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런던에서 열린 ‘유나이트 더 킹덤(Unite the Kingdom, 영국 통일)’ 집회는 극우 세력이 얼마나 손쉽게 대중 시위를 조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오래된 논쟁거리를 도덕적 공황으로 재포장해, 이민과 범죄에 대한 공포, 그리고 정부에 대한 불신을 결합해 대규모 동원을 끌어냈다.
그 집회에서는 “재이주(remigration)”와 대규모 강제추방, 심지어 의회 해산까지 요구하는 구호가 나왔고, 경찰과의 폭력적 충돌도 벌어졌다. 참석한 수천 명 중 일부는 자신들이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시위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종차별적 주장에 동조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혼란스러워했다.
이 시위의 규모는 많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이었지만, 영국의 극우 운동은 오랜 역사가 있다.
지난 9월 열린 ‘유나이트 더 킹덤’ 집회에는 10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모였다. 출처 : 현지 생중계 화면 갈무리
현대적 의미의 극우 활동은 1930년대의 ‘영국 파시스트 연맹’(British Union of Fascists)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1950년대, ‘윈드러시 시대(Windrush era)’로 불리는 시기 이민이 증가하면서 새로운 세대의 극우 활동가들이 등장했다.
그 후 몇 년 동안 영국 극우는 반유대주의에서 벗어나, 자국의 식민지와 옛 식민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에 대한 반대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1968년 보수당 의원 이녹 파월(Enoch Powell)이 한 악명 높은 ‘피의 강(rivers of blood)’ 연설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
1980년대에는 영국국민당(British National Party, BNP)이 등장해,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선거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결국 그 극단적 이미지로 인해 기반이 붕괴했다.
그 이후 영국의 극우 세력은 ‘잉글리시 디펜스 리그’(English Defence League, EDL)나 ‘풋볼 래즈 얼라이언스’(Football Lads Alliance) 같은 거리 시위 운동으로 형태를 바꾸었다. 1990년대 영국국민당(BNP)에서 갈라져 나온 신나치 조직 ‘컴뱃-18(Combat-18)’ 같은 극단적 ‘직접행동’ 단체들은 이후 ‘내셔널 액션’(National Action)과 ‘패트리오틱 얼터너티브’(Patriotic Alternative) 같은 조직들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폭력적 극단단체들은 금지되었지만, 그 자리를 이어받은 다른 조직들이 생겨났고 영향력도 확대되었다. 그중 하나가 전 EDL 지도자 스티븐 얙슬리-레넌(Stephen Yaxley-Lennon), 대중적으로는 ‘토미 로빈슨’(Tommy Robinson)으로 알려진 인물을 중심으로 결집한 문화 민족주의 운동이다. 그는 런던의 ‘유나이트 더 킹덤‘ 집회의 주도자이기도 했다.
극단주의 전문가 크리스 앨런(Chris Allen)은 급진 우파 시위 운동의 재등장이 2016년 브렉시트(Brexit) 국민투표에서 비롯된 중기적 배경을 지닌다고 지적했다. 이는 일부 브렉시트 찬성 정치인들이 국경 안보와 주권 같은 ‘전통적 및 현대적 급진 우파의 정서와 뚜렷이 공명하는’ 이슈들을 내세운 방식과 관련이 있다.
우익 극단주의 활동은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불과 일주일 앞두고 벌어진 조 콕스(Jo Cox) 의원의 피살 사건에서부터, ‘브리튼 퍼스트’(Britain First) 같은 극우 단체들이 조장한 거리 선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토니 블레어 글로벌 체인지 연구소(Tony Blair Institute for Global Change)에 따르면, 이들 단체는 “이민, 브렉시트, 이슬람 등 주요 정치·사회적 쟁점에 대한 여론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고 평가된다.
이민 문제를 둘러싼 불안은 이미 2015년 총선 당시부터 주류 정치 담론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우리 국경의 통제권을 되찾자(taking back control of our borders)”는 구호가 일상적인 정치 수사로 자리 잡았다. 그해 총선 이후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 총리는 이민 단속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유럽연합(EU)에 대한 적대감이 서서히 사그라들자, 불법 이민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부상했다. 인종차별과 인종 관련 증오범죄도 함께 증가했다.
이러한 증오범죄의 상당수는 2017년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이후 발생했지만, 곧이어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이 테러에 대한 공포를 덮었다. 영국이 코로나 봉쇄에서 벗어난 뒤에도 영국 정부는 불법 이민이 일으키는 새로운 안보 위협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전환점이 찾아왔다. 2024년 7월, 사우스포트(Southport)에서 세 아이가 살해된 사건 이후 급진 우파 소셜미디어 인플루언서들과 선동가들이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27개 도시와 마을에서 폭동을 일으켰다. 수천 명이 도덕적 공황의 언어에 사로잡혀 급진화되었고, 그 과정은 새로운 공간인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개되었다.
출처 : 현지 생중계 화면 갈무리
불법 이민, 도덕적 공황의 형태로
사회학자 스탠리 코헨(Stanley Cohen)은 1972년의 저서 ⟪민속 악마와 도덕적 공황⟫(Folk Devils and Moral Panics)에서 ‘도덕적 공황’(moral panic)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그는 “특정한 상황, 사건, 개인 또는 집단이 사회적 가치와 이익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되고, 언론이 이를 고정된 방식으로 묘사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했다.
가장 잘 알려진 도덕적 공황 사례는 1964년 영국 클랙턴(Clacton) 해안 마을에서 벌어진 ‘모즈(mods)’와 ‘로커스(rockers)’라는 두 비주류 청년 문화 집단 간의 대규모 폭력 사건 직후였다. 코헨의 주장은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반응이 실제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 벨파스트처럼 멀리 떨어진 도시의 지방 당국들까지 “우리에게는 훌리건 문제가 없다”고 대중에게 안심시키는 성명을 내야 했다.
2002년 코헨은 같은 현상이 이민 문제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한때 도덕적으로 비판받을 수 없던 ‘정치적 난민’이라는 개념이 점점 ‘해체’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코헨의 관점에서 영국 정부는 “가능한 한 많은 난민형 외국인을 막아야 한다”, “이 사람들은 받아들여지기 위해 언제나 거짓말을 한다”는 광범위한 합의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따라서 난민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적격(eligible)”하고 “신뢰할 만(credible)”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후 수십 년간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서는 이민·범죄·안보라는 세 축을 중심으로 한 도덕적 공황이 본격적으로 부상했다.
영국의 대중 언론은 이러한 새로운 도덕적 공황을 주도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현실이 맞물려 있었다. 첫째, 영국과 유럽 전반에서 증가하는 이민에 대한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었다. 둘째, 인종 간 경쟁을 정치적·사회적 현실로 재포장하는 새로운 일상적 정치 언어가 확산하고 있었다. 극우의 세계관에서 정치란 서로 다른 인종 집단 간 권력 관계를 ‘제로섬 게임’으로 보는 것이다.
낡은 도식, 새로운 도덕적 공황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오래된 문제의 새로운 정치화다. 난민에 대한 인도적 대응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불법 이민에 대한 도덕적 공황이 대신했다.
코헨이 지적했듯, 도덕적 공황은 실제 상황을 반영하기보다는 그것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불안을 반영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기저에 진지한 사회적 우려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우려가 과장되고, 무엇보다 극우 세력이 새로운 기술을 정교하게 활용함으로써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이는 국민의 일부와 정부 사이의 신뢰 붕괴 문제다.
다가오는 영국 총선을 앞두고, 이런 환멸은 ‘리폼 영국’(Reform UK)이나 ‘어드밴스 영국’(Advance UK) 같은 정당들에 대한 선거 지지 확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유고브’(YouGov)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4%가 대규모 강제추방을 포함한 리폼 영국의 이민 정책이 “적절하거나 충분히 강경하지 않다”고 답했다.
급진 우파가 상징적으로 내세우는 “재이주” 정책을 지지하는 시위들은 대체로 평화적이지만, 이런 극단적 수사가 주류화되면 새로운 세대의 극우 급진화를 부추기는 촉매로 작용할 위험이 있다.
[출처] A contemporary history of Britain’s far right – and how it helps explain why so many people went to the Unite the Kingdom rally in London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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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에드워즈(Aaron Edwards)는 레스터대학교(University of Leicester) 객원연구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