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안철수 현상’의 골짜기에서 "TINA"의 광야로 (1)



최형록(인문학자)

‘안철수 현상’의 골짜기에서 "TINA"의 광야로 나아갑시다

낙화암(落花巖).
꽃들이 떨어졌던 절벽.
부소산 성터를 지나 이 절벽에서 1340년 전 소정방의 당나라군이 백마강으로 들어오며 어떻게 공격했을까, 궁녀들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을 품고  몸을 던졌을 강을 바라봅니다.1)

한 달을 끌고 온 문제, 의대 진학을 끝까지 추진할 것인가 아니면 깨끗이 단념할 것인가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나는 착잡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징그러운 놈들이 우글거리는 의대 집어치우자!”.

“형님 공부 그만큼 했으면 됐지 무슨 공부를 또 합니까? 의대 졸업하면 형님 나이가 40대 촙니다”. 일리 있는 후배의 판단에 대한 답변. “졸업 한 후 한 사람이라도 죽음의 문턱에서 목숨을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고 그 다음날 내가 이 세상을 떠나도 후회가 없을 것이다”.

이 간절한 꿈을 접게 된 사회적 이유는 2001년 “한의사-양의사 의료분쟁” 사태에서 젊고 젊은 의대생들이 인턴과 레지던트들의 의사파업에 동조한 행태였습니다. 인턴이나 레지던트들은 이 불의스런 사회의 황금만능주의 바이러스에 '병원감염‘되어 파업한다 하더라도 학부생들은 이 사태의 원인과 해결방안에 대한 지성적 토론회를 열고 선배들의 이익 집단적 행동을 저지하는 자세가 “의사 본연의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하는 것인데 그렇지 않기에 나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지요.

“남산 국립호텔”에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법조계 진출을 막을 것이니 사법고시 꿈도 꾸지 말라”고 그 애국자들은 나의 앞길을 끊어버렸지요. 그들이 강요하는 사상전향을 거부하자 즉각 날린 최후통첩(그들의 훼방이 없더라도 법적으로 5년 간 시험에 응시할 수 없지만). 이제 나는 다시 희망의 꽃을 이 강물에 던집니다. 다른 희망 꽃을 피우기 위해서.......


“무당파”와 역사인식의 퇴행적 “향수” 그리고 TINA!

의대 출신으로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무료로 배포한 인물. 50%의 지지를 기록하면서도 5% 밖에 안 되는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 기회를 양보한 인물. 이런 정도의 인물이기에 대통령 후보 1위를 유지해온 “간성(奸星)의 딸”을 여론조사에서 앞지를 만도 합니다. 그 딸은  50대에서만 57.2%의 지지를 받았더군요.2)

공자는 자신의 삶을 간명하게 정리하면서 50의 연세에 “천명을 알았다”고 했는데 경제력이 세계 11위, 12위인 나라에서 노인들이 추운 겨울 밤 10시가 되도록 폐지를 가득 실은 수레를 힘겹게 끌고 가는 현실에서 그 따위 선택을 하는 작태가 도대체 “천명을 아는” 것일까요?

그런 한편 안 원장은 20대-30대-40대에서 각각 48.1%-58.2%-45.7%의 지지를 받았습니다.2) 이 지지자들이 고소득층 이라는 점까지는 별반 문제가 없으나 부산-경남 출신이 많다는 점은 한국 정치의 고질을 보여줍니다.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8-12-23일자 주한 미 대사 스티븐스가 한국의 국내 정치에서 강력한 역할을 하고 있는 “지역주의”가 바로 그것입니다.3)

지역주의는 노동자 계급이 자신의 계급적 정체성(Identity)을 올바르게 형성하는 데 중대한 장애물입니다. 이런 지연(地緣)이라는 좁은 공동체 의식 속에 갇혀 있기에 심지어 대 공장노조 간부들 중에는 한나라당의 당원을 넘어서 간부인 빌어먹을 수컷도 있습니다. 지방자치를 10년이나 경험하면서도 국회의원 나아가 대통령을 지연이라는 기준에서 선택함은 낫 놓고 ㄱ 자 모르는 놈과 다를 바 없습니다.

지연이라는 정신의 굴레와 함께 한심스럽고 우려스런 현상은 서울시민에 한정된 여론조사이지만 20대~40대에는 “무당파”가 많다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있음에도 왜 이런 정치적 우유부단을 보이는 것일까요? 20대의 38.4%가 무당파로 답한 사실은 대학 재학생 40.4%가 무당파로 답한 사실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고졸자 80%가 대학교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함께 생각한다면 그렇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30대 후반과 40대 전반의 연령대는 1985년~1995년 기간에 대학생으로서 학생운동을 직접 체험했거나 듣고 보았다는 점에서 진보정당들을 지지할만한데 왜 무당파일까요? 몇 가지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이기적 인간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보수적 역사인식”입니다.

한국정당학회와 조선일보가 공동 기획한 “5.16 50주년-박정희 평가”에 따르면 지역-나이-학력-소득-이념을 뛰어넘어 경제성장등 전반적으로 박정희의 공을 인정한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4) 민중에게 온갖 종류의 한(恨)을 안겨주는 한나라당은 물론 재기의 기회를 주어도 기대에 어긋나는(정동영, 이종걸, 천정배, 박영선 등 신뢰할만한 의원들이 있으나)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더라도 진보적 두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 일이 불가피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올바른 역사인식을 한다면 이럴 수 있을까 싶은 결과가 보입니다. ”경제성장“에 관한 한 민노당 지지자들 중 무려 53.5%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한편 정치적 민주화에 대해서 부정적 평가자가 56.1%이면서 이들 중 국가발전에 긍정적 기여에 대해서 75.9%가 긍정적으로 답변했음을 함께 고려한다면 민노당 지지자들 중 53.5%의 긍정적 평가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여론조사의 설문 내용 상 국가발전이란 경제성장과 정치민주화로 구성됨으로써 응답의 한계성을 고려하더라도 ”경제성장“을 우선시 하는 가치관을 읽을 수 있습니다.

1980년 5-18 “광주항쟁 세대”의 “문화적 아버지 살해"(Patricide) 혁명에서 필독서들 중 하나가 영국의 진보적 소련사 전문가 Edward Hallet Carr의 <<역사란 무엇인가?>>(What is History?)입니다. 그는 이 명저에서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적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的確이라는 낱말을 쓴 이유는 역사라는 낱말의 한자 어원을 살펴보면 과녁을 겨냥한다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식은 오늘날 기억에 관한 인지과학의 성과에 비추어보아도 과학적입니다. 인간의 기억이란 이른바 객관적 현실을 사진 찍듯이 해서 두뇌에 저장했다가 정보를 컴퓨터가 출력하는 것과 같이 불러내는 것이 아닙니다(기억에 대한 컴퓨터 모델론).

기억의 대상이 되는 어떤 사건에 자신이 참가했다고 생각하든 하지 않던 기억하려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기억하고자하는 경험을 ”구성하거나 발명“합니다. 어떤 사건을 기억하는 방식은 기억하고자하는 바로 그 시점의 목적 혹은 목표에 좌우됩니다.5) ”기억의 현재성“. 안토니오 그람시의 사상의 숫돌이었던 베네데토 크로체의 경구, ”모든 역사는 현대사다“라는 경구는 바로 기억의 이런 성격을 통찰한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집단적 기억으로서 역사에 대해서 던지는 질문은 당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 당대의 모순을 어떤 성격이라고 보느냐, 당대 사람들의 고통의 성격의 원천을 무엇이라고 보느냐 라는 관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위 여론조사 당사자들의 현재의 고통에 대한 문제인식 틀이 “Homo Economicus"(경제인)적 인간관에 갇혀있는 것이며 응답자들 역시 그런 인식의 틀-가치관에 반란을 꾀하지(造叛:문화혁명기의 용어로 경제주의적 편향을 지닌 주자파-Capitalist Roader-에 대항한다는 뜻)못함을 알 수 있습니다.

고용 없는 성장의 시대에 여전히 경제 성장주의라는 시대착오적 세계관을 유지하는 밑바닥에는 과거에 대한 향수(Nostalgia)가 있습니다. 향수(鄕愁)는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 여론조사에서 보이는 사회적 분위기는 일종의 현실도피주의입니다.6)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___그곳이 참하 꿈엔들 잊힐리야(이하 생략)7)

해방 후 조선 문학가동맹에 관여한 정지용의 “향수”는 현실에 대한 적극적 태도가 잠재되어 있는 향수랄 수 있습니다. “먼지 투성이 작업장에서 하루 16 시간씩 일한 노동자의 일당이 당시 차 한 잔 값에 불과한 50원 이었으니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8)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 만의 심정이 아닐 것입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전태일 열사의 절규가 오늘날 고통을 정면 직시하는 시야에 울린다면 이런 한탄스런 역사인식이 부끄러움도 없이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세계화”가 초래하는 갈수록 복잡다단한 삶의 조건에서 좌절감에 허우적거리며 주체적 능동성을 발휘하지 못할 때 역사적 과거에 대한 질문은 지배계급의 자기정당화 논리의 감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계속)



1. 성의신의 CD <해금소리>, 3.“낙화암”.
2. <경향>, 2011-09-08.
3. <경향>, 2011-09-09, 8면.
4. chosun.com, 2011-5-16.
5. Daniel L. Schacter, <>(1996, Basic Books), PP. 21~22.
6. Jeffrey Blustein, <>(2008,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0.
7. 정지용, “향수”, 민영 외 2인 공동편집, <<한국 현대 대표시선>>(2009년, 증보판 14쇄, 창작과 비평사), p. 89~91.
8. 김대중, <<김대중 자서전>>(2010년, 초판 4쇄, 삼인), p. 241.


2011-09-15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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