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극우 단체의 부상은 주요한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위협에 맞서 민주주의 국가들은 대응을 요구받고 있다. 가능한 대응 가운데에는 특정 정당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억압적 조치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과연 실제로 효과적인가. 유럽 민주주의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조치의 강점과 한계를 함께 평가할 수 있다.
2024년 6월 28일, 독일 서부 에센에서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전당대회 개최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고,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나치 반대! AfD 반대!”라고 구호를 외쳤다. 출처: Unsplash. Julia Taubitz
2025년 5월 초, 독일 연방헌법보호청은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을 극단주의 조직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 지위는 사법 당국과 정보기관이 AfD의 활동에 대해 더 심층적인 조사를 수행할 수 있게 한다. 이제 독일 헌법이 규정한 범위 안에서 AfD의 해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독일 헌법 제21조는 민주주의 자체에 위협이 되는 정당이라면 좌우를 막론하고 해산될 수 있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이 연방헌법보호청의 결정이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억압적 조치를 시행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다. 이러한 조치가 오히려 민주주의 자체에 역효과를 낳을 위험은 없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극히 섬세하다.
과거를 돌아본다고 해서 이처럼 복잡한 쟁점에 대해 단번에 확정적인 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논의를 더 깊이 있게 만드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 실제로 정당 금지와 같은 조치는 민주주의 역사에서 낯선 것이 아니다. 이는 ‘전투적 민주주의’ 또는 ‘방어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을 다루는 연구 분야가 보여준다. 이 개념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독일 정치학자 카를 로웬슈타인(Karl Loewenstein)이 반민주적 운동의 부상을 저지하기 위한 수단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했다. 특히 이는 국가사회주의당의 집권이라는 구체적 사례와 관련되어 있었다.
파시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거대 제국들의 붕괴와 수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의 탄생과 맞물렸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이어서 독일에서 파시즘 이데올로기가 성공을 거두면서 이 새로운 모델은 점점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에 일부 국가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을 택했고, 이를 통해 최초의 전투적 민주주의 형태라 할 수 있는 조치들이 등장했다.
프랑스에서는 1936년 1월 10일, 제3공화국이 ‘전투 집단과 사적 민병대’를 해산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을 채택했다. 이 조치는 급격히 세를 넓혀가던 극우 단체들을 겨냥했다. 불과 몇 주 뒤 이 법은 처음으로 적용되었다. 사회당 지도자 레옹 블룸이 공격을 받은 사건 이후, 프랑스 액시옹 프랑세즈(Action française, 20세기 초 프랑스에서 등장한 극우 민족주의·왕당파 정치운동이자 조직) 연맹이 해산되었다.
“모즐리는 지나갈 수 없다. 그들은 파시즘으로 가는 길을 막았다.” 1936년 런던에서 파시스트와 반파시스트가 맞붙은 케이블 스트리트 시가전을 그린 벽화다. 출처: 아만다 슬레이터, CC BY-SA
같은 시기 영국 역시 극우의 부상에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 위협의 이름은 1932년 오즈월드 모즐리(Oswald Mosley)가 창당한 영국 파시스트 연합(BUF)이었다. 당명에서부터 무솔리니의 국가파시스트당을 노골적으로 연상시키는 이 정당은 반복적인 공개 시위를 통해 사회적 긴장을 크게 고조시켰다. 그 결과 1936년 10월 4일, 런던 동부에서 이른바 ‘케이블 스트리트 전투’가 벌어졌다. 이 충돌에서는 한편에 모즐리의 파시스트들이, 다른 한편에 노동조합, 좌파 활동가들, 그리고 유대인 공동체 구성원들이 맞섰다.
이에 따라 1936년 12월 영국 정부는 공공질서법(Public Order Act)을 제정했다. 이 법은 시위에서 정치적 제복 착용을 금지했는데, 이는 모즐리 지지자들이 즐겨 입던 검은 셔츠를 겨냥한 조치였다. 또한 경찰이 특정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재량권을 강화했다. 이 조치로 모즐리와 BUF의 실제 영향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
전후 직후의 전환점
전투적 민주주의 역사에서 두 번째 전환점은 전후 직후 시기였다. 나치즘과 파시즘의 위협에서 벗어난 유럽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채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는 재등장할 수 있는 파시즘의 위협뿐 아니라, 당시에는 더 심각한 위협으로 여겨졌던 공산주의에 맞서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우선 기존에 시행 중이던 법률을 재확인하고, 이를 다시 적용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전후 직후 프랑스 제4공화국은 1936년의 법적 장치를 활용해 여러 소규모 우파 조직을 해산했는데, 그 출발점이 된 것이 프랑스 통합사회주의운동이었다. 영국도 마찬가지였다. 1936년 공공질서법에 근거해 1947년 말 모즐리가 새로 창당한 정당인 유니언 무브먼트(Union Movement, 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등장한 극우·신파시스트 정치 조직)가 공개 집회를 여는 것을 막았다.
동시에 파시즘을 직접 경험했던 국가들 역시 예방 조치를 취했다. 독일연방공화국은 기본법에서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모든 정당을 위헌으로 규정했다. 독일민주공화국 역시 파시즘 이데올로기를 당연히 금지했다. 이탈리아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8년 1월 발효된 이탈리아 헌법은 제12차 최종 조항에서 “해산된 파시스트당을 어떠한 형태로든 재조직하는 것”을 금지했다. 이 원칙은 1947년 12월 승인된 법률과 1952년의 추가 법률, 즉 오늘날까지 유효한 셀바법으로 곧바로 뒷받침되었다. 이 법은 기독민주당 출신 내무장관 마리오 셀바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전투적 민주주의에도 극우의 부상
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들과 이를 일상적으로 떠받치는 사회적 행위자들이 역사적 순간마다 극우의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개입해 왔음에도 극우는 왜 다시 등장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한 가지 답은 일부 조치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예컨대 이탈리아의 경우, 여러 입법 장치가 무솔리니가 창당한 해산된 파시스트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법 적용이 매우 어려워졌다. 극우 정당이 과거의 그 정당을 그대로 재건하려 할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극우 세력의 부상을 민주주의 보호 조치의 실패와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순진한 해석이다. 이는 그러한 조치의 범위와 효과를 과대평가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프랑스의 경우를 보면, 해당 입법은 모든 극우 정당을 제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준군사 조직을 겨냥한 것이었다. 최근 입법 틀이 일부 수정되었지만 상황이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도 아니다. 2012년 5월 발효되고 2021년 8월 26일 개정된 내부안보법전(CSI) 제212-1조는 1936년 1월 10일 법을 폐지했지만, 그 내용 자체는 유지했다. 이 조치가 실효성을 지닌다는 점은 2013년 7월 12일 대통령령을 통해 실제로 여러 단체가 해산되었다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여기에는 2013년 6월 6일 이 운동의 지지자들에게 살해된 반파시스트 활동가 클레망 메리크 사건 이후 해산된 ‘트루아지엠 부아’(Troisième Voie, 2010년대 프랑스에서 활동하던 극우 민족주의·신파시스트 단체)도 포함된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극우 정당의 민주적 정치 참여 자체를 막는 것은 아니다. 무장 시위나 사람과 재산에 대한 폭력 행위를 유발하지 않고, 전투 집단이나 사적 민병대의 성격을 띠지 않는 한 극우 정당은 정치 활동을 이어갈 수 있다. 이것이 국민전선이 정치 무대에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다.
독일의 경우는 보다 광범위한 효과를 지닌 법률을 보여준다. 여러 정당이 해산되었는데, 서독 기준으로 최초 사례는 1952년 사회주의제국당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이러한 조치의 효과를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독일법은 일반적으로 점진적 접근을 선호하며, 예를 들어 공적 자금 지원을 중단하거나 지도부를 감시하는 방식이 우선 적용된다. 해산은 오직 극단적인 경우에만 이루어지며, 이 결정 권한은 헌법재판소에만 있다.
역효과를 낳는 금지 조치인가
전투적 민주주의의 효과를 판단하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들은 특정한 역사적 맥락의 산물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항상 그 시대적 조건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들은 대체로 위협이 초기 단계에 있을 때는 효과적으로 작동해 왔다. 영국의 BUF나 프랑스의 극우 연맹들이 그 사례다. 오늘날에도 이러한 제도는 잠재적인 억제 효과를 발휘해 반민주적 정당과 그 지도부가 스스로를 재조정하고 재배치하도록 압박한다. 이러한 형식적 재조정이 시간이 지나면서 정당의 보다 실질적인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이러한 제도는 너무 ‘무거워질’ 때, 즉 대중적 지지를 받는 정당을 겨냥할 경우에는 효과를 잃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AfD와 같은 정당의 금지 가능성이 그러하다. 소규모 준군사 조직의 해산은 시민들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지만, 대형 정당의 금지는 강압적 행위로 인식될 위험이 크다. 그 결과 민주주의 문화로부터 더 많은 시민이 멀어지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출처] Devrait-on interdire les partis qui menacent la démocratie?
[번역] 이꽃맘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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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아 마르티니(Andrea Martini)는 파리 8대학 프랑스 지정학 연구소에서 마리 퀴리 박사후연구원이고 역사학자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