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평론] 변혁모임의 노동자계급정치와 오세철 선생의 사회주의정치

우리 사회에서 선거는 거대한 블랙홀이다.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각종 선거들은 자본주의에 기반한 이 사회의 심각하고도 첨예한 모순들을 송두리째 삼켜버린다. 특히, 대선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언어의 성찬만 무성한 가운데 어차피 ‘차악’으로 대통령을 고를 수밖에 없는 게 아니냐며 은연 중 노동자민중들에게 허무주의적인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항상 그랬듯이 기득권을 누리는 수구보수 주류언론들이 이런 움직임에 기민하고 강력하게 힘을 실어준다. 뿐만 아니라 요즘은 이른바 진보로 분류되는 몇몇 언론사도 여기에 적극 가세해 기존의 여야 양자대결 구조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른바 ‘야권연대’라는 미명 아래 나름 조율하는데 눈코 뜰새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엄중한 시절에 사회주의자 오세철 선생은 기고문『사회주의정치의 실종』(10.15 경향신문)을 통해 몇 가지 운동 쟁점들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부르주아 선거가 아니라 노동대중의 직접행동이며, 인물의 선택이 아니라 세력의 대체(혁명적 탈바꿈)라는 것, 그리고 그 대체할 정치와 세력은 사회주의 정치와 노동자 계급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고통당하고 억압받는 노동계급과 함께 싸우고 그들을 정치의 주체로 내세우고 있는가?” 그리고 “부르주아 정치판에 ‘진보’정당의 이름으로 끼어들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고 부르주아의 한 분파로 행세한 것을 반성하고 있는가?”라고 성찰을 요구했다. 그리고 “일부에서 ‘노동자·민중 후보’를 내세우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지금이 후보전술을 쓸 때인가? 제발 좀 반성하자. 부르주아 정치 흉내 내지 말자.”고 경고했다.

이 기사가 나간 15일, 오전 11시 대한문 앞(쌍용차 분향소)에서 매우 특별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변혁적 현장실천과 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추진모임’(변혁모임)이 주최한 《노동자계급정당 결의·노동자대통령 제안 기자회견》이다. 참고로 필자는 지난 6개월 동안 변혁모임을 취재한 바 있다.

오세철 선생의 지론과 비교하기 위해 이날 기자회견 진행을 맡은 김소연 활동가(금속노조 기륭전자 전 분회장)의 발언(요지)을 소개한다.

“진보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전태일 동상 자리에서 후보 출마를 선언했다. 그 자리에서 노무현의 우직함을 배우겠다고 했다. 끔찍하다. 노무현 정권 때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고통을 받았고 죽어갔는가. 역시 이분도 야권연대를 통해서 정권교체와 연립정부를 얘기하고 있고 통합진보당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은 자본가와 노동자들이 노사 간에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서슴없이 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나눌 고통분담도 더 이상 내몰릴 곳도 없다.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떤지도 모르고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뻔뻔스럽게 내뱉고 있다. 안철수도 마찬가지다. 노동자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병원에 입원한 ‘근로자’를 만나고 왔다고 한다. 노동자 대신 근로자라는 개념 없는 얘기를 하고 있다. 당연히 박근혜는 입에 올릴 가치도 없고..”

“이런 상황에서 정리해고로 언제 내쫓길 줄 모르는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불안정한 정규직 노동자들은 (말로는 함께 하자는, 가진 자들인)대선후보들과 결코 함께 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젠 노동자의 삶이 어떤 삶인지 아는 사람들, 비정규직 노동자의 설움이 어떤 것인지 정리해고가 얼마나 끔찍한지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는 우리 노동자들이 정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

또 하나, 유의미한 발언이 있다. 13일 오후 원불교 서울회관에서 열린 《변혁적 현장실천·노동자계급정당 건설 전국활동가대회》에서 행한 유명자 활동가(학습지노조 재능교육 지부장)의 발언(요지)이다.

“‘정당건설이 우선이냐 현장에서 투쟁이 우선이냐’는 우매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앞에는 열려진 공간이 놓여 있다. 언제까지 우리 동지들을 투표장에서 '누굴 찍을까' 하며 거수기 노릇하게 버려둘 것인가. 우리는 (선거)투쟁으로 가진 자들의 본질을 폭로하고, 현장에서 투쟁하는 노동자민중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 주체가 되어야 하는지 그 공간 속에서 힘차게 돌파해봤으면 좋겠다. 투쟁하는 동지들은 노동자계급정당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가장 낮은 곳에 있을지라도 가장 높은 의식과 결의로 노동자계급정당을 건설하면 좋겠다.”

엄청난 얘기다. 계급의식과 정세분석을 전한 두 활동가의 발언은 변혁모임의 운동기조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우연히도 오세철 선생의 지론에 대체로 부합한다. 이들은 좌파의 정체성과 정치적 주체로서의 노동계급을 말하고 있다. 다만, 오세철 선생의 “지금이 후보전술을 쓸 때인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부르주아에 맞서 계급정당을 만들기 위한 과정으로서 후보전술(승부와 무관하게)로 선거에 개입하자는 것이지 결코 부르주아 정치를 흉내 내는 게 아니라고 답한 듯하다.

실제 ‘야권연대 반대’와 ‘독자후보 완주’를 기치로 선명하게 내건 변혁모임은, 그간 토론에서 민교협과 교수노조 등으로 이뤄진 ‘노동자·민중 후보 추대를 위한 연석회의’와는 상당한 입장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따라서 변혁모임은 현재까지의 일관성을 볼 때 오세철 선생이 언급한 ‘노동자·민중 후보’(야권연대 반대를 분명하게 확정하지 못한) 혐의로부터 상당부분 자유로운 것으로 판단된다.

12월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최근 정치권의 이합집산은 노동자계급정당 건설운동에 새로운 호조건을 제공하고 있다.

87년 체제의 유효기간이 끝났는데도 계속 우충우돌하고 있는 전·현 통합진보당 인사들의 움직임은 진보좌파의 재편성에 한줄기 서광이며, DJ측근 한광옥의 박근혜 후보 캠프 합류는 더 이상 기득권자들이 특정지역을 배경으로 안주할 수 없으니 기득권계급정당으로 가야 한다는 바람직한 신호탄이다. 그간 생물학적인 성(性)에 집착(성매매특별법 등)해 이득을 취한 급진적 여성주의자들의 정치행보도 ‘여성 박근혜’ 후보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오세철 선생은 기고문 결론부에서 “선거가 아닌 대중의 행동으로 맞서자. 노동자 대중의 열망과 사회주의 정치의 무능력의 틈을 파고드는 것이 파시즘이다. 사회주의 정치의 진정한 복원만이 파시즘을 이기는 길이다.”라고 제시했다.

변혁모임은 직접행동으로 노동자계급정당 결의와 노동자대통령 제안을 통해 동토 밖에 없는 외롭고 힘든 여정을 이미 떠났다. 오세철 선생은 지면 제한 탓인지 ‘대중의 행동’과 ‘사회주의 정치의 진정한 복원’을 언급했지만, “무엇을 할 것인가”를 갈구하는 노동자민중들이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어렵다. 노 혁명가의 후속 발언을 기대해 보자.


글: 최 덕 효 (한국인권뉴스 대표)

[한국인권뉴스 2012.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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