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반도체특별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 통과를 목전에 두고 있다. 반도체특별법은 재벌 퍼주기 ‘삼성특혜법’ 논란, 고용창출 등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문, 연구개발노동자에 대한 주52시간 노동상한제 규제 완화 우려, 기후위기 시대에 물과 전기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우려, 지역 송전탑 대책위의 반대, 청소년 교육권과 노동권 침해 등 노동자와 지역주민, 시민사회의 각종 비판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은 이를 무시한 채 특별법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이에 <재벌특혜 반도체특별법 저지·노동시간 연장반대 공동행동(이하 반도체특별법 저지 공동행동)>에서는 반도체특별법의 문제점에 대해 5회에 걸쳐 연재한다.
반도체산업은 수출 비중 20%를 차지하는 대한민국 대표 주력산업이다. 삼성전자가 이 산업의 맹주 역할을 하고 있는데 천문학적인 투자 비용과 높은 기술력을 요구받고, 생산 현장은 국가전략 사업장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수백가지 유해화학물질이 사용되는 반도체 생산공정이 모두 자동화 설비로 구축된 것은 아니다. 공정 간 이동업무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하청노동자가 방진복을 착용하고 대차에 반제품을 싣고 맨 몸으로 일을 한다.
삼성전자 사업장 내에는 수많은 하청업체가 고용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전자 왕국의 통제와 지배로 인해, 사내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의 고용 규모 등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정보도 없다. 노동자에게는 오로지 노무 제공 의무만 강조된다.
삼성전자 원청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는 1억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언저리를 받으며 기간제 계약직으로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수개월짜리 쪼개기 근로계약으로 시작해서 불온성, 충성도를 고려한 대상자들에 한해 계약갱신이 이루어진다. 작년 8월 말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명일지회 사무국장의 경우에는 32개월 동안 6차례 근로계약을 진행했는데 결국 노조활동의 표적이 되어 해고되었다.
"비정규직 노동기본권 보장없는 반도체특별법에 반대"하는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명일지회 노동자들. 반도체특별법 저지 공동행동 제공
명일지회는 출범 후 지난 3년 동안 안전과 건강권 보장을 비롯한 공정한 처우와 정당한 보상 요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했으나, 작년 연말에는 126명의 기간제 노동자들이 일하던 일자리가 다른 업체로 입찰 변경되었다. 그리고 올해에도 141명의 일자리가 변경되었다. 생산감축 등의 경영상 이유로 일자리가 사라진 것도 아닌데 고용승계와 근로계약 갱신기대권은 모두 부정되었다.
명일지회는 지난 5월부터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의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와 고용승계권 박탈을 규탄하는 선전전을 59차례나 진행했다. 국회와 용산 대통령 집무실 앞 기자회견도 추진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투쟁에 사측은 끝까지 버티기 중이다. 계약종료 통지로 사실상 해고를 통보한 삼성 하청사 명일은 538억원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도 자구와 해고 회피 노력을 위해 돈 한푼 쓰지 않았다. 퇴사조치 과정에서 동의 서명을 거부한 7명이 구제신청에 나섰는데 사측은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를 거쳐 행정소송까지 진행하며 복직 요구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하청노동자들의 낮은 저임금 구조는 주야 2교대로 하루 12시간 연장근로를 하지 않고서는 생계를 꾸려나갈 수 없게 만들었다. 하루 3만보를 걸어야 하는 고강도 노동, 각종 근골격계 질환에 시달리면서도 산재 청구는 차단당했고, 회사는 연차와 병가를 통해 치료와 임금손실을 당사자에게 전가시켰다.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하청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는 명일지회의 활동은 결국 이번에도 사실상 삼성전자가 141명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으로 진행되었고 입찰을 통해 수주에 성공한 업체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을 제시하면서 8시간 근무를 기본으로 하는 4조 3교대 시행을 예고하였다. 이는 실질임금 하락을 크게 초래하면서 생계위협이 되고 있다.
결국, 일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는 원청 삼성전자를 건드린 대가라는 비난을 명일지회에 쏟아붓는 상황을 조성했고 삼성 사업장에서 일하는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좌절과 경고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명일에서 일하다 해고된 노동자들에게는 유사업체 취업을 제한당하는 사실상 블랙리스트로 작동하고 있다.
반도체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 요구가 이처럼 진짜 사장 삼성전자의 패권 행사에 의해 위협받고 있지만 재벌특혜와 퍼주기에 다름 아닌 반도체특별법은 국회 본회의 의결을 앞두고 있다.
더욱이 반도체특별법 안에 ‘반도체 특구 입주 기업체의 사용주와 근로자는 노동쟁의에 관한 관계 법률상의 절차를 엄격히 준수함으로써 산업평화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조차 해당 조항으로 인하여 노조활동에 대한 손해배상소송과 형사소송 양형을 가중시킬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작 국회의원들은 수수방관하며 침묵하고 있다.
지금도 삼성에서, 그리고 삼성의 하청노동자들은 명일의 사례처럼 노조활동이 자유롭지 못한데, 국회와 정부가 재벌 삼성이 바라는대로 노조활동을 더욱 옥죄는 조항을 특별법으로 두는 것이 온당한가? 노란봉투법의 통과로 하청노조도 원청 기업과 교섭할 권리와 과도한 손해배상을 제한하기로 한 국회가 이제는 또 특별법으로 노조할 권리를 과도하게 옥죄는가?
참담한 상황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반도체산업의 경제적 성과는 그동안 삼성전자와 같은 재벌기업이 독식해 왔다. 언론들도 반도체특별법이 갖는 기후, 환경, 생태, 노동영역에서의 문제점들에 대해 대부분 침묵하고 있다. 그로 인한 가장 큰 희생양은 저임금, 고용불안, 노조할 권리조차 빼앗겨 온 수많은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이다.
하지만, 우월한 갑의 지위에서 하도급 돌려막기로 노동탄압에 나선 삼성전자의 도발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은 이제 진짜사장과의 교섭만이 자신들의 처지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매일 뉴스에서 다루는 삼성전자 주식 현황은 명일지회가 서초사옥 선전전을 시작한 지난 5월과 비교할 때 곱절 상승했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처지와는 전혀 무관하다.
절박함이 세상을 바꾼다고 했다. 소모품으로 일개미로 취급하며 자신들이 구축한 왕국 내에서 고용과 안전, 처우와 보상 요구를 억압하는 삼성전자의 노동탄압에 맞서 하청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11월 4일, “반도체 특별법 강행 처리 반대” 기자회견 현장, 이재범 민주노총 서비스일반노동조합 명일지회장. 반도체특별법 저지 공동행동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