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의 베를린 통신] 베를린(Berlin) 속의 평양(Pjongjang)

김기원(방송통신대 교수, 경제학)

며칠 전에는 친구인 이윤봉 사장이 베를린에 들렸습니다. 프랑크푸르트의 지사도 둘러보고 뉘른베르크에서 열리는 국제전시회인 ‘Embedded World’에 참석하는 길에 저에게 잠깐 들른 것이었습니다. 아래 사진은 베를린 장벽이 남아 있는 East Side Gallery에서 그와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장벽에 그려진 배경은 소련의 브레즈네프와 동독의 호네커가 다소 엽기적으로 키스하는 장면입니다.)



이 사장은 한국에서 저의 일요일 등산 친구로서 WIZnet(www.wiznet.com)이라는 기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30명 정도로서 그리 큰 회사는 아니지만, ‘인터넷통신 칩’을 제작해 중국, 유럽, 미국 등 세계 각국에 수출하는, 말하자면 유망 벤처입니다.

저, 이 사장, 윤승용 한국종교연구소 대표가 저희 등산 고정멤버인데, 등산길에 가끔씩 한국 전자업계와 중소기업 실태에 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왔습니다. 컴맹에 가까운 제가 전자산업의 기술적인 부분이야 여러 번 들어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쨌든 중소기업에 대해 약간씩 감을 잡을 수는 있었습니다.
  
이 사장은 베를린에 들르면서 저에게 식품 보급을 해주었습니다. 여기 한국 식품점에선 구하기 어려운 식자재를 들고 온 것입니다. 다른 친구(김재훈 대표) 부인에게도 한국식품을 부쳐달라고 부탁한 바 있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약간 부족해 이 사장에게도 폐를 끼친 것입니다.
  
그리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 사장 어머님이 직접 담그신 된장까지 같이 들고 왔습니다. 외국생활에서 한국의 진짜 된장은 정말로 귀한 ‘일용할 양식’이지요. 또 얼마 전에 연구실에서 도둑맞은 노트북 컴퓨터 대신에 새 노트북도 하나 들고 와주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리저리 신세지는 일이 적지 않지만, 특히 이렇게 외국에 나오면 그런 일이 더 많아지네요. 친구들 외에도 여기 베를린의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바 있습니다. 한국에선 가계부채가 1000조 원을 넘었느니 어쩌니 하면서 논란이 많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이렇게 돈으로 계산하기 힘든 부채가 아닐까요
  
참고로 이 사장 회사가 독자 부스(booth)를 마련해 참가한 ‘Embedded World’ 전시회에 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기엔 주로 전자부품 중소기업들 1,500개 정도가 참가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과거엔 이런 전시회에 한국관이 별도로 설치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한국관이 사라졌습니다. 참가하는 한국회사들이 급격히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장에 따르면, 금년 1월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도 삼성이나 LG와 같은 한국의 거대기업들은 기세를 올렸지만, 한국 중소기업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반면에 거기에 참가한 중국계 회사는 1천개가 넘었다고 하네요.
  
한국경제에선 삼성이나 현대차 같은 거대기업은 잘 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은 쥐어 짜이면서 겨우 버티고 있습니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쑥쑥 자라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바로 이런 국제전시장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어쨌든 이 사장이 베를린에 온 김에 같이 베를린을 둘러보았습니다. Brandenburger Tor를 비롯해 국회의사당(Reichstag), 유대인희생 기념물(Denkmal fur die ermordeten Juden Europas) 등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기념물들이 있는 시내 중심에는 약간 의외의 건물도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바로 북한 대사관입니다. 서울 중심에는 미국대사관이나 일본대사관처럼 한국과 관계가 깊은 대사관들이 위치하고 있는데, 독일과 별로 관계가 깊지 않은 북한대사관이 베를린 중심에 떡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습니다. 브란덴부르크 문을 비롯한 지금 베를린의 중심은 원래 동베를린 지역에 속해 있었습니다. 따라서 북한 대사관이 거기에 소재했던 것입니다. 독일이 통일되면서 북한대사관은 일단 철수했습니다. 그러다 통일독일과 북한이 2001년 다시 외교관계를 수립하면서 예전 동독 시절의 북한대사관을 그대로 쓰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대사관 건물의 대부분은,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City Hostel Berlin이라는 유스 호스텔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지나갔을 때도 외국인이 들락거리고 있었습니다. 북한대사관 측이 이 유스호스텔에 임대를 놓은 것입니다.


  
북한대사관엔 과거 동독 시절에는 100명 이상이 근무했습니다만 지금은 15명 정도만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예전의 큰 건물 전체가 필요 없고 임대료 수입도 챙길 수 있으니 유스호스텔에 임대를 놓은 것이지요. 참고로 독일의 한국대사관 직원은 50명 정도라고 들었습니다.
  
그리해 북한대사관은 예전 건물 한 귀퉁이를 쓰고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듯이 호스텔 오른쪽 옆에 별도 입구가 있고, 그 입구 옆에는 북한 정부의 홍보 사진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걸 살펴보니 가장 최근 사진이 2010년의 김정일 사진이었습니다. 김정은 사진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update를 제대로 하지 않은 셈이지요. 아마도 정부홍보에 별 관심이 없나 봅니다.


  
베를린 올 때 이 북한대사관건물의 유스호스텔(http://www.cityhostel-berlin.com)을 한번 이용해 보는 것도 색다른 느낌을 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간 겁나기도 하겠지만 그게 오히려 독특한 느낌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시내 관광중심지를 걸어서 살펴볼 수 있고,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고, 호스텔이므로 숙박비도 헐할 듯싶습니다(1인용, 2인용, 여러 명 방 등이 있습니다).

제가 호스텔측으로부터 몇 푼 받고 소개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그 호스텔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북한대사관 건물에서 머물다가 북한대사관을 거쳐 망명할 생각도 삼가야겠지요. 옛날엔 남한의 독재체제가 싫어 이 북한대사관을 거쳐 북한을 방문하거나 아예 북한에 망명해버린 인사도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요.

얼마 전에 보도되었지만, 두만강을 건너 북한에 들어갔던 남한사람들을 북한당국이 판문점을 통해 남쪽으로 돌려보낸 일이 있지 않습니까(남한 감옥행). 사실상 남북한 사이의 체제경쟁이 끝난 판에 남한사람들이 먹고 살게 해달라고 북한에 들어오는 걸 북한은 이제 반기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북한대사관 게시판의 홍보는 성의가 없었지만, 최근에 약간 다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리시홍 북한대사가 Saarbrucker Zeitung이라는 독일언론과 인터뷰를 한 것입니다. Saaland라는 작은 주(州, Land)의 언론사이기는 하지만 이때까지 없던 일입니다. (보다 큰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지 않은 것인지 못한 것인지?)

독일어가 가능한 분은 다음 사이트를 링크해 보십시오.
http://www.saarbruecker-zeitung.de/aufmacher/Berlin-Saarbruecken-Ri-Si-Hong-Botschafter-Nordkorea-Interview;art27856,5125887

인터뷰를 자청한 리 대사의 사진은 아래와 같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지난 1월 중순에 여러 나라 대사들이 평양으로 불려가서 지시를 받았고 그게 이번 인터뷰로 이어졌습니다. 즉 북한의 국방위원회가 공표한 남북한 긴장완화노선(Entspannungsinitiativ)을 대외적으로 적극 홍보하라는 지침에 따른 것입니다.

        

먼저 런던과 베이징에서 북한 대사들이 언론과 인터뷰를 자청했습니다. 이어서 베를린에서도 인터뷰가 성사된 것입니다. 인터뷰 내용은 색다른 것은 없습니다. 남북한 사이의 긴장완화 필요성, 북한이 긴장완화를 위해 먼저 취한 조치, 장성택을 숙청한 이유, 해외투자 유치자세, 미국에 대한 불신 등을 리 대사가 말했습니다. 독일 언론의 다소 공격적인 질문에 대해서도 비교적 무난하게 답한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삼아 인터뷰 중에서 몇 대목을 소개하겠습니다.

질문: 장성택과 그 일파의 숙청은 조심스런 경제개혁노선의 몰락을 의미하는가?


답변: 그의 주요 범죄는 국가전복 시도였다. 그는 인민과 군대 속에 불만을 조장했다. 이리해 나라의 발전과 인민생활에 커다란 장애가 초래되었다. 장성택의 처형을 통해 상황은 다시 정상화될 수 있었다. 우리는 이제 경제재건과 인민생활 개선에서 다시금 중요한 진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질문: 그러기 위해선 당신네들은 외국인투자를 필요로 한다. 이 외국인투자에 대해 어떠한 보장을 제공할 수 있는가?

답변: 우리는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와 기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는 이미 유럽의 11개국과 투자보호협정을 체결했다. EU와도 이런 문제에 대해 협상할 것이다. 그리고 2013년 5월 이후 경제특구법이 시행되었고, 이를 통해 외국인투자가 보호받을 것이다. 그 기업들은 국유화되지 않을 것임을 보장하며, 외국인투자자들은 안심하고 우리나라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런데 인터뷰 내용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 말미에 첨부된 뒷이야기입니다. 인터뷰를 위한 사전접촉에서 북한대사관측은 몇 가지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첫째로, 국방위원회의 긴장완화노선과 관련된 질문만 할 것. 둘째로, ‘독재’나 ‘고립국가’라는 단어가 질문 속에 등장해서는 안 됨. 셋째로, 사전에 질문지를 제출할 것.

꽤 딱딱하지요. 하지만 실제 인터뷰는 훨씬 자유롭게 진행되었고(그래서 장성택 숙청에 관한 질문도 가능했겠지요), 리 대사는 편하게 인터뷰에 응했다고 합니다. GH가 예전에 손석희씨의 MBC 라디오프로 ‘시선집중’에 출연해 손석희씨가 사전 질문지에 없는 질문을 던졌다고 화를 냈던 사례와 한번 비교해볼 만합니다.

그리고 통역은 독일어가 유창한 Stellvertreter(公使?)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독일주재 대사가 왜 독일어를 잘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독일주재 한국대사도 독일어가 유창하지 않습니다. 외교관은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근무하기 마련인데 그 나라들 언어 모두에 유창할 수는 없겠지요.

리 대사는 2012년에 베를린의 Havel 강에서 면허 없이 낚시를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습니다. 아마도 독일어가 유창하지 않아 그 당시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런데 이번 인터뷰에서 통역과 관련해 흥미로운 대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언론사에서 인터뷰녹음을 풀어 기사화하기 위해 정리한 내용을 미리 북한대사관에 보내서 검토를 받겠다고 했더니, 당신네 언론사를 믿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어째 리 대사는 한국인사들보다 더 유연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한국에선 대부분의 언론사에서 이렇게 사전검토를 부탁하는 예의(?)를 갖추지 않습니다.

왕조체제의 북한이라 해서 모든 게 다 엉망은 아니고, 왕조 나름의 논리도 있고 때로는 이렇게 유연한 대목이 있을 수도 있겠지요. 아니면 리 대사는 북한 정권의 강력한 신임을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김정은의 외삼촌도 처형당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리 실세라도 조심할 것 같은데 어쩐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한편, 제가 베를린에서 평양(Pjongang, 독일어로는 이렇게 씁니다)과 접한 것은 대사관 건물이나 인터뷰기사를 통해서만은 아닙니다. 제가 베를린에서 평양을 처음 접한 것은 백화점에서였습니다.

점퍼를 하나 사러 백화점에 갔더니 북한 말씨가 옆에서 들려왔습니다. 비록 김일성 또는 김정일 배지를 가슴에 부착하지는 않았지만 말씨나 옷차림이 분명히 북한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었는데 대사관에 근무하는 듯한 북한인이 고위간부를 모시고 백화점에 와서 쇼핑을 돕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하급관료는 비록 하급일지라도 외국에 나온 만큼 출신성분이나 경력이 괜찮은 엘리트일 텐데도 바싹 마른 얼굴에 깡마른 몸집으로 아직도 ‘고난의 행군’을 계속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반면에 평양에서 출장 왔는지 대사관에 근무하는지 모르겠으나 고위간부는 풍채도 좋고 얼굴에 살도 올라 있었습니다. 북한에선 엘리트 사이에도 이렇게 차이가 큰 것인지 아니면 원래 체질이 다른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반도 사람을 만났다는 반가운 마음에 말을 한번 걸어볼까 어쩔까 망서렸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저의 한국말을 듣고도 가만히 있는데 굳이 말을 걸기가 어색했습니다. 딱히 할 말도 없겠지요. 게다가 GH의 ‘유신 흉내내기’로 인해 정부의 사전 허락 없이 북한인과 접촉했다고 국가보안법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걱정도 작용해 결국 서로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베를린에는 15명의 대사관 직원 외에도 가끔씩 북한인들이 들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독일어를 가르치는 Goethe Institut에도 북한인 두 명이 와서 잠깐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 두 명은 독일어 고급과정(거의 독일인 수준)에서 공부했는데, 쉬는 시간에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했다고 합니다. 북한인들이 외국에 나오면 반드시 감시인이 붙어 있는 걸로 우리는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는 걸 이 경우가 보여주는 셈입니다.

독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는 북한인들이 몇 명 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가급적 많은 북한인들이 서양으로 나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그리고 서양문화를 보고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이 그걸 직접 지원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의 반발을 살 수 있겠지요. 그러니 UN과 같은 국제기구나 EU가 그걸 담당하고 한국이 거기에 자금을 보태는 방식이 어떨까 싶습니다. 이런 일은 GH정권과 같은 보수정권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한편, 저와 이 사장은 베를린을 둘러보는 가운데 알렉산더 광장(Alexander Platz)에서 다시 한번 평양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래의 세계시계(Weltzeituhr)가 바로 그것입니다. 세계 150개 이상 도시의 현재 시각이 표시되어 있습니다. 베를린에서 ‘만남의 장소’로도 널리 활용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진을 잘 보시면 평양이 맨 위에 있고, 그 밑에 Tokio(도쿄), 그리고 맨 밑에 Seoul이 있습니다. 이 세계시계는 동독정권이 만든 것이라 Seoul은 원래 표시되어 있지 않다가 독일 통일 이후에 추가되었다고 합니다. 지리적으로 볼 때 Seoul이 아래쪽에 있고 평양은 위쪽에 있으니 이게 어쩌면 자연스런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그러면 도쿄가 맨 밑에 가야 하는데). 하하하.

이상 오늘은 베를린 속에서 본 평양의 이모저모를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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