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동적 동성애 혐오자와 좌파 동성애자 사이의 뜻밖의 지적 융합에 대하여

미셸 푸코와 필립 리프의 관계는 직접적인 교류나 영향보다는 대조를 통해 이해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겉보기에는 이 둘은 서로 극단적으로 달라 보인다푸코는 동성애자임을 공개한 현재의 역사가였으며그의 경력 내내 급진 좌파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고결국 인문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학자 중 한 명이 되며 비공식적으로 인문학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었다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좌우 양쪽 모두에게 경멸의 대상이 되며 비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로 남아 있다.

급진 좌파 일부는 푸코를 실질적으로 ‘CIA 심리전 작전(psyop)’으로 간주하며그가 신자유주의의 전복적 설계자였다고 비난한다그들은 푸코의 영향력이 프랑스 좌파를 마르크스주의로부터 모호한 탈혁명적 정치 지형으로 이끌었다고 주장한다그 정치 지형은 공산당노동조합국가기구 같은 권위적 제도가 지닌 해방적 가능성을 믿지 않으며인간의 권리에 대한 보편적 정당성에도 점점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한편 현대 우파 진영 다수는 푸코를 여전히 비난하며그를 정체성 정치의 대두 및 서구 제도를 백인 우월주의의 요새로 보고 탈식민화를 요구하는 비판적 흐름의 원인으로 연결 짓는다푸코의 영향력은 한 세대에 걸쳐 공공 지식인학자작가기자 및 여론 형성자들에게 뿌리내렸고이에 따라 보수주의자들이 보기에는 깨어 있음을 옹호하는 새로운 문화 엘리트가 형성되었다.

이에 반해 미국의 문화 사회학자 필립 리프는 고전적인 보수주의자이자 공개적으로 동성애 혐오를 드러낸 인물[리프(Rieff)의 동성애에 대한 관점은 복잡하므로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그는 동성애를 개인적 사안으로서는 관용적으로 여겼으나그것이 공적인 이데올로기로 등장할 경우에는 반대했다그는 동성애가 남녀 구분이라는 전통적 권위의 수직 구조(vertical of authority)’를 위협한다고 보았으며고대 로마 사회와의 유사성을 언급하면서 특히 상류층 사이에서 동성애의 광범위한 수용이 문화적 붕괴를 초래했다고 주장했다.]로서문화적 몰락의 예언자였다리프의 관점에서 문화의 생명력은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는 금기즉 성스러운 금지의 말을 집단적으로 설정하고 유지하는 데에 달려 있다강한 문화는 개인의 선택을 제한하지만위기에 처한 문화는 무제한적 개인주의를 조장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오늘날 리프는 현대 담론 속에서 거의 사라졌으며대중에게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대한 저술과 수전 손택과의 논쟁적인 결혼으로만 간헐적으로 알려져 있다그는 프랑스 이론이 1960년대 후반 미국에 상륙하여 1980년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제기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룬 적은 없지만, <살마군디>(Salmagundi)라는 유명 저널의 지면을 통해 푸코와 간접적인 논쟁을 펼쳤다.

출처: Unsplash+, Andy Quezada

-깨어 있음’ 진영의 비판자들과는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부로 불리는 푸코는 사회가 권력 구조 없이 존속할 수 있다고 본 것이 아니며해방 프로젝트의 단순한 목적론적 전개에도 동의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는 특히 성 윤리 문제에서 리프의 규칙 위의 규칙이라는 개념에는 반대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억제 없는 문화가 가능한가 혹은 바람직한가가 아니라한 사회가 기능하는 제약 체계 속에서 개인이 그 제약을 변화시킬 자유를 가질 수 있는가이다.” 푸코에게 자유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다. “제약 없는 사회는 상상할 수 없다.” 그에게 자유란, “그 제약을 받는 개인이 그것을 수정할 수단이 없을 때야말로 진정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리프는 금기의 본질은 명확하고잘 정의되어 있으며변경 불가능해야 한다는 데 있다고 응수했다그는 권위를 이성적으로 설계하고 조작하는 것을 넘어선 어떤 것으로 보았으며그것은 의식적 계획보다는 더 깊은 문화적·심리적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글을 나란히 읽어 보면공간·자기 정체성·권위 사이의 관계를 인식했다는 점에서 뜻밖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이들은 각기 다른 사상적 지향에도 불구하고개인이 문화적·제도적 제약 속에서 자유와 정체성을 어떻게 협상하는지를 고민했다현대 사회는 지배적 규범을 벗어나 감시를 비판하고집단적 기대와는 다른 자기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는 공간(물리적이든 상징적이든)을 필요로 한다는 데에 두 사람은 공감했으며이는 진정한 실존이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의 여지로 보았다.

유토피아가 전 지구적 질서를 비판하고 재구상하기 위한 개념으로 상상되는 것"과 달리헤테로토피아는 푸코가 설명한 대로 대응 장소들즉 실현된 유토피아의 일종으로서… 다른 모든 현실 공간들이 동시에 재현되고논박되며전복되는 공간이다이 개념은 놀라울 정도로 포괄적이며어쩌면 지나치게 그렇다개념의 정의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필자는 이를 일종의 도널드 저드 증후군(Donald Judd syndrome)’이라 부르는데해석의 난장판을 불러오는 매개체로 기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푸코에 따르면 헤테로토피아는 지배적인 사회 질서와 관련하여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위기의 공간일탈의 공간환상의 공간보상의 공간으로 분류된다이 공간들은 신혼여행지정신병원감옥묘지극장영화관도서관박물관박람회카니발휴양소사우나모텔윤락업소예수회 식민지선박 등 매우 다양한 예에 걸쳐 존재한다이러한 공간들은 명확한 위계와 체계적인 자본(경제적정치적사회적 자본)의 분배를 통해 사람들을 더 많음과 덜 많음으로 구분하는 지배적인 사회 질서에 대조되며이를 약화시키고 폭로하기 위해 존재한다헤테로토피아는 근본적으로 불안정한 특성을 지닌다이들은 단지 일시적인 정지나 전복의 공간이 아니라위계 구조와 언어기호 체계를 심층적으로 뒤흔드는 전도(inversion)의 공간이다이 공간들은 차이를 드러내고타자성을 위한 여지를 만들며비정상적이고 일탈적인 존재주변화된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한다건축적 또는 공간적 헤테로토피아의 진정한 의미는 바로 이처럼 기존 질서를 전복하고 도전하는 능력에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공간들이 가진 변혁적이거나 반자본주의적 잠재력을 과대평가하려는 유혹에 저항해야 한다오늘날 헤테로토피아는 현대 정체성 정치와 포스트모던 이론의 상징이 되었다여기서 차이는 타자성으로 번역되고이는 동일성과 대립하는 개념으로서 정체성 기반의 사회 및 정치 논쟁에서 활용된다이 변화는 특정 공간과 그 공동체를 단지 분석하는 데 그치지 않고거의 신화적 능력을 지닌 이상적 피난처로 낭만화하는 포스트모던 해석들을 낳았다.

예를 들어게이 인권운동가 데니스 알트먼(Denis Altman)은 게이 목욕탕과 사우나를 휘트먼적인 민주주의즉 위계와 계급경쟁이라는 외부 세계의 남성 지배에서 벗어난 일종의 형제애 속에서 다른 남성들을 알고 신뢰하려는 열망을 구현하는 공간으로 낭만적으로 묘사했다자유민주주의가 존재하는 외부 세계에서는 인간의 가치를 노골적으로 서열화하는 굴욕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이러한 해방적 공간이라 여겨지는 장소들조차도 그 내부에 고유한 형태의 치열한 지위 경쟁을 내포하고 있었다이들 장소 안팎에서의 사회적 자본과 물질적 자원은 중요한 지위 지표가 되었다게다가이러한 공간들에서는 외모근육털의 분포성기 크기엉덩이의 모양 등이 그 사람이 어떤 것에 접근할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며오히려 더욱 경직된 위계질서를 형성하곤 했다이러한 장소들이 어떤 남성들에게는 잠시 자신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을 수도 있으나궁극적으로는 그들이 처음 이 공간들을 찾게 만든 광범위한 사회 구조로부터의 진정한 해방이라는 유토피아적 약속을 실현하지 못했다이 공간들은 외부 세계에 깊이 의존한 채대안적 질서를 조직하며 저항과 반전의 장소로 기능했을지는 몰라도그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거나 벗어날 수 있는 진정한 탈주 공간이 되지는 못했다.

알트먼의 시선을 통해 보면헤테로토피아는 푸코가 처음에는 거의 표상 불가능한’ 개념으로 묘사했고후에는 허가배제은폐로 특징지어진 불확정적 배치로 묘사한 것과 달리물질적이고 사회적인 가능성이 실현 가능한 유일한 영역으로 탈바꿈한다이러한 해석에서 헤테로토피아는 소수자와 주변화된 집단에게 공간 재구성을 통해 포용성과 무제한 연결성을 제공하는 급진적 변형의 장소로 여겨진다그러나 모든 일탈적 공간이나 인간 집단을단지 그 경계성만으로 인해 본질적으로 전복적이고 유토피아적인 잠재력을 지닌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푸코 개념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다푸코의 헤테로토피아 개념은 근본적으로 양가적이며담론과 언어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하는 데 설계된 개념이다이 개념은 명확성논리질서를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보수적 기능을 수행한다실제로헤테로토피아는 유예’ 공간으로서 작동함으로써 지배 질서를 유지한다그곳에서 사회 비판(극장), 외국성혼외 성(sexuality)의 표현(모텔), 도전적인 사상(도서관등은 사회 바깥의 특별히 지정된 공간에서 여과되고구획되고격리됨으로써 변화의 힘이 분산된다.

푸코가 1984년에 출간한 헤테로토피아 이론을 쓰기 10년 전리프는 자신의 저서 ⟪동료 교사들문화와 그 두 번째 죽음⟫(Fellow Teachers: Of Culture and Its Second Death)⟫에서 이와 놀랍도록 유사한 구상을 제시한 바 있다리프는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을 수용한 미국 학계와 종교적 권위의 진리에 대한 명시적 헌신을 유예한 그 태도에 깊이 환멸을 느끼며 글을 썼다그는 그 시대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성격 형성을 파괴하고미국의 사상과 문화를 빈곤하게 만들며정치 및 교육 제도에 대한 폭력을 부추겼다고 보았다그러나 그의 반동적 비판 아래에는 놀라운 역설이 존재한다그는 단순한 문화 회복을 주장하기보다는공적 제도 질서의 유지가 사적 자유를 오히려 보호할 수 있다는 비전을 발전시켰다.

리프에 따르면 진정한 개인적 자율성의 성장은 제도적 틀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그것을 보호 구조로서 유지하는 데 있다이 틀은 순응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헤테로토피아 공간들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다시 말해공적 여론의 감시를 벗어나쾌락·정치·사상에서 비순응적이고 심지어 일탈적’ 존재들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리프의 말에 따르면이러한 보호된 공간은 비밀스러운 삶… 즉 살아볼 만한 유일한 삶… 남에게 너무 알려지거나, (지나치게좋아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가능하게 한다리프에게 공적 삶은 본질적으로 해방적이지 않다오히려 그것은 침해적으로 변할 위험을 내포하며민주주의적 투명성이나 과학적 탐구라는 이름 아래에서 가시성과 순응을 끊임없이 요구한다.

이는 미셸 푸코가 ⟪성의 역사⟫ 제1권에서 정신분석학을 분석한 내용과도 맞닿아 있다그는 오늘날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자기표현의 숭배즉 이드(id)”나 초자아(superego)”를 트라우마”, “슬픔”, “러브밤(love bombing)” 같은 대중 정신의학 용어로 대체하며 인간 존재를 과잉 병리화하고 있는 현상을 예견했다푸코의 비판은 정신분석학이 고해(confession)”를 이끌어 내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에 집중되었는데이 고해란 원래는 훨씬 오래된 기독교의 고해 성사 모델에서 유래하여 체계적인 성 과학(scientia sexualis)으로 변형된 것이었다그는 성이 본질적으로 억압되며”, “병리에 취약하다는 정신분석학의 근본 전제를 비판했고그것이 언어적 자기폭로를 통해 해방될 수 있다는 믿음을 문제삼았다이러한 폭로는 과거처럼 단순한 안도감이나 종교적 구원뿐 아니라점점 더 섹스가 진실을 말해야 하며 (우리 자신의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담론의 요구에 따라개인이 가장 진정한” 정체성에 이르는 직접 경로로 여겨진다푸코는 치료자와의 대화와 내면 탐구를 통해 발견될 수 있는 일관된 성성(sexuality)”이 정말로 존재하는지를 회의했다그가 성적 해방에 대해 품은 회의는성적 비밀을 고백하라는 치료적 강제가 어떻게 정상성의 판단자로 군림하는 치료 전문가나 의료 엘리트들에 의해대중을 훈육하고규율하며분류하고감시하며결국 통치하는 메커니즘으로 작동하는지를 드러낸다지그문트 프로이트에게조차 비밀을 간직하는 행위는 우리의 존재주체성의 핵심적인 기제였으며타인의 시선 앞에서 존엄성을 유지하고 스스로의 눈에 일관성을 갖추게 만드는 삶의 방식이었다이는 상품화되거나 공공의 소비에 종속되지 않는 삶의 양식이다이 맥락에서 비밀은 단순한 기만의 수단이나 사회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라오히려 진정한 존재를 위한 필수 조건으로 떠오른다.

이처럼 역동적인 공간 안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그를 둘러싼 환경은 내부로부터 변화한다이는 필립 리프의 시각과도 일치하는데그에 따르면 제도적 틀은 단순히 억압의 도구가 아니라 대중 소비의 구속을 넘어서 독립적인 비밀의 삶을 양육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이러한 입장은 보수주의를모든 성적 규율과 도덕을 철저히 준수하던 가상의 황금시대로 회귀하자고 주장하는 반동적 이데올로기로 보는 관점과 달리 재해석한다리프 자신이 어느 한 정통성에도 반감을 가지고 있었듯그는 나 또한 모든 정통성은 그것이 허용하는 인격의 좁음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한 바 있다이는 오히려 일탈과 축제위계의 유예금기와 금기와 연관된 개인 혹은 집단이 존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그 힘들이 신체적·문화적 주변부에 한정되거나 분리되어야 한다는 정치관으로 이해될 수 있다이러한 경계 짓기의 정치는 질서와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결국 문화란 금지와 허용절제와 해방의 변증법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의 출발점은 다르지만푸코와 리프는 버지니아 울프의 말에 대해선 아마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적 공간을 위한 투쟁은 곧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것이다.

[출처On an Unlikely Intellectual Convergence between a Reactionary Homophobe and a Leftist Homosexual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아리에스 헨델(Ariès Haendel)은 슬로베니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시나리오 작가이자 영화감독, 예술가다. 그는 현재 나치 독일의 성 정치(sexual politics)에 관한 학부 졸업 논문을 마무리 중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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