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삶과 과학 - 왜 지능인가? (1)

최형록(인문학자)

[머리말]

“또한 그들은 작전 나갔다가 대원이 죽거나 부상당하면 그 시체를 갖다 놓고 , ‘너희 같은 놈들이 죽였다. 너희들도 이렇게 죽어봐라’ 하면서 짐승을 잡듯이 두들겨 패서 한 명씩 죽였다”, “며칠째 물 한 모금 입에 대보지 못했으므로 탈진 상태에 빠진 우리가 물을 달라고 아우성치자 …공수 한 명이 즉석에서 물 컵에다가 오줌을 싸서 주었다. 한 사람이 그걸 덥석 받아 시원한 냉수를 마시듯이 벌컥벌컥 들이마셨다.…우리는 시체들 틈에서 식사와 대소변을 보았는데 … 인간이기를 포기하고 체념했을 때에야….”222)

아비규환(阿鼻叫喚). 1980년 만 생명이 약동하는 눈부신 5월, 전두환을 수괴로 하는 파시스트 군부는 파충류223)와 같은 권력욕으로 국민에게 총구를 들이대었다. 사법적으로 내란죄 등 범죄자로 판결 받은 그는 ‘부처님’을 희롱하는가하면 마땅히 내어야할 벌금조차 내지 않는 공룡의 껍데기를 가진 생물이다. 、윤회´의 새로운 순환에 들어가 자신의 ’업보‘로서 새로운 미물(微物)로 태어나 선을 쌓아야 할 그를 대통령 김대중은 사면해 주었다. ’피가 강물처럼‘ 흐르게 한 자를 사면해 준 것이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게 하는 것의 논리적 귀결인가? 김대중씨는 마치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세력처럼 ’서세동점(西勢東漸)‘전략으로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의 ’자중지랄‘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보수대연합의 집을 짓고자 파시스트의 본당, 박정희의 기념관 건립에 나섰다.

‘국민의 정부’의 수반은 기념관 건립이 ‘국민화합’의 계기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가 6.25의 폐허 속에서 허덕일 때 우리도 하면 된다는 국민의 자신감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상당한 근대화를 이룩하고 국가에 공헌한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224) 이라고 유신잔당의 평가를 표절했다. ‘선 성장 후 분배´의 약속은 오늘날 、하루라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민중의 분노의 함성 아래 그 거짓이 드러났다. ’능률의 극대화‘는 당선에 굶주린 국회의 공복(空腹)들이 동양 최대라는 회관에서 박정희 시대와 다름없이 날치기 안건처리를 낳고 육・해・공의 오염과 파괴를 낳았다. 、국론통일´은 국보 1호인 남대문을 무색하게 하는 국보법을 강화・존속시키며 박정희교의 신도들보다는 광신의 정도가 낮으나 여하튼 만민성결교회신도들의 문화방송국 점거사태를 낳았다.

그리고 권력과 언론의 복합체를 비롯한 해바라기성 지식인 군단을 형성했으며 오늘날 신지식인 군단의 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조국 근대화의 ’업보‘이며 그것은 신세대의 ’왕따‘현상에도 기여했다. ’보수적 ‘아가리들’이 ‘인동초’를 군부 파시스트정권의 최대 피해자라고 칭송하는 것은 과연 사실일까? 그는 네 번 ‘죽을 뻔’ 했으나 장준하 선생은 정말 죽임을 당했으며 ‘인혁당’ 인사들은 그보다 더 큰 ‘한’을 품고 대법원의 최종판결 몇 시간 후 처형당했다. 그리고 ‘영원한 청년, 전태일’, 광주민중항쟁의 주인공들, 윤이상 선생을 비롯한 진보적 예술인들, 나아가 한국을 미국의 51번째 주로 편입시키는 ‘독립(?)운동’을 전개한 이승만 독재를 타도한 학생들, 청년들과 그의 부모・친척들의 좌절당한 희망과 용기 그리고 생명은 어떠한가?

‘조국 근대화’라는 분단 남한의 전망은 기본적으로 ‘현존 사회주의’ 에 대한 ‘현존 자본주의’의 동북아 지역통합의 틀 내에 제약되어있는 성격을 가지는 것이었다. 이제 이 전망은 양자컴퓨터, 양자역학, 분자유전학, 사회생물학, 나노 테크놀로지 등의 과학기술 혁명의 성취 그리고 폭발의 가능성을 내재한, 사실상의 세계자본주의적 분업질서라는 맥락에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병행’ 이라는 전망으로 전화(轉化)하고 있다. 과연 이런 전망은 ‘조국 근대화’의 인과응보를 극복할 수 있을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과연 찰떡궁합일까? 민주주의는 역사적인 자유민주주의 혹은 사회민주주의만을 궁극적 형태로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인가?

사회적 차원에서 노동자-자본가 사이의 모순관계, 남성-여성 사이의 대립관계 관료주의, 실증주의적 법치주의, 민족과 민족 사이의 증오와 전쟁, 그리고 정신의 차원에서 과학만능주의. 이성만능주의 혹은 그것의 대립 항으로서 비합리주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데카르트적 이분법, 나아가 ‘고문’을 해서라도 그 비밀을 짜내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자연 그리고 인간 외의 생명은 고사하고라도 인간의 생명을 도구시하고 인간을 이기적이고 분열적이며 허무주의적인 동물로 보는 숙명론을 넘어설 수 있을까? 왜 ‘민주주의’가 정치권력의 정당성의 핵심개념이 되는 것일까? 아니 ‘민주주의’가 에베레스트 산처럼 저기 있는 것이 아니라 무한히 확대, 심화하는 것이라면 그것의 지도 원리는 밑 빠진 독에 물을 붇듯이 욕망을 채워도 되풀이되는 허무한 삶에 대한 、위대한 거부´로서 ‘생명의 창조적 발전’이다.

‘생명의 창조적 발전’이란 앞서 지적한 전제들에 대한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부정으로서 사회적 차원에서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의 폐절, 남성과 여성의 독자성과 조화, 법적 이성과 、법 감정´ 의 조화, 민족 상호간 갈등의 평화적 해결 그리고 상대민족과의 문화적
공존공영, 나아가 정신의 차원에서 과학과 예술의 조화, 그리고 이 양자의 윤리성, 이성과 감정의 화쟁(和爭), 신체와 정신의 혼연일체, 인간사회와 자연계의 공생공존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 그러한 지도 원리에서 인간의 ’지능‘을 생각할 때 그것은 전통적 개념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왜 ’지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가? 전통적 개념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 토플러, 드러커와 같은 지식 자본주의론 그리고 、컴퓨터로서의 뇌´이며 이러한 사조는 자본주의의 생명연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이와 반대로, 진화하는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교감하면서 이기적 욕망의 바벨탑에 대한 헛된 설계와 공사와는 질적으로 다른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존재로서 역사에 대한 집단적 기억을 반추하면서 현실을 분석하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하면서 모든 차원의 대립모순을 정치투쟁과 문화투쟁을 통해서 인간 자체의 발본적 혁명을 지향할 때 지능에 대한 개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지능’은 이제 새로운 ‘과학적’ 연구의 처녀지로서 거론되는 해양, 우주와 함께 ‘뇌’과학의 중요한 주제들 가운데 하나이다. 이 주제는 심리철학, 인지심리학, 언어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인공지능과 같은 다양한 새로운 분야에서 연구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우선 지능에 대한 정의 그리고 인간의식의 혁명적 변화와 관련해서 주목할 만한 최근 연구의 성과를 소개하고 다음 글에서는 지능의 등급성이라는 점에서 노・사 사이의 주종관계를 하나의 자연적 질서로 옹호하는 R .헤른시타인과 찰스 머레이의 「종형곡선」에 대한 비판, 지능의 유전적 측면과 환경적 측면을 다룰 것이다.


1. 지능에 대한 정의의 확대

인간, 동물, 그리고 외계의 지적 생명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 상식적 수준 이하의 행위를 할 때 ‘짐승만도 못하다’고 말한다. 이런 판단에는 논리적으로 지능은 인간에게만 고유한 것인가? 라는 질문과 짐승에게도 따스한 감정이 있으며 윤리적 감정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함축하고 있다. 예전에는 앵무새가 뛰어난 모방꾼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앵무새는 자신이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있으며 지적으로 고릴라나 돌고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225) 말벌이 도구를 사용한다든지, 마카크(macaque) 원숭이가 간단한 산수를 할 수 있다든지 하는 관찰로부터 그리고 사람들이 인간의 문화에 속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는 몇 가지 인식능력들의 근원이 생물학적 필요성이라는 착상으로부터226) 짐승에게도 지능이 있음을 주장한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한 반론 역시 만만찮다.

그런 한편 지적인 생명체를 포함하는 생태계가 오직 이 지구에서만 진화되어 왔다고 볼 수 있을까? 태양계를 포함하고 있는 우리의 은하계 우주에만 하더라도 그런 행성계가 최소 1천만 개에서 최대 1억 개가 있다면 외계의 지적 생명체 (ETI: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가 있지 않을까? 질량이 지구와 비슷하면서 장기간에 걸쳐 해양이 안정해야 한다는 기준에서 볼 때 각 행성계마다 하나내지 둘의 행성이 생명에 적합한 환경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도 제시되고 있다. 반면 하버드대의 비교동물학자인 에른스트 마이어는 ETI의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적이다.

지구에 출현했던 약 500억 종의 생물 가운데 오직 한 종만이 문명을 건설할 수 있는 지능을 성취하였다. 그러므로 진화론적 자연선택이 그렇게 높은 지능을 선호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을 S.굴드, J. 다이어먼드, E. 윌슨 같은 탁월한 진화론자들이 공유하는 것에 대해서 크리스티앙 드 뒤브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뒤브의 견해는 생명의 본성상 조건이 허용되는 곳에서는 어느 때에나 물질의 근본적 표상으로서 지능이 탄생한다는 것이다.227)

지난 40년간 미국,프랑스,네덜란드,독일,러시아,아르헨티나등지의 관측소에서 90개 이상의 외계지능 탐색작업(SETI)프로젝트가 ETI가 방송한다고 믿어진 이른바 마법의 주파수를 관찰했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228)


지능과 창조성

현행의 지능검사를 통해서 인간의 지적 능력을 정확히 평가할 수 있을까? 인간의 뇌에 대한 놀라운 수치를 두 가지 들어보자. 인간의 염색체 하나에 들어있는 정보의 양은 500면의 책 약 4천권에 해당한다.229) 출생해서 14세가 될 때까지 매초 3 천만 개의 시냅스(Synapse) 가 형성된다.230) 시냅스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 사이의 연결공간으로서 뇌의 화학적 작용이 일어나며 시냅스가 많다는 것은 뇌 작용의 활성도가 높다는 것이다.

이런 엄청날 수도 있는 잠재력을 지닌 뇌 그리고 그 작용으로서의 정신 능력을 지능검사로 충분히 평가할 수 있을까? 현행 지능검사는 무엇보다도 창조성을 그리고 실용적 지식을 평가할 수 없다는 결정적 결함을 지니고 있다.

지능검사는 언제, 왜, 개발되었던 것일까? 다윈의 사촌인 골턴경은 최초로 지능을 과학적으로 측정하려고 시도했다. 1884년~1890년 기간에 그가 봉직했던 런던의 사우스 켄싱튼 박물관에서 사람들은 소액으로 자신의 지능을 검사 받을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능검사법을 고안한 학자는 프랑스의 알프레드 비네였다.  그는 학업성취도를 예측할 수 있는 수단의 고안을 위임받아 동료인 테오도르 시몽과 함께 1905년*231) 지능검사법을 개발했다. 그것은 어휘력(염세주의자의 뜻은 무엇인가?), 이해력(사람들은 왜 때때로 돈을 빌리는가?) 그리고 어휘 사이의 관계(오렌지, 사과, 배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같은 것들을 측정했다.

이러한 측정의 당초 목표는 행동 면에서 문제가 있으나 정상적인 사고능력이 있는 아이들로부터 정신지체아들을 구별해낸다는 것이었다. 비네의 지능검사는 학업성취도의 예측에 꽤 성공적이었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는 것은 그것의 변형인 (미국의 스탠포드대의 L.터먼이 대중화시킨) 스탠포드-비네 지능검사이다.

전쟁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중요한 하나의 계기인데 지능검사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심리학자들은 사병들을 심사하는 방법의 개발을 요청 받았다. 그 결과가 언어능력을 검사하는 ‘군대알파’ 그리고 판토마임으로 지시하는 실행검사인 ‘군대베타’였다. 이어서 1926년 오늘날 수학(受學)능력검사(SAT)의 선구격인 검사가 도입되었다. 이것은 언어능력과 수리능력을 측정하였다. 그 후 일련의 검사법들이 개발되었다.

지능검사는 반동적 우생학의 관점에서 인종에 따른 사회적 차별의 도구로도 오용되었다 . 1924년 미국의 새로운 이민법은 대공황의 상황에서 유럽의 ‘바람직하지 않은’ 지역 출신의 입국자 수를 제한하고자 했다.

이런 시도와 관련된 것이 버크자매에 대한 연방대심원의 평결사건이다 . 1927년 대심원판사 O. 홈즈는 “치우(정신연령이 6세~9세)는 3대로 충분하다”고 평결했다. 이런 평결의 배경을 살펴보면 버크의 어머니는 ‘저능아’로 판정된 적이 있었다. 캐리버크는 스탠포드-비네 검사에 따라서 정신연령이 9세인 것으로 판정되었고 이전에 버지니아 간질환자 및 정신박약아 수용소에 수용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는 강제불임시술 판정이 났을 때 생후 7개월인 딸, 비비안이 있었는데 유아 지능검사 결과 평균이하 지능으로 판정되었다. 그런데 어려서 죽었지만 비비안은 2학년 과정을 수료하는 동안 좋은 성적을 받았다. 그리고 1980년에 70대였던 캐리는 메일 신문을 읽고 단어 맞추기와 씨름했던 것이다.232)

이렇게 발전해온 지능검사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통 지능검사의 결과와 학업성적과의 상관관계는 약 0.4~0.6이다. 문제는 수행능력을 예측하는 상관관계도가 0.5정도에 그친다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의 수행능력에 있어서 변화량의 25%정도만 설명할 수 있을 뿐 75%는 설명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통계학에서 변화량은 상관관계도의 제곱이다. 이 경우에는 0.5²=0.25)*233) 따라서 학업성취도에는 지능검사로 측정할 수 없는 훨씬 더 많은 것이 관련되어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리고 직업수행능력, 봉급, 구직과 같은 일에 지능검사를 활용할 때 그 예측의 타당성은 더욱 낮다. 일반적으로 그 상관관계 도는 불과 0.3으로서 개인별 수행능력의 변화량의 약 10%만 설명할 수 있다.

현행 지능검사의 설명력이 이 정도인데 이것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R. 스턴버그234)와 함께 3인이 개발한 검사는 이전의 검사방법과 내용면에서 질적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새롭게 정의된 연산기호에 의거, 수학문제를 풀기가 있다.(X〈Y면 Y=X+Y, X≧Y면 Y=X-Y와 같은 식) 이것은 보다 유연한 사고를 요구한다. 그리고 일상적이고 실용적인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문제가 있다. 주목할 것은 창조력을 측정하는 문제들이다. 낙지의 고무창 운동화, 3853과 같은 괴상한 제목을 가지고 단편소설 쓰기, 곤충의 관점에서 본 지구의 모습 그리기, 나비타이를 광고하기, 사람들 가운데 숨어있는 ET(Extra Terrestrial:외계인)를 탐지해내기와 같은 준 과학적 문제들.  

스턴버그와 르네 데카르트대학교의 뤼바르의 연구에 따르면 창조적 지능은 상대적으로 특정한 영역에 국한되는 것으로서 어떤 영역에서 독창적235) 이라고 해서 반드시 다른 영역에서도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지능검사에 대한 일종의 물신숭배와 관련해서 주의할 것은 독창성은 전통적인 지능검사점수와 그 상관관계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런 연구의 교육적 함의는 무엇일까? 기억력을 강조하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교육받았을 때에 비해서 특징적인 형태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식으로 교육받았을 때 학생들의 성취도는 훨씬 더 높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지능검사는 백인 중산층 지향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검사에서 측정할 수 없는 창조력이나 실용적 능력에 있어서 뛰어난 학생들은 그 배경에 있어서 인종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그리고 교육적으로 (반드시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 다양하다.

전통적인 지능검사는 100m 달리기만큼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한 것일까? 지능검사는 유럽열강의 식민주의적 맥락 그리고 미국남부의 인종주의적 맥락 속에서 여타 인종에 대한 백인우월주의에 기여했다. 즉 백인은 가장 、지능적´인 반면 여타 인종들은 아기들에 불과하므로 후견을 받아야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기여했던 것이다. 미국으로 이주해오는 사람들은 엘리스 섬에 도착하자마자 지능검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 러시아인의 87%, 유태인의 83%, 이태리인의 79%가 、정신박약자´236) 였다. 이런 터무니없는 결과는 전통적 지능검사가 일종의 、문화특이성´을 가지고 있다는 판단의 근거가 된다. 서구문명권에서 이러할진대 다른 문화에서 그 적용의 한계성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스턴버그는 옥스퍼드대학교의 프린스, 덴마크 빌하르지아시스 연구소의 가이슬러, 케임브리지대학교의 분디, 나이로비 케냐타대학교의 오카차와 함께 케냐의 농촌아동들의 、토착지능´에 적합한 검사법을 고안했다. 예를 들면 질병과 싸우기 위해서 자연산약초의 사용법을 알고 있는지를 묻는 식이다. 그리고 그 아동들은 전통적인 지능검사 역시 받았다. 그 아동들은 서양의 아동들은 전혀 알 수 없는 많은 약초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평균 1주에 1회 정도 그것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 결과는 지능검사의 、문화특이성´이랄 수 있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즉 토착지능 검사점수의 상관관계 도는 상당했던 반면 서양지능검사의 어휘점수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토착지능검사의 점수가 좋았던 아동들은 서양지능검사의 점수가 나빴고 그 역 또한 그랬다. 이런 득점결과는 부모들이 토착교육이나 서구식교육 중 한 가지를 중시하되 둘 다 중시하지는 않는다는 것과 양친이 아동에게 특정한 가치관을 전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나아가 문화가 서로 다르면 지능검사의 항목을 달리 해석한다는 사실 역시 밝혀졌다.

1971년 코울과 그의 동료들은 서아프리카의 크펠레 인을 연구했는데 분류문제에 대해서 서양인에게는 어리석은 답으로 여겨지는 것이 크펠레 인에게는 영리한 답으로 여겨졌다. 크펠레 인은 사과와 먹기라는 식으로 기능별로 분류했음에 비해서 서양인은 과일 아래 사과와 오렌지라는 식으로 범주별로 분류했던 것이다.237) 이런 、문화특이성´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 보다 더 어렵다´라는 성경구절의 경우에도 볼 수 있다. 왜 하필 호랑이나 돼지가 아니고 낙타를 동원했을까? 성경의 지리적 배경에서 낙타는 일상생활의 필수품 가운데 하나였다는 상황과 직결되어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통적인 지능검사는 개개인의 지능의 성격에 대해서 절반도 설명하지 못하고 、문화특이성´으로 인한 제한적 성격을 가지는데 왜 사람들은 지능검사에 강박적일까? 스턴버그는 외양상의 정밀성, 유사성요인과 함께 출판요인을 그 원인으로 거론하고 、확신의 편견´을 거론한다. 마지막 요인이 뜻하는 것은 사람들이 일단 지능검사의 타당성을 믿게 되면 그 신뢰를 강화시킬 수 있는 상황을 조성하는 경향이다.

지능검사의 설명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스턴버그는 지능검사 산업을 몇몇 회사들이 독점하면서 기초연구에 투자를 거의 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혁신의 핵심은 지능검사를 컴퓨터화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내용에 있음을 강조한다.


주(註)

222)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풀빛, 1999년, 249~266면.
223) 뇌는 척수-파충류 피질(cortex)-대뇌변연계-신 피질의 순서로 진화해왔다. 파충류 콤플렉스는 수 억 년 전에 진화한 부분으로 공격성, 텃세, 의례, 사회적 서열의 확립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칼 세이건, 「에덴의 용들」 (발렌타인 북스, 1992년 판), 57면~66면, 세이건은 「우주」라는 TV연재물과 베스트셀러로 유명한 미국의 훌륭한 천체물리학자이다.
224) 동아일보, 1999년 5월 14일자.
225) <>, 、지능′에 대한 특집호, 1998년 11월, 52면~76면.
226)「과학과 미래」, 파리, 1998년 12월호, 50~52면.
227) 크리스티앙 드 뒤브, 「생명의 먼지」, 베이식 북스, 1995년, 297면. 뒤브는 A.클로드, G.팔라드와 함께 세포의 구조-기능적 조직에 관한 발견의 공로로 1974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
228) 앞의 <>, 특집호, 96면~104면.
229) 앞의 세이건의 책, 25면.
230)「누벨 옵세르바퇴르」, 1997년 11월 1723호, 26면. 뇌신경세포는 대체로 25세를 고비로 사멸하기 시작하는데 노년기에 그 사멸속도가 정상인 보다 급속한 것과 관련된 것이 치매(Alzheimer)이다.
231) 조선에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고 제정 러시아에서 、피의 일요일′사건이 일어나고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 했던 해.
232) 필립 키처, 「다가올 삶: 유전학혁명과 인간의 가능성」, 사이먼 앤드 슈스터, 1996년, 194면~195면.
233) <>, 앞의 책, 14면.
234) 스턴버그는 현재 예일대 심리학 그리고 교육학 교수인데 13세에 벌써 자신의 지능검사 법을 개발했다고 한다.
235) Csikszentmihaly 교수는 독창성이란 개인의 정신뿐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원천들이 공동으로 작용하여 상승효과를 낸 결과라고 본다. 또한 개인의 다년간의 노력의 과실이라는 점 그리고 사회-문화적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의 책, 「창조성」, 하퍼 콜린스출판사, 1996년, 1면과 23면~28면. 창조성문제는 기회 닿는 대로 다룰 것이다.
236) <>,  1998년 12월호, 44면.



(『현장에서 미래를』, 1999년, 6월, 44호)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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