀할 수 있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책 속에 살아 숨 쉰다. 저자 가 유학중에 느꼈을 법한 산책자이자 부유하는 자로서의 정체성이 그의 비판의 날을 보다 날카롭게 갈아 놓았다.


홍대에서 열린 <새 책 맞이>는 이광석 박사가 책을 위해 수집한 예술/행동/작업/저항 이미지들의 슬라이드 쇼, 독립미디어 활동가 ‘해ㅋ’와 저자와의 대화, 초대가수 루피(Lupi)의 공연으로 진행되었다.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이 날의 모든 풍경을 다 소개할 수 없어 아쉽다. 무척이나 발랄하고 자유로우며 ‘불법/탈법/횡법’적이었다는 것만 언급한다. 아쉬운 것은 저자가 책을 내놓자마자 (불행인지, 다행인지) 다시금 오랫동안 한국을 떠난다는 점이다. 한국에 살기에는 정작 자신이 ‘뻔뻔’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닌지 괜한 걱정을 해본다. 허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그의 새로운 작업과 함께 다시 만날 수 있음을 믿는다. 사이버의 세계에서 국경은 무의미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에는 보다 한국적인 사이방가르드를 기대한다. 치이고 채이거나, 광분하고 휩쓸리는 가운데 정작 한국 땅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를 되돌아 볼 여유조차 없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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