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한 이유

변혁의 시기, 노점노동자운동과 철거민운동을 말한다


[성명] 노동운동,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한 이유

- 변혁의 시기, 노점노동자운동과 철거민운동을 말한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그의 마지막 일기장이 된 용산참사가 발생한 1월 20일 기록에서 이렇게 말했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 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김 전 대통령이 ‘빈민’에 대해 각별한 관심이 있었다고 추앙하기도 하지만 이는 올바른 생각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은 역대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혹독한 탄압을 받은 정치인 중 한사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의회주의’ 지도자임에 분명하지만, 집권이후 그가 이 땅의 노동자민중에게 보여준 모순적인 정치력은 논란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2001년 대우차 파업과 2002년 발전ㆍ가스ㆍ철도 파업 등에 김 전 대통령이 공권력으로 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함으로써 이에 분노한 당시 민주노총이 정권 퇴진투쟁에 돌입했던 사실을 돌이켜 볼 때 올해 쌍용차 사태를 둘러싼 무자비한 공권력의 행태와 닮은 데가 많다. 이 모두를 우연이라고 볼 수 있는가.

상대적으로 이런 얘기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이 집권 직후에 종로에 있는 노점상을 도시미관을 이유로 서울시가 철거하겠다고 건의하자 "오죽하면 이 추운 날 거리에서 행상을 하겠냐고.. 이 위기(IMF)를 벗어나서 먹고 살 만할 때까지 그냥 놔두라"가 막았다고 한다. 이러한 표면적인 증언(김상근 목사)만으로는 노동계에 비해 이른바 '빈민'에 대한 김 전 대통령의 관심이 특별해 마치 대다수 빈민들이 대단한 수혜를 받았던 것처럼 생각하기 쉬운데 이는 상당부분 사실과 차이가 있다.

예컨대, 김 전 대통령 재임기간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열사 8명(신길수, 김윤수, 이상관, 윤창녕, 박용순, 박봉규, 천덕명, 배달호)중 윤창녕 열사와 박봉규 열사는 당시 빈민인 노점노동자로서 당국의 무자비한 노점단속에, 박용순 열사와 천덕명 열사는 빈민인 택시노동자로서 열악한 근로조건에 각기 분신으로 항거했다. 또한 나머지 열사들도 파업투쟁 이후 재산과 임금이 가압류 당한 배달호 열사처럼 자본의 부당한 횡포에 저항한 사실상의 빈민들이었다.

왜 이들 열사들은 그렇게 인간미 넘치고 지도력이 탁월하였다는 김 전 대통령 치하에서 죽음을 택했어야만 했을까. 또 이 땅의 이름 없는 노동자민중들은 그의 정권 아래서 얼마나 많이 스러져 갔을까. 만약 김 전 대통령이 빈곤한 노동자들을 고루 아우르는 제도적 개선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접근했다면 그들의 소중한 생명은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 전 대통령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IMF 프로그램을 추종하며 정리해고를 합법화했고 노동자민중의 삶을 파탄케 했다.

우리는 쌍용차 파업노동자들이 투쟁 과정에서 '해고는 죽음' 이라고 처절하게 외쳤던 것을 기억한다. 실제로 쌍용차 사태에서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다수 숨졌고 지금도 죽음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음은 '해고는 죽음'이라는 구호가 구호만이 아닌 바로 현실임을 반증한다. 이점은 노점노동자나 철거민에게도 마찬가지다. 노점노동자나 상공인철거민들이 단속과 재개발 등으로 일하는 공간(일반철거민들은 주거공간)을 뺏기는 것은 생계수단인 직업을 박탈당하는 것이므로 일반 노동자와 맥락에서 대동소이하다.

그런 의미에서 노점과 철거지역에 특별히 눈길을 주는듯한 김 전 대통령의 이미지는 '자선과 시혜'의 관점과 유관한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다면, 이 관점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지도자는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직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등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노동자민중의 현실적 대안을 강구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노동자민중 또한 일할 기회를 주권자로서의 당당한 권리로 쟁취해야 함은 물론이다.

지금 우리는 IMF 당시보다 더더욱 가혹한 경제공황 초입에 서 있다. 이 지점에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객관적 평가가 새삼 필요한 것은 이 땅의 노동자민중이 향후 정치권력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울러 노동의 개념 또한 기존의 산업체 노동자 중심의 분리적 사고를 넘어 비공식노동으로까지 외연이 크게 확대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 부분은 변혁운동을 지향하는 진보진영에서 특히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2009. 8. 24

노점노동조합연대 (노점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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