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북에세이] 살신성인(殺神成人)1/3

최형록(인문학자)



[서평 대상 서적]
리처드 도킨스,만들어진 신(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년)
Christopher Hichens, god is not Great
(New York : Twelve, 2007)
Sam Harris, The End OF Faith
(New York : W.W. Norton & Company,2004)



1. 21세기 사상의 모색과 종교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라는‘손님’.
작가 황석영은 백일몽까지 동원하면서  ‘신천 대중학살’을 모티브로 삼아 이 한반도에서 기독교와 마르크스주의라는 두 ‘외빈’이 어떤 인연을 맺을 수 있는지를 성찰하고 있다.1)

한반도의 주인인 불교2)와 유학 그리고 민간신앙은 두 ‘외빈’을 과연 ‘식구’로 동화한 것일까 아니면 ‘사랑방 손님’ 수준으로 대접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오히려 바람직한 ‘손님 같은 식구’로, ‘둘이 아니로되 그렇다고 하나이지도 아닌(不二 而 不一)’인연을 맺은 것일까? 아니 현실은 ‘불청객’ 미국식 자유주의가 야소교 열심당과 어깨동무하며 마르크스주의 열심당과 안방 싸움을 하는 통에 주인들은 청지기 방으로 물러나 있는 것이 아닌가?

21세기 신자유주의의 격랑 속에서 북한은 사상적으로 마르크스주의의 외피를 걸쳤으나 사실 유학이 나름으로 세련된 형식을 지니고 조상숭배사상과 결합해 있으며 영묘(靈廟)정치(mausolocracy)가 체제유지를 하고 있는 나라가 아닌가?3) 한반도의 민중은 이제 분단을 넘어 민중해방을 지향하는 국가의 형성이라는 뜻을 지닌 통일의 과제를 앞두고 있다.

2007년은 세계를 뒤흔들었으되 여전히 세계를 전복시키는 과제를 남긴 ‘볼셰비키 혁명’ 90주년이 되는 시점이다. 90번 진달래가  피고 지는 동안 소련은 KGB출신과 마피아가 주름잡는 사회로 변모하였으며, 중국은 주자파가 대장정에 일로매진하고 있다. 남한 나아가 한반도는 20세기 초기의 러시아와는 지정학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다른 과거의 기억을 지니고 있으며 앞으로도 다른 기억을 구성해나가야 한다.

오늘날 혁명적 인텔리겐챠라면 세계를 뒤흔들다 주저앉아버린 소련과 중국혁명의 전개과정을 ‘열린 정신’과 ‘법고창신(法古創新)’4)의 정신으로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열린 정신’이란 과학적 유물론의 성과와 함께 그것의 ‘계급 환원론’을 비롯한 한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것이며, ‘법고창신’의 정신이란 서로 다른 전통과 기억의 비교를 통해서 21세기에 바람직한 전망을 구상하는 것이다. 이런 접근방식으로부터 두 ‘손님’과 세 ‘주인’ 사이의 창조적 사상의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사상의 패러다임 구성과정에서 중요한 것들 중 하나가 두 ‘손님’ 사이의 인연에 대한 판단이다.

마르크스 이래 마르크스주의의 종교관은 ‘아편’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아편’으로서의 길고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편, ‘아편’을 권하는 사회를 전복시키는 사상의 반석이 되기도 하고 창조성의 영감을 불러일으키거나 용기의 칼날을 담금질하는 용광로가 되기도 한다.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바하의 음악이 그런 일례다. 마르크스가 규정한 ‘아편’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루려는 종교란 기독교와 이슬람교, 일신교다.

기독교만하더라도 대략 15세기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그리고 19세기 다윈의 진화론에 대응해서 신학적 변화의 과정을 거쳐 왔다. 이른바 ‘서구적 근대’ 이래 기독교는 줄곧 과학의 강력한 도전에 직면해왔다 . 오늘날 과학-기술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외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소외, 이 양자 사이의 엄청난 괴리를 직시한다면 일신교의 반과학적 측면과 낡은 윤리적 측면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과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도킨스(1941~)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로서 남한으로서는 부러운, 옥스퍼드 대학교의 과학의 공공이해 담당 초대 교수이기도 하다. <<만들어진 신>>은 2007년 9월 현재 백만 부 이상 판매되었으며 amazon.com에 따르면 이 책 덕분에 종교와 영성 관련서 판매가 50% 증가했으며 성경판매가 120% 급증했다고 전한다.5)

      

히첸스(1949~)는 이전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진보저널인 'The Nation', 'Slate'지 등의 컬럼니스트로 유명했는데 이전 동료들로부터 ‘신보수주의자’라고 비난받고 있다.
해리스(1967~)는 원래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다 중퇴하였다. 11년 후 복학하여 철학 석사 취득 후 현재 신경과학을 전공하고 있다.
도킨스, 히첸스 그리고 해리스는 현재 ‘신성을 모독하는 삼위일체’6)라는 별명을 지니고 일신교들에 대한 비판운동을 열성적으로 하고 있다.

이 ‘신성모독적인 삼위일체’ 중 도킨스와 히첸스의 논조가 보다 비슷한 한편, 해리스는 불학과 명상에 긍정적이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라는 점에서 이 삼자는 기본적으로 양자를 갈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므로 반종교적이다. 본고에서는 3자의 논지를 검토하면서 21세기 변혁사상의 구성과 관련해서 정치의 과학성과 윤리성에 관한 고민의 일단을 간략히 피력하고자한다.


2.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관점들
양자의 관계에 대한 관점에는 갈등, 독립, 대화, 통합, 4가지 관점이 있다. 나의 입장은 독립과 대화 양자의 관점을 취하는 것이다.

2-1 갈등의 관점
가. 성경 직역주의(Biblical literalism)

‘전투적 삼위일체’ 3인이 적대시하는 것이 바로 이런 근본주의다.7) 1910년경부터 근본주의자들은 <<근본>>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여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기 운동을 벌였다. 이런 광신적 운동이 전개되던 중 1925년에는 토마스 스코프스가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쳤다는 죄목으로 벌금 100불을 선고받았다.

이런 근본주의자들은 소련과의 경쟁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창조과학’을 주장하면서 ‘과학과 양심의 자유’의 이름으로 ‘다원주의와 관용’을 들먹거리며 창조과학의 교육을 요구했다. 이들의 반과학성은 인간의 기원에 관한 신의 창조론은 물론, 지구의 나이가 최대치로 잡아도 1만년 미만, 일반적으로 6천년 -과학적으로는 45억년- 이라는 억지, 노아의 방주와 관련된 대홍수론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이들의 윤리관이 아담의 원죄설로부터 출발함은 물론이다.

이 광신적 근본주의자들을 보면 인격신을 부정하며 이신론(deism)의 관점을 취한 아인시타인의 격언이 생각난다. “종교가 결여된 과학은 절름발이이며 과학이 결여된 종교는 맹목적이다.”8) 기독교도들이 모두 이런 류의 광신자들은 아니기에 과학적 성과를 나름으로 수용하여 제시하는 입장이 ‘지적 설계론’이며 도킨스는 이 입장을 잘 반박하고 있다.9)


나. 과학적 유물론

도킨스와 히첸스는 이 관점에 철저한 한편, 해리스는 이 관점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입장이다. 주지하다시피 이 관점에서는 물질이 현실의 근본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교양독자층에게도 유명한 하버드대의 에드워드 윌슨은 이런 관점에서 정신을 “뇌 신경기계의 부수현상”으로 설명하려들 정도다. 윌슨의 이런 접근방식이 환원론이며 ‘물리학주의’로 통한다. 모든 과학의 법칙들과 이론들을 원리상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들로 환원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영국의 매력적인 여성 과학철학자 메어리 미드글리는 이런 경향을 가리켜 ‘물리학 제국주의’라고 질타하고 있다.10)

이런 경향과 유사하게 마르크스의 사상이 ‘계급 환원론’의 성격을 띰으로써 ‘혁명과업’의 수행과정에서 ‘계급 연좌제’라는 괴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남한의 60대 이상의 맹목적 반공주의가 바로 한국전쟁 기간 겪은 공포스런 ‘계급 연좌제적 양민학살’의 ‘외상 후 스트레스증후군(Post-trauma stress syndrome)’의 소산이며 크메르 루즈의 ‘살인의 아수라장(killing field)’ 역시 그런 호모 사피엔스라기 보다는 포유 동물적 맹목성의 극단적 실례다.

주목해야할 사실은 이인시타인이 ‘유물론’의 성과와 한계를 분명히 인식하고 ‘근대 서구과학’과 유도(柔道)를 해서 물질세계에 관한 인간의 인식지평을 확장한 것이다.

학자는 거리낌 없는 일종의 기회주의자로서 지각행위와 독립적인 세계를 표상하고자 노력하는 만큼 ‘실재론자’로서 나타난다. 그는 경험적 소여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할 수 없는, 인간 정신의 자유로운 발명으로서 개념과 이론을 생각하는 만큼 ‘관념론자’로서 나타난다. 그리고 그는 감각경험 사이의 제반 관계로부터 개념과 이론을 표상할 수 있는 한에서만 그런 개념과 이론이 근거를 지닌 것으로 생각하는 만큼 ‘실증주의자’로서 나타난다.11)

이 발언에는 근대 서구과학의 자연탐구의 역사가 특히 그것의 인식론적 분투의 역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아인시타인은 그의 선배들의 위대한 사고양식들을 손오공이 여의봉(如意棒) 휘두르듯 자유자재로 활용함으로써 그런 동시대의 천재들인 프앵카레, 로렌츠가 거의 열어 제칠 뻔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이제껏 ‘봉인된 시공간의 세계를 현실화’했다.

이 경구에는 근대 서구과학이 겪은 자연계에 대한 세련된 수학적 독해, 갈릴레이로부터 시작되는 사고실험(thought experiment)에 따른 과학 철학적 변혁, 편협한 마르크스주의 실재론자들이 전적으로 무시하는 플라톤적 유산의 계승․발전,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닌 세계관으로부터 애당초 존재하는 세계로부터 수학적으로(특히 기하학과 미적분학에 의거하여) 창조되는 세계’로의 세계관의 변혁, 이것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관찰되는) 경험으로부터 (특히 수학적으로 설계되는) 실험으로’의 과학적 사유의 확장 그리고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들 역시 범하는, 스스로를 가두는 ‘진리의 사물화(La Reification de La Verite)’12)에 대한 비판 사상이 망라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아인시타인은 진정 ‘넓고 아득한 우주에 큰 사람’13)으로서 살다 간 인물이다.

깊이 생각해야 할 과제로서 한 가지만 더 지적하자면 근대 서구과학이 자연을, 현존하는 자연을 ‘선험적으로’ 대체하는 ‘계산 가능한 자연’으로 상정한 전통의 연장선상에서 알튀세의 문제제기를 생각해볼 수 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적 공백으로서 <<자본>>에서 착취의 근원인 잉여가치를 단순히 산술적인 가산량(加算量)으로 설명함으로써 발생하는 난점들을 제기하고 있다.14)  (계속)


주(註)

1) 황석영, 손님 (서울 : 창작과 비평사, 2001)

2) 서평 대상 저자들이 다루는 기독교와 이슬람교와 같은 일신교들과 ‘불교’는 성격이 다르며 나는 그것을 종교가 아니라 불학(佛學)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3) Christopher Hitchens, god is not Great (New York : Twelve, 2007), p. 248. 이하에서는 히첸스의 책으로 표기. 북한의 유학적 풍모에는  부자유친과 짝을 이루는 ‘현명한 어머니’라는 측면이 있으며 이 양자는 북한의 체제 유지 속에서 정서적 토대를 이루고 있다. 혁명가극 <<피바다>>는 이 점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으며 고리키의 <<어머니>>와 비교해봄직 하지 않을까?

4)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제창. 정옥자, 우리선비 (현암사, 2006), pp. 12~89.

5) 번역서에는 영어원서에 있는 참고문헌과 유용한 인터넷 사이트가 빠졌다. 이유가 뭘까? 옮긴이의 말에서 밝히면 안 되는 것일까? 사소한 실수인데 ‘Unwearing the Rainbow’는 ‘무지개 풀기’가 맞지 풀리는 무지개가 아니다. 역장이라는 번역 뒤에 ‘力場(field of force)’이라는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적지 않은 독자들이 무슨 뜻인지 몰라 ‘억장이 무너지지’(?) 않을까?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방혈(放血)’이라는 용어보다는 ‘사혈(瀉血)’ -우리 외할머니들, 어머니들께서 체하거나 했을 때 손가락에 바늘을 찔러 피를 뽑는 것도 이런 류에 속한다- 이 일반적 관용어가 아닌가?  그리고 en.wikipedia.org - The God Delusion.

6) 기독교에서 삼위일체란(The Holy Trinity) 성부 ․ 성자 ․ 성령인데 원래 ‘신성모독을 하는 (사악한) 삼위일체’란 사탄 ․  그리스도의 적 ․ 거짓 선지자를 가리킨다.

7) D. Lecourt, L`Amerique entre la Bible et Darwin (Paris : P.U.F, 1998), P. 84, pp. 97~108, P. 21.

8) W. Isaacson, Einstein : His life and Univers (New York : Simon & Schuster, 2007), PP. 384~393.
A. Calaprice, The New Quotable Einstein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5), P. 203.

9)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이한음 옮김, 김영사, 2007년), PP. 174~246.

10) Mary Midgley, The Ethical Primate : Humans, Freedom and Morality (London : Routledge, 1994), 27~91. Mary Midgley, “Do we ever really act?”, D. Rees and S. Rose eds., The New Brain Sciences : Perils and Prospects (Cambridge :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4), pp. 17~33. S. J. Gould는 사회생물학 주창자들에게는 대표적 논객인데 그는 노벨상에 물리, 화학상만 있고 생물학상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것은 ‘학문 내 제국주의적 경향’에 대한 비판이랄 수 있고 나아가 수학-물리학 환원론적 문화 제국주의 -지능에 대한 협소한 낡은 사상을 포함해서-에 대한 ‘문명비판’적 함의를 포착할 수 있다. 노벨은 당초 경제학상을 제정하지 않았던 사실에도 유의해야 한다. 'Le Monde Diplomatique'833918 2005년, 정확한 일자 잊어 버렸음.

11) A. Einstein, “L`opportunisme philosophique du savant”, Jaques Merleau -Ponty et Francois Balibar eds., Albert Einstein : Oeuvres choisies, 5eme tome, Science, Ethique, philosophie (Paris : Seuil/CNRS, 1991), p. 164.

12) O. Rey, Itineraire de l`egarement : Du role de la science dans l`absurdite contemporaine (Paris : Seuil, 2003), pp. 43~85. 자연을 일종의 ‘수학책’으로 보는 것과 플라톤의 유산을 뇌 과학적으로 탐구한 책으로 흥미로운 것은 Jean-Pierre Changeux & Alain Connes, Conversations on Mind, Matters and Mathematics (New Jersey :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5), 특히 pp. 25~73, pp. 179~209.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진리의 사물화’의 오류에 빠지는 것은 그들의 열정과 함께 진리의 일반성-보편성이 구체적 역사과정의 특수성에 어떻게 ‘不二 而 不一’이라는 형식으로 발현되고 인간이 발현시키는 지를 염두에 두지 않는 탓이다.

13) 허경진 지음, 넓고 아득한 우주에 큰 사람이 산다 (웅진북스 2002), pp. 66~67. 이 시귀는 김인후 -퇴계와 동학한 정철의 대표적 제자-가 5세에 쓴 것이라고 한다.

14) L. Althusser, "The Crisis in Marxism" in P. Camiller and J. Rothschild eds, Power and Opposition in Post-revolutionary societies (London : Ink Links . 1979), PP. 225-237.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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