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전쟁론에 러시아도 결단…‘유럽 전쟁에 대비’

러시아는 이제 이에 대응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렸으며, 유럽에서의 전쟁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출처: 러시아 대통령실

미국과 이란이 루체른에서 진행한 협상에서 마련한 긴장 완화 틀은 대체로 이란이 처음 제시했던 10개 항목의 제안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J.D. 밴스 부통령은 의도적으로 혼선을 일으키며, 이란이 이미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시설 사찰에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를 거듭 부인하고 있다. 밴스는 IAEA가 이번 주부터 사찰을 시작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른바 '협상 틀'에는 미국과 최종 합의가 이루어질 경우에만 60% 농축 우라늄 비축분을 희석하는 과정을 IAEA가 감독할 수 있다는 내용만 담겨 있다.

트럼프는 이후 소셜미디어에 "이란은 앞으로 장기간에 걸쳐 최고 수준의 핵 사찰을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수용하기로 합의했다"고 썼다. 그러나 실제로 IAEA가 사찰하고 있는 곳은 러시아의 요청에 따라 러시아가 건설에 참여한 부셰르 원자력발전소뿐이다. 러시아는 자신들의 사업이 IAEA 규정을 준수하고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이를 요구한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러시아가 자국의 IAEA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요청한 사찰일 뿐이다.

트럼프는 이어 "아주 좋은 합의를 얻지 못하면" 이란을 상대로 "남은 일을 군사적으로 마무리해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그 작업이 "일주일 정도"면 끝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동결이 해제되는 이란 자금도 미국이 관리하는 에스크로(ESCROW) 계좌에 예치해 두고 "국민들이 매우 굶주리고 있으니 옥수수와 대두를 사는 데 사용해야 하며, 그것도 전적으로 미국에서 사야 한다"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협상 방식이 전개될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트럼프는 다시 뉴욕 부동산 거래식 협상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토니 슈워츠(Tony Schwartz)가 대필한 그의 1987년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극단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요구를 제시해 상대를 불안하게 만들고 양보를 끌어내라"고 조언한다.

결국 다시 키스 켈로그(Keith Kellogg)의 협상 방식으로 돌아온 셈이다. 켈로그는 트럼프에게 블라디미르 푸틴이나 이란을 상대할 때 효과가 있는 것은 압박뿐이며, 그것도 계속해서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조언한 바 있다.

이는 트럼프 특유의 익숙한 협상 방식이다. 처음에는 약간의 유연성을 보이며 상대를 협상장으로 끌어들인 뒤, 이후에는 이란이 양보했다는 허위 주장을 내세우고 극단적인 요구를 제기해 압박 수위를 높인다. 동시에 미국 내 강경 신보수주의 세력과 자신의 지지층에는 강한 지도자로 비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이런 압박 방식은 뉴욕의 부동산 거래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이란과 러시아에는 효과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러한 위협은 이란에는 역효과를 내고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만 키울 것이다. 이란 측 수석 협상대표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 Bagher Qalibaf)"이스라마바드(Islamabad) 합의는 압력과 강요의 결과가 아니라 이란 국민의 저항과 주권 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반박했다.

실질적인 군사력 측면에서도 미국이 유리하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 군사 문제를 오랫동안 분석해 온 윌 슈라이버(Will Schryver)는 이란이 미국보다 훨씬 다양한 압박 수단을 갖고 있다고 평가한다.

"내 판단으로는 미국이 페르시아만 지역에 대규모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은 체면을 지키려는 것뿐이다. 현재 시점에서 미군이 72시간 동안이라도 고강도 군사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럼에도 미국은 시도할 것이다. 아마 트럼프의 허세일 가능성이 크지만, 마지막 승부수를 던져 협상 우위를 확보하려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는 중간선거 이후, 그리고 미국이 부족한 탄약을 어느 정도 보충한 뒤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이란은 다시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고, 동시에 걸프 지역의 주요 기반시설을 공격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결국 누가 먼저 양보하는지를 겨루는 '치킨게임'을 벌이려는 셈이다. 그러나 또 한 번의 군사 개입은 미국의 군사적 위상만 더욱 약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다만 트럼프가 이란 문제에서 어느 정도 손실을 감수하고 관심을 다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로 돌릴 가능성도 있다. 이란과의 전쟁은 중간선거 전략에도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키이우 인디펜던트>는 전날 우크라이나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에게 러시아를 상대로 "더 과감하게 행동하라"는 비공개 신호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셈이다. 해당 우크라이나 관계자는 "트럼프는 푸틴이 압박 없이는 아무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실제로 믿고 있다"고 말했다.

군사 분석가 심플리시우스(Simplicius)는 다음과 같이 추측한다.

"트럼프는 자신이 쉽게 해결하겠다고 공언했던 여러 분쟁을 끝내 해결하지 못한 데 대해 분명 좌절하고 있다. 최근 이란 관련 사태 이후 그는 이제 관심을 다시 우크라이나로 돌리겠다고 직접 인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트럼프가 유럽 국가들에게 비밀리에 전장을 유리하게 조성해 러시아를 어느 정도 약화시켜 달라고 독려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이후 자신이 준비한 다음 단계를 추진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리고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면, 유럽 국가들은 성냥을 가지고 불장난을 하다가 대형 화재를 일으킬 위험을 감수하고 있는 셈이다.

영국의 키어 스타머 총리,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등 이른바 E3 정상들은 67일 젤렌스키와 만나 흔들림 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이들은 러시아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히면서,

요격 미사일 생산을 시급히 확대하고, 장거리 타격 능력을 강화하며, 탄도미사일 방어체계를 공동 개발하는 한편, 우크라이나군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성을 계속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유럽 국가들은 모스크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장거리 타격을 한층 강화할 계획이며, 이는 해당 도시 주민들의 사상자를 늘리고 사회적 불안을 키울 가능성이 높다.

영국·프랑스·독일 등 이른바 E3 국가는 다가올 주요 정상회의를 치밀하게 준비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를 주요 행사에 전면에 내세우고,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와 유럽연합 정상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현재의 전선을 기준으로 즉각적이고 완전한 휴전에 동의하라고 압박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77~8일 앙카라에서 열리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를 앞두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확대를 공동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E3 국가들은 러시아 본토를 더욱 깊숙이, 더욱 파괴적으로 공격할 수 있는 신형 미사일 전력을 명시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정부는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저비용 장거리 정밀타격 무기를 개발하는 영국 프로젝트가 중요한 이정표에 도달했으며, 영국이 설계한 세 가지 무기체계가 비행시험에 성공했다. 이 지상 발사형 타격 무기는 500km 이상 떨어진 목표물을 시속 600km의 속도로 타격할 수 있으며, 225kg 탄두를 탑재한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는 지난주 G7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최근 러시아 본토 깊숙한 지역을 상대로 실시한 장거리 공격 작전에 대해 "매우 깊은 인상을 받았고 큰 열의를 보였다." 그는 정상회의에서 러시아 에너지 부문에 대한 제재를 더욱 강화하는 데에도 동의했다.

이 같은 정황을 보면 E3는 대규모 심리전을 준비해 트럼프를 설득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밀리고 있다는 기존의 평가와 달리, 이미 전세를 되돌렸으며 이제 미국도 유럽의 전략을 지지해 러시아를 굴복시켜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려 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굴복은 휴전, 국경 현상 유지, 러시아의 배상금 지급, 그리고 러시아 관리들에 대한 전범 재판 등을 포함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러시아에서는 두 가지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첫째, 유리 우샤코프(Yuri Ushakov)를 비롯한 크렘린 고위 참모들은 지난 사흘 동안 앵커리지 정상회담의 정신과 그에 수반된 상호 이해가 "사실상 붕괴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미국이 이를 먼저 저버렸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는 더 이상 당시의 약속이 지켜질 것으로 기대하지 않으며, 이제는 군사적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승리'를 확보하는 데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알래스카 회담 자체가 우크라이나에 재무장과 전력 재건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미국의 술수였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과거 민스크 협정에 비유하며, 당시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속이기 위한 기만이었다고 평가했다.

세르게이 랴브코프(Sergei Ryabkov) 외무차관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미국의 정책이 영국과 프랑스처럼 가장 강경한 반러시아 노선을 취하는 유럽 동맹국들의 입장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도 확인하고 있다.

이는 러시아의 전략이 크게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러시아는 더 이상 워싱턴과 새로운 관계를 구축하려 하지 않으며, 다만 미국 정부와의 실무적 접촉만 계속 유지할 것이라는 의미다.

두 번째 변화는 623일 성 게오르기 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군사학교 생도들을 상대로 한 연설에서 드러났다. 푸틴은 서방이 러시아의 위협을 만들어낸 뒤, 오히려 러시아가 그 위협을 조성했다고 비난하는 방식을 반복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패턴이 1941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반복이라고 말했다.

푸틴은 이제 중요한 임계점을 넘어섰다고 시사했다. 그는 최근까지만 해도 NATO 국가들이 키이우 정권이 러시아와 전쟁을 수행하도록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렀지만, 이제는 서방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공개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군사비도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독일의 프리드리히 메르츠 총리가 이러한 입장을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밝혀 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한 러시아의 대응은 핵전력 삼축체계와 육군의 현대화, 그리고 항공우주군과 해군의 전투력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푸틴은 밝혔다. 특히 서방의 대러 전쟁 준비를 언급한 직후 핵전력 삼축체계를 강조한 것은 트럼프와 유럽 국가들을 향한 분명한 경고의 메시지였다.

러시아는 유럽에서 커져 가는 전쟁론을 분명히 들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해 유럽에서의 전쟁에 대비하는 방향으로 전략적 결정을 내렸다.

[출처] Alastair Crooke Russia hearing the European clamour for war, announces it is ready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알래스터 크룩(Alastair Crooke)은 전직 영국 외교관이자 베이루트(Beirut)에 본부를 둔 컨플릭츠 포럼(Conflicts Forum)의 설립자 겸 대표다. 이 글은 전략문화재단(Strategic Culture Foundation)에 게재된 글을 전재한 것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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