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서평] 옥중련(獄中蓮) - 서준식 선생을 말하다 (1)

최형록(인문학자)

서준식,『옥중서신』(야간비행, 2002년)
『서준식의 생각』(야간비행, 2003년)





  
1. 17년간 그린 자화상

  호송열차 꽁무니에 타, 철길 위로 쫓아오시는 어머니, 어머니의 빨개진 눈에서 눈물이 흐르면서 기차 길 위에서는 눈이 내리고, 꿈을 꾸면서 들어보지도 못했던 러시아 민요처럼 우수가 가득 찬 굉장한 곡...
  (『옥중서신』, 이하 『옥중』으로 표기함, 331면 그리고 99면)

  이것은 슬프디 슬픈, 비장(悲壯)한 꿈이다.
  서준식 선생님(이하 경칭 생략)은 1971년 4월 ‘재일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아 복역했으나 보안감호 처분으로 ‘곱징역’을 살기 시작했는데 이 꿈은 1980년 6월경에 꾼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시절 위인전기를 즐겨 읽었다. 이른 아침 어제 읽던 책을 읽으면서 친밀감과 존경심을 느껴온 전기의 주인공이 별세하는 결말부분에 이르면 눈동자에 뜨거운 것이 밀물처럼 밀려오곤 했다. 『옥중서신』을 읽으면서도 나는 이런 밀물을 수차례 겪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추운 겨울이면 따뜻한 방에서 포근한 이불을 덮고 꿈나라로 가기 전, 지금 옥중에 있는 ‘정치범’들은 얼마나 춥고 그 심정이 스산할까 라고 자주 생각하면서  나 역시 언젠가 그런 처지에 놓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정말 ‘남산’에 억지로 초대되어갔던 것이다. “최형록, 너 북괴 거물간첩이지, 김일성 배지 내놔.” 그들의 첫마디. 갑자기 정전이나 된 듯 눈앞이 깜깜해졌다. 그리고 일초 일초가 초긴장 상태인 상황(一刻如三秋)(1). 철창 너머로 나의 어머니께서는 머언 고향에서 당장에라도 나에게 뛰어오고픈 심정이 한 두 번이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7년도 원통한데 10년을 더 감옥에서 보내야 했던 삶.
죽어서 헤어짐도 슬프고 괴롭지만
살아서 헤어짐은 더욱 더 서러워라
자식이 집을 나가 먼 길을 떠나가니
어머니 모든 생각 타향에 나가있네
주야로 그 마음은 아들을 따라가고
흐르는 눈물줄기 천 줄기 만 줄기네  

24세에 수감되어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미래도를 머릿속에 펼치며 7년 만기 날짜를 열심히 꼽았’(『옥중』, 263면)으나 1978년 5월27일 형기만료와 동시에 ‘사회안전법’에 의거, 보안감호처분을 받고 재수감되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알몸생활의 불안정감과 고달픔의 세월 17년간, 서준식에게는 ‘나의 사진 한 장 없는’ 세월이었다.

계절이 한 번도 아니고 17번이나 바뀌도록, 부모님과 눈빛을 나누고 친구․후배와 막걸리 잔을 나누며, 푸른 하늘 뭉게구름 아래 파도가 부서지는 것을 보며 삶의 격정을 생각하고, 산야가 봄의 미풍에 연푸른 미소로 화답하는 정경을 담으며, 초여름 여치울음에 ‘삶의 진양조’를 느끼는 등 이 모든 일상적인 일들이 ‘특별한 일’이 되어 ‘가상현실’ 속에서나 가능한, ‘밀폐된 시간’을 상상해보라. 『옥중서한』은 바로 ‘젊은 날의 자화상’(『옥중』, 20면)인 것이다.

‘무시무시한 절망’(『옥중』, 533면)의 세월. 가장 사랑하는 5월(『옥중』, 89면) 어느 날 그의 생각은 13년 전 봄 어느 유쾌한 미대생과 남산에 올라 먼 산 빛과 청명한 대기를 느꼈던 아름다운 추억을 더듬는다. 그 날 김대중씨는 장충단에서 대중연설을 했던 한편 서준식 자신은 저녁에 남산에서 내려온 뒤 수갑에 채여 잡혀갔다. 그 빛나고 아름다운 봄을 뒤로하고(『옥중』, 457면).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슬프게 가는 것, 그것이 세상사의 이치인가 보다. 그리하여 우리들 가슴속에 때때로 피어나는 뿌듯한 행복도 뜬 꽃잎 마냥 쉴 새 없이 떠내려가 끝내는 우리들 시야 밖으로 사라져가는 것이다.(『옥중』, `82. 4. 30일자, 246면)

그러나 그는  ‘절망의 수인(囚人)’에 그치지 않았다.
‘하나의 기쁨으로부터 보다 큰 기쁨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이 바로 슬픔인 것이다’(『옥중』, 247면). 독방(獨房)은 동시에 ‘독방(讀房)’인 것이다. 육신과 정신이 춥고 황량한 겨울은 ‘스승’으로서 ‘사색’의 계절(123면)이다. 기나긴 겨울의 숱한 밤의 몸부림 속에서 ‘남을 위하여 사는 것’이 팔자인가 보다하는 ‘체념 같은 달관’을 해보기도 한다(139면).

하루가 다르게 얼굴에서 ‘청년’이 사라져가는(270면) 세월 속에서 ‘절망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정열이며 인생을 환희로 이끌기 위한 필수적인 관문’(72면)이라고 눈물겨운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용기를 발휘한다.

그리하여 불우한 처지에서 자생적이고자 하는 정신의 긴장을 유지하면서 진리를 갈망하고 분투할 때, 인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번개에 휩싸인 것과 같은 황홀한 깨달음의 순간을 맞게 마련이다…‘신의 계시’라고 부르든 ‘세계와 인간에 관한 진리의 깨달음’이라고 부르건(『옥중』, 288면)

‘이놈의 세상, 통째로 폭발이라도 해버렸으면’(104면) 하는 분노감을 “아침에 진리를 깨치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朝聞道 夕死可) 라는 ‘인간 최고의 기쁨’(530면)으로 승화 시키는 인내와 지혜를 발휘한다.

『옥중서신』은 군부파쇼세력이 일단 퇴각한 반면 바야흐로 ‘부르주아적 야만’의 파고가 높아져가는 시점에서 인간적 존엄성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가 되기에 충분하다.

  첫째, 역사적으로 일제시대 이래 일신의 ‘유한한 그리고 미천한 영광’을 위해서 민족해방과 혁명의 ‘지조(志操)’를 벗어던진 숱한 지식인들의 변절과 지극히 대조적인 삶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식’을 비롯한 거의 모든 것이 자본주의적 고부가가치 ‘상품’ 되어가는 시대에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혁명적 인텔리겐챠는 온갖 풍상을 ‘성장호르몬’으로 삼아 형성될 수밖에 없다.

‘개들’이 내면을 검열하는 상황에서 외부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으로서 이 “편지는 점점 솔직해지고 적나라해지고 그리고 ‘일기’가 되어 갔”다(27면). 그래서 그 ‘일기’에는 ‘사상적 동요도 나약한 회의도 ...어린 시절 이야기... 어두운 고뇌도’(822면) 적나라하게 때로는 알레그레로 때로는 포르테로 때로는 중중모리로 기록되어있는 것이다.

그가 어려운 것들 중에서도 어려운 것인 ‘옥고’(245면)를 치룬 기간은 해방 이후 남한 ‘파시즘’의 역사에 있어서 극악무도한 시대였다. 그 시대는 고유명사인 박정희가 보통명사인 대통령을 포섭하는, ‘사람을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는 전통을 죽이는 ‘경제동물화’, 민중의 아들이 그 부모와 형제자매에게 총검을 휘두르는 시대였다. 서준식은 바로 이런 시대를 옥중에서 살아가면서 ‘변혁운동’과 관련한 근본문제들과 처절한, 치열한 고투를 전개했다.

그는 『옥중』의 ‘라이트모티프’(중심사상)를 ‘민족, 자생, 전향, 종교’라고 밝히고 있다(15면). 그는 ‘참된 유물론자’(719면) , ‘참된 혁명가’(732면)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의 절박함이 빛이 바래기는커녕 오늘날보다 지혜로운 형식으로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의 ‘일기’는 한 혁명적 인텔리겐챠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는 ‘역사적 증언’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  이것은 단순히 진보적 학자가 아니라 ‘17년간의 미래’를 강탈당한, ‘지극히 작지만 확실하게 봄을 몰고 오는 제비’ (『옥중』, 804면)가 되고자한 한 인텔리겐챠의 ‘혈서’ 바로 그 자체다. 즉『옥중』은 ‘육체로서 외치는 물리적 근거’(『서준식의 생각』,68면, 이하『생각』으로 표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교’라는 사교(邪敎)가 맹위를 떨치던 ‘유신시대’, 1973년-1974년에 전국 4개 교도소의 비전향장기수들에 대한 대대적인 전향공작이 전개되었다.(『생각』, 164면~165면) 이 때 서준식은 광주교도소에서 물고문, 전신구타 등 살인적 고문을 당했으며 급기야는 자살을 기도하기도 했다. 내가 대화를 통해서 들은 바, 한겨울에 ‘피 목욕’ 이랄 정도로 구타를 당한 후 자신의 방에 정신을 잃고 물건처럼 던져졌는데 새벽에 그 피가 얼어붙어 가뜩이나 욱신거리는 몸에 고통을 겪었다는 것이다.

석합 지옥과 획탕지옥(2)에나 떨어질 놈들의 구타뿐이 아니다. 그는 10년의 ‘곱징역’을 살게 된 ‘법의 정신’을 비웃는 사회안전법 철폐를 요구하며 5일도 아닌 30일도 아닌 51일간이나 단식투쟁을 전개했던 것이다.

『옥중』을 제대로 이해하자면 앞서 언급했듯이 당대의 국내외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도 전향강요 고문과 테러의 무자비함을 비롯해서,


[전문]
http://www.k-hnews.com/home/bbs/view.php?id=issue&no=510
태그

최형록 , 서준식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인권뉴스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