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국면에서 광장 외면하는 언론

뭔가 잘못됐다. 21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모습은 상상하지 못했던 그림이다윤석열 퇴진을 함께 외쳤던 광장의 목소리들이 이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 있는 것인가한국성폭력상담소가 쓴 성평등 삭제하며 역사의 시계를 되돌리지 말라는 성명(단호한 시선)에 붙인 문구가 울림을 주는 이유다. ‘어떻게 만든 조기 대선인데…’ 젠더 이슈만의 이야기도 아니다. 2016년 박근혜 탄핵 이후 죽 쒀서 개 주지 말자던 다짐은 이번에도 공염불로 끝나게 되는 걸까.

2024년 12월 3윤석열이 비상계엄은 선포하는 순간 국회를 에워싼 시민들이 있었다이들은 계엄군과 장갑차를 몸으로 막고 국회의원들이 담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왔다헌법재판소가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피청구인의 국회 통제 등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안을 가결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시한 까닭이다그런데 그 추앙받던 시민들의 요구는 어디로 갔나.

헌재 앞 지키는 '키세스 동지들'. 참세상 자료 사진 

“21대 대통령 선거이건 아니다

21대 대통령 선거의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이재명 전 대표가 선출됐다. ‘구대명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었다. 89.77%, 이 수치를 보는 마음이 복잡하다이재명 후보는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먹사니즘’, ‘잘사니즘을 거론하며 실용주의 이미지를 부각했다말이 좋아 실용주의지사실상 우클릭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무너뜨렸다당 차원에서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이어 가상자산 과세 유예를 발표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그 중심에 이재명 후보가 있었다이번 대선 과정에서 이재명 후보는 김동연·김경수 두 후보와 달리 증세에 선을 그었다그러곤 상속세 공제액 확대(배우자 과세 폐지)와 근로소득세 기본공제 상향첨단전략산업 기업 법인세 감면 등 감세를 예고했다이재명 후보는 앞서 주52시간 근무제의 근간을 흔드는 「반도체특별법」에 찬성 입장을 밝힌 바 있기도 하다국민연금제도 개선 과정에서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거론했다. “삼성이 잘 살아야.” 이재명 후보의 현재를 보여주는 말이 아닐까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의 회동에서 건넨 말이었다. “대통령이 되면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사면해 노동부 장관에 발탁하겠다던 2017년의 이재명은 없다.

국민의힘은 말할 것도 없다여전히 계엄과 탄핵에 대한 책임 전가로 바쁘다국민의힘 당내 경선 토론에서 “2시간짜리”, “해프닝”(홍준표), “(계엄은불가피”, “민주당도 사과 안 하는데우리만 사과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김문수), “내란몰이 선동”(나경원), “윤석열 탈당은 본인의 판단에 맡겨야”(한동훈등 윤석열을 옹호하는 발언들이 다수 쏟아졌다이런 TV토론을 우리는 왜 시간을 들여 봐야 하나.

여기에 계엄과 내란의 책임을 져야 할 한덕수 총리(대통령 권한대행)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코미디 같은 한국의 정치 상황. TV를 보고 있자니 더 화만 돋운다.

“2017년 대선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래서 19대 대통령 선거를 소환하게 된다박근혜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파면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졌던 때그 당시 분위기는 이렇게 참담하진 않았다어느 때보다 사회개혁”, “바꾸자는 요구가 뜨거웠다. ‘광화문집무실 시대’ 이야기가 괜히 나왔던 게 아니다.

뜨거운 개혁 요구에 정치권에서도 이를 (선별적으로수용했다. 5명의 대선후보 모두 ‘1만 원 최저임금제 시행을 공약했던 때였다단지 시행 시기만 달리했다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당시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2020년 달성을 공약했었다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는 2022년 임기 내를 약속했다낙수효과에 대한 회의감에 소득주도성장이 아이디어로 나왔던 때였다. ‘돌봄이 이슈였고문재인 후보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거론했었다언론·미디어 영역에서도 큰 폭의 공약이 나오진 않았지만 인터넷상 정치적 표현에 대해서는 자율규제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 공약집에 포함됐었다.

2025년은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윤석열 탄핵 목소리가 울려 퍼졌던 광장의 주역들이 패닉상태에 빠진 이유다왜일까다양한 원인이 거론된다한국 사회가 계엄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었기에 변화보다는 안정감을 선택했다는 설명이다전 세계적인 저성장이 한국 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더불어민주당 지지 세력이 기득권화됐기에 당 차원에서도 그 방향으로 이동한 결과라고도 한다여기에 국민의힘이 극우와 가까워지며 더불어민주당을 보수로 더욱 끌어당기고 있기 때문이라는 진단도 나온다다 설득력이 있는 얘기들이다.

그런데그게 옳은가?” 한국 사회가 진정 그 방향으로 끌려가도 좋은가이번 대선 과정에서 빠져 있는 질문이다어떻게 보면 가장 필요한 진단을 우리가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조기 대선으로 모든 이목이 쏠린 상태에서 언론에라도 제 역할을 주문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그리고 또다시 언론의 의제 설정 실패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의 의제 설정은 이번에도 실패 중이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어느 때보다 낮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미디어환경의 변화와 맞물린 팬덤화된 정치환경이 이를 가속화했다이제 정치인 개개인은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본인의 이야기를 직접 할 수 있게 됐다그로 인해 권력 구도가 흔들리고 있다. 12·3비상계엄 이후 계엄에 연루된 곽종근 전 육군특수전사령관이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의 유튜브(주블리 김병주)에 출연한 건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았다.

정치인들이 내부적인 인맥을 통해 가져오는 정보(때론 오염돼 있을 가능성도 있지만)와 언론의 취재는 신속성과 내밀성 측면에서는 경쟁조차 어렵다이런 때 언론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정당과 정치인들의 속성은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 한다고 점일 거다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그들의 설계대로 따라가지 않는 것언론은 그 영역에서 진전된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고만들어가야 한다바로 어젠다 세팅이다정치인들이 검증 없이 쏟아내는 발언에 대한 팩트체크도 중요해질 수 있다하지만 아쉽게 21대 대통령 선거에서 그 모습은 보기 힘들다.

한참 이야기한 광장이 그렇다윤석열의 계엄으로 광장이 열렸던 때 언론은 광장에 주목했다. 20·30여성들이 주축이 돼 응원봉과 케이팝으로 윤석열 탄핵을 외치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언론하지만 광장을 지켰던 이들은 우린 계속 광장에 있었다고 답했었다필자 또한 언론이 광장을 외면해 왔던 건 언론이지 않느냐고 비판한 바 있다그러면서도 그 시선이 거둬지지 않길 바랐다이렇게 또 배신당할 걸 알면서도.

광장은 대통령 선거와 무관하지 않다광장의 목소리를 받아 공약으로 만든 대통령 후보들이 있다사회대전환 대선 연대회의를 통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정의당 권영국 대표와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그들이다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유권자에게 닿기 어렵다원외 정당이며 지지율 낮은 후보의 설움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있을까언론이 광장의 요구를 조금은 더 선거판에 가져온다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하지만 언론의 시선은 다시 광장에서 멀어져 있다.

한국 사회는 실패를 반복하고 있다지금 바꾸지 않는다면 더 이상 실패라는 말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2016년 촛불을 경험한 시민들이 윤석열의 온갖 부정을 관찰하고 있었음에도 (계엄 선포 이전거리에 나오지 않았던 이유다정치의 실패가 한국 사회를 냉소 사회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합니다라는 한 정치인의 선의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사회는 위험하다그걸 언론은 진정 모르는 걸까.

덧붙이는 말

권순택은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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