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재승박덕, 단연코 재승박덕(才勝博德)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재승박덕, 단연코 재승박덕(才勝博德)

                                                                          최형록 (인문학자)

  위를 쳐다봐도 아래를 내려다봐도 층층이 밭 입니다. 강원도 심심산골의 일파만파 같은 밭. 여인들과의 짧은 사랑으로부터 라플라타 강과 같이 영원한, 민중의 고통을 껴안고 함께 호흡하고자 한 네루다가 오른 마추피추 중턱에 오른 것 같은 환영. 멀리서 보면 그 밭은 일제 군국주의 성노예의 삶의 상흔입니다.

일본에 끌려간 박제상을 그리다 망부석이 되어버린 여인이 밀려오는 눈물처럼 하염없이 바라보았을 파도, 그리움의 기억을 하나하나 불러일으키는 것 같은 주름살. 40년이 넘도록 호흡하면서 그 고통의 물결과 같은 주름살을 본 적은 없었기에 일순 호흡이 멎었습니다. 내 가슴을 치는 이 주름의 파도는 경기도 파주 퇴촌면의 나눔의 집 기념관 1층에 있는 할머니께서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못다 핀 청춘’ 김순덕 할머니는 ‘역사의 직녀’가 되셨습니다. 기약 없이 견우를 기다려야 할.

  파시즘에 의문(義問이 낳은 疑問)을 품은 탓에 ‘의문사’당한 인물들에 대한 역사의 채무를 갚으려는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정말 의문스러운 별들이 닥쳤습니다. 감히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 상판을 보자면 작은 ‘베트남전’, 이라크에 대한 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파병해야 한다고 외치는, 큰 ‘베트남전’의 파월사령관이었던 놈, 미 제국주의가 관망하는 가운데 자국민을 피 목욕시킨 반역도당의 정권에서 국방장관을 지낸 놈들이군요. 이들은 간성(幹星)이 아니라 ‘간성(奸星)’입니다.

이들이 진정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안보’에 충실한 간성(幹星)이라면 매주 일본대사관에서 일본군 성노예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과 배상을 절규하는 할머니들의 집회에 동참했을 것입니다. 이 잡것들이 간성(奸星)일 수밖에 없는 것은 국민의 혈세로 들게 된 총을 파시스트 반역도당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열망해온 민중에게 겨눈 사실(史實)에서 너무도 명명백백하게 드러납니다.

  지난 해 초, 세칭 명문대에 응시한 수험생인 여고졸업반 학생들 세 명이 입시지옥에서 해방된 시점에서 우리 현실의 역사성과 ‘역사적 감정’을 불러일으키고자 앞서 언급한 기념관에 견학을 갔습니다.

얘들의 예상할 수 있는 질문 그리고 무엇보다 ‘잃어버린 청춘’의 비감을 어떻게 동감할까 하는 기대감을 지녔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무지갯빛 감수성을 지녔을 아이들의 ‘역사적 감성’은 나의 경우처럼 소용돌이와 격랑이 이는 것이 아니라 너무도 잔잔한 것이었기에 적지 아니 경악했습니다. 같은 여성이라는 점에서도 이럴 수가….

  ‘한강의 기적’이라는 것을 이룩한 국가에서 살아가면서 자주 떠오르는, 초등학생 때 배우고 생각한 부분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인간, 든 사람, 난 사람, 된 사람이 있다는 것.

인간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문제를 깊이 생각한 퇴계 선생의 초상이 그려진 돈을 쓰고 퇴계로를 거쳐 숭례(예를 숭상한다)문을 거쳐 흥인지(어진 생활을 흥하게 하는)문을 지나는 한국인들이 지향하는 것은 어떤 인간상일까요?

  이 사회의 교육은 든 사람과 난 사람의 양성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닐까요? 하버드 대학교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가 제창하는 ‘다(多)지능론’적 관점에서 보자면 든 사람과 난 사람, 한국의 많은 부모들이 자식에게 바라는 직업인 의사, 판검사와 관련된 지능은 ‘언어―논리적 지능’입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갈고닦는 지능은 바로 이 지능에 국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서 된 사람과 관련된 지능이 ‘인간관계 지능’과 ‘인간 성찰적 지능’입니다.

내신 성적에서 사회봉사활동을 점수로 환산한다는 발상 자체가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입니까? 이런 발상의 사회적 근거는 교육이 남한의 자본주의체제 특히 기업에 필요한 ‘도구적 이성’을 구비한 노동인력의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현황, 그리고 교육공간의 구성에 있어서 가정과 지역사회(의 제반 비영리단체), 그리고 자연이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는 현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적 감성’을 비롯한 감성이 양육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타인의 고통에 대한 감정이입과 공감이 ‘비판적 지성’과 함께 양육되지 않는다면 “된 사람”의 양성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내년이면 대한민국이 환갑에 이릅니다. 해마다 8·15가 되면 ‘해방’의 의미, 그 진정성을 생각합니다. 기념관 2층에는 ‘역사의 직녀’가 되신 김 순덕 할머니께서 그린, 왜놈을 나무에 묶어놓고 총을, 여러 개의 총을 겨누는 그림이 있습니다.

일제에 대한 분노감이 여실한 그림이지요. 과연 남한민중은 일본 군국주의 자본 세력으로부터 경제적·정치적·문화적으로 얼마나 해방되었을까요?

비판적 지성과 함께 인간의 존엄성을 가장 중시하는 “된 사람”이 더욱 많이 배출되지 않는 한, 우리는 ‘역사의 견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남한사회에 넘치는 것은 ‘재승박덕’(才勝薄德, 재주는 뛰어나지만 덕이 부족함)입니다. 학수고대해야 할 것은 ‘재승박덕’(才勝博德, 재주가 뛰어나면서 덕이 있음)한 “된 사람”이 아닐까요?

[최형록의 과학에세이] 40호(2004-8/9월)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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