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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호-세계의 홈리스] ‘사람냄새’ 나지 않는 곳

[세계의 홈리스]는 미국, 유럽 등 세계의 홈리스 소식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

악취가 뭐길래

「악취방지법」이란 것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모르겠습니다. 악취 방지를 목적으로 지난 2005년에 제정된 것인데, 이 법에서 악취란 시설물에서 배출된 물질(분뇨, 쓰레기, 폐기물 등)이 전하는 냄새를 뜻합니다.

그런데 올해 서울시가 제정한 두 건의 조례(「건전한 음주문화 조성에 관한 조례」, 「서울로 7017 이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에 명시된 ‘악취’는 그 의미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두 조례 모두 “심한 소음 또는 악취가 나게 하는 등 다른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라는 금지행위 규정 조항을 두고 있는데요, 이때의 악취는 사람에게서 나는 ‘땀 냄새’, ‘술 냄새’, ‘몸 냄새’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관련 기사나 입법 과정이 담긴 회의록을 통해서는 그렇습니다.

사실 해당 조항은 10년 전부터 운용되고 있던 현행법(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상의 조항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항이 처음 등장했던 당시와 지금의 상황을 비교해 보더라도, 확실히 악취란 말은 ‘사람에게서 나는 안 좋은 냄새’를 포함하는 말이 되어가고 있는 듯합니다.


  조례에 반대하는 시위대 [출처: https://goo.gl/Jv7grm 클릭!]
열심히 냄새 풍긴 당신, 떠나라!

미국 워싱턴 주에 속한 뷔리엔은 인구 5만여 명의 조그마한 도시입니다. 지난 2014년, 이 조용한 소도시가 온갖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시의회가 채택한 어떤 조례가 그 발단이었습니다. 일명 ‘출입금지 조례’라 불리는 이 조례는 공공장소에서 ‘문제적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규제하기 위해 제정된 것으로, 시당국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 설명했습니다.

해당 조례에 따르면, 공공장소에서 문제적 행동을 하다 경찰에게 적발된 사람은 ‘출입금지 계고장’을 발부받게 됩니다. 계고장을 받은 사람은 얼마 간(최소 7일에서 최대 1년) 공원이나 도서관, 시청 같은 공공장소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데. 만약 이를 어길 시, 감옥에 가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일종의 ‘추방법’인 셈입니다.

논란이 된 것은 ‘문제적 행동’의 구체 내용들입니다. 당시 조례에 따르면 다음과 같은 행동들이 포함되었습니다.

▶ 험한 말 또는 제스처를 취하는 행동
▶ 지나치게 큰 소리를 내는 행동 또는 요란스런 신체활동
▶ 타인에게 심한 방해가 될 정도로 전자・통신기기를 사용하는 행동
▶ 신발을 안 신거나 바지를 입지 않는 등 부적절한 의복 착용
▶ 타인에게 심한 혐오감을 주는 체취 또는 위생상태
▶ 공중화장실에서 몸을 씻거나 면도, 빨래를 하는 등 시설물을 일반적인 용법과 다르게 사용하는 행동

많은 사람들은 이 같은 행동들이 정말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었습니다. 기껏해야 ‘비매너’에 해당할 뿐인 행동을 가지고 사람을 공공장소에서 추방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들 역시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가장 논란이 되었던 건, “타인에게 심한 혐오감을 주는 체취 또는 위생상태”라는 금지 규정이었습니다. 냄새를 풍기는 사람은 공공장소에 올 수 없다는 말인데, 언론에서는 거의 ‘세상에 이런 일이!’ 취급을 했을 정도니 말 다한 셈입니다. 그런데 누구나 알 수 있듯, 이것은 기실 홈리스를 겨냥한 것입니다. 몸에서 냄새가 나도 불법, 공중화장실에서 씻어도 불법이라 함은, 집 없는 사람들은 다른 도시로 가라는 말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례안이 통과될 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던 로렌 버코비츠란 시의원(입법위원)은 이를 지적하며 “시의회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이후 시민들과 활동가들은 해당 조례의 폐기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가장 앞장섰던 단체는 ‘미국시민자유연합(ACLU)’이란 곳인데, 이 단체는 뷔리엔 시 관계자들에게 항의서한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 서한에서 이들은 “해당 조례가 홈리스에게 심각한 불이익을 안겨줄 것”이라며, “시의회가 정말 해야 할 것은 홈리스에게 필요한 서비스와 주거, 위생 설비 등을 마련해주는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체취와 위생상태’를 빌미로 홈리스를 쫓아내려던 시의회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재정된 지 6개월 만에 해당 조항을 없앤 개정안을 내야만 했으니까요.


서울에선 냄새제거제를 잊지 마라?

최근 ‘사람에게 나는 냄새’를 제재하려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서울시의 행보도 행보지만, 고작 ‘처벌기준 모호’ 따위나 운운하고 있는 언론의 모습을 보면, 서울이 제2의 뷔리엔이 될 날도 머잖은 듯합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가십성 짙은 외신 기사들이 줄줄이 나올 것입니다. “서울에 가려거든 데오도란트를 꼭 챙겨라” 같은 제목을 붙인 채로 말입니다. 물론 이따위 것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정말 우려스러운 건 제재의 주 대상자가 너무나 빤하다는 것입니다. 씻을 곳이 없는 사람들, 씻고 싶어도 씻을 수가 없는 사람들 말입니다. 정말이지 그런 ‘사람냄새’ 나지 않는 곳에서는 도저히 살 수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