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울산과학대 총학생회 학생들에게

"이제부터라도 치열한 고민! 부탁드립니다"

울산과학대학 총학생회에서 강의동 건물 외벽에 붙인 현수막. 계약 해지 후 농성을 벌이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에게 '학교에서 나가라'고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오마이뉴스 윤성효

울산과학대의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이 민주노총 소속 노조에 가입한 후 학교에서 고용승계를 거부해 계약 해지 당했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사, "교수·총학까지 나서 '나가라', 학생들이 힘내라 할 땐 고마워"에 의하면, 총학생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합니다.

"곤경에 처해있는 청소용역노동자들을 무조건 몰아내겠다는 것이 아니라, 총학생회 측에서도 아주머니와 교섭 후 요구 사항들을 어기지 않을 시 이렇게까지 완강하게 반대를 하지는 않겠다고 했으나 학우들의 강의수강 시간에 교내에서 민주노총 인원 대략 100여명이 집회를 해 저희 학우들의 수업을 방해했다고 본다."

네, 총학생회 분들도 이번 일로 많이 힘드실 줄 압니다. 하지만 잠깐 수업을 못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정의가 짓밟히고 있다는 생각이 드시진 않나요?

그렇게 공부하다가는 끝내 여러분들도 민초를 누르고 정의를 억누르는 자리에 오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봉사한 권력에 의해 내쳐지고 허물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답니다. 요즘은 '평생직장'은 어림없습니다. 언제, 누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같은 비정규직이 될지 모르는 세상 아닙니까.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을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라고 했다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은 민주노총이 돕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제3자 개입이라고 생각해,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까지 나가라고 했을지도 모르지요. 주위의 어른들이 '제3자 개입'을 마치 '빨갱이', '간첩'으로 표현되는 불순한 행위인양 얘기했을 테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 몇 분이 학교권력에 대항할 수 있나요? 여러분이 거대한 권력에 의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혼자 싸울 수 없으면,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라도 요청하지 않고 그냥 포기하시렵니까?

한 달 70만원이라도 받고 고된 노동을 해야 집안 식구 먹여 살리는 '어머니'들이십니다. 농성하는데 "힘내세요~"라고 지나가는 학생들이 건네는 한 마디에 "힘이 나고 고맙다"고 하는 아주머니들이십니다.

단지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당연히 했어야 할 고용승계를 거부한 학교, 알몸 대처하는 어머니들까지 끌어내는 학교에 먼저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진 않으십니까.

책임의 선후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지식탐구보다 더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으시나요. 자본에 이익에 봉사하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질서와 문화에 순응하는 학문과 과학이 되지 않기 위해 조금이라도 고민해보셨는지요?

여러분들보다 기성세대의 각성을 촉구하고 싶었습니다


밤늦도록 학원을 전전하느라 또래와 충분히 어울려 놀아보지도 못하고, 짬이 있으면 컴퓨터와 TV 등으로 혼자 놀고 온라인게임이 주요 소통 방법인 우리 아이들이 만드는 세상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사진은 글 내용과 무관합니다)
 김효진

혹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과 민주노총을 비난하라는 학교의 요청이 있었는데 그걸 거부하면 총학 임원으로서, 나아가 학생으로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두려웠을지도 모르지요.

여러분들이 조금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들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지지는 않으십니까? 그렇게 처신을 한 이후라도 잘 하고 있는지 고민하고 계신가요? 아니면 그런 처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합리화하고 있으신가요?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도 고민했을 것입니다. 일한 것도 다 못 받지만 그냥 주는 대로 받으며 사는 것을 택하는 것이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나 혼자만 적게 받고 멸시받고 마는 게 아닌데, 학교에서 싫어할 수도 있지만 함께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노조에 가입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도 듭니다. 여러분들은 나이나 대학생이란 신분에 걸맞지 않게, 이제까지 세상살이나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또는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이 전혀 없을지도 모르지요.

한때, 옳은 말 좀 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음을 당할 수도 있던 ‘어둠의 시절’을 지날 때, 그래도 의식을 일깨우고 세상을 향해 바른 소리를 내지를 수 있는 계층은 그나마 학생들이었던 때도 있었지요. 그러나 요즘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렇게 사회에 대해 별로 고민해본 바가 없는 여러분이 민주노총을 비난하라는 등의 학교의 요구를 거부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저는 여러분들에게 글을 쓰기보다, 오늘날 젊은이들이 자기 안위 말고는 생각할 수 없게끔 만들어온 기성세대와 사회문화에 문제제기하고 각성을 촉구하고 싶었답니다.

우리 사회는 신세대들이 태어나서 고교 졸업할 때까지 대학입시에 목을 매고 살게 하다가 대학에 들어가면 다시금 취직에 목을 매어, 사회와 소통하고 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게 만들어 왔습니다. 갈수록 서로 하는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소통방법을 몰라 각박한 세상이 될 것을 생각하니 두렵습니다.

또한 여러분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현대 재벌과 학교와 교수협의회는 정말 지탄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총학 여러분은 대학의 학생대표기구로서 이번 사태의 본질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보려고 했는지, 총학의 처신이 학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학교의 요구를 받고 잠시라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이라도 해보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여러분의 말 한마디로 인해 몇 년씩이나 뒤치닥꺼리를 대신 해와 주신 청소용역 ‘아주머니’들이 어떤 마음이 되실 지에 대해 갈등하였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치열한 고민!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들이 일으킨 작은 물결이 우리 사회에서 큰 파장이 될지도 모릅니다.

자본 권력은 개인이나 공동체의 주권을 용납하려 하지 않습니다


4년 전, 마을 사람들과 함께 서울 마포구에서 하나 남은 자연녹지인 작은 성미산을 개발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성미산 지키기 싸움'은 그 후 여러 가지 마을 자치활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성미산 마을공동체 운동은 자본주의 문화를 극복하는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미산이 다시 홍익대 재단에 팔렸습니다. 사진은 지난 3월 4일 마을 사람들이 장승을 새로 세우며 자연과 마을을 지키자고 다짐하는 모습.
 마포연대

앞에서 제가 '자본주의가 만드는 질서와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뜻을 얼핏 내비쳤지요. 그 점에 오해가 있을까봐 부족한 식견으로나마 설명해볼까 합니다.

자본주의 문화를 비판한다는 것이 기존의 어떤 다른 체제를 선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가 낳고 있는 엄청난 폐해와 비인간적인 문화는 극복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직은 딱히 모델이 될 만한 체제를 꼽기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세상을 자본 권력들이 끌고 가는대로 맡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곧 민주주의가 아니므로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본주의에서 권력은 자본에 있지, 개인에게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개인이나 공동체가 자기 권력, 즉 주권을 갖는 것을 용납하려 하지 않습니다.

자본주의의 본질로 보면, 노동자는 남아돌아서 자본이 값싼 노동력을 마음대로 골라 쓰다 맘에 안 들거나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해고해버릴 수 있는 사회가 자연스러운 거지요.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도 자본주의의 폐해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보완책을 사용하고 있고, 자본주의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나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도 자본주의적 질서에 저항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 왜 소중한지는 다음에 말씀드려야 하겠네요.

국가적으로 자본주의를 몰아내야 한다기보다는 그것 때문에 생긴 비인간적인 문화, 필연적인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작은 단위의 수많은 개인이나 공동체들이 자신만의 생활방식을 찾아가는 것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런 노력들이 사회를 이나마 살만하게 유지해왔을지도 모르고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사실 여러분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할 귀교 교수협의회의 책임이 더 크지요. 그럼에도 특별히 총학생회 여러분들에게 이런 말을 건네는 것은, 그래도 때가 덜 묻고 쉽게 맑은 눈을 회복할 수 있는 젊은 여러분들에게 애정과 기대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디서나 사회의 지도급 인사로 대우 받는 교수들이 그렇게까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랄까요.

덧붙이는 말

참고로 '비인간적'이란 말은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이다' 또는 '인간답다'는 말의 의미가 참으로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다른 대안 표현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더 적절한 대안 표현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 3월 15일자로 올렸던 기사의 제목과 내용을 수정보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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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 현대 , 정몽준 , 청소용역 , 울산과학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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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따탄

    HackerVova님, 한글 타자기가 없으신가요? 아님 장난이신지요. 뜻이 있는 글이라면 본인이든 누구든 해석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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