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의 베를린 통신]중도와 진보에게 '언론 자유' 존재하나

김기원(방송통신대 교수, 경제학)

중도와 진보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존재하는가
- 안철수진영과 진보적 여성단체


박동천 교수가 예전의 안철수 측 행사 발제문에서 '박정희 독재자'란 표현을 썼더니, 그 표현을 빼달라는 요구가 있었고, 그걸 거절했더니 아예 발표를 못하게 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113167

박정희를 규탄하는 걸로 일관한 발제문도 아닌데, 그런 표현 하나를 문제 삼다니 어이없는 일이지요. 주최 측도 아닌 외부 발제자에 대해 언론의 자유를 봉쇄한 에피소드인 셈이지요. 안철수 쪽을 소위 '중도'라고 한다면, 이게 우리 중도의 수준일까요.

이왕 박교수가 비화를 털어놓는 김에 저도 비슷한 일화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8년쯤 전에 주로 진보적 여성단체 분들이 많이 모인 행사에서 제가 한국경제 문제에 관해 발제를 했습니다.

저는 그 발제문에서 성매매 처벌법이 한국경제에 미친 부작용을 두 줄 정도 언급하고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발표장에 갔더니 주최 측에서 그 부분을 빼고 발표를 해달라는 요구를 해왔습니다. 그것도 두 분이 두 차례에 걸쳐서 요구를 했습니다. '언론의 자유' 억압? (그 중 한 분은 나중에 국회의원이 되었습니다.)

그에 대해 저는 어이가 없었고(그 전과 그 후 어떤 발표에서도 이런 식의 요구를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발표를 했습니다.

혹시 아주 좋게 해석해서, 제가 그런 내용을 말하면 발표장이 난장판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렇게 한지 모르지만, 아무런 소동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주최 측이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획일적으로 끌고 가려고 저에게 그런 요구를 한 것이지요. 이게 소위 한국 진보의 수준일까요.

GH가 유신 흉내내기를 하면서 우리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중도나 진보 역시 민주주의를 제대로 체득하고 있는지 의문을 갖게 만드는 게 박동천 교수나 제가 겪은 일들인 셈입니다.

이왕 말씀드리는 김에 여성단체 발표와 관련해 하나 더 말씀드리면, 발표가 끝나고 나서 주최 측은 저에게 아무런 사례가 없었습니다. 사례를 받기 위해 발표를 하러 간 것도 아니고, 진보단체에서의 발표에 대해선 사례를 받으면 대체로 돌려주는 게 그 동안의 제 방침이었습니다.

하지만 주최 측은(그것도 두 번이나) "이렇게 많은 여성들 앞에서 발표한 게 처음이죠"라는 말만 했습니다. 영광이라고 생각하라는 뜻이었을까요.(아마도 그런 행사에선 남성 발표자들이 발표 서두에 그런 종류의 아부?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않아 기대에 어긋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재정형편이 안되면, 우리 사정이 열악하니 양해해 달라고 말하면 그걸로 충분한 일이었습니다. 돈 봉투를 받더라도 그걸로 부자 될 것도 아니므로 돌려줄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보수 및 진보) 여성단체들이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돈을 어떻게 받고 있는지 누가 한번 제대로 취재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주최 측에서 바빠서 사례하는 것을 혹시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만, 나중에도 아무 연락이 없었습니다. 큰 연례행사였으므로 행사가 끝나면 사후정산을 할 터인데, 사례를 하도록 되어 있으면 나중에라도 연락을 했을 것입니다.

이런 일들은 기본 예의의 문제입니다. 제가 계속 말해왔지만 진보-보수의 대립구도(X축)와는 별개로 개혁-수구(또는 '건전한 상식' - '몰상식')의 문제(Y축)가 존재하고, 우리의 소위 '중도' 또는 '진보'에게도 그런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0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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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비롯하여 다양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 대안 제시와 함께 진보진영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바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생산적인 토론과 함께 앞으로도 침체된 운동이 일어서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김기원: 서울대 경제학과(박사), 일본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국 유타대 객원연구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현 베르린 자유대학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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