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기운 칼럼] 혁명가 예수를 만나다 - 전영철

예수는 기독교권 국가들은 물론 특히 우리 사회에서 철저한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인식은 과연 합리적인 논리를 지닌 것일까.

평화주의자란 의미는 흔히 어떤 경우에도 폭력적인 것을 거부하며 순리에 따르는 자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원칙적으로 평화주의를 지지하되 때로는 평화적인 방법만을 수용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위기에 직면했을 때는 평화적인 방법을 넘어서서 문제를 해결했던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모순으로 가득한 현실 문제를 순리로만 해결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오로지 그의 삶을 이 지상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헌신한 사람이었다. 그의 활동은 '때가 찼다. 하나님나라가 가까왔다'는 선언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는 관점은 평화주의를 최대한 견지하자는 일반론과 철두철미하게 평화주의 원칙만을 고수하자는 다른 층위의 두 이야기에서 전자에 가까운 듯하다.

순리를 따른다는 것은 여건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민중들은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요소들이 정리되기를 염원한다. 그러나 오늘은 여전히 척박하다. 그렇다면, 예컨대 악의 요소들은 그 싹이 사라질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하는가. 그것이 순리인가. 예수 당시도 그러했다. 해서 예수는 더 많은 미소보다 훨씬 더 많은 분노로 기득권과 사투를 벌여야만 했다.

사실 예수가 의도한 것은 부분적이고 점진적인 개혁이 아니었다. 이는 기존의 질서, 기존의 가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일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다. 순리에 따른다면 민중들은 기득권자들이 스스로 그 잘못을 깨닫고 횡포를 그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더욱 더 폭정이 심해져가는 현실 앞에서 예수가 취할 수 있었던 길을 무엇이었을까.

거두절미하면, 예수가 하고자 한 일은 체제에 도전하여 세상을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예수의 운동기조는 고정적인 원칙에 매달리는 교조적 평화주의자의 길이라기보다는, 평화를 지향하되 노예적 순리를 거슬러 압제자들과 드러내놓고 싸움으로써 미래를 앞당겨 세상을 여는 혁명가의 성격에 더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굳이 마르크스와 비교해보면, 마르크스는 사회과학적인 연구를 토대로 한 매우 차분한 학자적인 면모의 혁명가였음에 비해, 예수는 어느 단계가 되면 세계가 변할 것이라는 변증법적 접근과는 달리 바로 ‘지금 여기’ “하나님나라가 이미 왔다”고 보고 거기에 올인한 사람이다. 즉, 예수는 마르크스보다 훨씬 참을성 없는 급진적인 혁명가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폭력에 호소하지 않고 비폭력의 길을 걸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상황과 주체의 역량 등 조건에 대한 이론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겐 이 세계가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보다도, ‘변혁’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급변으로 오기보다 ‘풀잎이 자라듯’ 삶의 주체들이 서서히 변화하는 가운데 눈에 감지되지 않는 미미한 움직임 속에서도 ‘크게’ 다가오는 현재진행형임을 이미 간파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정작 그 나라 백성이 될 사람은 새로운 세상을 맞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가운데 그 나라가 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갈아입을 새 옷이 생기고 들어갈 새집이 마련된다하여 새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니다. 그 나라는 새 환경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나라를 일구며 다스려갈 수 있는 참된 힘을 갖추는 일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예수는 “때가 다 되었다! 하나님나라가 여기 있다.” 라는 말 뒤에, 바로 이어서 “너희 삶을 고치고 메시지를 믿어라.”(유진 피터스의 ‘메시지’번역본)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을 고치지 않고, 하나님나라가 이미 와있음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 나라는 영원히 누릴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 도처에는 아직도 헛되게 그 나라가 오기만을 목 놓아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나라는 밖으로부터 불가항력적으로 오는 나라임과 동시에 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삶속에 혁명이 일어나지 않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예수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 나라는 이미 와 있다! 너희 삶을 고치라! 그리고 내 말을 믿어라! 그 나라는 이미 너희들 가운데 와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메시지, 예수가 우리에게 들려준 기쁜소식(복음)이다.



* 글: 전영철 (새기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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