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이자, 우주의 심연에서 우리를 안내하는 우주 등대

방향을 잡기 위해 등대를 사용할 수도 있고… 블레이자(blazar)를 사용할 수도 있다출처Andrea Notari

인류는 태고부터 별을 이용해 방향을 찾아왔다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정밀한 위성 위치 측정 시스템 역시 블레이자(blazar)라 불리는 우주의 등대즉 초대질량 블랙홀을 품고 있는 천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해안 곳곳을 밝히며 어둠 속 선원들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등대와의 비유를 통해이 천체의 신비를 살펴보자.

프랑스 피니스테르(Finistère) 지역에 있는 우에상(Ouessant) 섬 중심의 프라(Prat) 해변에 서면바다 위로 솟은 크레아슈(Créac’h) 등대의 위용이 눈에 들어온다맑은 밤이면 이 등대는 32해리(약 60킬로미터이상 떨어진 곳에서도 보인다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등대로 여겨지는 크레아슈는 선박 항해자들에게 위성 항법 시스템을 보완해주는 소중한 길잡이 역할을 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휴대전화로 매일 위성 위치 측정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그러나 이처럼 정확한 위치 정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근본적으로는 기본 물리학의 원리와 첨단 천문학 관측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종종 잊힌다.

과거 항해자들은 북극성이나수십만 광년 거리의 마젤란 성운과 같은 가까운 외부은하들을 기준점 삼아 항로를 정했다반면인공위성의 위치를 정밀하게 설정하려면 하늘에 고정된 광점을 기준으로 해야 하며그 방향이 시간에 따라 거의 변하지 않아야 한다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안정적인 기준점은 수십억 광년 거리의 우주에 존재하는 광원이다그것이 바로 블레이자다.

블랙홀 인근의 타오르는 불빛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과 특수 상대성 이론은 블레이자에 대한 이해의 핵심을 이룬다크레아슈 같은 등대의 빛은 강력한 할로겐램프에서 나오는 광선을 프레넬 렌즈가 모아 형성한다.

반면 블레이자는 두 개의 광선을 방출하는데이는 플라즈마로 이루어진 제트(jet)이며 광속의 99.5% 이상의 속도로 움직인다등대의 광선이 회전하는 것과 달리블레이자의 제트는 관측자 입장에서 보면 비교적 고정되어 있다.

이러한 제트의 근원은 우리은하 중심 블랙홀보다 수천 배 이상 무거운 초대질량 블랙홀이다블랙홀 자체의 회전과 그 주변을 도는 강착 원반이 제트에 에너지를 공급한다다시 말해블레이자의 빛을 만들어내는 에너지원은 역설적으로 바로 블랙홀이다.

M87 은하 블랙홀 주변을 다양한 관측 스케일에서 표현한 일러스트전파(주황색), 가시광(오른쪽 위), X(파란색), 감마선(하단 그래프 – 시간에 따른 M87의 플럭스 변화영역에서의 관측 결과를 포함하고 있다출처EHT 협력단(EHT Collaboration), Fermi-LAT 협력단, H.E.S.S. 협력단, MAGIC 협력단, VERITAS 협력단, EAVN 협력단, CC BY-SA

이러한 천체 제트는 M87(메시에 87) 전파은하와 같은 가까운 은하에서 관측된다지구에서 보면 이 은하의 두 제트는 비스듬히 기울어진 상태로 관측되며그중 하나는 플라즈마가 우리 쪽으로 접근하고 있어 더 밝게 보인다반면 다른 하나는 플라즈마가 멀어지기 때문에 더 어둡게 보인다등대의 광선과 관측자 사이의 시선 방향즉 광축과의 각도가 클수록 우리가 받는 빛은 약해진다그렇다면 만약 이 제트 중 하나가 지구를 정면으로 향하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우리는 매우 강렬한 밝기의 등대즉 블레이자를 관측하게 된다따라서 M87과 같은 전파은하는 방향만 다를 뿐결국은 블레이자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블레이자는 그 제트 중 하나가 지구 방향을 향할 때 정의되며동일한 거리의 전파은하보다 수만 배 더 밝게 보일 수 있다.

스스로 빛을 만들어내는 광선

크레아슈 등대의 프레넬 렌즈는 할로겐램프에서 나온 빛을 광선 형태로 모아그 광자가 바다 위 선원들에게 도달하게 만든다블레이자에서는고에너지 입자로 구성된 플라즈마가 제트 축을 따라 방출된다이 입자들은 이동하면서 일부 에너지를 잃고 가시광선 영역과 전파 대역에서 빛을 내는데이 현상이 바로 싱크로트론 복사다지상의 입자 가속기예를 들어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대형 하드론 충돌기(LHC)에서 입자들이 도달할 수 있는 에너지에도 바로 이 싱크로트론 복사가 제한을 준다.

하지만 입자 빔을 설계하는 지상의 공학자들에게는 제약 요인인 싱크로트론 복사가천문학자들과 우주입자물리학자들에게는 오히려 인공 가속기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연 현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귀중한 관측 창을 제공한다.

블레이자에서 방출되는 복사는 전파나 가시광선에 그치지 않고 X선과 감마선까지 확장된다.

블레이자에서 오는 감마선 중 가장 고에너지인 것은 가시광선 광자보다 최대 1조 배나 높은 에너지로 관측되었다이러한 감마선을 방출한 입자는전자보다는 양성자 같은 우주선이라면수백만 배나 더 큰 에너지를 가질 수도 있다.

블레이자에서 감마선을 방출한 입자의 성질을 밝혀내면우리가 관측하고 있는 고에너지 우주선이나 중성미자의 기원을 밝히는 데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다.

우주 안개 속에서 블레이자를 포착하다

가장 먼 블레이자들은 빅뱅 이후 첫 10억 년 이내의 시기즉 약 140억 년이 된 현재 우주 초기에 해당하는 시점에서 빛을 내보냈다이처럼 멀리 떨어진 블레이자에서 오는 감마선의 양이 적은 것은 단지 거리 때문만이 아니라우주의 가장 깊은 곳마저 채우고 있는 독특한 안개 때문이다.

흐린 날크레아슈 등대의 빛이 멀리 닿지 못하는 이유는 안개를 이루는 미세한 물방울이 가시광선을 산란시키기 때문이다항해자들이 점광원처럼 뚜렷하게 보아야 할 등대의 불빛은해안에서 멀어질수록 점점 더 퍼지고 흐려진다.

블레이자의 고에너지 감마선이 닿을 수 있는 거리도 입자 물리학에서의 한 현상으로 인해 제한된다그것은 바로 두 광자즉 고에너지 감마선 광자와 낮은 에너지의 광자가 만나 전자-양전자 쌍으로 소멸하는 것이다블레이자의 감마선 광선에 있어 안개는 곧 빛이다.

우주 안개의 일러스트우주 공간의 진공 속에서 감마선과 가시광 광자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블레이자의 플럭스가 줄어드는 메커니즘을 나타낸 그림이다출처: L. 그레오(L. Gréaux)와 J. 비토(J. Biteau), 제공기사 작성자

감마선의 에너지가 클수록그리고 그 감마선을 방출한 블레이자의 거리가 멀수록지구에 도달하는 플럭스의 감쇠는 더욱 커진다이때 작은 물방울’ 역할을 하는 낮은 에너지의 광자들은우주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별과 은하들이 방출해온 누적된 복사에 해당한다.

최근까지 이러한 '물방울'을 직접 검출하는 것은 관측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하지만 현재는 감마선의 감쇠를 이용하는 방법을 포함한 세 가지 측정 기법이 서로 일치하는 값을 보여주기 시작하면서우주의 올버스 역설이나 허블 상수 논쟁 등 주요 우주론적 문제를 풀 수 있는 새로운 도구들이 열리고 있다.

블레이자의 폭발과 주가 변동

그렇다면 블레이자에 대해 더는 밝혀야 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을까전혀 그렇지 않다.

등대가 일정한 간격으로 점등과 점멸을 반복해 선원들이 그것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는 반면블레이자의 밝기는 극히 불규칙하게 변하며주식 시장의 그래프처럼 요동친다가장 극단적인 폭발에서는블레이자의 플럭스가 단 몇 분 만에 두 배로 증가하는 경우도 관측되었다이러한 폭발 현상을 이해하는 일은 여전히 고에너지 천체물리학과 플라즈마 물리학의 과제로 남아 있다.

가시광 영역의 베라 C. 루빈 천문대(Vera C. Rubin Observatory)와 감마선 영역의 체렌코프 망원경 어레이(Cherenkov Telescope Array Observatory)와 같은 최신 관측소들은블레이자의 폭발을 지도화하는 데 중대한 진전을 이룰 전망이다이들은 우주 안개의 베일을 걷어내는 동시에우주에서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가속기를 이해하는 데도 큰 기여를 할 것이다.

[출처] Blazars, ces phares cosmiques qui nous guident depuis les tréfonds du cosmos

[번역] 하주영 

덧붙이는 말

조나탕 비토(Jonathan Biteau)는 파리-사클레 대학교(Université Paris-Saclay) 우주입자물리학 전공 강의 담당자(마이트르 드 콩페랑스, Maître de conférence)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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