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TV중독과 본능 그리고 의사소통

[한국인권뉴스 편집부]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TV중독과 본능 그리고 의사소통

                                                                          최형록 (인문학자)

1969년 7월20일 초등학생일 때 풍선처럼 부푼 가슴으로 친척 집으로 갑니다. 지구의 위성인 달에 미국의 인공위성을 탄 우주비행사들이 달에 착륙한다는 것입니다. 닐 암스트롱이-큐브릭 감독이 미국의 군국주의와 핵무기를 다룬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첫 장면, 원폭의 버섯구름과 함께 들리는 ‘멋진 세계’라는 노래를 부른 흑인 가수이자 트럼펫 연주자는 루이 암스트롱입니다 - ‘한 개인으로서는 작은 발자국이지만 인류로서는 거대한 첫 발’을 달 표면에 딛는 장면은 나의 세대 어린이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장면들 중 하나입니다. 어린이들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38만Km 떨어진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을 흑백TV 덕분에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동차는 공간이동에 크나큰 편리함이 있는 반면, 대기오염물질을 발산시키며 인위적 장애인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 TV 역시 교육적 효과를 초래할 수 있는 한편, ‘바보상자’의 기능 역시 과학적으로 발휘합니다. TV에서 중계하는 스포츠에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기도 하고 할머니들과 ‘정규직 주부’들은 아침 연속극들을 ‘주유’(週遊)하며 젊은이들은 개그콘서트 류에 독서 대신 ‘개구(開口)’를 하는 덕분에 입에 가시가 돋을 일은 없습니다.

선진국의 경우 평균 3시간 정도 TV시청을 하는데 이것은 여가시간의 절반 정도에 해당합니다. ‘비정규직 부엌데기 아버지’도 늘어난 남한의 경우에도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기억됩니다.

사람들은 TV를 시청해서 온갖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연구에 따르면 TV를 끄는 순간 긴장을 푼다는 느낌은 끝나면서 수동적이라는 느낌과 함께 주의력 저하가 계속됩니다. TV시청의 경우와 대조적인 것이 독서입니다. 독서의 경우 책장을 덮은 후에 다른 일에 집중하는 데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리고 TV시청 후에는 기분이 그저 그렇거나 악화되는데 반해서 스포츠를 하거나 취미활동을 한 후에는 기분이 좋아집니다.

            
            △ BookStack 그림  

일본, 영국, 미국의 연구에 따르면 TV시청자들 중 어떤 이들은 오랜 시간 시청하다보면 뭔가 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짢은 느낌 심지어 죄의식까지 들기도 한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이런 나쁜 효과는 ‘경제지상주의’와 ‘일 중독’이라는 그릇된 가치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이런 효과가 중간계급에게 많다는 점도 주목할 만 합니다.

TV시청의 마약 효과는 생물학적으로 어떤 근거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개의 조건반사’ 실험으로 유명한 이반 파블로프가 1927년 처음 발견한 ‘정향성(定向性) 반응’입니다. 이 반응은 갑작스런 자극이나 신기한 자극에 대한 본능적인 시각반응 이나(과) 청각반응을 뜻합니다. 이것은 오랜 진화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잠재적인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생존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런 ‘정향적 반응’ 기제를 통해서 선사시대 인류의 조상들은 위협적인 동물을 만났을 때 혹은 도망하거나 혹은 싸웠던 것입니다.

1986년 미국의 연구자들은 TV의 단순한 특징들 - 삭제, 편집, 화상의 급격한 확대 또는 축소, 카메라를 상하좌우로 움직임, 갑작스런 소음 - 이 ‘정향성 반응’을 활성화하여 TV를 계속 시청하도록 하는지 여부를 실험했습니다. 그들의 결론은 이런 조작들로 말미암아 ‘비자발적’ 반응이 유발된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에 이은 것이 이런 TV의 조작적 특징들로 말미암은, 시청한 내용에 대한 기억효과입니다.

이 연구의 결과는 기억효과가 있다는 것이며 이것을 광고업계, 음악 비디오업계에서는 놓칠 새라  활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즉 오늘날 광고업계에서는 눈길을 끄는 얘기를 넣되 도대체 팔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방식을 사용합니다. 일단 시청자들의 눈길을 잡았다면 나중에 매장에서 광고에 대한 희미한 기억 덕분에 광고된 상품을 구매하게되리라는 것입니다.

주목해야할 또 다른 연구결과는 이스라엘 연구자들에 따르면 불과 6주 내지 8주된 영아들까지도 TV를 켜면 화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TV시청 시간이 길면 길수록 학업성적이 떨어진다는 연구결과 역시 주목할 일입니다.

TV의 교육적 효과를 무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런 목적이 아닌 한  TV를 가능한 한 시청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 컴퓨터 게임 역시 마찬가진데 - 사실은 명백합니다. 그럴수록 부모 - 자녀 사이의 유익한 대화와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이며 ‘정신의 사막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최형록의 과학에세이] 39호(2004-6/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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