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군비 지출을 대폭 늘리는 대신 공공 복지 혜택을 삭감하고 있다.
"나토 동맹국들, GDP의 5%를 국방에 투자하기로 한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출처: NATO의 페이스북
지난주 열린 나토(NATO) 정상회의에서 영국 총리 키어 스타머는 자국이 미국산 F-35A 전투기 12대를 구매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전투기들은 각각 전술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다. 이는 냉전 종식 직후 이후 처음으로, 항공기로 투하 가능한 미국의 핵무기가 영국에 배치되는 사례가 된다.
이번 나토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전례 없는 방식으로 공공연한 ‘강요의 정치’를 벌였다. 그는 수십 년간 나토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보였고, 집단 안보 조항에 대해서도 최대한 애매한 입장을 취해왔으며, 이를 자신만의 정치 이념의 핵심 요소로 삼아왔다. 그런 그가 이번 회담에 앞서 몇 주 동안, 미국이 안보 공약을 유지하는 대가로 나토 회원국들이 자국 국내총생산의 무려 5%를 국방·안보에 지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는 대부분의 나토 회원국들이 현재 지출하는 비율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며, 폴란드와 발트 3국을 제외한 거의 모든 나라가 이 요구보다 훨씬 적게 지출하고 있다.
나토 회원국 정상들은 트럼프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서로 아부 경쟁을 벌였고, 결국 대부분의 국가가 줄줄이 그의 요구에 동조해 향후 10년간 국방비를 대폭 증액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들은 2035년까지 자국 GDP의 최소 3.5%를 핵심 군사 지출에 투입하고, 추가로 1.5%를 사이버 공격, 인신매매, 그 외 나토 경제에 위협이 되거나 위협으로 인식되는 다양한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보안 및 인프라 강화 비용에 배정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예외는 단 하나, 스페인이었다. 사회주의 정부를 이끄는 스페인은 국방비 증액 약속에 난색을 표했고, 이에 따라 예외 조항을 허락받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에 분노하며 소셜미디어에서 스페인 정부를 겨냥한 맹공을 퍼부었고, 그 결과로 앞으로 미국과의 모든 무역협정에서 스페인은 두 배의 관세를 물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주장은 스페인이 유럽연합 회원국이기 때문에, 협정상 다른 회원국과 차별적으로 대우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무시한 것이다.)
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뤼터는, 네덜란드 총리를 지낸 인물로서 트럼프를 “대디(Daddy)”라 부르며 그를 극찬했다. 그는 트럼프가 이란의 핵시설을 선제 타격한 결정을 극찬했고, 트럼프가 농담을 던질 때마다 웃고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사진에 포착되었다. 이는 마치 태양왕의 궁정에서 아첨을 일삼던 궁정 신하의 모습처럼, 경악스러울 정도의 아부 행태였다. 다른 나토 정상들도 이를 따라했다. <가디언>은 이를 두고 “조직적으로 연출된 굴종”이라고 표현했으며, 미국과 동맹국들 사이에서 과거 한 번도 본 적 없는 장면이라고 평했다. 이 회담은 대등한 파트너들 간의 정상회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 회담은 미국의 강압적 지도자가 과거 동유럽 위성국 지도자들이 소련 서기장에게, 혹은 고대 제국의 제후들이 황제에게 바쳤던 것과 같은 과잉 찬사와 복종을 요구하고, 실제로 그것을 받아낸 광경이었다.
도널드 트럼프의 의도는 매우 단순했다. 유럽과 캐나다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제공해 온 안보 보장을 원한다면, 그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요구는 군비 지출을 대대적으로 확대하고, 국내 사회안전망 예산을 삭감하며, 수천억 달러 규모의 자금을 미국 무기 제조업체들에 쏟아붓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다.
F-35A 전투기만 해도, 영국 정부는 10억 파운드 이상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 전투기들이 영국 본토에서 멀리 작전할 수 있도록 하는 공중급유기와 각종 지원 인프라 비용까지 포함하면, 총비용은 훨씬 더 늘어난다. 이 돈은 고스란히 록히드 마틴(Lockheed Martin)으로 흘러 들어간다.
같은 주에 영국 정부는 수십만 명의 장애인을 대상으로 사회안전망 급여를 대폭 삭감하려는 방침을 밀어붙였고, 그 결과 노동당 내부에서 대규모 반발에 직면했다. 이는 지난해 겨울, 특히 고령층이 추운 계절에 난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에너지 보조 프로그램을 축소하려다 실패한 시도에 이은 조치였다.
이와 유사한 사회적 대가가 향후 수년 동안 나토 전역에서 현실로 나타날 것이다. 미국은 수년간 국제 채권자들의 투자 여력을 활용해 막대한 부채를 조달해왔지만, 대부분의 나토 회원국들은 시장에서 그만한 영향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특히 유럽연합을 구성하는 규범 아래에서는 그러한 대규모 차입에 대한 법적 권한조차 갖고 있지 않다. 그 결과 대부분의 군비 증액은 기존의 사회복지 프로그램, 해외 원조 약속, 심지어 연금과 의료 시스템 예산에서 전용될 전망이다.
예컨대 독일은 향후 5년간 국방 예산을 거의 두 배로 늘릴 계획이며, 그로 인해 예산에 수백억 유로 규모의 구멍이 생기게 된다. 덴마크는 향후 2년간 70억 달러(자국 GDP의 약 1.5%)를 추가로 군비에 투입하는 ‘가속화 기금(acceleration fund)’을 신설했다. 오랫동안 예산 문제와 씨름해 온 프랑스는 군비 증강을 위해 증세와 사회복지 지출 삭감을 병행할 가능성이 높다. 폴란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자국에 배정된 녹색 전환 관련 예산 약 70억 달러를 군비로 전환해 사용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이러한 대륙 차원의 군비 증액 약속은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유럽의 사회적 합의를 더욱 심각하게 훼손할 것이다.
유럽 각국의 지도자들은 블라디미르 푸틴의 팽창주의적·제국주의적 충동(이는 우크라이나에서의 잔혹한 침공과 크렘린에서 점점 거칠어지는 군사주의적 수사로 명확히 드러났다)과 도널드 트럼프의 거래 중심적이고 ‘미국 우선주의’적 외교정책 사이에 끼인 채, 종종 전쟁의 전조로 기능해온 대규모 군비 증강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푸틴이 동부 전선에서 나토 국경을 침범하거나 유럽 다른 지역에서 나토 영공을 침범하라고 군에 명령했을 때, 그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국가로 남고 싶어 하는 정부는 아무도 없다. 또한, 트럼프가 자신이 정한 국방비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방어를 철회하겠다고 — 실제로 과거에 직접 그렇게 말했으며 “푸틴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게 두겠다”고까지 선언한 바 있다 — 선언한 뒤에 그 방어에서 제외되는 국가가 되고 싶은 정부도 없다.
이런 이유로 나토 회원국들은 단 몇 달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렵고 유럽 및 캐나다의 사회적 합의 체계를 심각하게 파괴할 수준까지 군사비 지출을 끌어올렸다.
물론, 군사비로 새롭게 책정된 예산 전액이 미국 방산업체들에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첨단 무기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는 만큼, 최소한 단기적으로는 유럽이 예측불가능하고 심지어 약탈적인 양상을 보이는 미국으로부터 공급망을 다변화할 방법을 찾기 전까지, 그 막대한 자금 대부분이 미국으로 흘러갈 것이 분명하다.
이 모든 조치는 군산복합체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줄 것이다. 반면, 분명한 패자는 군사비 마련을 위해 밀려난 사회안전망 프로그램에 의존하고 있던 이들일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저항 없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키어 스타머 총리의 발표 직후, 반핵 운동단체들은 즉각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냉전 말기, ‘핵군축운동’과 같은 단체들은 그린햄 커먼(Greenham Common) 공군기지에서 핵무기 철수를 요구하며 시민 불복종 운동을 벌였고, 이번에도 그 단체와 여러 평화운동 단체들이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해당 전투기와 핵무기가 배치될 예정인 왕립공군기지에서 집회를 열기 시작할 예정이다.
물론, 지금은 아직 초기 단계다. 그러나 유럽 시민들이 트럼프가 요구하는 전면적이고 광속적인 재무장 요구에 무비판적으로 동조하지는 않을 조짐도 보이고 있다. 유럽과 캐나다가 미국의 후퇴 국면 속에서 스스로의 이익을 방어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트럼프가 요구하는 것은 그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는 무기 구매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공물을 바치라고 요구하고 있으며, 유럽 각국 지도자들이 아부를 늘어놓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국민들이 이를 뒷받침해 줄지는 확실하지 않다.
[출처] Europe Puts Social Programs on Chopping Block to Appease Trump on NATO Funding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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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샤 아브람스키(Sasha Abramsky)는 프리랜서 언론인이자 캘리포니아대학교 데이비스 캠퍼스에서 시간강사로 활동 중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