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건강은 '계급'의 산을 우회할 수 없다

최형록(인문학자)

"황 우석 교수팀이 혹 노벨 생리-의학상을 타게 된다면 그때를 전후해서 남한민중은 ‘유전자 치료’를 받아 무병장수하게 되는 것일까요?.. 황 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애국주의의 허풍’에 휩싸이다 보면 건강과 장수에 필수적인 ‘계급의 차원’이라는 ‘실사’를 ‘구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8월 하순 오후 4시 30분경일까? 한국전쟁 때 ‘을밀대의 고도(古都)’를 고도(孤都)로 만들어 버린 참극의 주인공들이 그렇게 몰려가지 않았을까 싶은, 잠자리 떼의 은빛들이 어디론가 가버린 텅 빈 마당, 화단 이슬 머금었던 나팔꽃은 더위에 지친 듯하고 연두색에서 황색으로 과육을 변모시키는 요술쟁이 감나무는 한 해의 절정을 발산하고 있습니다.

  늦여름의 미풍에 화답하는 은빛 바다만큼은 아니지만 살랑거리는 감잎들 사이로 황금빛 햇살이 정처 없이 나는군요. 기억의 돋보기로 초점을 맞춘 유년의 어느 날, 감나무 뒤 돌담에 초등학생 보다 약간 키 큰 해바라기 가족이 처연히 몸을 흔들고 있습니다. 농구의 박 신자, 탁구의 이 애리사, 축구의 차범근에 어린이들이 열광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근래에는 ‘붉은 악마들’에 열광하는, 유명 인사들의 아첨의 눈꼽이 낀 낙관이 비판을 압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악마들이 ‘빛 좋은 개살구’라는 것입니다. 박찬호의 연봉이 꿈같은 액수로 치달리는 것과는 무관하게, 청소년들 그리고 ‘줌마들’을 포함한 성인들의 건강은 양호하달 수 없습니다. 황 우석 교수팀이 혹 노벨 생리-의학상을 타게 된다면 그때를 전후해서 남한민중은 ‘유전자 치료’를 받아 무병장수하게 되는 것일까요?

  “미국인들의 삶에서 경제적 차이와 사회적 차이에 바탕을 둔 계급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남아 있으며 지난 30년 동안 줄곧 그 역할이 줄어든 것이 아니라 갈수록 커가는 경향을 보여준다. … 중간계급의 상층 이상에 속하는 사람들은 중간계급에 속한 사람들에 비해서 더 건강하고 장수한다. 그리고 중간계급 사람들은 밑바닥 사람들에 비하면 더 건강하고 장수한다.”

  이것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에서 ‘제4부’를 구성하고 있는 언론기관들 중에서 유력한 『뉴욕 타임스』(2005. 5. 30)의 입장입니다. 황 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복제에 대한 ‘애국주의의 허풍’에 휩싸이다 보면 건강과 장수에 필수적인 ‘계급의 차원’이라는 ‘실사’를 ‘구시’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 culturewarclasswar.wordpress.com 그림

  배아줄기세포를 복제하는 의학적 목적은 ‘안전한’ 장기이식을 비롯한 ‘유전자 치료’입니다. 유전자 치료의 ‘과학적 효율성’을 평가하기에 앞서 반드시 짚어보아야 할 것은 그 ‘역사성’입니다. 유전자 치료의 과학적 토대랄 수 있는 것이 ‘유전자 지도제작’인데 이것을 목표로 삼은 의학사상 최대이자 국제적인 작업이 ‘인간유전체(유전자의 총체:Genome) 프로젝트’입니다. 상식적으로 이 프로젝트 추진의 주무기관은 미국의 국립보건연구원일 것 같습니다만 사실 그것은 에너지부였습니다.

삼성과 두산 등 ‘강도귀족들’이 보유주식 1주로 7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시시각각 일어나는, 미국의 동북아 ‘속주’같은 남한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실만큼이나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기폭장치는, 아인슈타인이 그렇게 유감스럽게 괴로워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입니다. 미국의 에너지부는 1947년부터 원폭의 ‘검버섯’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방사능 피폭의 유전학적 영향, 유전자 돌연변이의 효과를 연구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왜 무려 53년이 걸려서 2001년경에야 완료된 것일까요? 약 30억 쌍에 이르는 염기서열 정보의 양은 성경 800권에 해당하는 방대한 것입니다. 이런 방대한 양의 DNA 염기서열을 확정하는데 필수적인 연산능력을 갖춘 대형 컴퓨터의 개발이 지연되었기에 그랬던 것입니다.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유전자 지도’는 의학적 치료로 활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걸프전에서 선보인 ‘영리한 폭탄’―맹자의 측은지심을 비웃는 ‘정밀 수학적 정밀성’의 환호에 찬 ‘문명’의 폭력성의 한 가지―보다 더 ‘영악한 생물무기’의 개발에도 악용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유전자의 역사성’과 관련해서 잠깐 언급할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터무니없는 ‘창조론’입니다. “번식하여 지상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라…”는 성경의 구절은 성경구성을 하던 당대 과학지식의 수준, 이와 관련된 인간 중심주의의 소산입니다.

인간의 염색체는 박테리아가 침투하여 수백 개의 유전자를 전이시키는 진화의 과정을 겪었습니다. 효모균(이스트)의 유전자는 인간의 유전자와 30%정도 겹칩니다. 겹치는 비율을 보면 쥐는 75%, 소는 90%, 침팬지는 98.4%에 이르며 인간 상호간에는 99.9%, 형제-자매-남매간에는 99.95%에 달합니다.

같은 부모의 자손들 사이의 유전자가 99.95%나 겹친다는 사실은 ‘유전자 치료’가 조만간 효율적으로 이뤄질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간단치 않은 것은 ‘SNP'(단일 뉴클레오티드 다형체:Single Nucleotide Polymorphism)로부터 비롯됩니다. 이것은 개개인이 유전학적으로 다른 근거가 되는 것인 즉, 현재 밝혀지기로는 약 100만 종에 이릅니다. 이것에 관한 연구는 여하튼 ‘맞춤의학으로 통하는 대장정’이 될 것입니다.

  유전자 치료가 안전한 실효성을 지니게 되기까지는 여러 가지 연구가 필요합니다. ‘유전학적 의학’이 아직은 초보적 수준에 있음은 임상실험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2001년 현재 유전자 치료를 임상 시험한 결과 6명이 사망했으며 650명 이상이 상태악화를 겪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경 퇴행성질환인 파킨슨 병 환자 5명은 유전자치료를 받고 통제 불능 상태로 내몰렸습니다.

  유전자 결정론에 적지 않은 과학자들이 비판적 결론에 도달하면서 관심을 두는 분야가 ‘후성 유전학(Epigenetics)’입니다. 이런 입장에서는 질병을 유전자와 환경 그리고 면역체계 사이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접근합니다. 이런 연기적(緣起的)―호발적(互發的) 관계를 규명하기 위해서 쌍둥이들을 연구합니다. 쌍둥이 40쌍 이상의 DNA를 연구한 결과를 2005년 7월 미국의 「국립 과학아카데미 회보」에 실은 과학자 팀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염물질에의 노출(1980년대 중후반까지 ‘낭만 깜빡’이던 별들이 고향 진해에서는 추정컨대 마산―창원 공단의 대기오염물질로 추억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음식의 소비(한국인들이 언제부터 백설탕에 중독되기 시작했을까? 미군정 이후, 햄버거는? 쫄면은? 유전자 조작된 미제 콩으로 만든 두부는? 자본주의적 공업화로 오염된 바다에서 포획한 중국산 수입수산물은? 등등)와 같은 환경의 영향, 나아가 격렬한 감정의 체험들(한국전쟁기 노근리 사건 류로 죽은 친척들, 거창 피 학살 양민들을 외면할 수 없는 사람들,

국민 1%가 사유지의 70% 가까운 토지를 차지하고 있음은 물론 『토지』를 그렇게 읽고서도 ‘사회적 쓰나미’를 일으킬 용기가 부족해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인간군상의 비열함, 삼성―중앙일보―안기부―청와대 사이의 흥미진진한 사회농락의 전말 등등)이 어떻게 개개인의 DNA에, 삶에 지속적인 제반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일까? 나아가 암 유발성 DNA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암에 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실들로부터 ‘올바른 방향을 구한다면’, 우선해야 할 것은 황 우석 교수팀의 ‘유전자 치료’보다는 의사와 약사의 이해관계에 맞춰진, 허울 좋은 ‘의료 보험제도’를 내실 있는 ‘민중의료’라는 방향으로 대개혁을 하는 일입니다.


[최형록의 과학에세이] 46호(2005-9/10월)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한국인권뉴스 2012.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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