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뮌영상] 낡은 진보에 대한 고별사: 혁신을 위한 비판적 성찰

제7회 맑스코뮤날레 1차 맑스주의 포럼

[제7회 맑스코뮤날레 1차 맑스주의 포럼]
주제: 낡은 진보에 대한 고별사: 혁신을 위한 비판적 성찰

일시: 2014년 2월 21일(금) 15:00~19:00
장소: 생명문화연구소(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주관: 진보평론

[프로그램]
전체진행 사회: 심광현(코뮤날레 집행위원장)

* 발표 *
이광일(한신대 연구교수)
자유주의 정치의 ‘역사적 헤게모니’, 그 긴 그늘과 좌파

이승원(급진민주주의 연구조합 데모스 회원)
자살, 한국 정치와 사회의 최대 위기: 진보세력은 위기의 대안일 수 있을까?

서영표(제주대 사회학과 교수)
인식되지 않은 조건, 의도하지 않은 결과: 노골적인 계급사회의 탈계급 정치

이창언(성공회대 연구교수/ 사회학 박사)
반제적(NL) 급진주의의 한계와 혁신과제

박영균(진보평론 편집위원)
낡은 NL/PD의 패러다임과 급진적 진보운동의 방향

<알림> 이승원 발제자의 요청으로 동영상에서 이승원 발언 부분은 제외함.








자유주의 정치의 ‘역사적 헤게모니’, 그 긴 그늘과 좌파/ 이광일

진보좌파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노자 간의 모순과 그것의 해결을 주요한 목표로 삼았던 19세기 이후의 좌파운동에 대한 성찰을 통해 생태 및 젠더문제 등에 대한 이론적 진전과 대중적 각성을 이룬 지금, 그리하여 이제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사이에 만리장성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게 된 이 21세기 지구화 시대에 말이다.

‘역사적 사회주의’와 그 연장이었던 ‘선언된 공산주의’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잔존물들이 보이는 폐해를 통해 좌파가 추구해야 하는 현재·미래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생생한 교훈을 얻고 있는 지금, 그러나 여전히 ‘화석화된 빨갱이의 그림자‘에 눌려 그 앞에 삶에 대한 풍요로운 구상과 실천을 제물로 내놓아야 그나마 살아갈 수 있는 이 사회에서 말이다.

바로 이러한 시대에 좌파가 놓여 있기에 단지 좌파헤게모니 구성의 조건과 방법을 살피는 것을 넘어, 코뮌적 대중정치로의 극적인 전환이 적극적으로 모색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인식되지 않은 조건, 의도하지 않은 결과: 노골적인 계급사회의 탈계급 정치/ 서영표

소란스러움과 혼란스러움이라는 민주주의 특징은 민주적 정치 과정이 대화와 소통과 조정을 위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울시의 마을 만들기 사업에서 드러난 것처럼 (지방)정부는 언제나 짧은 시간 안에 수량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결과를 요구한다.

이것은 풀뿌리 운동의 운동성과 자율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다. 역설적으로 이는 운동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적인 경쟁논리를 풀뿌리 운동한테 이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회운동은 언제나 과정으로서의 운동이어야 하며 그 과정은 의식고양과정이어야 하며 의식고양과정은 새로운 정치적 주체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어야 한다. 과정으로서의 사회운동은 학습의 장인 것이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를 넘어선다.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 소통과 합의 도출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는 모순과 적대를 배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민주주의는 내용 없는 형식만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기존질서를 극복하는 운동의 실현 과정과 분리될 수 없다.

그래서 민주주의는 ‘시장의 사회화’, ‘국가의 민주화’, ‘민중의 정치 주체화’의 복합적 구성물이어야 한다.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급진화’라고 부를 수 있다.


반제적(NL) 급진주의의 한계와 혁신과제/ 이창언

첫째, 인식 틀의 전환, 즉 ‘근대성’, 성장과 발전주의를 내장한 저항성 반제환원론, 북한에 대한 편향적 인식에 대한 반성과 성찰, 대중의 삶의 양식에 관한 천착 속에서 자주성을 재구성해야 한다. 여기서 자주성 확립은 두 가지 차원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반제·반자본적 급진성의 가치와 정체성을 확립하는 내적 자주성을 갖는 문제이고, 북한과신자유주의 개혁세력과의 차별적 정체성 즉 외적 자주성을 동시에 확립하는 것이다.

둘째, 운동조직과 조직문화, 행위양식을 재설계해야 한다. 그것은 정파 패권주의 폐해 극복과 운동조직 내 건강한 소통과 협력의 문화, 내부 민주주의의 강화와 직결된다. 조직의 민주적 재설계는 심의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소통을 확장하는 프로세스인 ‘배제된 자의 재발견’과 연결되어야 한다. 급진주의적 민주성은 관리가 아닌 자율적 차여와 소통을 지향하며 소수성을 보장해야 한다. 아직은 낯선 만남의 과정이지만 ‘하나의 진보_민주주의’가 아닌 ‘복수의 진보_민주주의’ 개념에 대한 시민권 확보를 시도해야 한다.

셋째, 환경변화에 적응하면서 급진주의를 확산할 활동가의 긍정적인 생활상의 변화와 적응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거대담론 위주의 교육과 토론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문제들에 대한 관심과 대안, 생활밀착형 내용을 중심으로 한 학습과 소통과 협동의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특히 지역에서의 자율적 삶의 장이라는 급진적 이상의 복원과 창조는 대단히 중요하다. 자본_임노동이라는 대립 틀을 넘어선 관계의 재구성, 확장된 관계성은 급진적 운동의 생태적 토대가 될 것이다.


낡은 NL/PD의 패러다임과 급진적 진보운동의 방향/ 박영균

당 통합이 되지 않더라도 진보운동은 의회_선거에서 함께 공동 선거전술을 만들 수 있으며 촛불정국과 노동이슈, 그리고 환경문제에 함께 공통의 ‘비전’을 만들어갈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각 조직들의 입장에서 보면 항상 위험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 없이 정치적 힘은 만들어질 수 없으며 정치적 올바름은 언제나 이런 선택들 속에서 확인되고 실현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치는 언제나 위험을 동반하는 선택이며 자신을 내던지는 ‘기투’이다.

‘전위’는 정치적 실험을 만들고 그 책임을 그 스스로 지는 자들이다. 선택이 없다면 그것은 확인될 수 없는 것으로만 남는다. 의회선거에 개입하지 않은 자들의 전술이나 정치적 올바름은 확인불가능하다. 그것이 오늘날 각 조직 간의 대립을 양산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따라서 문제는 지배 권력에 대항하여 ‘윈_윈’하는 정치적 연대와 그 속에서 정치적 올바름을 증명해 가는 권력 게임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급진적 정치운동은 자신의 모순을 몸으로 체현하고 투쟁하는 대중들과 결합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들과 일체화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피억압인민 전체의 권리와 해방을 위해 싸우는 전사들로 조직하기 위해 대중과 ‘거리를 두고’ ‘정치적 비전’을 창출하고 자기 스스로를 ‘대상화’하도록 하며 제도의 안과 밖, 그리고 공장의 안과 밖, 노동운동과 사회운동, 통일운동과 노동운동의 경계를 횡단하며 실험을 창조하는 자들의 운동인 것이다.


▒ 출처: 진보평론 58호(2013년 겨울호)
“낡은 진보에 대한 고별사: 혁신을 위한 비판과 성찰” 중에서


코뮌영상네트워크
http://cafe.daum.net/commune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