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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 사람들

0000년 00월 00일

야구 열기가 한창인 때 인천 만수동에서는 사람이 죽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신현기. 쉰을 넘긴 이 사람은 인천 만수동에서 강제철거를 반대하던 지역 주민이다. 돌아가시기 바로 전 날에도 강제철거를 반대하며 열심히 활동하시던 분이다. 그 사람의 죽음이 자살이었는지 타살이었는지는 모른다. 시신을 둘러싸고 주민들과 신현기씨의 가족들은 염을 할 수 있도록 시신을 넘겨 달라고 했단다. 그런데 경찰과 남동구청장은 그럴 수 없다고 하며 시신을 돌려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정히 시신을 돌려 받기를 원한다면 신현기씨와 같이 찍은 사진이라도 가져오라고 했단다. 지역 주민과 유족은 사진도 가져갔다. 하지만 돌려받지 못했다.

신현기씨는 고아였다. 하지만 어린 시절 어느 집에 입양되었고 양부모와 형이 버젓이 생존해 계신다. 그들은 다만 호적 정리만 하지 않았을 뿐이다. 남동구청장은 이들이 법적인 가족이 될 수 없으므로 시신을 돌려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행정에는 인정이라는 게 존재할 수 없다고 했단다.

그 사람의 유족과 지역주민들의 원성을 뒤로하고 남동구청측에서는 시신을 몰래 빼돌려 화장을 시켜 버렸다. 고 신현기씨가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힐 수 없다. 이미 타버린 잿더미 속에서 강한 의혹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너무나 잔인하다. 행정에는 인정이 개입될 수 없다고 하는 그 구청장의 말에 공감을 하는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 누가 뽑아준 구청장인데... 남동구청장은 이번 구청장 선거에 또 나온다고 한다.

만수동 향촌마을에는 아주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전세금도 그다지 높지 않았으며 대부분 보증금 삼사백에 월세를 내는 세입자들이다. 주택공사측과 남동구청은 향촌마을을 재개발도 아닌 환경개선지구로 만들어 그들을 내몰았다. 그들에게 그들의 보증금 삼사백을 쥐어준들 그 사람들이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 주공과 남동구청은 자기들은 할 바를 다했다고 했고 지역 주민들의 항의를 보상금을 노린 항의라고 치부하고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들을 내몰고 트럭이 들어선다. 그집의 가구며 세간 살이를 끄집어 내서 마구잡이로 트럭에 실고 저 멀리 공터로 가져간다. 바로 전까지 잠을 자고 밥을 해먹던 사람들이 넋을 잃고 그자들이 하는 행동을 볼 수 밖에 없다. 망연자실한 그 사람들 앞으로 고물상들이 들이 닥친다. 미처 빼내가지 못한 것들 중 쓸만한 것들은 고물상들이 집어간다. 그 작업이 끝나면 포크레인이 집을 뭉게 버린다.

철거가 시작된 첫날 어떤 어미의 작은 아이가 유치원에 갔다 와서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집이 없어" 엄마는 눈물을 꾹 참았다. 두어시간 뒤 중학교 다니는 큰 아이가 와서 엄마에게 같은 말을 한다. "엄마. 우리 집이 없어" 엄마는 애써 참았던 눈물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갈 곳이 없는 지역 주민들은 어디 놀러 갈 때 짐 몇가지 챙기듯 옷가지 몇개만 달랑 들고 나왔다. 왜 짐을 많이 챙겨 오지 못했냐는 질문에 갈 곳이 없는 사람이 그 짐을 다 어디에 갖다 놓을 수 있겠냐고 한다.

사람들은 저 멀리 무너져 가는 집들을 보면서 한마디씩 한다. 오늘은 아무개네 집이 무너지겠고만. 저걸 어째. 저긴 아직 사람이 살고 있는데. 어이 이봐. 오늘은 자네 집 차례야.

그들의 옷차림은 아직 겨울이다. 요 며칠새 날씨가 푹해서 이제 봄 옷을 입어야 할 때다. 하지만 그들에겐 갈아입을 옷 조차 없다. 철거반이 실고간 이 사람들의 옷가지는 마구잡이로 옛날 비닐을 엉기성기 엮어 만든 쌀푸대자루에 들어가 집합장소에 갖다 놓는다. 그들의 옷가지들은 푸대자루 안에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먼지 풀풀 날리는 곳에서 이리 저리 뒹굴고 있다. 그 옷가지를 찾는다 한들 그들이 다시 걸칠 수 있을 것인가.

학교에서 헐래벌떡 뛰어온 손녀가 땀을 뻘뻘흘리는 것이 안스러워 할머니는 자신의 지갑을 열고 백원짜리 동전 다섯개를 쥐어주시며 하드 사먹으라 하신다. 아이는 신이 나 동전을 쥔 손을 꼭 쥐고 밖에 나가려 하지만 어른들의 제지를 받는다. 혼자 나가면 위험하다. 아이는 체념하고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 앞에 앉아 놀이를 한다.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가 옆에서 내내 인상을 쓰며 울며 불며 난리다. 온갖 짜증 다 낸다. 이유를 들어보니 유치원 갔다 오면서 예쁜 지갑을 봤는데 사천오백원이란다. 아이의 엄마는 그걸 사 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한 마디. 꼭 필요한 거 아니면 사 줄 수 없어 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엄마의 단호한 말에 아이는 대성통곡을 한다. 그 어미가 나에게 자신의 힘든 얘기를 하며 눈물 짓는다. 아이가 어미의 눈물을 보며 더이상 지갑 사달라고 조르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다. 아이는 밖에 나가 언니들과 시장놀이를 한다.

쉰이 넘은 아낙의 친정아버님이 같이 살고 계셨다. 아버님의 연세 90을 바라 보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 그 아낙이 아버님께 항상 말했다. 아버지. 무슨 일 생기면 아버지가 119에 신고해서 병원으로 가셔. 아버님은 요 근래 병원 신세를 지신다. 가까이 있는데 왜 안오냐고 하신단다. 어버지. 내가 거기 갈 상황이 아니야. 갑자기 울컥하며 그 아낙은 혼자 울먹이며 말한다. 차라리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면 좋겠어.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 자신의 말에 비통함을 느껴 그 아낙은 대성통곡을 한다.

어미는 지금 기거하는 철대위 사무실도 무너지면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아이들을 어떻게 천막생활을 하게 할 지 막막하다. 지금이야 날씨가 차가우니 조금 괜찮지만 더운 날씨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활을 하면 전염병 문제도 심각하다. 큰애가 아토피라 더 걱정이다. 중학교 다니는 아이는 한참 사춘기라 더 걱정이다. 이러고 살아야 할까? 차라리 죽어 버릴까 생각도 많이 한다.

그 사람들에게 죄가 있을까? 가난한 것이 죄인가?
권력을 쥔 자들이 서로 짜고 그들을 거리로 내몰고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았다.

일제시대 때 조선민들은 일본에 의해 조직적으로 자신의 삶을 파괴당했으며 조선민들은 판자로 움집을 만들어 생활해야 했다. 홍수가 나도 그들은 망연자실 자신의 허름한 집이 떠 내려 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고 마을로 나와 거리의 쓰레기를 주우러 다녀야 했다.

지금은 2006년이고 대한민국은 독립된 한 국가다.

이런 데서 과거 식민지시대 권력자들이 조직적으로 유린하고 죽여온 조선민들과 같은 수모를 겪어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되는 일이다.

저의 바람은 온 국민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겁니다.
재산이 넉넉치 못하는 것이 죄가 될 수 없고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글쓴이 : 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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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25 12:06
고 신현기씨 사체 수습에 대한 정정
법적인 문제가 불거질 거 같아 현재 알고 있는대로 다시 정정합니다. 신현기씨의 사체가 화장되었는지는 어느 누구도 확인한 바 없습니다. 남동구청측에서는 시신을 빨리 수습하는 것이 죽은자에 대한 예의라며 어느 공동묘지에 묻었다는 기사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에 묻혔는지 구청측에서는 알려준 바 없다고 합니다. 화장에 대한 건은 지역 주민들 측에서 나온 말인데 병원에서 신현기씨의 사체로 추정되는 것을 빼내 화장터로 옮기는 것을 봤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체가 어디에 안치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구청측만이 알고 있습니다
재원 덧글 수정 덧글 삭제
2006.03.26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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