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노동자, 자본가 & 문화적 돌연변이(1) 3/3

최형록(인문학자)

유전자 결정론과 정보 악용의 예방 그리고 생명의 윤리

분자생물학의 성과는 망막세포 등 인간세포의 수명을 최소한 200% 연장시키는 실험의 성공에까지 이르렀다. 노화는 염색체의 끝(les telomeres)이 축소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인간의 세포에 효소의 일종인 telomerase의 유전암호를 지정하는 유전자를 도입함으로써 염색체에 telomeres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생명체는 얼마나 오묘한가? “죽지 않는 세포들은 배양되고 있는 암세포와 같은 것이다…”341)

자연에 있어서 물체의 운동에 대한 뉴턴의 운동방정식의 명쾌한 설명력을 담보로 라플라스가 과학적 확실성에 패기만만했던 역사적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분자생물학을 담보로 한 유전적 결정론이다. 그것은 인간의 신체적・정신적 특성들에 원인유전자(genes ‘for’)가 있다는 것이다.

유전적 결정론자들은 지능, 범죄, 동성애 등의 원인유전자를 탐색하고 있다. 머리와 다리를 ‘다스리는’ 유전자들을 찾아내는 영국의 과학자들이 있다. 런던의 심리치료 연구소의 유전학자 R, 플로민은 지능의 원인유전자가 제6번 염색체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능이 높은 아이들 중 절반 이상의 아이들에게서 그 유전자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342)



△우생학이 독일 나치즘의 유대인 말살 정책에 이용된 후 잦아드는 듯했던 유전자결정론genetic determinism 이 최근 들어 인간 유전자 비밀이 밝혀지면서 다시 부상되고 있다.(영화 25시The 25th Hour 중에서 한 장면)


그리고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의 연구자들은 산소 없이 고도 7천 미터를 등정할 수 있는 능력을 검사하기 위해서 25명의 등산가들을 선발, 그들의 DNA를 검토했다. 그들은 심장-혈관계와 혈압을 조절하고 콩팥의 기능과 세포의 산소이용과 관련된 유전자로서 ACE를 지목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1990년 국립 보건의학 연구소(lnserm)의 과학자들이 밝힌 것이다. 그것은 i와 d라고 이름 붙여진 형태의 유전자인데 양친으로부터 i형이나 d형이 각각 유전되는 것이다. DNA의 2중 나선구조의 해명으로 불멸의 명성을 지니게 된 J.왓슨은 미 국회 인간게놈프로젝트 위원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 우리는 운명이 우리의 별에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는 상당한 정도로 우리의 운명이 유전자 안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343)

유전자결정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차원, 각도에서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의 유전학교수인 D. 스즈키는 우선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준별(峻別) 할 것을 강조한다. 알코올의 탈수효소와 관련된 유전자에는 두 가지 대립유전자(alleles)가 있다는 발견의 경우, 유전자 결정론자들은 알코올 중독자들의 80%가 이 유전자의 한 형태가 그리고 비 중독자들의 80%가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상관성의 정도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지 원인과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유전자가 다른 유전자들에 의존하는 정도 그리고 환경에 대한 의존성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나아가 인간의 행동을 분자유전학으로 얼마나 해명할 수 있겠는가라는 강력한 의문이 있다. 우선 그것이 동물실험모형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잠재적인 사회・역사적 영향력은 차지하고라도 오리(혹은 곤충)와 인간 사이에 신경세포의 구조가 엄청나게 다름을 무시할 수 있는가?344)



△ 칠레 태생 인지과학자 프란시스코 바렐라(1946~2001). 바렐라는 자신의 책 윤리적 노하우(Ethical Know-How)를 통해 교육과 복잡계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영속적이고도 통찰력 있는 전망을 제공한다.


그리고 인지와 감정을 분자수준에서 얼마만큼이나 설명할 수 있을까? 유전자에 한 생명체를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정보가 들어있다는 결정론에 대해 Varela는 두가지 점에서 비판한다.

첫째, 세포의 특정구성요소(DNA)를 여러 세대에 걸쳐 꽤 안정하게 복제하는 기제를 유전현상으로 착각하고 있다.
둘째, 자기생산 network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한 DNA를 network의 나머지와 분리하는 것은 결정적인 참여가 DNA만의 결정이라고 혼동하는 것이다.345)

분자유전학과 관련된 다른 하나의 쟁점은 그것이 생물학적 무기로 악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1990년 『군사평론』 겨울 호에 실린 「인종특이성 무기들(ethnic weapons)」에서 스웨덴의 유전학자 C. 라슨은 인종에 따라서 서로 다른 대립유전자 구조가 많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것의 논리적 귀결은 인종별 차이점들에 대한 목록을 근거로 인종특이성을 가진 생물학적 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346) 과연 이성적 인간과 비이성적 짐승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일까?

쟁점이 되는 다른 한 가지는 분자유전학적 지식의 생성과 정보에의 접근권과 오용방지문제이다. 많은 분자생물학자들이 의약계와 관계를 형성하게 되면서 유전체(genome)관련 지적 재산권이 강화되는 한편 유전자에 대한 유용한 속성들을 효율적으로 발견해내는 연구 인력이 산업계의 통제 아래 놓일 것이다.

즉 과학지식의 성과가 자본가계급의 이윤창출이 아니라 민중의 복지를 지향하도록 ‘사회적 관계’를 변혁시키는 문제가 제기된다.

접근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오용방지문제이다. 유네스코 회원국 80개국은 인간게놈과 인권에 대한 25개항의 선언문을 채택하면서 제6항에서 “어느 누구도 유전적 특징들에 기초한 차별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347)

현재 프랑스, 벨기에, 노르웨이에서는 생명보험회사와 의료보험회사 그리고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유전정보를 이용하는 것을 방지하고 있고 네덜란드에서는 생명보험과 관련해서 그리고 독일에서도 몇 가지 관련 보장책이 있다고 한다.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를 사회적 혹은 국가적 수준에서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은 컴퓨터 해킹을 생각할 때 대단히 중요하다.

현재 월드 와이드 웹에서 일부의 거대 상업 Site는 고객의 독서, 쇼핑, 오락습관 등에 대한 상세한 정보 수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회사들은 이미 3천만 명이 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있는데 그렇게 수집한 정보에서 특정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할 가능성이 큰 사람들을 분류해서 마케팅 공략을 한다348)는 것이다.

프랑스에는 1983년에 창설된 ‘국가 윤리자문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이 기구의 존재 이유는 생명과 건강에 관한 과학의 진보가 급속히 전개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하고 자문해주는 것이다.

이 위원회는 남녀 과학기술자들과 의사 및 간호사들, 가톨릭, 유태교, 프로테스탄트, 마르크스주의, 이슬람교를 대표하는 각 1인, 그리고 철학자, 법학자, 대중매체 전공교수, 국회의원, 전직 장관, 기업가 19인, 총 41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위원회 구성원들은 외부 인사들과 함께 제기된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한다. 운영방식은 민주적이고 활발하다. 예비적 문안은 부분 부분 나누어져 작업반, 기술과 그리고 위원회 총회 사이를 수차 왕복한 후 수차례 개정된다. 그리고 최종 문안에는 반대의견이 공공연히 표현된다.349)

왜 경제성장을 추구하며, 왜 과학기술의 발전에 노력하는가? 그 모든 것이 자연적 생명의 자유롭고 풍성한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한국사회에서도 국가적 차원에서 생명과 관련된 여러 가지 문제들을 과학적・윤리적으로 다루는 기구의 설치가 시급하다.


주(註)

341)「생물학: 인간세포의 청춘을 위한 치료」, 『과학과 미래』, 1998년 3월호, 10면. 암의 원인과 예방, 조기발견, 암치료법의 개선 등에 대해서는 『Scientific American:암에 관한 특집호』, 1996년 9월호 참고.

342) 「유전학: 머리와 사지」, 『과학과 미래』, 1998년 7월호, 7면.

343) 앞의 자로프의 글, 『타임』지 특집호, 47면.

344) 앞의 필립 키처의 책, 254면.

345) F. Varela와 H. Maturana,『인식의 나무』, 최호영역, 자작아카데미,1995년, 78면.

346)「유전자: D.스즈키와의 대담」, 『생물학』, 캄프벨 출판사, 1993년 판, 242면.

347) 『과학과 미래』, 1997년 12월호, 8면.

348)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지, 1998년 8월 17일자.

349) 「서문: 다원주의 사회의 윤리논쟁」, J.-P. Changeux, 그의 앞의 책, 10면~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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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한국노동운동이론정책연구소(소장 김세균 교수/서울대 정치학과 ) 발간『현장에서 미래를』(1998년 10월호, 제 37호)에 게재된 것임.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양해 아래 그의 에세이를 매주 수/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에세이는 최 선생의 책 『이 야만의 세계에서 어린시절의 꿈나무를 키워나간다』(도서출판 다올 정문사)에서 옮긴 것으로 그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관련 동영상 소개]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가 빈 서판에 판서하다.

△ 스티븐 핑커는 자신의 책 '빈 서판The Blank Slate'에서 모든 인간들은 선천적인 특성들을 안고 태어난다고 주장한다. 핑커는 이 강연에서 왜 사람들이 그의 논제와 이론에 대해 기분 나빴는지에 대해서 말한다.(번역보기 ▶korean)[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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