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록 에세이] 의료사회주의? 생명윤리

최형록(인문학자)

머리말

‘의사들아, 저질 진료를 해라!’1)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의 격문. 이 위원회는 5개항을 거론하고 있는데 ‘부당청구, 부당청구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부당청구입니까?’라면서 교과서적 진료를 부당청구로 매도하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급기야는 차라리 ‘의료 사회주의’를 하라고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이 무슨 ‘사철탕 끓이는 소리’인가?

과연 이런 주장이 남한 의사들 전체가 심사숙고한 바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 것일까? 민중은 이런 ‘의료 파시스트’적 폭언의 의미를 사회적 모순이 폭죽처럼 터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이런 상황 속에서 ‘생명윤리기본법’의 입법과정과 그 내용 특히 인간배아의 연구와 활용문제를 어떻게 평가하며 대응해야할까? 아래에서는 이런 의문에 대해서 생각해보고자 한다.


1. 계급의 적이라는 거울

엄연히 드러난 병․의원의 부당청구를 부인하려는 이런 ‘의료 파시스트들’의 작태를 보면서 151년 전의 과학적 통찰이 생각난다.

“혁명적 진보의 길은 결코 희비극적인 직접적인 정복에 의해서 개척되는 것이 아니다. 그와 정반대로 오직 치밀하고 강력한 반혁명이 솟구침으로써, 적이 나타나 그와 투쟁함으로써만 마침내 전복세력은 진정으로 변혁세력으로 될 수 있다.”2)

노벨평화상을 받은 사람을 수반으로 한 ‘국민의 정부’는 민주노총에 대해서 ‘전면전’을 개시했다. 이런 공격적 태도는 이미 가깝게는 대우자동차 노조에 대한 경찰의 폭력에서 예행 연 습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롯데호텔 노조의 농성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나아가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려는 파시스트적 음모를 추진하고 있다. 정권의 폭력은 이른바 구조조정의 핵심이랄 수 있는, 노동자들을 무력화시키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생존권적 투쟁을 굴복시키기 위해서 자행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노동자계급이 정신을 가다듬고 성찰해야 할 과제는 생존권 투쟁이 어떤 결실을 맺으려면 ‘변혁적 전망’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남한의 자본가계급이 ‘계급 투쟁적 전망’의 결의를 가지고 유신잔당을 용서(?)한 이 정권이 ‘유능한 정권’이 되도록 충동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말해온 이 정권의 수반은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규정했다. ‘빈대떡’이 빈대로 만든 떡이 아니듯이 자유민주주의가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세계자본주의의 대 공황기에 뉴딜정책을 추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그와 친척인 시어도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조선합병야욕을 승인한 태프트-카쓰라 밀약의 장본인이다―는 파시스트 무솔리니를 ‘경탄할만한 이탈리아 신사’라고 평가했다.

나아가 1937년 미 국무부는 파시즘은 미국의 경제적 이익과 양립가능하며 파시즘이란 “러시아 혁명을 보면서 불만에 찬 대중이 좌경화될” 때 “부유층과 중간계급이 자기방어를 위한” 자연스런 반응이며 따라서 파시즘이 “성공해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환멸을 느낀 중간계급에 의해서 세력이 강화된 대중이 다시 좌경화될 것”이라고 평가했다.3) 이런 루즈벨트를 미국의 파시스트들은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했던 것이다.

노벨상 수상자에게 ‘의료 사회주의’를 하라고 광분하는 자들이 ‘의료 파시스트’인 것은 이런 역사적 선례에서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박정희 기념관에 민중의 혈세를 낭비하려는 자(들), 일제의 징병․징용․정신대 강행의 진상규명과 배상을 도외시한 채 한일협정을 체결하려는 정권에 제대로 된 저항도 하지 않았던 자(들)에게 ‘의료 사회주의’를 들먹이는 행동은 ‘파충류적 충동질’이 아니고 다른 무엇일까?

나아가 ‘의료 사회주의’ 운운하는 발광적 작태는 병원이라는 자본주의적 기업에 있어서 병원자본에 의한 간호원․간호보조원의 착취, 의료노동자의 일부인 의사에 대한 착취를 도외시하는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요컨대 ‘파충류의 뇌’ 수준이 아니라 ‘대뇌 신 피질’(뇌의 이런 구조 덕분에 맹자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지며 바하의 토카타와 푸거 D단조를 듣고 인간의 심연에서 나오는 박력을 느끼며 김소월의 ‘고락’에서 가혹한 일제치하에서의 끈질긴 그러면서 여백이 있는 삶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이다) 수준에 자신이 서 있음을 자각하는 의사라면 특히 레지던트, 인턴, 의대생이라면 자신의 ‘노동자계급적’ 지위를 직시하고 민중의 보건복지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2. ‘전문가’에의 맹신과 위원회 구성의 민주적 ‘인식 틀’

이런 상황에서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생명윤리기본법(가칭)”의 근본골격 마련을 위한 공청회를 지난 5월 22일 열었다.

“생명윤리기본법”은 ‘생명과학기술이 생명의 존엄성을 확보하고 신장시키면서 건전한 발전을 하도록 돕는 것을 근본목적으로 삼는다’고4) 기본 골격 안에서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 생명과학기술이란 분자생물학과 유전공학의 지적 성과를 지칭하는 것이다.5) 특히 지난 2월 인간게놈프로젝트(HGP) 공동연구단과 사설 연구기업인 셀레라 제노믹스가 공개한 인간게놈 정보는 현대 생명과학기술의 개가이자 새로운 ‘생물학과 의학 혁명’의 출발점이다.

문제는 ‘인류 공동의 유산’인 인간의 게놈(유전물질의 총체)이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의 새로운 식민지로 전락할 가능성 그리고 인간복제(클로닝)의 시도 등과 함께 윤리적 사고에 새로운 차원의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윤리’는 일종의 신조어로서 1971년 미국의 암연구자 반 렌슬라어 포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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