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관

참세상연구소(준). 《부채 전쟁》을 함께 지었고 참세상 주례 토론회를 기획하고 있다.


 

박근혜 주연-김종인 조연

4.13총선에 대한 평가가 채 마무리도 되기 전, 구조조정이라는 말이 청와대와 행정부가 아닌 야당 대표자들 입에서 먼저 튀어나오고 말았다. 수권정당, 경제정당의 이미지를 내세워보고 싶었던 야당 대표가 도산위기에 처한 한계기업과 산업전반에 대해 구조조정이라는 정책 기조를 먼저 꺼낸 것이다. 여기에 질세라 다른 야당 대표는 조정수준이 아닌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며 “구조개혁”이라는 말을 쏟아냈다. 총선 대참패로 식물정당이 돼버린 여당의 빈자리를 두 야당이 점유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우연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와 때를 맞춰 박근혜 대통령도 부실기업 구조조정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곧이어 ‘국가재정건전화법’도 제안했다. 20대 국회의 여소야대 국면에서 이 법의 통과여부는 불분명하다. 다만 위기의식을 고조시키면서 총선참패 국면을 전환할 쏠쏠한 카드임은 확실해 보인다. 더욱이 야당 대표들까지도 구조조정을 피력한 마당에 억지로 구조조정 드라이브를 걸 수고를 덜게 된 것이다. 어쩌면 청와대는 내심 기뻐했을 수도 있다.

 

2년 전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로 공공부문 개혁의 불을 붙였던 박근혜 정부는 당시 적지 않은 정치적 성과를 거뒀었다. 국가재정위기를 빌미로 대선 복지공약을 후퇴시킬 수 있는 명분을 쌓을 수 있었고, 실제 공무원연금 개혁(개악)을 관철하면서 정치적 실리를 얻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다시 ‘국가재정건전화법’을 제안했던 건 이런 정치적 성과를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정건전화와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일면 서로 상충하는 바가 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구조조정 대상들은 규모가 매우 커 구조조정을 위한 별도의 재원 마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구조조정의 중심에 서 있는 국책은행의 재원마련을 위해선 정부의 재정역할이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재정건전화를 앞세워 스스로 자신의 재정정책을 발목 잡는 건, 원활한 구조조정에 장애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해 대응하자고 주장하고 있고,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법인세 인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채권단 중심의 구조조정이라는 원칙적인 이야기만이 메아리치고 있다.

 

그런데 이미 구조조정 제1막은 마무리 단계에 있다. 가령 언론에 가장 많은 뭇매를 맞고 있는 대우조선해양 해양플랜트 부실사태의 경우, 이미 수 년 전부터 논란이 되었다. 그러다가 작년 여름 손실 은폐 의혹이 제기되면서 구조조정 대상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체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수의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이 실직됐다. 해양플랜트 사업에 몰려 있었던 사내하청 비정규직이 모든 희생을 떠안은 것이다.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조선3사의 2015년 기능직 사내하청 규모는 직영 노동자의 세배를 훨씬 넘는 12만 2000명 수준이었다. 이들이 일차적인 희생양이 된 것이다.

 

이런 하청 노동자들의 희생과 자산매각을 통해 대우조선해양은 작년 5조 원 대 적자 폭을 올해 1분기엔 대부분 만회했다. 또한 현재 수주 잔량도 3년 치 일감에 해당하는 426억 달러(약 51조 원)어치를 가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수주 잔량 세계 1위로 여전히 세계 2위 현대중공업이나 3위 삼성중공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도 1분기 흑자로 돌아섰다. 이로써 사실상 조선해양산업을 중심으로 하는 구조조정 제1막이 끝난 셈이다. 한창 난무하던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의 정부 주도 합병설도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다.

 

더민주 김종인 대표는 뒤늦게나마 주연으로 등장하여 경제전문가의 이미지를 얻고 싶었겠지만, 이미 조선해양산업의 구조조정은 사내하청 비정규직 희생이라 써진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다. 이들이 실제 숨겨진 주연이었고, 박근혜와 김종인은 조연으로서 마이크를 하나 들었을 뿐이다.

 

구조조정 제2막

 

정작 심각한 문제는 대형조선사들보다 해운 두 개 회사인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에 있다. 이들은 2000년대 금융버블 시기에 고정자산 비중을 줄이려는 금융적 경영행태 속에서 자기 배가 아닌 남의 배를 빌려서 운행하는 비중을 높였었다. 비유하자면 대출(용선)로 사업을 벌인 것과 같다. 배를 사서 운행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빌리는 비용이 더 작다고 판단된다면 이런 선택이 나쁘진 않다. 그러나 당시 금융버블이 최고조였던 2006-7년에 비싸게 빌린 배들이 많은 게 문제의 화근이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전 세계 해운산업은 곧장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는 세계적인 업황의 문제였기에 개별 회사들이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용선료는 금융위기 전의 6분의 1로 떨어졌지만, 당시 대부분의 해운사들이 장기계약을 했었던 터라 여전히 지금도 비싼 용선료를 지급하고 있다. 그래서 해운업 구조조정에서 용선료 재협상이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 가지 더 있다. 해운업의 특성상 국제적인 물류동맹을 맺는 것이 필수적인데, 구조조정에 놓인 이 두 해운사가 새로 재편되는 동맹으로부터 배제될 위험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과점적 시장이기 때문에 이 동맹에 끼지 못하면 국제적 수준의 영업망을 상실하게 된다. 마치 경기 택시가 서울에서 영업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용선료 재협상과 해운동맹 재편이라는 두 파고에 직면한 해운업은 사실상 정부의 전격적인 개입 없인 회생이 불가능하다. 오랫동안 자산매각 등을 진행하면서 버텼지만 사실상 별 뾰족한 해법이 되지 못한다. 고정된 용선비용은 불변이기 때문이다. 이런 곤란함은 비단 국내 해운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1위 해운사 머스크(덴마크)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일본의 국제 해운사들도 불황으로 휘청거렸다. 지금도 재무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국 정부의 강력한 자금지원과 중재 아래 대형선박들을 확보하고, 조선사들에 대한 발주 뿐만 아니라 채무 재조정도 원활히 진행하면서 재무 부담을 어느 정도 던 상태다. 정부의 전격적인 개입과 주도로 해운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의 구조조정이 시행됐던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해운업을 포기한다면 항만산업에 큰 타격을 줘 3조 원대 손실을 볼 것이라 예측되고 있다. 그래서 정부의 구조조정 제2막의 핵심은 해운업을 어떻게 처리할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앞서 지적한 대로 ‘국가재정건전화’로 정치적 위기의 탈출구를 찾고자 했던 박근혜 정부의 얄팍한 수는 두고두고 자기발목을 잡는 악수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다 보니 본인 입으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재점화 시킬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편 여기에 맞대응하는 더민주의 법인세 인상 카드는 사실상 정치공방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어느 정당도 과반을 얻기 못한 상태이기 때문에 세법개정을 필요로 하는 법인세 인상은 지리멸렬해질 가능성이 높다.

 

구조조정과 손실의 사회화에 대응하기 위해

 

이번 구조조정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노동력 재편 즉, 비정규직 해고과 인력재편을 중심으로 한 구조조정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부와 자본은 오래전부터 이를 준비해 왔다. 총선 전에 이미 기업활력제고특별법을 통과시켰고, 대우조선 사태처럼 노조로 부터 백기투항을 받아 노동자들의 예상되는 반발을 초기에 진압했다. 예정된 수순처럼 임금동결, 무파업선언, 퇴직강요, 정리해고 등등이 노동자들에게 강요돼 왔다. 나아가 정부의 노동개혁 아젠다와 맞물려 일반해고를 가능케 하고 취업규칙 변경을 완화하는 행정지침을 관철하려 하고 있다. 결국 이러한 인력구조조정에 날개를 달아줄 셈이었던 것이다.

 

더는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의 희생 속에서 진행되는 것을 중단시켜야 한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자본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현재 얘기되는 구조조정 쟁점부터 바꿔야 한다. 필요한 돈이 얼마인가를 따지는 채무조정. 몇 명을 어떻게 잘라내야 하는 인력조정 등 자본의 요구로 진행되는 논의가 아니라 자본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로 바꿔야 한다. 그 첫 번째 문제가 바로 사내유보금과 같은 재벌의 이윤에 대한 문제이며, 두 번째로 ‘한국판 양적완화’를 둘러싼 쟁점과 정치적 공방에 전향적으로 개입할 전략을 짜야한다. 이를 통해 ‘손실의 사회화’로 논의가 축소되는 걸 막고, 손실을 사회화시킨 대가로 되살린 기업으로부터 이윤을 어떻게 사회화 시킬 수 있는지 논의를 확대시켜야 한다.(워커스 8호 5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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