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격 정 시 대

최형록(인문학자)

“.......8월 29일, 이 날은 우리가 나라를 잃은 날 이다. 우리는 늘 이 날에는 점심을 굶었다. 굶주린 창자에다 망국의 한을 아로새기자는 뜻에서였다.......”

1980년대 후반 방학이나 명절에 대학 후배들을 만나 기회 있을 때마다 읽기를 강력히 권했던 책이 있었습니다. <<격정시대>>! 이 자전적 소설이 나의 심심산천(心心山川)에 메아리를 친 이유는 나이테가 30을 향해 가던 그 시절이 바로 “격정시대”였다는 사실입니다.



혈기 방장한 그 시절 대학생들과 청년들은 대외적으로 종속적이고 대내적으로 민중 탄압적인 이 국가를 “변혁”시키려는 “열정”의 격동 속에서 “교문투쟁과 공장점거투쟁 그리고 노-학 연대의 가두투쟁의 낮과 밤”을 살았습니다.

이 시절에 비하면 오늘날은 “퇴락 속 발아”(發芽:싹이 돋아나옴)의 시대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중을 속이려들고 심지어는 억압하려는 데 관심이 있는” 자본가 계급이 교육을 고분고분한 기업 인력의 양성 수준으로 타락시키고 문화가 인정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건실한 감수성을 계발시키도록 추동하는 것이 아니라 조야한 감상을 자극하는 데 첨단기기들을 동원하고 있는 경향이 바로 퇴락입니다.

국내 라면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농심이 “설렁탕 한 그릇의 맛과 영양이 그대로 담겨있다‘고 허위과장 광고를 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고서도 공식해명이나 사과를 일절 하지 않고 있는 작태는 이런 퇴락의 한 가지 실례 입니다.1)

<대장금>은 바람직한 ”한류“랄 수 있으나 방송에서 호들갑을 떠는 K Pop은 ”미국식 대중 소비문화의 한국 판“에 불과 한 것으로(www.bbc.co.uk, "The darker side of K-Pop", 2011-06-14) 자랑할 만한 한류가 아니며 오히려 ”퇴락“의 흐름입니다.

그런 한편 이런 퇴락을 알아차리고 지금 이 사회가 어디에 있는지 어떤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이런 경향-구조가 형성되었는지 그리고 이 퇴락을 저지하고 나아갈 수 있는 반 자본주의의 길을 어떻게 개척할 수 있는지 성찰하는 자세는 절망의 진흙 속에서 강건한 희망의 싹을 틔우는 일입니다.

위 인용문은 <<격정시대의 저자인 고(故) 김 학철 선생님이 <한겨레 신문>(1989-11-18일자)과 대담 하며 옛일을 회상 하신 말씀입니다. 이 회상에는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의 모순을 반드시 극복하겠다는 “절절한 역사의식”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청년-학생의 한(恨)은 “3포”(抛), 연예-결혼-육아의 포기로 표현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경세제민(輕世除民:세상 사람들을 경멸하고 민중을 배제한다)을 일삼는 재벌기업 한진 중공업은 노동자 파업을-노조 위원장의 직권조인이라는 회사 측과의 타협이 문제인 한편-구렁이 담 넘어 가듯 저지한 직후 컨테이너선 6 척을 수주했다고 발표하고 있지요.3) 그리고 재벌 기업들은 감세 철회 움직임에 발끈하고 있으며 전체 노동자의 약 90%가 종사하고 있는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거부하며 영세 상인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런 언어도단인 삶의 조건을 변화시켜야겠다는 “절절한 역사의식”이 긴요합니다.

얼마 전 국영방송인 KBS에서는 친일파인 백선엽의 일대기를 방영하는 간(奸) 큰 짓거리를 벌였지요. 통탄스런 일입니다. 이 간성(奸星)은 1938년~1945년 기간 170명의 조선 독립군을 토벌한 ‘간도 특설대’에서 일제의 괴뢰국인 만주국 소위로 활동한 악업(惡業)을 저지른 역도(逆盜)입니다. “주의주장이야 어찌되었건 간에 민중을 위해 한시라도 빨리 평화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주는 것이 칼을 쥐고 있는 자의 사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반역행위를 궤변으로 정당화 하고 있습니다.4)


△ 일제 하 독립군(광복군 중위) 출신으로 해방 후 사상계를 펴낸 반독재 민주화투쟁의 기수였던 장준하 선생(왼쪽)과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 소위였다 해방 후 5.16 쿠테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오른쪽)

그의 궤변을 5000만 보 양보해서 이해하려 하더라도 그 시기에 민중이 평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1938년 조선은 일제의 만주침략(1931년)에 이은 중일전쟁(1937년)의 병참기지로 수많은 청년-처녀들이 강제 징용-징병이라는 파괴적 삶을 강요당하던 시절입니다.

<<사상계>>라는 훌륭한 정기 간행물을 무기로, 만주 군관학교 출신 대통령 ‘오까모도’(박정희의 창씨개명)의 독재에 대항하다 의문사를 당한 고 장준하 선생님 그리고 얼마 전 별세하신 전 고려대학교 총장 고 김준엽 선생님 이 두 분은 강제징병에서 탈출하여 무장 독립투쟁에 투신하셨는데 이런 분들의 삶은 이 수수(獸秀)한 짐승의 눈으로 어떻게 평가할까요?

아들 전태일 열사의 “소신공양”(燒身供養:절망적 상황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유하여 강력히 실천할 것을 절규하는 행위. 4대강 사(邪&詐)업에 항거한 문수 스님의 경우 역시 이런 것입니다)을 이 땅의 노동-민중 투쟁으로 고양시킨 이 소선 여사님 역시 근로정신대로 강제징용 되셨다 탈출하셨습니다. 김학철 선생님은 정신대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에 쪼들리다 못해 팔려나온 여자들.......그 무지스런 녀석들을 하루에 이삼십 명씩 삼사십 명씩 치루구나면 허리를 통 쓸 수가 없다쟎아요.......어찌나들 순박.......곧 산 속에 자란 도라지나 더덕이예요......”(제 3권, 244면).

KBS는 이왕 썩은 정신, 내친 김에 아예 간악한 독재자 이승만의 일대기도 방영할 것이라고 합니다. “표범의 넋을 지닌 사슴”(제 2권, 217~228면) 김학철 선생님은 뉴 라이트라는 ‘나르시시스트들’이(희랍신화에서 나르키소스는 맑은 샘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반해서 자기 사랑에 빠집니다. 이 짐승들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민중의 고난과 그 끈질긴 투쟁이라는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보는 입장을 ’자학사관‘이라고 얼토당토 않게 규정하는 뒤틀린 눈은 바로 이런 병적인 자기사랑의 독과(毒果)입니다)5)

국부라고 떠받드는 이승만을 “도적놈”이라고 평가합니다. 1987년 9차로 개정한 우리 헌법은 전문에서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밝히고 있는데6) 이승만은 이 임정의 국고금을 횡령하여 미국 기선 특등실을 이용하는 짓거리를 하며(제 3권, 150~167면) 조선의 독립이 아니라 ’위임통치‘를 주장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의 이른바 외교노선과 독선 그리고 횡령 건으로 이 곤룡포를 입지 못한 ’조선의 체자레 보르지아‘(Cesare Borgia: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중시하는 인물)는 결국 임정에서 탄핵되어 대통령직에서 축출됩니다. 그는 1960년 “4.19 혁명”으로 쫒겨나는 사태의 예행연습을 일찌감치 한 셈입니다.

사실 우리 민중이 정확히 알고 존경할만하고 기억해야할 분으로 임정수립의 주역 도산 안창호에 뒤지지 않는 인물로서, 이동휘 선생 그리고 안중근 의사 등이 공히 존경한 분, 일반적으로 헤이그 밀사로만 알려져 있는 이상설 선생님이 있습니다.7) KBS가 영국의 국영방송(www.bbc.co.uk)만큼의 양식이 있다면 ’도적놈‘ 이승만이 아니라 이상설 선생님의 일대기를 방영해야할 것입니다.

이 자전적 장편소설은 전편에 걸쳐 여유 있는 유머의 기운이 넉넉합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에게는 모래바닥이 보이는 맑디맑은 강물의 심상(Image)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서선장”의 언행에 나의 심심산천은 비 온 후 말끔하게 갠 하늘 아래 푸르른 대나무가 유연하게 움직이는 풍경이 되었습니다.

서선장은 고향 원산을 떠나 서울에 가는데 서울 어떤 곳에서든 화장실에 가면 “이완용 식당”이라고 낙서를 했다지요. 이런 식으로도 불령선인(不逞鮮人)의 싹수를 보여준 것 입니다.


△ 팽덕회와 레닌

선장이는 조선의용대(후일의 조선의용군)에 가담하여 일제와 전투를 치룹니다. 눈길을 끄는 부분들 중 한 가지는 아직 대외적으로 선포하지 않은 조선의용대를 프랑스 공산당의 기관지 <유마니떼>(L'Humanite: 인류, 인류애)와 일본작가가 찾아왔다는 점입니다.(제 3권, 51면). 중국 공산당이 장쩌민이 주석이던 시절 헌법에서 “국제주의”를 폐기한 일을 생각하면 그런 “국제연대”의 감격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선장에게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태항산 항일 근거지에는 중국 홍군의 걸출한 장군 팽덕회도 방문을 하는데 그로부터 “혁명의 길은 직선이 아니구 곡선”이라는 조언에 깨달음을 얻는 장면도 중요합니다.(제 3권, 249면). “혁명의 아르키메데스” 블라디미르 일리치 레닌이 “혁명은 산술이 아니라 대수학”이라고 한 격언과 통하는 조언입니다.

이 세속세계에서는 거의 항상 모든 일과 관련해서 양 편향 그리고 양 극단의 언행이 표출됩니다. 단기적으로는 2012년 총선과 대선에 대응하는 전략과 관련해서 지혜롭게 생각해보아야할 점들은 이렇습니다.

부활하는 “파시스트 경향”이라는 결코 만만찮게 볼 수 없는 세력에 대해서 진보세력이 “대동단결”을 하는데 “북한의 세습 문제”에 대한 비판이 결정적인 “작용점”인가? FTA를 비롯한 신 자유주의적 행보를 밟아온 세력이 전술적으로 자신의 집을 “고치”로 삼으려 하는 저의를 간파하고서도 식구로 받아들이는 입장이 옳을까 아니면 “가까이 하지도 그렇다고 아예 멀리 하지도 않는”(不可近 不可遠 ) 입장에서 식구가 아니라 손님 정도로 맞이할 것인지를 결단하는 데 “곡선적 이고 대수학적 사고와 판단”이 긴요합니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대장정”에 나선 중국의 대북-대한 정책을 고려하는 한편, 결코 멀지 않은 시점에, 불시에 엄습할 수도 있는 “북한 유사시”를 동북아 정세의 중요한 매개변수로 고려하면서 진보세력의 “대동단결”을 도모해야할 것입니다.

<<격정시대>>를 살아온 고 김학철 선생님은 <<누구와 함께 지난날의 꿈을 이야기하랴>> (실천문학사, 1994년) 그리고 문화혁명기의 체험을 다룬 장편소설 <<20세기의 신화>>(창작과 비평사, 1996년) 역시 남기셨습니다. 이 책들 역시 “정신의 삼계탕”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청년들은 “패기와 기백”이 부족합니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은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퇴락 속 발아”를 성장시키려면 “청년의 패기와 기백”이 필수 불가결 합니다. “아침이슬”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운동가 “사노라면”의 “기백”을 오늘날 이 땅의 청년들은 발휘해야 합니다.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게 한 밑천인데 쩨쩨하게 굴지 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8)




1. <<격정시대>>, 제 2권, 230면에도.
2. <경향신문>(2011-07-05), 34면.
3. <경향신문>(2011-07-08), 31면.
4. <경향신문>(2011-06-29), 33면.
5. 게를트 구드리히, 안성찬 옮김,<<클라시커 50 신화>>(해냄, 2001년), 22~25면.
6. 이시운 편, <<判例 小 法典>>(靑林出版, 1994년), 1면.
7. 서중석, <<신흥무관 학교와 망명자들>>(역사 비평사, 2001), 31~35면.
8. 송시현 엮음, <<삶의 노래 사랑의 노래>>(도서출판 천마, 1990년), 113면.


(풀빛, 1988년), (책의 숲 속에서 1) 2011-07-09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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