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선, 한받을 듣다

단편선 / 사이키델리 포크록 밴드 ‘단편선과 선원들’의 보컬이자 프로듀서다. 포크 음악의 전형을 파괴하며 늘 새로운 사운드를 추구한다.
한받 = 야마가타 트윅스터 = 아마츄어증폭기. 2003년 아마츄어증폭기라는 이름의 솔로 프로젝트로 데뷔. 2010년 홍대 앞의 철거 농성장 두리반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고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네트워크 ‘자립 음악 생산 조합’을 결성했다.
사진 정운 기자

 

 

현재는 홍대 앞 클럽보다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춤추는 민중 엔터테이너, 야마가타 트윅스터로 활동하고 있는 음악가 한받을 만났다.

 

단편선() 요새 인터뷰는 많이 하세요?

 

한받() 최근에는 별로 없었는데, 한 달 전쯤에 ‘당신의 죽창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물어보는 친구가 있었어요.

 

죽창이라는 표현이면, 예술가의 무기에 대한?

 

예술가의 무기라기보다는 사회 현실을 헤쳐 나가기 위한 도구가 더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죽창이라는 표현이 제게 부담스러워서 처음에는 거절을 했죠.

 

한받 씨를 생각하면 죽창이 떠오르나 보죠?

 

몰라요. (웃음) 그 친구는, 제가 홍대 앞 클럽보다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 더 많이 활동하는 거로 알고 있어서 그랬겠죠. 그런데 그럼에도 시각 차가 있더라고요. 집회에서 주로 공연하는 민중 음악가들의 음악을 낡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제가 그 노래들에도 의미가 있다 얘기하니 조금 미안해하더라고요.

그런데 한받 씨도 오랫동안 음악을 깊게 들어 온 사람이잖아요. 일단 공공연한 피쉬만즈(Fishmans)의 팬이시고. 한받 씨와 비슷한 세대의 음악 팬들은 주로 스테레오 랩(Stereo Lab)이나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틴에이지 팬클럽(Teenage Fanclub) 그리고 아까 말한 피쉬만즈 같은 걸 들었던 것 같은데요. 그런데 집회나 시위 현장에서의 음악은 그런 종류와는 거리가 멀긴 해요. 좋고 나쁨을 떠나.

 

2007년~ 2008년쯤에 제가 기륭전자 단식 농성장에서 공연한 적이 있는데 그 자리에서 ‘강남 좌파’라는 말을 들었던 게 기억에 남아요. 그날 농성장에 온 사람들을 누군가 그렇게 표현했었어요. 나는 민중가요가 트렌디하거나 감성에 녹아드는 음악은 아니지만 현장 그 자리에서 메시지를 가지고 힘이 될 수 있는 음악이라 생각합니다.

 

한받 씨의 음악이 아이러니하다 느낄 때가 있어요. 일단 야마가타 트윅스터가 다루는 주제들은 인간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된다기보다는 타인의 부름 같은 필요에 의해 선택되는 것처럼 느껴져요. 민중가요도 필요에 의해 쓰였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죠. 그런데 그런 필요를 구현해 내는 한받 씨의 방식에선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져요. 일단 맥북으로 크게 음악을 틀어 놓고, 익숙지 않은 춤을 추고, 익숙지 않은 방식으로 노래를 부르니까.

 

내 색깔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나 너바나(Nirvana)를 들으며 느꼈던 희열이 나의 공연이나 음악에서 계속 발현되기를 바라는 거죠. 집회 현장에 낯설고 이상한 것을 가져와서 탈바꿈시키고 싶다는 소망이 있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한받 씨에게 “음악가답게 행동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음악가보다는 활동가 내지는 선동가에 가깝다는 것이죠. 그런데 저는 그쪽보다는, 시위에 대해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다른 공간을 만드는 것이 더 광범위한 의미에서의 예술가로서의 활동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미안해지네요. 아직도 자의식이 강해서.

 

그게 없어졌으면 해요?

 

아무래도 0으로 수렴하는 것이. 조금 모순적이지만. 기본적으로 저라는 사람이 내면으로부터 간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때문에 오히려 야마가타 트윅스터는 외부의 필요 때문에 만드는 노래에 최적화되고. 함수, f(x) 같은 거죠. x가 현장인데, 현장에 따라 결과 값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러한 수식 체계가 야마가타 트윅스터를 통해 발현되는 거죠. 예를 들어 오늘 화물연대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그럼 화물연대를 계속 생각해요. 물론 늘 하는 레퍼토리도 있지만 현장에 가장 맞는 노래를 만들어 나가는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예전에 아마츄어증폭기 때도 첫 곡은 그냥 멋대로 클럽 앞에서 기타 치면서 즉흥적으로 나오는 노래를 하거나 전봇대에 있는 글을 아무렇게나 읊으면서 노래했어요. 레퍼토리만 하면 내가 질리니까, 그렇게 하나씩 새롭게 했어요. 야마가타 트윅스터도 그 공간에 맞는 노래, 그 공간을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를 가지고 가는 거죠. 처음에는 사람들이 황당해 했어요. 홍대 앞의 관객들은 즐거워했는데, 시위 현장에서는 쫓겨나기도 했죠.

 

그냥 그런 공간에 가지 않고, 클럽에서만 할 수도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런 충돌을 원하는 사람도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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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한받 씨가 자의식을 조금씩 없애야겠다 말하셨을 때 놀랐어요. 그렇게 답변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심이에요? (웃음)

 

그것은 제 종교와 관련된 것이라서 이야기하기 민망한데. 제가 기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공연도 기도의 일종인가요?

 

어떤 측면에서는 샤먼 같기도 하거든요. 제가 항상 하는 퍼포먼스 중에 공간을 계속 부르면서 호명하는 게 있어요. 말로 그 공간이 죽지 않음을, 지지 않음을, 승리할 것임을 선포하는 거죠.

 

그러면 예술가가 아닌 음악가로서의 한받 씨는 어떤 목표가 있을까요?

 

그러니까 그런 게 항상 없었거든요. 음악적으론 더는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그렇게 하고 싶은 욕망도 없는 것 같아요.

 

0으로 너무 수렴된 것 아녜요? (웃음)

 

제 꿈 중에 원대한 것들은 예전에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꿈을 접으면서 모두 사라진 것 같고, 야마가타 트윅스터도 무슨 계획을 세우고 하게 된 것이 아니어서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라는 계획도 없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생경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늘 무언가를 설파하고 호명하고 유도하는 사람이라 무언가를 기대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한데요.

 

그래서 떨어져 나간 사람도 많을 거예요. 뭔가 대단한 계획과 포부와 야망을 품고 하는 것 같은데 실은 별 시답잖은 이야기만 하고.

 

그럼 이를 통해 한받 씨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되고 싶죠. (웃음)

 

마지막으로 《워커스》 독자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우리가 점점 더 기계를 닮아 가지만 인간성을 포기하지 맙시다. 이런 말을 하고 싶네요.

 

한받 씨 정말 복잡한 사람이네요. (웃음)

 

(워커스 6호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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