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의 베를린 통신] 독일 축구영웅과 여성운동영웅의 추락

김기원(방송통신대 교수, 경제학)

한국에서도 “시민 없는 시민운동” “여성 없는 여성운동” “노동자 없는 노동운동” 비판 가능

최근 며칠간 독일은 Uli Hoeneß의 재판으로 떠들썩했습니다. 신문 방송의 톱 뉴스였으니까요. 그래서 도대체 이 사람이 누구인가 했더니, FC Bayern Munchen(아래 사진)이라는 축구팀의 구단주였습니다. 저는 축구에 대해 문외한입니다만, 이 축구팀은  꽤 유명한 모양입니다.

              

그는 1970년대엔 독일 축구팀 선수로 맹활약하면서 월드컵을 따냈고, 그의 활약상을 기리는 우표까지 발행될 정도였습니다.  

그런 그가 작년에 탈세 죄로 기소되어 엊그제 3월 14일에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입니다. 축구영웅이 감옥에 가게 되었으니, 축구에 열광하는 독일 국민들이 커다란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축구선수로서만이 아니라 구단운영주로서도 뛰어난 사업수완을 발휘했고, 그렇게 번 돈을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로 예금해두었다가 들통이 난 것입니다. 독일정부가 몇 년 전에 스위스은행 직원에게 거액을 주고 비밀계좌 리스트를 넘겨받을 수 있었던 덕분에 이런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정보화시대라는 게 참 묘해서 개인정보가 함부로 해킹당하기도 하지만, 개인이나 국가의 어두운 치부가 쉽게 드러나기도 합니다. 몇 년 전 한 양심적인 미군병사가 WikiLeaks의 Assange에게 미군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저지른 추악한 행태 따위를 폭로하는 파일을 넘긴 바 있었지요.

그리고 NSA의 직원이었던 Snowden은 미국이 George Orwell의 소설 에 나오는 Big Brother처럼 세계 각국인사들을(심지어 우방의 지도까지) 감시하는 실태를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건 엄청난 분량의 문서를 CD 몇 장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형태로 보관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Uli Hoeneß는 약 2,800만 유로(약 400억 원)를 탈세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처벌을 피하려고 2013년 초에 탈세에 대해 자진신고를 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로부터 기소당하기 전의 자진신고가 불완전했다고 해서 실형을 선고한 것입니다.

Hoeneß는 사건이 터지기 전에는 독일인의 role-model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의 재벌총수처럼 회사 돈으로 생색을 내는 게 아니라 개인 돈으로 수백만 유로를 기부했으며, 어려운 축구 구단이나 선수들을 여러모로 지원하기도 했습니다.(아래 사진은 그에 대해 선처를 호소하며 재판정 앞에서 벌이는 시위입니다. 문구는 "Uli Hoeneß에 대한 선처를! 그는 많은 좋은 일을 한다"입니다.

              

그런데도 독일법원은 예전의 한국법원처럼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어쩌고”하면서 봐주는 식이 아니라 추상같은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판결을 보면 형기 중에 쉽게 석방할 수 없도록 하는 대목까지 들어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Hoeneß가 선고가 떨어지자 아예 항소를 포기한 사실입니다. 항소, 상고를 통해 조금이라도 형이 줄어들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과오를 깨끗이 인정하고 옥살이를 감수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그가 수감될 감옥에선 축구경기를 할 수 있는 운동장이 마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그는 감옥에서도 축구감독을 하면 되겠지요. 저는 이 점에서 독일 축구영웅은 역시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질구질하지 않은 것이지요. 혹시 한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나요.


              

한편, 또 한 명의 독일영웅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Hoeneß의 탈세 문제가 부각되면서 작년 상반기에만도 약 8,000명의 독일인이 스위스 은행예금 신고를 했는데, 독일의 유명한 여성운동가 Alice Schwarzer(위 사진)가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는 걸 독일 주간지 Der Spiegel이 금년 2월에 터트린 것입니다.

보도에 따르면, Schwarzer는 스위스 은행예금을 통해 지난 10년 간 20만 유로를 탈세했습니다. 그걸 작년에 자진 납부했고, 그 사실이 언론에 드러난 것입니다.

그녀가 어느 정도로 유명한가 하면 바로 그녀의 탈세문제를 둘러싸고 유명한 텔레비전 프로('Hart aber Fair', ‘딱딱하지만 공정한’)에서 토론을 진행할 정도였습니다. 당사자인 Schwarzer는 출연하지 않고 그녀 친구와 정치인 등이 나왔습니다.

우연히 이 프로를 보고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도 찾아보았습니다. 잠깐 그녀의 이력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942년생인 독일 출신의 그녀는 1970년에 Simone de Beauvoir, Jean-Paul Sartre와 같은 프랑스 유명인사들과 사귀고 프랑스에서 여성해방운동조직을 창립합니다. 그리하여 낙태합법화, 여성의 자유로운 성(性), 여성의 경제적 독립 등을 주창해 나갑니다.

1977년에는 잡지 를 창간하고 Talkshow 사회를 보기도 합니다. 오늘날까지 저술한 책은 20여권에 이르며, 그 중 <아주 작은 차이>, <사랑받지 않을 용기>는 한국어로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독일의 성매매 합법화를 비판한 책 (성매매 - 독일의 추문)을 출간했고, 이 출간행사장에는 성매매여성들이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사진의 문구는 "Alice는 입 닥쳐라. 내 직업은 내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여성단체들이 성매매금지법을 제정하자, 성매매여성들이 여성단체로 쳐들어간 것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그녀의 여성운동 과정에서 어떻게 스위스 비밀계좌에 막대한 예금을 넣어둘 정도로 돈을 모았는지 놀랍습니다. 비록 Hoeneß에 비하면 작은 돈이지만 20만 유로의 탈세라면 원금은 아마도 100만 유로 이상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80년대부터 스위스은행에 돈을 넣어두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번에 자진납부한 돈은 90년대 중반이후부터의 예금에 해당합니다(세금추징 시효 10년). 따라서 그녀가 비밀예금한 원금은 100만 유로 이상이겠지요. 한국에서의 시민운동은 배곯는 일입니다. 어떻게 독일에서의 여성운동은 배부른 일이 될 수 있는지 비결이 궁금해지네요. 한국의 시민운동단체에서 초청해 들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정작 황당한 것은 Spiegel지가 보도를 한 이후의 그녀 태도입니다. 그녀는 보도를 불법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좀 뻔뻔하지 않습니까. 그녀와 같은 공인의 탈세 사실이 보호되어야 할 사생활일까요. Hoeneß와는 달리 그녀는 아직 기소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조사를 시작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그녀의 자진신고가 인정되어 기소되지 않고 그냥 넘어갈지 아니면 Hoeneß처럼 기소될지 아직은 모르는 일입니다. 그리고 비록 기소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녀가 탈세를 목적으로 스위스은행에 불법으로 예금했다는 사실은 지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도리어 언론을 비판하고 나섰고, 심지어 자신은 성매매업자들의 복수에 희생된 것이라고까지 발언했습니다.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로 말입니다.

또 그녀는 사건이 터지자 100만 유로를 출연해 여성인권재단을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우리나라 재벌총수가 처벌을 모면하려고 갑자기 사회기부를 발표하는 것과 비슷하지요. 그녀의 사례는 Hoeneß가 깨끗하게 항소를 포기한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사실 그녀는 이 사건 이전에도 스캔들을 일으킨 바 있습니다. Koln 시가 비영리활동을 한다는 조건 하에 무상으로 임대해 준 건물을 재임대해서 임대료를 챙기고도 그걸 시에 납부하지 않았습니다.

또 동성애 여성들로 하여금 coming-out을 부추기는 운동을 벌이고는 정작 자신은 2011년까지는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비밀로 했습니다. 나중에 드러나기로는, 그녀는 남자들과도 동거했고 여성들과도 동거했습니다.

지난 글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독일은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사회입니다. 하지만 우리보다 못한 점도 있고 우리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기도 합니다. 축구영웅과 여성운동영웅의 탈세는 독일사회도 한국사회와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음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독일은 한국과 달리 정부가 이런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한국인들 중에도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박정희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대해서도 여러 이야기가 있지요.) 그런데 한국은 이런 비밀계좌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게 독일과 한국의 차이이겠지요.

그리고 탈세사건과 관련해 독일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었습니다. Hoeneß는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구질구질하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Schwarzer는 적반하장의 발언으로 사람들을 실망케 했습니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이노라”인가요 어떤가요.

한국의 여성운동에 관한 책은 여러 권이 나와 있습니다. 하지만 여성운동의 어두운 면 또는 한계를 다룬 책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국여성운동의 약간의 문제점을 체험한 바 있습니다만 전체적인 모습은 모릅니다. 누가 이런 걸 한번 다뤄보면 어떨까요. “약자 죽이기”일까요 “약자 거듭나게 하기”일까요.

Alice Schwarzer를 비판한 여성 저자의 책에 “Alice im Niemandsland, Wie die deutsche Frauenbewegung die Frauen verlor"라는 게 있습니다. 유명한 동화책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해서 <아무도 없는 나라의 알리체, 어떻게 독일여성운동은 여성을 잃어버렸는가>라는 책을 쓴 것입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시민 없는 시민운동” “여성 없는 여성운동” “노동자 없는 노동운동”이라는 비판이 가능할 것입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의 시민운동, 여성운동, 노동운동을 거듭나게 하기 위한 냉철한 비판이 요구되는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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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 교수는 그간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를 비롯하여 다양한 영역의 문제에 대해 대안 제시와 함께 진보진영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바 있으며, 이러한 시도는 생산적인 토론과 함께 앞으로도 침체된 운동이 일어서는데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김기원: 서울대 경제학과(박사), 일본 동경대 사회과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미국 유타대 객원연구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현 베를린 자유대학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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