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성지훈 기자


수현

현직 (수습) 기자. 어릴 때부터 딱히 기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일은 사회 운동 활동가였는데 집안과 주변의 반대를 떨쳐 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절충안이 기자. 이번 대담은 본명 대신 이니셜로 쓰겠다는 담당 기자의 꾐에 넘어가 회사에 대한 불만을 잔뜩 얘기했다. 하지만.

현우

병을 앓고 난 후 “정말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게 됐다”고 말한다. 지금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NGO 단체에서 재무 회계 담당자로 일한다. 박봉에도 (생각보다 훨씬 박봉이다!) 빚도 갚고 생활도 이어 간다. 대담이 이뤄진 날 즈음이 회계 감사 시즌이라 피로와 스트레스에 절어 있었다.

정찬

대학원에서 정치학을 공부한다. 석사 과정. 교수님 연구실에서 알바 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버는 중. ‘청년패널’의 대표 흙수저를 자처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취업보단 하고 싶은 공부를 꾸준히 이어 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강단 있는 남자.

지우

대학 2학년. 아직 취업 전선까진 거리감이 좀 있다. 하지만 공부하기 싫어서 빨리 취업하고 싶다. 얼마 전 글을 쓰고 처음으로 받은 원고료의 감동을 잊지 못하고 있다. “이 맛에 취업하나 봐요”라는 명언을 남겼다.


청년 실업이니 이태백이니 하는 시사 용어들은 취업을 준비하며 시사 상식 책에서 봤다. 지원한 회사에서 서류 광탈한 밤, 떡이 되도록 술을 마시고 첫차를 타러 걸어가던 강남역 거리에서 토익 책을 끌어안고 가는 취준생 무리를 마주쳤을 때, 사는 게 뭐 이따위인가 생각했다. 취준생 신분으로 맞이한 설날, 서른 가까운 나이에 세뱃돈을 받는 것도 싫고

못 받는 건 더 싫은 그 비참하고 더러운 기분을 누구에게 토로할 수 있을까.

가까스로 들어간 회사에서 추가 수당도 없이 밤새도록 일을 하고 상사의 비위를 맞추고 가끔은 성희롱도 감내하고 돈을 벌지만 어쩐지 빚은 줄지 않는 이 생활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해서 회사에 다녀야 할까. 전공이나 꿈 같은 건 애초부터 취업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도대체 뭘 위해 일해야 하나. 이렇게 될 걸 사실 모르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취업이 하고 싶었지?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나.

수현 대학에 다닐 땐 사회 운동을 하는 활동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 가족들이랑 대판 싸우게 될 것 같았죠. 그래서 찾은 타협점이 기자예요. 기자가 되고 싶다고 어릴 적부터 생각한 건 아니어서 저널리즘에 대해 뭔가 확실한 꿈이 있던 건 아니었고요. 전공도 철학인 데다 교지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니, 비교적 쉽게 선택한 직업인 거죠. 심지어 고등학교 땐 이과생이었어요. 원래는 수학 선생님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단 기자가 되면 번듯한 직업이 생기는 거고 집이나 주변의 압박에서 좀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 집의 경제 사정이 워낙 안 좋았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취업해서 돈을 벌어야 하나 아니면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공부가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고 일반 회사의 위계질서 강한 조직 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결국 계속 공부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적인 문제에 대한 부담과 고민은 있죠.

현우 학교를 졸업하고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 갔더니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고…. 그때 삶에 대한 마음 정리를 다 했는데 나중에 다시 살 수 있다니까 삶이 너무 좋아지더라고요. 죽음을 앞에 두면 사람은 되게 단순해져요. 정말 필요한 것밖에 안 보이니까요. 치료를 다 받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하는 일도 그전에는 생각만 했던 일이었어요. 교회에서 하는 일도 여러 영역이 있는데 직접 해 보지 않으면 말로만 듣는 거랑은 실체가 많이 달라요. 지금은 돈을 버는 것보다 직접 보고 공부하려는 생각이 더 커요. 학생 때부터 관심 있던 북한 인권과 관련된 일을 하고 강연도 들을 수 있고요.

지우 저는 빨리 취업하고 싶어요. 공부하기 싫어요. 주변에 회사 다니는 분들 보면 멋있고 부럽고 그래요. 지금은 일단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요. 얼마 전에 글을 쓰고 원고료 5만 원을 받았는데 이게 감격스럽더라고요.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을 벌었다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사람들이 왜 일을 하는지 알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금 처한 상황이 제각각 다르고 전망도 다르다. 어쨌든 취업을 해서 돈을 벌고 싶은 사람, 힘들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는 사람, 처음으로 번 돈의 감동을 잊지 못해 얼른 취업하고 싶다는 사람.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세운 계획과 전망대로 그들의 삶이 진행되도록 가만히 놔둘 세상이 아니라는 데 있다.

# “자소서 스토리 만들려고 소녀상 동상을 닦아요”

수현 대학 때 줄곧 학교 근처에 살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학교를 겉도는 느낌이 들었어요. 학교 수료를 할 때쯤 (수현은 아직 졸업을 못 했다. 졸업 요건인 한자 시험을 보지도 않았다.)  연애도 실패했고, 만날 술 퍼먹고 늦잠 자다가 취업 스터디에 늦고. 그렇게 공부도 안 하고 원서 썼다가 떨어지면 또 술 먹고, 다음 날 스터디에 또 늦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오랫동안 취업에 고배를 마신 친구들이나 여기저기 원서를 많이 냈던 친구들이 계속 떨어지고 힘들어하니까 우울감과 자괴감 같은 게 왔어요. 자살 충동을 느낀다는 친구들도 있었고요.

지우 학교에 친한 언니 중에 사기업에 취직하려면 경영 학사가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는 언니가 있어요. 그 언니는 경영학을 혐오하는 사람이거든요. 3학년 올라가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해요. 주변에서 많이들 경영학을 복수 전공하는데 목표하는 곳이 마케팅 학사가 꼭 필요한 쪽이 아닌데도 혹시 몰라서 딴다고 하더라고요. 전 공부는 적성이 아니어서 고시나 대학원 진학은 생각해 본 적이 없고 경영학 복수 전공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지금은 토익 공부나 기웃거리고 있어요. 신문사에 들어가는 게 어릴 적부터 꿈이긴 한데….

현우 전 취업하는 데 엄청 어려움을 겪고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대신에 그걸 힘들어하는 친구들을 옆에서 많이 봤는데, 가장 와 닿았던 얘기는 고시원에 살면서 취업 준비 하는 친구 얘기였어요. 고시원 방이 너무 좁고 싫고 답답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좁은 방 안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해지더라는 얘기요. 그 친구는 그렇게 익숙하고 편안해지는 게 더 싫었다더라고요.

수현 자기소개서에 쓰기 위해 국토 대장정을 갔다는 얘기는 이제 너무 흔한 스토리죠. 자소서 스토리 만들려고 위안부 소녀상 닦으러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요즘엔 사회 공헌 활동을 적어야 하니까요. 자소서로 자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자소서 콘텐츠에 맞는 자기를 만드는 거죠. 국토 대장정 같은 건 이제 흔하니까 점점 더 새로운 걸 찾아야 하는 거죠.

현우 자소서에 쓰려고 아프리카로 여행을 가는 애들도 있다고 해요. 당연히 부모님 돈으로 가겠죠. 스튜어디스 취업 학원은 들어가면 성형 상담부터 한다고 해요. 회사별로 선호하는 스타일을 감안해서요. 외모도 스펙이니까요. 별게 다 스펙이 되는 거죠.

대학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의 취업은 사실 되게 단순해요. 그리고 그만큼 벽이 견고하기도 하고요. 학교나 사기업에 속한 ‘석사 후 연구원’으로 취업하거나 박사 학위를 위한 공부를 계속하는 거죠. 그리고 연구원은 비정규직이에요. 정규직이 되려면 박사 학위를 우선 따고 그다음에도 처세를 잘해야 해요. 석사 연구원을 하면서 박사를 하려면 돈이 많이 드니까 그때 쓸 돈도 미리 모아 둬야 하죠. 그렇게 박사가 되면 다들 ‘포닥’ (포스트 닥터의 준말)으로 시간 강사가 되죠. 공부하는 사람들의 최종 목표는 교수지만 그건 정말 하늘의 별 따기예요. 전 일단 외국에 갈 생각도 하고 있어요. 외국물이라도 먹어야 교수 자리에 도전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요. 공부하고 조교 생활 하면서 보니까 학사 과정에서 학벌이 제일 중요하더라고요. 장학금을 비롯한 좋은 기회는 다 같은 학부 출신들에게 돌아가요. 성적과 상관없이. 능력과 상관없는 학벌 권력이 명확한 편이에요.

# “차라리 학벌을 세탁하래요”

‘스펙’은 2004년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신어 자료집에도 등록됐다. 개인의 노력으로 스펙을 ‘쌓을’ 수 있게 됐지만 결코 쌓을 수 없는 스펙이 하나 있다. 학벌이다. 스펙이 계급으로 변신하는 지점이다.

지금 당장 취업 전선에 뛰어든 건 아니니 제가 직접 학벌 때문에 기회가 박탈된 경험은 없어요. 그래도 본 건 많죠. 학부를 갓 졸업하고 어느 연구원에서 일할 때 거기 정규직 연구원들은 특정 학교 출신이 대부분이었어요. 지금 있는 대학원에서는 같은 학부 출신이 아니면 장학금이나 외부에 나가 공부할 기회도 박탈되는 경우가 숱해요. 학벌을 빼고 보면 사실 실력은 다 엇비슷해요. 학벌이나 스펙도 실력이라고 한다면 그 실력이라는 게 십 년도 더 전에 본 수능 점수잖아요.

지우 대입 수시에서 모두 여섯 장의 원서를 썼어요. 그중 세 군데에 합격했는데. 세 개가 다 배치표상으로 비슷한 정도의 학교들이었어요. 그때부터 기준은 어디가 사회에 나가면 더 인정해 주는 학교인지가 됐죠. 점수 계단은 다 비슷한 정도였는데 어른들이 권해서 지금 다니는 학교를 선택했어요. 저희 학교는 학벌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스카이’가 아니라 소외받는 그런 애매한 단계의 학교라고 선배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요. 아는 지인 중에 헤드헌터 일을 하는 분한테 들었는데 “OO대 밑으로는 차라리 학벌을 세탁하라”고 하더라고요. 전 그게 잘 이해 안 되기는 해요.

수현 저 같은 경우는 워낙 보잘것없는 스펙이라 이젠 믿을 게 학벌밖에 없어서 차라리 학벌을 봐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농담이었다) 언론사 시험을 볼 때 ‘스카이’ 대학을 나오고 토익도 800점 이상에 한국어 능력 평가 점수도 나쁘지 않았던 애들도 종종 서류에서 떨어지더라고요. 결국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것 같기도 해요.

#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다가 보이는 시골 마을의 작은 집에 살면서 먹을 만큼만 농사를 짓고 책을 읽고 글을 쓰다 가끔 마을 공동 작업장에서 알바나 하면서 안빈낙도, 유유자적하는 삶. 아니면 대학가 모퉁이에 작은 술집을 내고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요리를 내놓고 단골손님과 수다를 떠는 삶. 내지는 동유럽에서 남미로, 인도에서 아프리카로 떠돌며 현지 음식을 먹고 원주민들의 노래를 배우고 가끔은 여행지에서 낯선 연애를 하는 삶. 그런 삶을 꿈꿨다. 멋진 전문직이 돼서 드라마에 나올 법한 삶을 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것 모두 망상에 불과하다는 걸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 버렸다. 안빈낙도든 술집 주인이든 결국 처음부터 돈이 있어야 하고, 드라마에선 의사나 기자나 변호사나 영화감독이나 다 엄청난 스펙이 필요하다는 걸 말해 주진 않았다. 현실의 ‘직업 세계’는 그렇게 달콤하거나 녹록하지 않다.

취업이란 결국 생활의 문제가 되겠죠. 취업은. 그게 첫 번째일 거예요. 그래도 전 일, 직업이라는 게 거기에서만 끝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좋아서 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그걸로 돈도 버는 것. 그렇게 해야 내 삶을 내가 제대로 살고 있다고 증명할 수 있을 거예요. 그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버는 직업이 제 삶의 정체성이 되는 거겠죠.

현우 어차피 사람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해요. 어떤 형태든지 일을 하면서 많든 적든 돈을 벌고 살아야죠. 그러면 자기가 원하는 가치와 방향에 무게 중심을 잘 정하면 될 거예요. 더 많은 돈을 원하면 그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스펙도 쌓고. 꿈이나 전공은 조금 후순위에 두더라도요. 그게 아니라면 조금 더 적게 받더라도 자기가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 테고…. 자기가 원하는 삶이 무언지 잘 묻는 게 중요하겠죠.

수현 일단 취업이라고 하면 돈을 벌어야 한다는 느낌이죠. 그래도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하는지 묻는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저 인턴 할 때 한 달에 50만 원 받았거든요. 그런데 식비도 나오고 술도 사 주고 인턴 일도 재밌었고. 그때 ‘밥도 주고 술도 주고 50만 원씩 용돈도 주는데 평생 이러고 살아도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재미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면 삶은 어떻게든 살아질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벌써 예전 생각이고…. 앞으로 직업과 생계에 대해 생각이 계속 바뀌겠죠.

대담을 마칠 때 혼잣말로 “취업 같은 거 아예 안 하고 살 수는 없을까?”라고 중얼거렸다. 패널들에게 던진 질문은 아니었는데 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든다.

“부모님하고 친척들 등쌀을 견딜 수 있으면요.”

“서울에서는 안 돼요.”

“다른 데서 돈 나올 구멍이 확실하시면야 뭐.”

“결혼은 안 하실 거예요?”

잘못했다. 이 철없는 질문도 용납하지 않을 만큼 우리는 가혹한 땅에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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