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박정희의 개꿈, ‘네 꿈’을 펼치려면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박정희의 개꿈, ‘네 꿈’을 펼치려면

                                                                          최형록 (인문학자)

“변혁운동은 마르크스주의라는 열린 과학과 생명에 대한 어머니의 가슴으로 야만적 현실과 싸우는 것이다.”,

“변혁운동은 과학의 배를 타고 시(詩) 정신을 돛 삼아 역사의 격랑(激浪)을 헤쳐 나가는 것이며, 시 정신은 막힘없이 흐르는 피(血)와 세상을 뒤덮을 기(氣)의 원천”, “봄의 꽃을 모조리 꺾는다 할지라도 기어이 봄은 온다.”

‘민주화운동 명예회복’ 신청서류를 작성하는 데 첨부하고픈 문서를 찾던 중에 오랜만에 다시 만난, 나의 꿈을 향한 열정의 편린들.

베트남, 다산 정약용을 존경한 ‘호지명’이라는 위대한 인물을 배출한 나라, 이 나라의 어떤 젊은이는 섹스관광 나온 한국인들을 보고 ‘물질적으로는 우리보다 부유한지 모르나 정신적으로 뒤떨어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부자 되세요’라는 인사가 스스럼없이 입에 오르고 ‘2만 불 입국’을 21세기 초 꿈으로 각인시키려고 주로 미국에서 경제학 공부를 하고 온 놈들이 나불대고 있군요.

‘2만 불 입국’이라는 개꿈. 이 개꿈의 성격을 생각해 보기 위해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여론조사를 살펴봅시다. 보수가 43%(1987년 군부파시즘의 패퇴 이래 11% 상승, <동아일보>의 결과는 46%), 진보가 27%(4% 하락)인데 이런 정치적 입장은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동아일보에 따르면 향후 남한 사회의 방향에 주된 힘을 행사할 이른바 386세대가 북한과 미국에 대한 정책에 있어서는 진보적인데 반해서 내정에 있어서는 보수적이라는 것입니다. 내정의 쟁점은 국보법, 시장자율성장 정책인데 이런 중대한 쟁점에 대해서 현상유지, 혹은 보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군부파시즘의 화신 박정희에 대한 평가에 여실히 드러납니다. 조사대상자의 ‘주관적 이념 성향이나 지지하는 정당은 물론 성, 연령, 지역, 직업, 학력, 출신지와도 별 상관없이 긍정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것입니다.

나는 남한 민중이 역사의식이 부족하고(따라서 근시안적이며) 지혜가 부족하다는(박정희라는 ‘거물인 타자’ 혹은 초자아를 숭배하기에) 평가를 억누를 수 없습니다. 사고방식이 이렇기에 ‘박정희를 긍정하면서 환경문제는 진보적’인 모순이 드러납니다.

오늘날 제반 환경 문제가 박 정권 아래에서 환경법을 가식적으로 제정해놓은 반면에 환경을 ‘강간’하는 과정에서 연쇄 폭발하는 것임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놀부의 심보가 현실적인 처세방식이며 흥부처럼 대박을 맞는 인생역전’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고 할까요?

박정희라는 노병은 사라지지 않았으며 ‘조국 근대화’라는 구호는 ‘2만 불 입국’으로 시퍼렇게 색도 바래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나는 남한 민중이 ‘등신 같은 노예적 사고방식’, 그 ‘아편’에서 헤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걸리만 마시는 것이 아니라 미군이 마시던 우유를 마시던 박정희 덕분에 남한이 ‘한강의 거적(기적이라던가?)’을 이룩한 위대한 영도자일까요? 이른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일본의 ‘야쯔끼 플랜’을 전제로 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남한의 동남해안(포항·울산)을 ‘엔 경제권’으로 편입시킨다는, 월남전과 한국전에서 재기한 일본 제국주의 자본의 팽창정책의 일환이었던 것입니다. 나아가 이런 ‘야쯔끼 플랜’은 2차 대전 후 세계적 냉전구도를 주도한 미국의 동북아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뉴딜 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시한 케인즈에 따르면 “장기적으로 현실은 ‘자본의 투기적 운동’을 뒤쫓아 가는 데 급급하기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이다. 경제생활의 현실은 정확히 말해서 대차대조표의 완전한 결산을 끝없이 미루는 것이다.”

말하자면 ‘2만 불 입국’이라는 것은 ‘개꿈’이라는 것입니다. 박정희의 개꿈을 자신의 꿈으로 삼은 자들은 분배를 하려면 우선 성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삼성전자를 비롯해서 재벌기업들이 사상 유례 없는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제국주의 시티은행이 ‘명목상’ 국내은행 전체보다 높은 순익을 올리는 반면에 신용불량자가 500만 명에 육박하고 겉늙은 ‘이태백이(이십대 태반이 백수)’ 평균 고용율을 밑돌 정도로 많은 현실이 경제성장을 덜해서 그런 것일까요?

미국에서 영국에서 빈부차가 점점 벌어지는 사태가 남한보다 성장이 덜한 까닭에 그런 것일까요?

자본주의체제에 대해서 무지한 한, ‘선 성장 후 분배’라는 헛소리에 세대를 이어 헛꿈을 꿀 수밖에 없습니다. 길게 논할 수 없거니와 이른바 ‘후기 자본주의’의 특징으로 두 가지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 생산의 현장과 투기적 자본의 운동 사이의 격차. 둘째, 정보통신 혁명이 사용가치가 아니라 교환가치의 증식을 우선시하며 그 기술을 이용한 ‘가상현실’이 현실의 경험을 ‘상품화’하며 그것을 압도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전자의 예는 방금 지적한 것들입니다. 둘째와 관련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컴퓨터 놀이입니다. 이것은 소비성 놀이에 그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특정한 보수적/반동적 정치적 입장이 암암리에 경우에 따라서는 노골적으로 스며들어있기도 하기에 ‘현대의 아편’입니다.

금년에는 일제시대 이래 역사상 중대한 ‘고통’의 부분들에 대한 진상규명이 전개되는 해입니다. 일군의 학자들이 좌/우 편향을 넘어서는 ‘객관적인 해방 전후사의 인식’을 향한 서적들을 낼 것이라고도 합니다.

‘객관적 역사인식’이란 ‘주체적 관점과 실천’이 전제되지 않는 한, 자기기만, 나아가서는 ‘악의를 숨긴 적극적 반동’에 불과한 것입니다.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냉철한 구경꾼’(관찰자라고 보통 미화되는) 역시 소극적 주체로서 나름의 관점을 지니고 상황에 관여하고 있음을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주체적 역사인식’을 하지 않는 한, ‘꿈은★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박정희 식의 꿈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통해서, ‘신 우익’의 전혀 새롭지 않은 착각과 적나라한 계급성을 넘어서는, ‘자유&평등&형제애’의 원리를 지향하는 주체적인 꿈을 세워야 할 때가 아닐까요?

[최형록의 과학에세이] 43호(2005-3/4월)

[한국인권뉴스]

태그

인권뉴스 , 최형록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인권뉴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