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 (2)

월터 다움(Walter Daum), 최형록 번역

[서문]

소련을 창조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은 우리 시대에 결정적 사건이었다. 최초로 근대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권력을 장악하여 전 세계 피착취 피억압 민중을 위한 사회주의 혁명의 깃발을 들었다. 인간의 타락을 끝장낼 수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사회주의자라면 이 노동계급의 기념비적인 업적을 파괴하려는 온갖 시도에 맞서야 할 책임이 있다.

1917년 이래로 사람들은 “러시아 문제”, 즉 소련의 계급적 성격을 두고 열띤 논쟁을 벌여왔다.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하자. 혁명 직후 소련은 노동자 국가로서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사회였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많은 자본주의적 잔재를 짊어지고 있는 사회였다는 점이다. 갓 태어난 노동자 국가는 이런 장애물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데 특히 다른 나라의 혁명이 모두 실패함으로써 고립되었으며 또한 후진적이던 러시아에 이것은 커다란 부담이었다.

혁명 직후에 소비에트 노동자 국가는 급속히 퇴화했다. 노동자들은 얻은 것을 빼앗겼고 국제 혁명은 저지당하고 패했다. 1920년대 중엽에 이미 소련은 관료주의적으로 퇴행한 노동자 국가가 되었고 세계 혁명 정당은-공산주의 인터내셔널-반혁명적으로 변했다. 스탈린주의는 국내외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을 방해함으로써 소련이 자본주의로 되돌아가는 길을 터주고 말았다.

* 이글은 월터 다움(Walter Daum)의 책『스탈린주의의 삶과 죽음 :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부활』(The Life & Death of Stalinism : A Resurrection of Marxist Theory) 가운데「서문: 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Introduction : Theories of Stalinism)을 번역한 것이다. 이 책은 미국의 혁명당동맹(the League for the Revolutionary Party : LRP)의 견해인 트로츠키주의적 입장에서 쓴 것이다.         - 편집자 주

월터 다움(Walter Daum) : 저자는 1939년을 기점으로 소련이 반혁명으로 돌아섰다고 보는 ‘자칭’ 트로츠키주의자이다. 이 글에는 저자의 이런 관점이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본 연구소의 입장과 상관없이, 이 글은 <소련사회 성격을 둘러싼 논쟁>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기에 싣게 되었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논쟁이 벌어졌으면 한다.                                         - 편집자 주



국가자본주의론

이 폭넓은 범주에는 몇 가지 분파가 있다. “극좌파”는 소련이 임금노동과 같은 자본주의 형식들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소련을 자본주의로 묘사한다. 그들은 소련의 자본주의가 1921년 레닌의 신경제정책(NEP)에서 또는 더 일찍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의 국가론을 부정하는 무정부주의자들처럼, 극좌파는 노동자 국가가 일시적으로나마 자본주의의 잔재를 온존시킬 필요성을 부인한다. 가장 유명한 이론가인 폴 매틱은 자본주의 사회의 기본적인 운동법칙인 가치법칙이 스탈린주의에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한다. 따라서 그의 이론은 실은 제3의 체제론이다.197)

두 번째 분파는 주로 과거 트로츠키주의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소련 역사에서 퇴행적 노동자 국가이었던 때가 있었음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국가자본주의의 부활 시점을 스탈린이 강제적 공업화와 농민층에 대한 징발을 시작했던 1928년 제1차 5개년 계획이 착수되었을 때로 잡았다. 토니 클리프는 이런 견해의 중요한 지지자다.

매틱 처럼, 클리프는 소련 경제에서 가치가 내적 관계의 원동력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러시아는 경쟁 자본주의의 무정부상태가 아니라, 지배자들의 의식적 의지를 통해 내부적으로 다스려 지는 “하나의 거대한 공장”과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은 서방과의 군비 경쟁을 통해서만 경제 안에서 작동된다. 군비 경쟁은 스탈린주의자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대대적인 자본축적에 착수하게 한다. 가치법칙을 외부로부터만 도입함으로써 이 논지는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에서 이 체제가 자본주의적임을 부인한다. 따라서 클리프의 이론 역시 근본적으로 제3의 체제론이다.198)

과거 트로츠키주의자에 속하는 또 다른 흐름은 제2차 세계대전 뒤 형성된 프랑스의 “사회주의냐 아니면 야만이냐”는 경향이었다. 그들은 계획이 경제의 무의식적 기능 작용을 제거한 나라에서 가치법칙이 적용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소련과 그 위성국들에게 “관료 자본주의”라는 명칭을 붙여주었다. 이것은 아마 비자본주의적 “자본주의”론으로서는 가장 분명한 것이 될 것이다.199)

1940년대 미국에서 라야 두나예프스카야와 C.L.R. 제임스가 지도한 존슨-포레스트 경향은 더욱 강력하게 자본주의적 분석을 시도했다.200) 존슨-포레스트는 소련에서는 가치법칙이 임금노동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으로 주목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이론에 근본적인 요체다. 그러나 매틱과 클리프처럼, 그들은 자본주의 형식이 노동자 국가에 내재한 것이라는 사상을 부정했다. 더욱이 그들은 국가자본주의를 미국을 비롯한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에 적용되는 “세계적인 중앙 집중화 경향”의 결과라고 보았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없이도 미국 경제의 완전한 중앙 집중화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태도는 (칼 카우츠키의 “극단적 제국주의” 뿐만 아니라) 몇몇 극좌적 경향들도 공유하는 것이었다. 이 책의 핵심은 스탈린주의가 경제를 중앙 집중화하고 과학적으로 계획하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스탈린주의가 하나의 자본주의로 규정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있다.

국가 자본주의자들의 제3의 분파는 모택동주의자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의 “프롤레타리아 노선”을 거부한 뒤 소련과 관계를 끊었다. 그들은 당의 올바른 노선이 어떤 나라가 절망적인 경제 환경을 극복하고 사회주의를 이룩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그런 노선의 변화로 당의 계급적 성격이 바뀔 수 없다고 논리적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모택동주의자들은 “사회주의” 러시아의 계급적 본질이 스탈린 사후 자본주의로 되돌아갔다고-계급관계나 경제조건이 털끝만치도 변하지 않았음에도-주장했다. 나아가 일부 모택동주의자들은 모택동 사후 중국에 대해서도 똑같이 추론했다. 소련 자본주의에 대한 모택동주의자들의 관념론적 이론은 사실상 그들의 정치노선이 기회주의적으로 서방 제국주의와의 조정으로 (보기를 들면 1972년 중-미 국교정상화 : 옮긴이) 돌아선 것에 상응하는 것이다. 이런 선회의 골자는 소련이 자본주의이며 서방보다 “훨씬 큰 위험”이라는 것이었다.

과거 모택동주의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러한 속임수와 중국이 제국주의에 협력하는 것에 반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난했을 때 소련이 자본주의가 되었다는 모택동의 격언을 더 이상 무턱대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소련을 사회주의라고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똑같이 황폐한 개념을 유지하였다.201)

중국공산당은 그들의 반 유물론적 입장을 이론적으로 지지하는 까다로운 문제를 다른 공산당에 넘기면서, 흐루시초프의 노선변경이 러시아를 자본주의로 만들었다고 주장한 사상의 발원지였다. 소련경제의 분권화와 국가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의 탈색이 스탈린 사후에야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가정함으로써 이 과제는 해결되었다.202)

샤를 베틀하임은 가장 세련된 모택동주의 이론가이자 자본주의 법칙이 국가주의적 형태로 운용된 것을 통찰한 저술가였다. 그러나 그의 근본적인 관념론은 그나마 남아있는 맑스주의 분석에 충실하고자 하는 자신의 시도를 압도해 버렸다. 소련에 관한 4권으로 된 저작의 서도에서 그는 신경제정책에서 구체화된 노동자-농민 동맹을 스탈린이 파괴한 1920년대 말에 이미 “프롤레타리아 노선”이 폐기되었음을 넌지시 말했다. 저작의 말미에서 그는 반혁명뿐만 아니라 혁명도 거부하기로 했다(애석하게도 정당한 근거를 거의 밝히지도 않으면서 : 약 2,000쪽에 이르는 저작에서 단 몇 줄을 제외하면). 그는 이제 볼셰비키 혁명 덕에 “인텔리겐차의 급진적 분파”가 권력을 잡았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볼셰비키 혁명은 “결국 직접 생산자를 급진적으로 수탈한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혁명’이었다.”203) 스탈린의 후계자와 그 뒤 모택동의 후계자들을 제거할 때, 구실은 올바른 당 노선은 현실을 구체적으로 결정하기도 한다. 이런 방법에 따라 베틀하임은 결국 레닌마저도 부정하기에 이르렀다.

매틱과 클리프 등은 국가자본주의에서 가치법칙의 핵심적 기능 작용을 부정함으로써 사실상 가치를 생산하는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가 없는 자본주의를 정의하고 있다.204) 관념론적 모택동주의 해석은 이런 부정을 훨씬 더 멀리 밀고 나간다. 그 체제의 본질이 지배자들의 의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스스로 행동하는 계급이 아니라 하나의 도덕적 범주(“공로 있는 빈민”)로나 있게 된다.


스탈린주의를 제3의 체제로 보는 이론

소비에트 체제가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두 체제 사이의 이행기적인 것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라는 생각은 소련이 어떤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만 의견을 같이 하는 이론가들이 주장하는 경험주의적이며 상식적인 견해다. 그들이 관찰하기에 소련에는 분명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두드러진 특징들이 없다. 자본주의와 반대로 소련에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가 전혀 없으며, 따라서 자본들 사이의 경쟁도 없다. 사회주의 또는 노동자 국가와 반대로 그곳에는 대중적 정치권력과 민주주의가 없다.

자신들의 분석이 본질적으로 부정적이라 가정하면, “제3의 체제”론의 필자들은 자연히 소련 형 사회들이 그것들이 대체한 자본주의와 비교할 때 진보적인 것인지 여부에 대해 견해를 달리한다. 루돌프 바로, 폴 스위지 그리고 움베르토 멜로티는 소련 형 사회들을 자본주의에 비해 “진보적”이라고 해석한다.205) 진보적이지도 않다는 초창기 이론은 브루노 리지와 막스 샤흐트만의 “관료적 집산주의”였다.206)  (당초 샤흐트만은 관료적 집산주의를 진보적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그의 저작의 주요한 부분이 아무런 언급도 없이 바뀌어 이 과거의 죄를 숨겼다.) 밀로반 질라스를 비롯하여 동유럽의 필자들이 몇몇 “비 진보적” 이론들을 제시해왔다.207)  또한 소련에 역동성이라고는 전혀 없고 어떤 생산양식도 전혀 없으며, 체제적 낭비가 우세한 것을 특징으로 하는 사회로 묘사하는 이상야릇한 견해도 있다.208)

좌파적 제3의 체제 이론가들은 부르주아 여론의 압력 아래 “민주적” 서방이 동방에 견주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게 될 위험성에 맞닥뜨리고 있다. 고전적인 실례가 샤흐트만이다. 그는 스탈린주의 아래에서는 금지되었던 노동조합권이 노동계급의 결정적 관심사라는 까닭으로 트로츠키주의에서 서방제국주의에 이르는 전체 조류를 이끌었다. 오늘날 샤흐트만의 추종자들은 AFL-CIO(미국노동총연맹-산별조직회의)의 국제 활동뿐만 아니라, 미국 노동조합 관료의 몇몇 분파를 이끌고 있다.  이런 능력으로 그들은 노동조합의 관료들이 자본주의의 물질적 이해관계를 지니게 된 근원인 이윤을 노동자들이 갉아먹는 것을 예방하고자 성자라도 되는 것처럼 노동조합 투쟁을 억압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대체로 제3의 체제 이론들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사회를 발견한 것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어떤 과학적 분석도-운동법칙-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폴란드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인 쿠론과 케롤 모젤류스키의 해설이 아마 운동법칙을 제시한 유일한 것이리라. 1960년대 “당에 보내는 공개서한”이 정권의 전복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징역을 살았다.209) 어느 정도 그들의 분석이 합당한 부분도 있지만, 국가화 된 자본주의의 이론은 완전하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의 저작에서 통찰력 있는 부분을 우리 자신의 이론에 통합시켰지만, 그 저작에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들도 포함되어 있다.

제3체제론이 지닌 이론적 부주의함은 상반되는 두 이론적 변형을 통해 증명될 수 있다. 한 가지 변형은 소비에트의 관료적 집산주의가 1965년 경제 대개혁을 통하여 평온하게 자본주의로 나아가기 시작했다고 본다.210) 다른 한 가지 변형은 카스트로 통치 아래 혁명을 겪었으나 여전히 자본주의적인 쿠바가 관료적 집산주의로 변모해갔다고 본다.211) 마르크스주의자의 변혁론에 따르면 혁명을 겪지 않으면서 자본주의로 변모할 수 있거나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는 줄곧 자본주의적이었음이 틀림없다. 물론 동일한 논리가 1989년 말 스탈린주의 사회들이 겪은 실질적인 전환에 적용된다.

제3의 체제 이론들의 이론적인 큰 결함은 그 체제를 비자본주의라고 부르는 한편, 생산자들의 주된 계급을 “노동자들”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자본과 관련될 때에만 하나의 계급이 된다. 마르크스가 썼듯이, “자본은 임금노동을 전제하고 임금노동은 자본을 전제한다. 그것들은 상호 상대 존재의 조건이 되어 상대방을 생성시킨다.”212) 사실 어떤 착취관계에도 특정한 두 계급이 필요하다. 자신의 노동력을 파는 무산계급은 그 노동력을 사는 계급, 자본가 계급-자본을 구체화하는 자들-에게 착취당할 뿐이다.

제3의 체제론자들 가운데 일부는 그런 이론적 딜레마를 늘 인정해왔다. 샤흐트만은 소비에트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라 노예들 또는 “새로운 종류의 국가적 농노”라는 사상으로 장난을 쳤다.213) 그러나 스탈린주의 아래에서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아래 노동자들처럼 행동했다. 실제로 1953년 6월 봉기한 동베를린의 노동자들은 스탈린주의 체제에 저항하여 행진하며 “우리는 노동자이지 노예가 아니다”라고 노래 불렀다. 샤흐트만은 물러서서 그들을 현재 있는 그대로에 맞춰 이름을 불렀다. 그럼으로써 그 또는 다른 어떤 이의 제3의 체제론의 기초를 파괴하는 딜레마에 굴복했다. 베를린 노동자들은 정확히 올바른 주장을 했다. 그들의 피착취의 정수는 임금노동이라는 내용이지 피상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제3의 체제론이 피상적 수준에서 사로잡혀 있음을 증명해주었다.


공통이론

스탈린주의 체제를 기술하는 여러 이론을 보고 그 이론들 가운데 일부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핵심적인 역사적 변화를 예상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결국 어떤 이론이 올바른지 그른지를 증명해주는 것은 실천이다. 이제까지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이 그들의 사상을 검증할 수 있는 실천적 기회는 아주 많았다. 그러므로 더더구나 주목할 만한 것은 정평이 있는 이론들 가운데 그 어느 것도 오늘날 스탈린주의의 위기와 그것이 자본주의의 전통적 형태로 퇴행할 것을 예상하기는커녕 설명조차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전 어떤 뛰어난 이론가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스위지는 “포스트-혁명사회”와 관련하여 이렇게 썼다. “내가 알기에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이라는 견지에서 그런 사회들의 발전을 분석할 수 있다고 주장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214) 우리는 그러한 주장을 해왔다. 더욱이 우리는 마르크스의 자본의 법칙을 이용해서 스탈린주의의 현재 방향을 예상했음을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나 그 밖의 점에서 스위지는 옳다. 대체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법칙을 무시하고 있으며 운동법칙이 없다면 그들의 이론에 예견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운동법칙의 생략은 특히 소비에트 체제가 자본주의라고 믿는 사람들 쪽에서 두드러진다. 이미 주목했듯이 매틱과 클리프는 그 체제의 핵심으로서 가치법칙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국가자본주의 분석은 좀 더 마르크스주의로 변장한 제3의 체제론에 지나지 않는다.

이행기 국가론도 운동법칙을 부인한다. 이런 나라들이 진정 노동자 국가라면,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적 계획이 자본주의의 무계획적 법칙들을 대체하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델 등이 주장하는 “탈자본주의”라는 개념은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자본주의와 견주어 진보적이라고 주장할 뿐이다. 스탈린주의 국가들이 질적으로 진보적인 발전을 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만델의 말대로 관료화된 노동자 국가들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얼어붙었다.” 내적 동력이 없다면 스탈린주의 국가들에는 이행기적인 것이 전혀 없다. 따라서 그 국가들은 노동자 국가들이 될 수 없다. 우리가 만델의 이론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에 있는 제3의 체제론이라고 생각해야만 만델에게는 내적으로 일관성이 있다.

따라서 소비에트 체제에 관한 주요 이론들은 모두 결국 하나의 범주, 즉 자본주의도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제3의 체제로 환원된다. 게다가 제3체제론도 자본주의의 운동법칙이나 다른 어떤 것도 발생시키지 않는 생산양식을 가정하고 있다. 그 생산양식은 무계획적인 법칙이 아니라 중앙의 결정을 통해 지배된다. 그러므로 그 사회에는 정체와 붕괴에 관한 내재적 이유도, 근본적인 계급갈등도 전혀 없다. 잘못된 계획이나 억압만이 체제 전반의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정태적인 스탈린주의라는 개념은 심각한 정치적 결과를 낳는다. 근본적인 변화를 초래할 내적 운동이 없는 사회는 사회주의에 대한 희망을 제공하지 못한다. 대중은 고난과 전제 정치에 대항해서 반란을 일으킬 수 있지만, 자기조직의 혁명적 형태를 발전시키고 사회주의 의식을 습득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계급투쟁은 한 사회의 발전과 변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을 대조해보자. 계급투쟁은 한편으로는 위기와 쇠퇴로 이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과 조직을 강화시킨다. 계급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착취에 저항하고 스스로 지배할 준비를 하게 한다. 20세기에 모든 노동계급 반란의 2중 권력 평의회(혹은 소비에트)가 이런 추동을 확인해준다. 이것이 바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특징인 낙관론의 근거다.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한 혁명적 신뢰의 결여는, 마르크스주의적인 것처럼 가장한 모든 제3의 체제론이 선택한 분석의 핵심이다. 제3의 체제론자들이(그리고 국가자본주의자들과 노동자 국가론자들)이 제시하는 스탈린주의에 저항하는 강령-“혁명적 민주주의”-은 사실상 혁명적이지 않다. 그 강령은 억압에 대해서는 일부나마 해답이 되겠으나 착취에 대해서는 전혀 해답이 되지 않는다. 그 강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이 아니라 정의를 추구할 수 있는 영웅적 희생자들 또는 조종할 수 있는 희생자들로 구성되었다는 믿음에 이바지한다. 그런 분석은 스탈린주의뿐만 아니라 평범한 자본주의와도 관계있는 명백한 냉소주의와 손잡고 가는 것이다.


중간계급 마르크스주의

노동계급의 혁명적 능력에 대한 패배주의적 태도는 19세기 자본주의에 나타난 “새로운 중간계급”의 사회 전망을 보여주는 일종의 질병이다. 이것은 단순히 오늘날 좌파가 대체로 중간계급 출신(사실이지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중간계급이든 아니든 그들이 중간계급의 세계관을 지녔다는데 있다. 왜냐하면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전통이 패배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쁘띠부르주아 소상인처럼 중간계급은 자본가들 사이의 살인적 투쟁을 최고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는 여러 계층으로 이루어진 인텔리겐챠처럼 중간계급은 사회를 프롤레타리아트와 부르주아지의 강력한 세력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고 보았고 국가를 두 개의 중요한 계급과 별개로 그들 자신의 권력 중심으로서 통제하고자 했다.215)

중간계급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사회를 부패시키는 비열한 물질적 동기를 거부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필요한 것은 낡은 탐욕과 물질주의를 극복한 “새로운 사회주의적 남성‘과 여성이다. 분명히 자본가들은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 역시 근근이 살아가느라고 그들 사이에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기에 대체로 적격자들이 아니다. 사회주의에는 선진적이며 사회의식이 있는 사람들-기획자들, 과학자들, 이론가들 등-요컨대 경제적으로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중간계급이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가 중간계급 좌파에 의해서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사상 추측컨대 레닌으로부터 파생된 사상이 이러한 견해와 관련되었다(그렇지 않음을 제2장에서 확인하시오). 사회주의에 대한 중간계급의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은 문화적으로 뒤진 사람들을 위해서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통치하는 사회다.

물론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런 사상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계급적 뿌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들이 프롤레타리아적 과제로서 자신들의 강령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그들이 소기업이 지배하는 신화적 세계를 결코 원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대체로 그들의 목표는 하나의 민주주의이다. 그 사회에서 노동자들 또는 “민중”의 통제를 받는 대중 제도들의 견제력을 통해서 안정이 이룩된다. 중간계급은 그들의 목적에도 불구하고 트러스트를 해체하기(trust-busting) 또는 분권화로써 독점과 싸우는 자유주의자들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양측 모두 국지적 통제-또는 그것의 노동자주의적 형태인 작업장 통제-를 촉구하며 거대한 괴물과 같은 국가권력에 민주주의를 대치시키고자 한다.

이런 관점의 피상적 성격은 혁명기에 분명히 드러난다. 혁명기에 중간계급 좌파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휘두를 수 있는 거대한 권력에 부딪쳐서 끝내는 구시대 통치자들의 권위에 호소하게 된다. 그래서 1917년 러시아의 멘셰비키는 부르주아 임시정부를 편들었고, 1919년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본을 위해서 노동자들을 박살내버렸으며, 1968년 프랑스 공산당은 드골의 결사적인 방어세력임을 증명했다. 심지어 1936년 스페인 무정부주의 지도자들은 부르주아 국가기구에 합세하기까지 했다. 권력의 중앙 집중화를 반대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들은 끝내 반 노동 계급적 국가기구의 품속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예전에 트로츠키가 관찰했듯이, 자칭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자본주의의 변증법적 발전을 무시한다는 것이 변증법이 그들을 무시함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자본주의의 위기가 다시 생겨나면서 진정한 공산주의가 절박하다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강력하게 전 세계에 걸쳐서 그 존재를 느끼도록 해왔다. 그것에 대응해서 중간계급 좌파는 노동자들의 반란성에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하지만 중간계급은 우회적으로 계급적 독립에 대한 시도에 너무 열중한 탓에 사회민주주의나 스탈린주의로 잘못 인도하는 지도자들에 목매왔다. 여러 가지 실례들이 있다. 폴란드에서 좌파 보좌진은 1980년~1981년 혁명을 “스스로 제한하는”데 중심적 역할을 했다. 영국에서 좌파는 노동당이 1984~1985년 광부들의 파업을 매장시켜버리는 일을 돕고 있다고 폭로하는 대신 노동당에 훨씬 더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스스로 무덤을 팠다. 미국에서는 제시 잭슨이 눈치 빠르게 대중의 불만을 느끼고 선동가답게 그러한 불만을 자본주의적 민주당의 틀 내에 가두고자 애썼을 때 좌파는 두 번이나 선거운동에 열렬히 협력함으로써 함정에 빠졌다.

제3세계에서도 좌파의 노력이 치명적이었다. 칠레에서 좌파는 부르주아 군사력을 고스란히 보존한 아옌데 정권의 인민전선과 프롤레타리아트가 관계를 끊으려는 것을 방해하는 일을 도왔다. 이란에서 좌파는 호메이니의 이슬람 공화국이 제국주의와의 투쟁에 필요한 한 단계임을 노동자들에게 확신시키는 도구였다. 사실 좌파는 준 파시스트적 패배로 직행했다. 니카라과에서 좌파 산디니스트는 미 제국주의의 비위를 맞추려는 헛되고 파멸적인 시도를 하느라고 노동자-농민의 반자본주의 투쟁을 막았다.

마르크스주의를 다시 활성화하려면 우리는 공산주의가 하나의 이상향이고 노동계급에게는 혁명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맥 빠지게 하는 사상을 잠재워야 한다. 그 사상은 전후 제국주의가 부활함으로써 일시적으로 충격이 완화되었으나 이제는 자신들이 통제 할 수 없는 위기와 계급적 힘의 압력을 느끼면서 겁에 질린 중간계급에 의한 질서요구의 외침일 뿐이다.




197) 폴 매틱(P. Mattick), 『마르크스와 케인즈』(Marx and Keynes, 1969).
198) 토니 클리프(T. Cliff), 『러시아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Russia : A Marxist Analysis) (1955). 축약판으로 『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State Capitalism in Russia)가 1988년 재 발간되었다. 이 책은 『소련국가자본주의』(정성진 옮김, 책갈피 : 1993)로 국내에 번역되었다.
199) 코르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C. Castoriadis), 『정치와 사회 저작 전집』(Political and Social Writings), 제1권(1988), 9,39,138면
200) 라야 두나예프스카야(R. Dunayevskaya), 『국가-자본주의 사회로서 러시아』(Russia as State-Capitalist Society) (1973) ; C. L. R. 제임스(C. L. R. James), 『국가자본주의와 세계혁명』(State Capitalism and World Revolution) (1950)
201) 조나단 아더(J. Aurthur), 『소련의 사회주의』(Socialism in the Soviet union) (1997) ; 앨버트 스지만스키(A. Sxymanski), 『붉은 기는 나부끼고 있는가?』(Is the Red Flag Flying?) (1979) ; 제리 퉁(J. Tung), 『사회주의적 길』(The Socialist Road) (1981)
202) 마틴 니콜라우스(M. Nicolaus), 『소련의 자본주의 부활』(Restoration of Capitalism in the USSR) (1975) ; 혁명적 공산당(Revolutionary Communist Party), 『어떻게 소련에서 자본주의가 부활하게 되었을까?』(How Capitalism Has Been Restored in the USSR) (1974) : 진보적 노동당(Progressive Labor Party), "소련 자본주의(Soviet Capitalism)", 『피엘매거진』(PL Magazine), 1981년 봄
203) 샤를 베틀하임(C. Bettleheim), 『소련의 계급투쟁』(Les Luttes des Classes en URSS), 제3기, 제1권(1982), 13면.
204) 이 때문에 클리프는 사상적 동지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도전을 받아왔다. 그러나 캘리니코스는 그런 논지가 품고 있는 뜻 전체를 반대하지는 않은 채 클리프의 이론을 수정하고 있을 뿐이다.
205) 바로(Barho),『동유럽의 대안』(The Alternative in Eastern Europe) (1977); 스위지(P.Sweezy), "혁명 후 사회“(Post-Revolutionary Society), 먼슬리 리뷰(Monthly Review), 1980년 11월 ; 멜로티(Melotti), 『마르크스와 제3세계』(Marx and the Third World) (1977)
206) 리지, 『세계의 관료주의화』(The Bureaucratization of the World) (1938 ; 영어판 1985) ; 샤흐트만(M. Shachtman), 『관료주의 혁명』(The Bureaucratic Revolution) (1962 ; 1940년대에 집필)
207) 질라스(Djilas), 『새로운 계급』(The New Class)(1957) ; 마크 라코프스키(M. Rakovski),『동유럽 마르크스주의를 향하여』(Towards an Eastern European Marxism) (1978) 죠지 콘래드와 이반 셀레니(G. Konrad and I. Selenyi), 『계급권력으로 통하는 길 위에 있는 지식인들』(The intellectuals on the Road to Class Power) (1979)
208) 크리티크 매거진(Critique magazine) (글래스고우), 특히 편집자 힐렐 틱틴(H. Ticktin)의 글들, 또한 도널드 필처(D. Filtzer), 『소비에트 노동자들과 스탈린주의 공업화』(Soviet Workers and Stalinst Industrialization) (1986) 참고. 프랭크 푸레디(F. Furedi), 『신화가 벗겨진 소련』(The Soviet Union Demystified) (1986)의 이론 역시 비슷하다 ; 『프롤레타리아 혁명』(Proletarian Revolution), 29호 (1987)를 참조할 것.
209) 쿠론과 모젤류스키(Kuron and Modzelewski), 『새로운 정치』(New Politics) (1965) ; 영국의 국제사회주의에서 혁명적 사회주의 선언으로 재출간됨. 이에 비해서 보다 완전한 번역본은 출판사 메릿의 소책자, 『폴란드의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학생들이 말하다』(Revolutionary Marxist Students in Poland Speak Out) (1968)이다. 두 저자는 1980~81 연대노조 운동에서 뛰어난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무렵 그들은 이제 더 이상 혁명주의자들이 아니었다.
210) 안토니오 칼로(A. Carlo), 『텔로스』(Telos) (1974, 가을) ; “그런 진화는 유고슬라비아의 경우에 완성되었다고 전해졌다.”(the evolution was said to be completed in the case of Yugoslavia), 『텔로스』(Telos), 1978, 여름.
211) 사무엘 파버(S. Farber), 『쿠바의 혁명과 반동』(Revolution and Reaction in Cuba) (1976).
212) 마르크스(Marx), 『임금노동과 자본』(Wage Labor and Capital), 제3부.
213) 샤흐트만(Shachtman), "스탈린주의적 제국주의의 강령“(The Program of Stalinist Imperialism),『뉴 인터내셔널』(New International, 1943).
214) 스위지(P. Sweezy), "혁명 후 사회“(Post-Revolutionary Society).
215) 이런 사상은 존과 바바라 에렌라이히(John and Barbara Ehrenreich)의 “전문직-경영계급(professional-managerial class)"에서 뚜렷하다. 그리고 이 계급은 뉴 레프트의 고향 그리고 소련의 지배계급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팻 워커(P. Walker)편집,『노동과 자본사이』(Between Labor and Capital) (1979) 참고.


[관련기사]
스탈린주의에 대한 여러 이론들 (1)
http://www.k-hnews.com/home/bbs/view.php?id=issue&no=671

본지는 재야 인문학자 최형록 선생의  철학, 역사, 과학, 정치에 관한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에세이를 매주 토요일 시리즈로 싣는다. 최 선생은 서울대 인문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민중당 국제협력국장, 사민청 지도위원, 진보평론 편집위원을 지낸 바 있다. ‘모든 노동자의 건강할 권리를 위하여’를 영역했다. [한국인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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