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의 베를린 통신] '성매매'까지 연정하는 독일

김기원(방송통신대 교수, 경제학)

며칠 전에는 베를린에 첫눈이 내렸습니다. 하지만 베를린의 ‘첫눈’은 한국의 ‘첫눈’과 다릅니다. 한국에선 첫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고 옛사랑을 떠올리기도 하는 낭만이 있습니다만, 베를린에서 첫눈이 내릴 땐 으스스하고 을씨년스럽기만 했습니다.

그건 독일의 겨울 날씨가 습기가 많아 한국의 추위와는 달리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이기 때문입니다. 일본말을 아는 독일인은 이런 추위를 むし(蒸)さむい(寒)라고 표현했습니다. 사실 이런 일본어는 없고 습기가 많은 일본의 더위를 むし(蒸)あつい(暑)라고 하는데, 그걸 응용한 조어(造語)입니다.

눈이 내리던 날 전철에서 어떤 독일인(다른 유럽국가 출신인지도 모름)이 저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그는 독일에선 Wetter(날씨), Essen(음식), Wasser(물)이 영 엉망이라고 투덜거렸는데, 공감이 갔습니다.

독일 빵을 좋아하는 한국인도 있습니다만, 그것 외에는 독일 음식으로 신통한 것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Wurst(소시지)를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까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의 물은 한국의 산에서 떠 마시는 약수와는 아예 비교도 되지 않고 한국의 수돗물에도 크게 못 미쳤습니다.(한국의 등산객들은 한국의 자연을 고마워하시길.) 한국의 수돗물을 끓여 결명자 차를 만들면 그런대로 괜찮은데, 여기서는 도대체 그런 차 맛이 나지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물맛이 형편없으니 맥주가 발달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물맛은 어떤지 모르지만 음식이나 날씨 면에서 이탈리아는 독일보다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정치면에선 똑같이 연정을 하는데도 이탈리아의 연정은 제대로 잘 돌아가지 않습니다. 음식이나 날씨가 너무 좋아서일까요(이런 게 엉터리 인과관계임. ㅎㅎㅎ.)

이번 총선 결과로 독일에선 그동안 연정협상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지지난주에 타결되었습니다. 3차에 걸친 탐색협상(Sondierungsrunden)과 36일 동안의 본협상을 거쳐 마지막 17시간 동안 밤샘 협상한 결과입니다.

              
         △맨 왼쪽이 메르켈 총리, 그다음이 SPD대표, 그리고 CSU대표

그동안 협상은 12개의 분과로 나누어 진행되었고, 그 결과는 185페이지의 협약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한국의 3당 합당 때나 DJP연합 때의 비밀협상과는 방식이 사뭇 다르지요. 이렇게 꼼꼼하게 협약을 맺었으니, 나중에 오리발 내미는 일이 있을 수 없지요.

한국에서 박철언이 3당합당 때 YS가 약속했던 종이쪼가리를 들고 “이걸 폭로하면 YS의 정치생명은 끝이다”고 협박하던 일을 독일에선 애당초 생각할 수 없지요. 어쩌면 그러니 한국정치가 더 재미있고 역동적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독일의 연정협상 결과에 대해선 기독교민주당(CDU)/ 기독교사회당(CSU)/ 사회당(SPD) 모두 대체로 만족하는 듯합니다. 각 정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을 얻어낸 셈이니까요. 다만 SPD의 청년조직에서는 연정합의에 반대를 표명했고, 혹시 SPD가 협약에 대한 전체당원 비준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언론에 따르면 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입니다.

협약의 주요 내용을 보면, 우선 CDU의 주장대로 세율인상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CSU의 요구대로 Pkw-Maut(승용차에 대한 고속도로 통행료)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습니다. 아울러 SPD의 공약대로 2015년부터 시간당 8.5유로의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기로 합의했습니다.

SPD는 바로 이 최저임금제 도입을 가장 중요한 성과로 내세우면서 당원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비록 예외조항이 있기는 하지만(인턴 등등), 이렇게 최저임금제가 시행되면 독일의 소득격차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독일에서는 과거엔 굳이 일률적인 최저임금제를 도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소득분배가 괜찮았습니다. 하지만 HARTZ REFORM이라는 노동개혁을 단행하고 동유럽의 노동자들이 독일에 몰려들면서 소득격차가 심화되었습니다.

현재 시간당 8.5유로 이하를 받는 노동자들의 비중은 1/6 정도라고 합니다. 그 중에는 동유럽의 사업가가 자기 나라 노동자를 데려와 3-4 유로 주면서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서점에서 mini-job으로 일주일에 11시간 일했던 독일 여학생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여학생은 처음엔 6유로 받다가 1-2년 지나면서 7.4유로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는 최저임금 8.5유로와 그리 큰 차이는 없는 셈입니다.

제가 베를린 와서 계속 느끼고 있는 것이, 원래 독일인 내부의 문제보다 이슬람, 동유럽 지역으로부터의 이민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는 최저임금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3-4 유로 받는 동유럽 노동자의 경우가 심각한 문제인 것이지요.

재계에서는 물론 최저임금제 도입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과 달리 이곳 정당들은 재계의 반대를 뚫고 나갔습니다. 사실 이미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최저임금제를 시행하고 있고 네덜란드의 최저임금은 9.07이므로, 8.5유로의 최저임금을 도입했다고 해서 독일의 국제경쟁력을 훼손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일단 8.5유로로 정해진 최저임금을 매년 어떻게 조정하느냐 하는 문제도 결정되었습니다. 사실 이런 디테일이 중요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The devil is in the details)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노사 각각 3명씩으로 최저임금결정위원회를 구성하기로 되었습니다. 그리고 노사 각각 전문가 한명씩을 불러서 회의에 참가시킬 수 있는데, 그 전문가들은 투표권은 없습니다. 이런 경우에 어떻게 결정이 될까요.

한국에선 노사와 별도로 공익위원을 포함시킵니다. 그리해 보통 노사는 입장이 대립되어 타협을 보지 못하고, 공익위원들이 최저임금 수준을 정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버렸습니다. 노사가 적당히 타협했다간 자기편에게서 욕을 먹으니까, 아예 타협을 하지 않고 결정권(및 책임)을 넘겨버린 셈입니다.

독일에선 거대기업의 감독이사회도 노사동수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의견이 노사 반반으로 갈릴 때는 사측을 대변하는 의장이 2표를 행사해서 결국 사측 입장대로 결정이 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측이 늘 노동자측 입장을 무시했다간 분란이 일어날 것이므로 노동자 의견을 가급적 존중하는 구조이지요.

최저임금결정위원회의 3:3구조에선 어찌될까요. 감독이사회 의장 격의 최저임금결정위원회 의장을 매년 추첨해서 뽑자는 의견도 처음엔 나왔다고 합니다만, 매년 번갈아 가면서 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잘 운용될지 두고 보아야 하겠습니다만, 서로가 억지를 쓰지 않는 문화풍토가 있으니 이런 협약이 그런 대로 작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반도를 동서독과 대비하면서도 자꾸만 생각나는 것이 이런 ‘사회수준’의 문제입니다.

한편, 연정에 참가하지 않은 좌파(Die Linke)나 녹색당에서는 연정협약이 재원문제를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세율을 인상하지 않고, 어떻게 교육투자 확대나 연금지급 증대와 같은 다른 협약부분들을 시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지요.

어째 한국의 논쟁구도와 비슷한 면도 있지요. 한국도 이런 면에선 선진국인가요. 다만 한국에선 그래서 GH가 아예 공약을 곧바로 내팽개쳤습니다만, 독일에선 그렇게 막가파로 나가지는 않을 것이고, 과연 어떻게 해쳐나갈지 두고 봐야 할 것입니다.

이번 연정협약에선 저로선 놀라운 내용이 하나 들어 있었습니다. 바로 성매매 여성들에 관련된 내용입니다. 아니 엄숙하고 거룩한(?) 대(大)연정 협약에서 지저분한(?) 성매매 문제를 다루다니 도대체 한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이처럼 인간의 근본 욕구와 관련된 문제를 은폐해온 것이 한국사회의 다른 어두움과도 관련이 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해오기는 했습니다.

협약 내용은 한 마디로 성매매 관련 규제를 강화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최근 프랑스가 하원에서 결정한 것처럼 성구매자를 (벌금으로) 처벌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매매행위를 강요당하고 있는 여성과의 성행위를 처벌하고, 성매매업소에 대한 허가제를 시행하는 등의 내용입니다. 독일의 대표적인 여성단체인 Terre de Femmes에서는 이런 조치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2002년 SPD와 녹색당이 주도해서 성매매(유곽 포함)를 합법화했습니다. 상대적진보파인 SPD와 녹색당이 이를 주도했다는 점을 한국의 여성진보파들이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어쨌든 그랬더니 당연히 독일에서의 성매매가 늘었습니다. 특히 동유럽으로부터의 성매매여성 유입이 급격하게 늘어 전체 성매매 여성의 80-90%로 추산되고 있습니다. 이런 여성들 중에는 인신매매에 의해 강제로 성매매에 종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성매매사업자들이 이 과정에서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매매 합법화가 추구한 목표는 별로 달성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법에서는 성매매여성이 등록을 하면, 미지급 화대에 대해 소송을 할 수 있고, 의료보험·실업보험·연금을 지급받게 한 것인데, 등록을 한 여성이 아직 44명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그래서 2007년에 메르켈 정부는 성매매합법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보고서를 내놓은 적이 있습니다. 또한 금년 11월에는 독일의 페미니스트 Alice Schwarzer가 Prostition - ein deutscher Skandal (성매매 - 독일의 스캐들)이란 책을 통해 역시 성매매 합법화를 비판했습니다. (이 책의 출판회에는 수백명의 성매매 여성들이 몰려가 항의시위를 벌였습니다만.)

그런데 성매매 합법화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제가 일찍이 강조했듯이 성매매란 권장해야 할 가치재(Merit goods)가 아니라 술이나 담배처럼 억제해야 할 비가치재(demerit goods)입니다.

따라서 정부는 합법화조치로써 할 일 다 했다고 손 놓을 것이 아니라 성매매거래에 대해 감시감독을 해야 했습니다. 독일에선 포장마차(Wurstchenbude) 사업을 하는 데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성매매사업에 대해선 너무 느슨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손님이 온갖 종류의 성매매를 요구해도 성매매여성이 그걸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는데, 이번 협약으로 그런 것들을 바로잡기로 했습니다.(협약이 온갖 것까지 다 다루지요. ㅎㅎㅎ.)

또한 성매매여성이 등록을 하지 않는 것을 그냥 놔둘 것이 아니라, 일반사업체에서처럼 등록하지 않을 때에는 탈세로 단속하고, 강제로 보험에도 가입토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단속은 성매매자체의 금지보다는 쉬운 일이고, 또한 성매매여성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므로 저항도 덜하고 확대도 쉽습니다. 그걸 그냥 방치한 것은 아직 정부가 성매매를 하나의 직업으로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탓입니다.

동유럽 성매매여성의 증대는 기본적으로 (불법)이민 문제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최저임금보다 훨씬 적게 받는 동유럽 노동자들이 큰 문제였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동유럽 성매매여성의 문제는 성매매 합법화 또는 불법화의 문제라기보다 이민 문제의 일환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서유럽과는 달리 성매매가 대체로 불법인 동유럽에서 성매매여성의 처지가 아마도 더 열악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등록 성매매여성의 숫자는 얼마 안 되지만 합법화를 통해 위생이나 인권 면에서 더 나아진 면도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이걸 인정하면서 성매매 불법이민 여성문제에 접근해야 하겠지요.

독일에선 프랑스처럼 성매매를 불법화하자는 언론은 거의 없고, 일반여론도 불법화를 크게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합법화 과정 속에서 충분히 토론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매매를 불법화한 스웨덴의 모습을 보고 독일인들은 다시 불법화하는 걸 꺼리는 것이지요.

불법화한 스웨덴의 경우에 성매매거래 건수는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구글에서 Stockholm과 escort를 치면 바로 성매매업소가 우르르 나옵니다. 게다가 스웨덴 남성들이 이웃 나라로 원정성매매에 나서고, 또 스웨덴 내의 성매매가 음성화됨에 따른 폐해도 존재합니다.

독일의 진보언론쪽에 속하는 Suddeutsche Zeitung의 이번 주말판에서는 독일의 성매매문제를 둘러싸고 4명의 대담을 실었습니다. 합법화 찬성자 2명 중 1명은 성매매 일을 8년간 하다가 2002년 성매매가 합법화되자 스스로 유곽을 경영하고 있는 여성이고, 한 명은 장애인으로 성매매여성을 통해 성적 욕구를 해결하는 남성이었습니다. 반대자 2명 중 한 명은 성매매에 종사했던 여성이고 다른 1명은 성매매관련 영화를 제작했던 여성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성매매찬성 여성(47세 미인 여성)은 자신의 얼굴을 당당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당당한 직업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지요. 한국의 성매매여성은 시위 때도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고 언론 인터뷰에서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한 목사였던 장애인 찬성 남성은 “성매매는 사회에서 성Sexualitat의 공평한 배분을 돕는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반대파여성은 얼굴을 가리고 등장합니다.

참고로, 성매매를 불법화한 스웨덴이나 프랑스에서조차 성매매여성에 대해선 처벌하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의 여성진보파들이 주목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약자인 성매매여성까지 처벌하는 법을 제정해 놓고 감히 진보파란 말을 쓸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보수적 입장에서 한국의 성매매 처벌법을 제정했다면 그건 일리가 있습니다.)

유럽의 성매매 문제는 사실 지금 진통을 앓고 있습니다. 이민 문제와 겹쳐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있으면 유럽 전체의 성매매 문제를 한번 정리해볼 생각입니다.

2013.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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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권뉴스 최덕효 대표는 7월 21일 김기원 교수(한국방송통신대학교)와 웹2.0 정신에 의거한 정보공유(홈페이지ㆍ블로그, 페이스북 언론 미발표분)에 합의했습니다.
김기원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비롯하여 다양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 대안 제시와 함께 진보진영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바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생산적인 토론과 함께 앞으로도 침체된 운동이 일어서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김기원: 서울대 경제학과(박사), 일본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국 유타대 객원연구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현 베르린 자유대학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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