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우, 하림을 듣다

인터뷰 · 김상우 / 정리 · 신나리 기자 / 사진 · 정운 기자

그의 입구로 들어가는 길은 아주 오래된 호텔 같았다

예약하지 않았지만 침침한 복도를 이유 없이 들어갔다

난 참 먼 곳을 여행중이구나란 생각도 그때 들었다

깊어질수록 더 깊고 오래도록 잠들고 싶었다

복도를 다 지나면 하얗고 큰 침대가 있을까?

복도 끝에서 들리는 느리고 긴 음

나를 모든 곳에 있게 했다

– 김상우의 들어가며


김상우(김)       음악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전공을 했나?

하림(하)       음악을 배우진 않았다. 동네 밴드 했다. 연신내에서 학교 밴드 하면서 락을 했다. 소프트한 락이었다.

군대에서 윤종신 형을 만났다. 종신이 형은 내가 ‘VEN’으로 활동한 것을 알고 있었고 이후 종신이 형이 제작을 준비했고 계약을 했다. 2001년 겨울 다중인격자 앨범을 냈고. 2002년부터 활동했다. 그리고 홍대 앞에서 버스킹을 했다. 수 노래방 앞이었는데 그곳이 복작복작 변해 합정동에 있는 물고기라는 카페로 옮겨서 연주하고 놀았다.

      여행을 많이 다닌다.

      20대 후반 그리스에 갈 때까지만 해도 자비로 갔고, 그 후로는 여행자로 소문나서 방송국이 나를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땐 여행하는 방법은 잊어버리고 일로 갔다. 일 때문에 촬영을 가서 개인적으로 시간을 내 악기를 사고 배우고 그랬다. 몽골, 아일랜드, 그리스, 아프리카 등등 이러다가 5~6년이 갔다.

      하림 씨의 음악은 참 민속적이라 생각한다.

      민속 음악들이 나에게는 대안이었다. 외국의 길에서 민속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내겐 자극이었고 민속 음악이 가진 시간의 축적, 그런 것이 주는 질문이 내게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음악이 존재하는데 나는 왜 짧은 음악을 두고 고민하는가 하는 게 내게 큰 화두였다. 짧은 시간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음악에 매력을 못 느꼈다.

      하림의 주제가 사랑이라고 해도 될까.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맞나.

      그거야말로 아무리 허무하고 쓸쓸하고 해도(먼 곳을 보며) 어쨌거나 연애를 하면서 헤어지고 그래도 사랑이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있다.

      사랑은 의무일까 ?

      사랑은 권리이자 우리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축복인 거 같다. 우리는 사랑할 권리가 있다. 우리가 아무리 시를 잘 쓰고 음악을 잘하고 가난해도 사랑할 권리가 있다. 한순간 축복을 느끼잖나. 남녀 간의 사랑일 뿐이지 라고 얘기하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온 존재들이 전부다.

      예술 없이 사랑을 얘기할 수 있을까.

      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예술은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한 좋은 도구일 뿐이다. 예술이라는 건 정말 신이 세상을 만들고 나서 사람들이 너무 못하니까 약간 비밀 언어를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이를 이해할 수 있는 유전자를 심어 주고 계속 세상을 통해 하게 하는 것. 아름다운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거다.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사랑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다.

      예술은 사랑의 힌트 같은 것이구나.

      예술 예찬론자는 예술과 사랑에 대해 얘기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는) 돈의 가치로는 판단할 수 없는 뭔가 있다. 그런데 난 예술보다 사랑이 위라고 본다. 이는 어떤 예술가도 부인할 수 없다. 사랑보다 예술이 위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술 애호가일 뿐이다.

      예술에 삶이 전복당한 이들도 많다.

      그건 아마 예술이 삶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잘됐다고 보기보다는 인간적으로 사주가 좋아서 잘 된 거 아닐까. 예술이 삶이라고 예술이 잘 되라는 법은 없다. 예술과 사랑이 가까운 사람이 아닐까 싶을까 하기도 하다. 예술이 삶의 고민이라고 하면 괴로워서 일찍 죽을 거 같은데, 안 죽으면 견딜 만한 것이다.

      활동 중에 인상적인 게 도하 프로젝트다. 정열을 많이 쏟았다. 영혼까지 털리는 거 같았다.

    지금 다 끝났지만 후회는 없다, 그때 그거 안 했으면 다른 거에 미쳤을 거 같다. 도박하거나 결혼하거나.(웃음) 도하 프로젝트 가지고 2년 비볐다. 누군가가 영역이 중요하다는 것을 2년 동안 그렇게 해서 알아야 하는 걸까, 질문한다면 해 봤으니까 진짜로 안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영역보다 자세가 중요하다는 생각도 한다. 영역 때문에 더 패했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그걸로 의무감을 삼을 필요는 없었다 싶기도 하다. 결국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도하(渡河), 강을 건너다란 의미다. 꼭 삼도천을 넘는 느낌이 든다. 만약 강을 건널 때, 악기 하나 들고 연주해야 한다면 어떤 악기를 잡겠나.

      피리 하나 들고 갈랜다. 짐 되는 것도 싫고 음이 많이 나오는 것도 싫고 구멍 6개짜리 피리. 주머니에 딱 꽂아 넣고. 느리고 긴 음을 최대한 오랫동안 연주할 수 있는 악기를 꺼낼 거 같다. 그저 느리고 긴 음을 내고 싶다.

      하림은 새로운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요즘 새로운 것은?

      그림을 그린다.

      (하림의 그림을 보며) 이중섭 그림 같다.

      그림을 그려 보니까 나의 그림체가 있는 거 자체가 중요했다. 그러면서 재밌어졌다. 내가 원하는 선의 스타일 같은 것.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그림을 그리게 되고 위안이 됐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열심히 그려야 하는 거 같다. 크게 그리고.

      그림으로 멈추지 않고 팔기도 한다.

      그건 운이 좋아서. 그림이 팔릴 때 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아, 이게 나도 인간으로 어쩔 수 없는 욕망이 있구나 깨달았다. 자본주의 사회니까. 남들이 인정해 주고 봐 주는 것도 있고. 솔직히 재능으로 팔았다는 생각은 안 한다.

      하림은 커서 뭐가 될까. (머리를 보며) 스님은 어떤가.

      별로다. 세상은 잘 돌아가는데 내가 산속에 들어앉아서 진리를 아는 척하고 그건 아니다. 지금까지는 숨어 있는 시기였던 것 같다. 마음을 열어야 할 거 같다. 그 전에는 마음을 좇아 다녔고. 일단 앨범 내야 한다.

      알파고와 대결해야 한다. 하림만의 무기가 있을까.

      느리고 긴 음을 연주할 것이다. 요즘은 볕이 드는 시간에 일어나 그 자리에 앉아 있으면 볕이 천천히 지나가더라. 볕이 다 지나가도록 오래 앉아 있곤 한다. 햇볕은 사랑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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