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성인

한국 정치와 사회 운동을 연구하면서 학술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며, 한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08년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로 인해 ‘금융 자본’에 대한 관심과 우려가 새삼 급증했고, 이에 따라 국가 독점 자본주의와 조직 자본주의 이론으로 유명한 루돌프 힐퍼딩(Rudolf Hilferding)의 대표 저작인 《금융 자본(Das Finanzkapital)》(1910)에 대한 관심도 늘어났다.

이러한 관심을 반영하듯이 그의 저작이 《금융 자본론》(김수행·김진엽 옮김, 비르투, 2011)으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의 저작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로자 룩셈부르크의 《자본의 축적(Die Akkumulation)》(1913)과 함께 금융, 독점, 제국주의 등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지속적으로 발전시킨 저작으로 인정받았다. 특히 힐퍼딩의 ‘금융 자본’ 개념은 레닌의 《제국주의론》(1917)에서 나타나는 독점 자본론과 제국주의론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금융 자본은 가장 지독한 독점 자본

힐퍼딩의 《금융 자본》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최근 국면의 경제적 특징을 마르크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이론 체계 안에서 과학적으로 파악하려는 시도이다(12쪽). 즉, 금융 자본을 제대로 분석해야만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 경향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힐퍼딩에 의하면 현대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자본의 집적과 집중 과정(processes of concentration)인데, 이 과정은 한편에서는 카르텔과 트러스트의 형성을 통해 ‘자유 경쟁을 제거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은행 자본과 산업 자본을 더욱 밀접하게 관련 맺게 한다(12쪽). 이렇게 산업과 은행이 결합함으로써 역사상 가장 지독한 독점 자본인 금융 자본이 탄생한 것이다.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금융 자본이 산업 자본에 대비되는 의미에서 화폐 부문의 자본 일체를 통칭하지만, 힐퍼딩 시대에는 오늘날의 금융 자본에 해당하는 것이 사실상 은행 자본 이외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로는 산업 자본으로 전화한 자본, 즉 은행에 의하여 자유롭게 되어 산업가가 사용하게 되는 자본”을 금융 자본이라고 불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은 규모가 확대되면 당연히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해진다. 그들은 은행을 통해 자본을 조달하고, 은행은 산업 자본을 통해 경제에 대한 지배력을 확대한다. 금융 자본이 출현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결합에는 정부가 반드시 개입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퇴임한 고위 관료들이 기업이나 은행의 고위직으로 옮겨 가는 일은 흔하다.

힐퍼딩은 산업과 은행의 관계에서 분석의 기본적인 축을 채무-채권 관계에 놓으면서 산업에 대한 은행의 우월한 지위를 증명하는 식으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카르텔화의 결과로 은행과 산업 사이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지고 동시에 은행은 산업에 투하된 자본에 대한 통제권을 점점 더 증대시키게 되는 것이다(330쪽).

그 이유는 은행이 ‘창업자 이득(promoter’s profit)’의 획득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은 주식(Aktien)의 발행 업무를 담당해서 창업자 이득을 독차지한다. 힐퍼딩은 “금융 자본은 주식회사와 함께 발달하며, 산업의 독점화에 따라 최고에 달한다”고 말한다. 은행의 산업 지배는 주식 소유를 통해서 나타나는데, 은행의 대주주가 은행 자본과 산업 자본을 동시에 지배하기 때문에 두 자본은 유착·융합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힐퍼딩은 금융 자본이 최고도로 발전한 자본 형태로 일종의 ‘삼위일체’를 이룬다고 한다. “왜냐하면 산업 자본은 성부로서 상업 자본·은행 자본이라는 성자를 낳았고, 화폐 자본은 성령이기 때문이며, 성자·성부·성령은 셋이면서 금융 자본에서는 하나로 통일되기 때문이다.”(324쪽) 이 성스러운 삼위일체는 국내외적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보호하고 관철시켜 주는 강력한 국가를 필요로 한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제외한 사회 계급이 이 성스러운 삼위일체와 연합한다. 이로써 국가 독점 자본주의가 형성되고 조직 자본주의가 형성된다.

힐퍼딩은 1915년에 발표한 논문 〈계급들의 노동 공동체?(Arbeitsgemeinschaft der Klassen?)〉에서 처음으로 ‘조직 자본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금융 자본은 조직 자본주의를 위한 전제라고 주장하는데, 총카르텔과 중앙은행의 결합을 통해 금융 자본은 경쟁 자본주의에서 조직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즉, 생산의 무정부성으로 인해 자본주의가 붕괴될 수밖에 없어야 하는데, 조직되고 관리된 자본주의는 무정부성을 극복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힐퍼딩은 조직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보다 쉽게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임으로써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그가 사회주의 이행의 구체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수정주의자라는 비판은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이론적 문제점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다섯 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앞 네 편은 이론적 논의를, 마지막 한 편은 실천적 논의를 다룬다. 이론적 논의는 화폐에서 시작하는데,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무정부성은 생산의 목표를 달성하기에 앞서 생산을 의식적으로 조직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 화폐를 통해 교환을 매개할 필연성은 상품 생산 사회의 무정부성에서 기인한다”(33쪽)고 하면서 화폐의 필연성은 생산의 무정부성에 있고, 자본주의 생산 모순의 본질 또한 무정부성에 있다고 강조한다.

힐퍼딩은 상품과 화폐의 대립만을 발견했고 화폐 이론을 더 발전시키지 않았다. 상품 생산에서 나타나는 사용 가치와 가치의 모순이 자본주의에서 어떻게 발전해 가는지에 대한 분석을 하지 못했다.

또한 채무-채권 관계에의한 은행의 일방적인 우위는 자본의 전체 재생산 과정의 관점에서 볼 때 실질적으로는 기업보다 오히려 은행에게 더 필수적인 존재 조건이다. 즉, 은행의 주도적인 역할은 본질적으로 산업 자본의 총체적 운동으로부터 파생된 역할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가 은행 자본의 일방적인 지배를 주장한 것은 “은행 자본과 산업 자본 사이의 관계에서, 우리는 더욱 초보적인 형태들인 화폐 자본과 생산 자본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한 관계를”(13쪽) 보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힐퍼딩이 당시 독일에서 나타나고 있던 역사적 경험을 이론화하여 ‘일반적’ 경향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다는 문제점이야말로 ‘일반적’이다. 어느 이론이 이러한 ‘일반적’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힐퍼딩의 《금융 자본》은 국제적으로 21세기 전 지구적 차원의 경제 위기와 자본 운동을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제공하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신용 불량’과 ‘빚’이 일상이 된 한국의 자본주의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훌륭한 지침서임에는 틀림없다.

 

(워커스 6호 201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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