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칼럼] 성매매여성 시위와 한국의 짝퉁 진보 (2)

김기원(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

수십만 성매매여성과 관련 종사자들의 삶 너무 쉽게 생각
"대중의 삶과 정서에 둔감"한 한국 진보파의 공통적 약점


지난 번 글에서는 성매매를 줄이기 위한 경제학적 접근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성매매 처벌법과 관련된 한국 진보파의 문제점을 다뤄볼까 합니다.

2004년의 성매매처벌법 제정은 2000년에 발생한 군산 성매매집결지(집창촌)의 화재사건이 직접적 계기였습니다. 성매매여성들이 쇠창살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고 숨지는 참사가 발생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들끓는 분노를 배경으로 여성단체들은 성매매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법을 밀고 나갈 수 있게 된 셈입니다.

그러면 성매매업주들은 왜 쇠창살로 성매매여성들을 가둬 놨을까요. 도망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요. 그런데 도망치지 못하게 했던 건 그 여성들을 납치해 왔기 때문일까요.

그렇진 않습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나쁜 남자>에서처럼 여성을 강제적으로 납치하는 일이 옛날엔 없지 않았으나 근래엔 사라졌습니다. 세상이 좀 좋아진 것이지요.

성매매여성들은 목돈을 선불로 받고 고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돈으로 빚을 처리하든지, 개인적으로 또는 집안에서 돈 쓸 일에 충당합니다. 옷이나 화장품을 마련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성매매여성이 이런 목돈만 챙기고 업소에서 도망치는 계약위반 사례가 가끔씩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성매매여성의 주거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업주는 도망친 여성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고 손해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 한 업주의 행태가 전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는 성매매여성을‘채무노예’로 취급한 부당한 인신구속입니다. 근대 시민사회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요.

사실 성매매처벌법 제정 이전에도 이런 채무는 도박 빚과 마찬가지로 인정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습니다. 성매매처벌법은 대법원 판결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정되었습니다.

                 

이와 관련된 여성단체의 행보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인신구속이 행해지지 않는 성매매에 대해선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였습니다.

이에 관해선 성매매처벌법 제정 전후에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그 논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조국 교수가 편집한『성매매』(2004), 서울대 여성연구소가 기획한 『성매매의 정치학』(2006),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성노동연구팀이 편집한『성노동』(2007)을 보면 논란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매매에 대한 법적 대응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중국, 한국, 대만 등에서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해 단죄*합니다. 일본이나 유럽은 일정한 규제를 가하긴 하지만 대체로 성매매자를 단죄하지는 않습니다. 스웨덴은 성구매자는 처벌하되 판매자 여성은 처벌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나라마다 차이가 나는 형편이니 어떤 게 딱 부러진 정답이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게 보수적 입장이고 어떤 게 진보적 입장인지는 따질 수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이야기해 보려는 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성매매처벌법 제정을 주도한 여성단체들은 보수단체만이 아니라 진보단체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적어도 성매매처벌법과 관련된 진보 여성단체들의 행보는 진보적이라 할 수 없고 보수적입니다. 짝퉁 진보인 셈입니다.

우리 사회에선 진보, 보수, 개혁, 수구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마다 정의하는 방식이 다르고, 제대로 정의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제 정의는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 http://weekly.changbi.com/416 을 참고하십시오.

그런데 성매매를 법적으로 처벌하는, 특히 판매자인 여성마저 처벌하는 법은 조국 교수가 논문“성매매에 대한 시각과 법적 대책”(『형사정책』제15권 제2호, 2003)에서 밝혔듯이 보수적 도덕주의에 기초한 것입니다.

다른 나라 예를 보더라도 미국의 대표적 인권단체인 미국자유시민연맹(American Civil Liberties Union)이나 COYOTE(Call Off Your Old Tired Ethics), 대만의 COSWAS(Collective of Sex Workers and Supporters) 등 진보적 단체는 성매매 처벌에 반대합니다.

미국보다 평균적으로 더 진보적인 유럽에서 단순성매매에 대해서 처벌하지 않는 것도 성매매처벌이 보수적인 조치임을 증명해 줍니다. (다만 성매매 알선이나 조장에 대해선 유럽에서도 처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요컨대 성매매여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게 진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한국의 성매매 처벌법은 진보적 조치라 할 수 없습니다. 성매매여성들의 시위가 그 점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그녀들을 법에 의해 보호받지 못하는 그늘에 처박아 놓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른 여러 폐해는 아래에 첨부한 저의 <한겨레신문> 기고들을 참고하십시오.)

따라서 성매매처벌법 제정을 주도한 진보 여성단체들이 성매매여성을 위해서 이 법을 제정했다고 말할 자격은 없습니다. 성매매 거래를 줄이는 게 사회를 깨끗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말이 됩니다.

이런 보수적 입장은 ‘잘못된’ 입장은 아닙니다. 가치관이 진보와‘다를’ 뿐입니다. 보수파는 법질서와 개인책임을 강조하며,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고 건전한 직업을 갖지 않는 ‘타락한’ 성매매여성을 처벌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다른 사안에서는 진보적인 여성단체들이 왜 성매매 문제와 관련해선 보수적 입장을 택했을까요. 성매매 여성을 일부러 괴롭히려고 그 법을 제정한 건 아닐 것입니다. 잘 해보려고 한 게 이상한 결과를 낳은 거지요.

그렇게 된 근본 이유는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무지하고 무책임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짝퉁 진보’라는 과격한 표현까지 사용한 것이지요. (물론 짝퉁 진보의 문제는 여성단체에만 국한된 사안은 아닙니다. 비효율적이고 비민주적인 북한체제를 떠받드는 주체사상파를 비롯해, 본인이 이 블로그에 실린 글들에서도 비판했던 장하준 교수도 짝퉁 진보의 대표이고, 그 외에도 짝퉁 진보는 많습니다.)

무지하다는 건 성매매 여성의 현실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법 제정 후 성매매여성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서자 여성단체에선 그 시위는 성매매업주들이 강제동원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업주들이 성매매여성들의 시위를 도와주기는 했겠지요. 법 때문에 업주들도 힘드니까요. 하지만 성매매여성들이 강제로 동원 당했고 성매매여성들이 그 법을 지지한다는 건 여성단체의 자기최면일 뿐입니다. 성매매 여성들과 꾸준히 접촉해 온 연구자들을 만나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시위에 너무 당황해서 그렇게 믿고 싶었겠지요. 사실 그 시위 이후 성매매처벌법을 지지하는 여성단체 관계자 중 솔직한 일부 인사들은“어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여성단체의 무지는, 여성부 장관이 법 시행 후 부산의 집창촌을 방문해 실상을 듣고서야 비로소 집창촌단속 완화를 경찰에 부탁했던 사실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책임하다는 건 너무 졸속으로 법을 만들고 시행에 나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법 제정 전에 조국 교수, 최병천씨, 이성숙씨 등 여럿이 단순성매매에 대해선 비(非)범죄화가 옳은 방향이라고 밝혔는데 이런 주장에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나라 사례도 충분히 검토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수십만 성매매여성 및 관련 종사자들의 삶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 것이지요. 지난 글에서도 지적했지만 이게 대중의 삶과 정서에 둔감한 한국 진보파의 공통적 약점입니다.

대중과의 소통부족은 남녀 할 것 없이 진보파 모두 반성해야 할 부분입니다. 대중과 제대로 소통하지 못하면 대중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없고 자신들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진보의 방향으로 사회를 발전시킬 수도 없습니다.

물론 대중과 소통한다는 것이 대중에 무조건 영합하자는 뜻은 아닙니다. 대중이 뭘 생각하고 뭘 바라는지를 알려고 노력하자는 것이지요. 그런 연후에 자신들의 이상을 대중과 피드백 해야 하겠지요.

    

그러면 성매매처벌법과 관련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해 보겠습니다.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모이는 연례행사에서 제가 한국경제에 관해 발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발표문에서 성매매처벌법의 문제점을 간단하게 언급했었습니다.

그랬더니 발표 직전에 단체 간부들이 두 번이나 찾아와 그 부분을 빼달라고 했습니다. 좋게 해석하면 그 부분 때문에 발표장에서 시끄런 논란이 벌어질까 우려한 때문일 테고, 달리 해석하면 자기들이 불편한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그런 요구를 물론 저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제가 그 이야기를 했어도 청중석에서 특별한 논란도 없었습니다.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사업 작풍에 대한 씁쓸함은 남았지요.

두 번째 사안은 성매매여성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 민주노총에 가입 신청을 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주노총은 이 가입을 거부했습니다. 우리 사회 제일 주변부에 위치한 여성들을 내팽개친 셈이지요.

나중에 들어보니 여성위원회에서 반대했다고 합니다. 민주노총의 여성위원회라면 내노라하는 진보운동가들이 모여 있을 터인데, 너무나 기막힌 일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아무 말도 못하는 남성 운동가들은 또 뭔가요. 그런 결정을 내리기 전에 성매매여성들과 제대로 대화라도 나눴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도 없습니다.

현대차 노조의 부당한 세습요구에 대해선 입도 뻥긋 못하고 힘없는 성매매여성들의 절박한 구원요청은 묵살하는 민주노총에 앞으로 뭘 기대할 수 있을까요.

민주노총 출신의 진보정당 국회의원이었던 유명인사에게 성매매여성 문제를 질문했더니, 성매매 관련 공청회엔 참석했으나 국회 앞에서 오랫동안 농성 중이던 성매매여성들과는 대화를 나눠보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이래도 되는 걸까요.

그리고 국회의원이었던 또다른 진보정당 유명인사는 그 문제에 대해선 당의 입장이 처벌법에 찬성이라는 말만 했습니다. 자기 소신을 당당히 펴지 못하고 당의 눈치만 봐서야 어떻게 변혁적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요.

세 번째 사안은 진보신문들의 태도입니다. 성매매처벌법 제정 당시에 진보신문 치고 그 법의 문제점을 제대로 취재한 경우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진보신문의 대표적인 한 언론인은 성매매처벌법을 강력 지지했는데, 이 분은 신정아씨 건과 관련해선“달리는 택시에서 추행을 당하면 뛰어내리라”고 썼습니다.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리면 크게 다치거나 사망하지 않나요. 참으로 답답한 우리 진보파들입니다.

제가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아래 글들에 대해서도 잘 납득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진보를 자처한다면 주요 쟁점에 대해 진정으로 자신이 진보인지 한번 점검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야기가 꽤 길어졌습니다.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매매를 비범죄화하자는 것은 성매매를 늘리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매매를 줄이는 진보적 방안은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선 앞글에서 말했듯이 사회보장의 강화와 부패의 축소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보파라면 성매매여성처럼 사회의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 진보는 짝퉁 진보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한 진보적 여성단체들의 선의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걸로 판단됩니다.

결자해지가 필요합니다. 남성들이 이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국회에서 이 법이 통과될 때 남자 국회의원들이 아무 말 못한 것이지요. 진보적 여성단체들이 법의 재검토를 들고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적어도‘진보적’이라는 간판을 내버릴 생각이 없다면.

(* 제가 오늘 상당히 과격한 표현을 썼습니다. 그리하면 혹시 여성단체분들이 움직일 수 있을까해서이니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래에 <한겨레신문>에 본인이 쓴 글과 이에 대한 여성단체의 반론 글, 그리고 그에 대한 저의 재반론 글을 첨부합니다. 저의 재반론에 대한 반박은 없었습니다. 2011.05.28)


성매매처벌법의 허와 실 (한겨레 2006. 7. 28)
- 김기원(방송대 교수)

성매매처벌법이 시행된 지 2년이 되어간다. 성매매처벌법으로 성병검진 대성 여성이 준 게 질병관리와 관련이 있는 게 아니냐는 최근 발표도 물의를 빚었지만, 이 법을 둘러싸고는 지금까지 뜨거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시장논리에 어긋난 법률이라고 비난한 학자가 있는가 하면, 재계총수는 사회의 하수구가 있어야 한다고까지 이야기했다. 중산층여성을 위해 한계층여성을 희생시키는 것이라고 비판한 여성운동가도 있다. 반대로 여성단체는 엄격한 법집행을 요구한다. 도대체 어느 쪽이 옳을까.

인간의 서비스는 대부분 훌륭한 상품인데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성적 서비스다. 세계적으로 성매매는 옛날엔 합법적이었으나 현대에 와서 여권신장과 더불어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나라도 광복 이후 비로소 공창제도를 폐지하고 1960년대에 성매매를 불법화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불법은 기껏 교통신호 위반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성매매처벌법은 그런 관행을 바꾸어 징벌을 강화하는 조처였다.

그러면 이 법률의 효과는 어떠한가. 먼저 다른 나라의 예를 보자. 미국은 라스베이거스가 있는 네바다 주만 성매매를 합법화하고 있다. 거기선 성매매를 단속하는 다른 주에 비해 성매매의 거래량은 많다.

하지만 시설이 제대로 갖춰진 공개장소에서 영업을 하며 정기적 검진을 실시하므로 성병 등 거래행위에 따른 위험은 현저하게 낮다. ‘어느 업소는 어떻더라’는 소문을 들을 수 있고, 서비스에 문제가 있을 때는 업주에게 항의할 수 있다. 성매매 여성에 대한 부당한 착취도 줄어든다.

성매매가 불법화한 주에서는 성병 걸린 성매매 여성들이 거리를 배회한다. 음성적 매춘행위에 대해선 서비스의 질을 보장받기가 어렵다. 그리고 여기선 폭력이나 부패와 같은 범죄가 자라나기 쉽다.

폭력배가 불법 매춘업에 기생하며 관련 업주들이 단속공무원에게 뇌물을 상납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다. 집창촌 지역을 담당했던 김강자 서장이 공창제도를 주창한 것도 이런 폐해들 때문이다.

스웨덴이나 네덜란드는 둘 다 선망의 복지국가다. 그런데 성매매에 대한 시각은 판이하다. 스웨덴은 성매매를 불법화했고, 네덜란드는 성매매를 양성화했다. 그 결과는 미국의 예에서와 마찬가지다.

성매매여성 비율은 네덜란드가 훨씬 높은 반면, 스웨덴에선 성매매여성이 뚜쟁이에게 종속된 정도가 크고 위험에 노출되는 확률이 높다.

요컨대 성매매의 양적 축소를 중시하느냐, 아니면 성매매와 관련된 성병과 범죄의 축소를 중시하느냐 하는 가치판단에 따라 성매매 단속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양쪽 입장 다 일리가 있다.

이런 게 모의 국민투표의 대상이 아닐까. 물론 어떤 방향으로 가든 성매매 여성에게 다른 생계수단을 제공해야 하고 건강한 노동의식도 함양시켜야 한다. 또 사회의 투명화로 술자리 접대문화를 바꾸어야 한다. 장애인과 같은 성소외자에 대한 배려도 빠져선 안 된다.

성매매처벌법 시행 이후 우리 집창촌 종사자 숫자는 줄었다. 하지만 성매매가 더욱 음성화한 것도 분명하다. 이에 대한 가치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런데 법 제정 때 여론수렴이 충분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 역시 졸속정책의 사례가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엄중단속의 방향을 선택하더라도 시행시기를 잘 잡았어야 했는데, 하필 경기가 나쁠 때였으니 부작용이 크고 저항도 거셌다.

조폭관련 업소부터 단속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집행단계도 신중히 밟아 나갔어야 했다. 이런 부분들을 경시해 정부는 결국 법도 흐지부지되게 만들었고 관련 하층서민의 지지도 잃었다. 지금이라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성매매 처벌법 논란의 남성주의 (한겨레 2006. 8. 12)
- 송경숙(성매매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대표)

7월28일치에 실린 김기원 방송대 교수의 ‘성매매 처벌법의 허와 실’이라는 칼럼을 보고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는 이에 앞서 ‘성매매 특별법과 남신숭배’(6월23일치)라는 제목의 외부필자 칼럼에서도 성매매 방지법 관련 내용을 다루면서 법의 문제를 제기하는 차원을 넘어 법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내용을 실었다.

김 교수의 칼럼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매매 방지법) 중 처벌법에 대한 문제를 주로 짚고 있다.

물론 법이 만능은 아니고 현행법 또한 한계가 있는데, 법 취지에 맞게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에 대한 인권보호와 자활지원이 확실히 보장되고 있는가에 대한 법 집행력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그러나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이 근거가 불분명한 내용과 추측에 기반하여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김 교수는 마치 성매매가 합법화한 나라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보장되고 잘 관리가 되어 범죄 발생이 줄어든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성매매를 합법화해서 여성들을 관리하는 것이 범죄 축소에 효과적인 양 선전하고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본질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다.

성매매 합법화가 여성들의 인권을 보장해주는 대안이 아니라는 점과 오히려 합법화한 나라에서 불법 영역이 확대되고 국제적 인신매매 범죄의 온상지가 되고 있는 사실에 눈감으면서 다른 한쪽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어느 성매매 여성도 대안이 제시된다면 성매매를 지속하지 않겠다고 한다. 성적 서비스를 직업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 또한 대안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전세계적인 ‘빈곤의 여성화’로 수많은 여성들이 성매매와 인신매매로 내몰리는 상황에서, 이들을 노리는 알선업자들은 돈벌이를 위해 여성들을 모으고 이동시키면서 착취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오히려 합법화가 대안인 양 선전하는 것은 또다시 모든 이에게 거짓된 환상을 심어주는 무책임한 발언이다.

칼럼은 또한 성매매의 주요 원인이기도 한 성차별적인 남성 중심의 성 의식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성 구매자인 남성들의 안전을 위한 성병 검진의 필요성과 장애인(남성)의 성적 욕구 해결에 대한 요구가 그것이다.

남성의 성적 욕구를 해결해주는 성적 서비스로서의 성매매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전제에서 쓰인 이 글은, 성매매와 성 구매자로 인해 오히려 심각한 각종 질병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성매매 여성의 건강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 남성의 성을 살 권리(?)를 논하기 전에 성매매 여성의 인권을 먼저 살펴보길 바란다.

성매매가 합법화하지 않아서 성매매 여성들에 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하는것이 아니라 ‘성매매는 필요악’이라고 허용하면서도 동시에 여성들에 대해서는 도덕적 낙인을 가하는 이중적인 남성 중심적 성 의식과 문화가 성매매 구조를 만들어내고, 그 구조에 유입된 순간부터 여성들은 인권침해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성매매여성의 인권 (한겨레 2006. 8. 18)
- 김기원(방송대 교수)

성매매처벌법을 다룬 필자의 7월28일치 칼럼을 두고 송경숙씨가 8월12일치 신문에서 반론을 제기했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식으로 토론이 활발해져야 성문제를 제대로 처리하는 사회가 앞당겨진다. 다만 송씨의 글에는 필자의 뜻을 오해하고 사실을 왜곡한 부분이 있어 이를 해명하면서 논의를 진전시켜 보자.

성매매에 관한 필자의 글이 남성주의라고 몰아세우면 남성이라는 원죄(?) 때문에 대응하기 난처하다. 하지만 필자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성매매처벌법이 중산층 여성을 위해 한계층 여성을 희생시킨다는 어떤 여성운동가의 지적과, 주류 여성계의 냉대 속에 성매매 여성들이 50일 동안 단행한 천막농성이었다.

여성 전체가 남성에 의해 차별받지만 동시에 여성 사이에도 차별이 존재한다. 이는 자본에 의해 차별받는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를 차별하는 것을 연상시킨다.

성매매 불법화는 송씨의 주장과 달리 해당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보다 침해할 가능성이 더 크다. 미국 성매매 여성 중 에이즈 감염자는 성매매가 합법인 네바다주엔 거의 없는데, 불법인 워싱턴과 뉴저지주엔 절반가량이다.

또 합법인 네덜란드에선 투명한 거래 덕분에 인신매매 등 관련범죄가 잘 드러나는 반면, 불법인 미국에선 은폐되기 쉽다. 불법인 경우에 화대 갈취나 단속 공무원 부패도 더 심하다.

성매매는 술이나 마약처럼 사람들이 효용을 과대평가하고 폐해를 과소평가하는 비가치재(demerit goods)다. 비가치재에는 국가가 여러 규제를 가한다. 성매매의 폐해는 성병 감염, 결혼제도에 대한 위협, 인간관계의 황금만능화다.

그런데 술은 극소수 국가만 금지하고 마약은 극소수 국가만 허용한다. 성매매는 그 중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서른 나라 중 네 나라에서만 불법이다. 근래 유엔도 모든 성매매를 범죄시하던 과거의 태도를 바꿨다. 다수파가 항상 옳지는 않지만 다수 선진국이 성인의 자발적 성매매를 인정한다면 우리도 그 이유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사랑 없이 재벌가문에 시집가는 것과 성매매를 하는 것은 어떤 점이 다를까. 결혼여성은 전속 매춘부고 성매매 여성은 프리랜서 매춘부라고 말한 과격한 여성운동가도 있지만, 성매매 여성보다 더 열악한 처지의 주부도 없지 않다.

중요한 문제는 성적 거래를 포함한 남녀관계의 실제상태다. 군산 매춘여성이 숨졌을 때 정부는 거래상태를 개선하는 대신 업종을 폐쇄하는 성매매처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 법은 성매매를 더욱 음성화하고 관련 하층서민의 생활을 악화시켰다.

한국의 성매매 여성 비율은 네덜란드의 네 배, 미국의 두 배가 넘는다. 불법인 미국이 합법인 네덜란드보다 비율이 높고, 또 한국은 그들보다 더 높다. 성적 서비스에 자원배분이 과다한 현실을 시정하는 데 처벌이 능사가 아닌 셈이다.

북한처럼 인민의 삶을 철저히 통제할 수도 없다. 사회보장 제도의 충실화, 사회의 투명화가 관건이다. 그를 향한 과정에서 대안도 없으면서 성매매 여성을 내몰아선 안 된다.

또 송씨는 장애인 남녀의 성욕을 하찮게 여기는데, 그래도 되는 걸까. 성욕은 억압대상이 아니라 관리대상이다. 성매매가 합법인 네덜란드에서 장애인에 대한 성적 자원봉사도 활발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자.

양대 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성매매 여성을 외면했다. 이처럼 지지기반조차 챙기지 못하니 헤매는 게 당연하다. 성매매처벌법 재검토를 용기있게 제기할 다음 대선 후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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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
본문에서 "성매매에 대한 법적 대응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 중국, 한국, 대만 등에서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해 단죄합니다." 관련, 미국에서는 성매매가 기본적으로 불법이나 네바다주에서는 성매매가 합법으로 운용되고 있다.
(본문이 작성된 6개월 뒤) 대만에서는 2011년 11월 4일 입법원(의회)에서 사회질서유지보호법 개정안 통과로 합법적으로 성매매를 할 수 있는 특구 설치가 허용됐다. 이 개정안은 지방자치 단체장의 판단에 따라 성매매특구를 설치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이 구역 내에선 성 매수자와 매춘 행위자, 알선자 모두 처벌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특구 밖>에서 성 매수를 할 경우 최고 3만 대만달러(약 120만원)의 벌금을,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호객행위를 하면 3일 이내의 구류 처분을 받거나 최고 5만 대만달러(약 2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한국인권뉴스)

[ 알 림 ]
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는 7월 21일 김기원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웹2.0 정신에 의거한 정보공유(홈페이지ㆍ블로그, 페이스북 언론 미발표분)에 합의했습니다.
김기원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비롯하여 다양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 대안 제시와 함께 진보진영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바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생산적인 토론과 함께 앞으로도 침체된 운동이 일어서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김기원: 서울대 경제학과(박사), 일본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국 유타대 객원연구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인권뉴스는 김기원 교수의 글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론을 환영합니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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