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운동 종말을 향하고 있나"
미국노총(AFL-CIO)과 WTO
"4.16 워싱턴시위 기념티셔츠를 판매합니다. 한 벌에 10달러, 백퍼센트 유니온숍(union shop: 일정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노동조합에 가입해야 하는 직장) 제품입니다!"
4월 13일, 워싱턴 시위에 참가했던 필자는 뭔가 도울 일이 없을까 찾다가 미 의사당이 있는 캐피탈 힐에서 열리는 '중국의 WTO 가입 반대' 미국노총산별회의(AFL-CIO)의 집회장에서 티셔츠를 판매하는 일을 돕게 되었다. 영어로 큰 소리로 티셔츠를 팔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곤혹스럽고 힘든 일이었는데 더 난감한 일이 연이어 일어났다. 다가와서 멀뚱멀뚱 티셔츠를 들여다보던 노동자들이 한결같이 워싱턴 시위가 도대체 뭐냐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술 더 떠서 "뭔지는 모르지만,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데 그걸 왜 공짜로 주지 돈을 받느냐"고 따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관제행사 보는 듯한 씁쓸한 기분
어쩌면 그럴 만도 한 것이 집회장에 모인 수만 명의 노동자들은 모두 미국노총산별회의에서 무료로 배부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주문 제작한 듯한 화려한 피켓들, 시위기간 내내 일급 호텔에서 묵고 있는 노조원들을 보면 미국노총산별회의가 돈이 많다는 말이 뜬소문만은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미국노총산별회의도 하나의 주관 단체로 참여하고 있는 워싱턴 시위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노동자들이 똑같은 옷을 맞춰 입고 화려한 피켓을 들고 환호하고 있는 모습은 관제 행사를 보는 듯한 씁쓸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수만 명의 그들이 모여서 외치는 구호는 씁쓸한 기분을 넘어서 절망감과 혼란마저 남겼다. 작년 시애틀에서 미국노총산별회의가 WTO 해체를 외치는 다른 시위대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노동기준 삽입 등의 개혁만을 이야기하면서 행진마저 함께 하지 않았을 때부터 이들의 논의가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을 예상할 수 있었다.
머리속엔 오직 자신의 이익뿐
그러나 워싱턴에서 이들은 그보다 더욱 후퇴했다. 중국의 WTO 가입 반대를 주된 구호로 제기하면서 아예 반세계화 운동의 대상을 왜곡시켰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을 다른 국가에 그대로 강요하고 비판하는 보수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그날 집회에서 전미철강노조 위원장인 조지 베커가 흥분한 목소리로 "중국은 건달 국가에 기독교를 박해하는 불경스런 사회이며 중국은 미국에 이념적으로 반대하는 국가입니다. 이러한 국가가 WTO에 가입하고 미국과의 무역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는 일입니다"라고 외쳤을 때, 공원을 가득 메운 노동자들은 매카시즘의 망령에라도 사로잡힌 듯 전율하면서 그에게 환호를 보냈던 것이다.
그들은 더 이상 세계화의 폐해를 문제삼지 않고 있었다. WTO의 강화나 약화, 혹은 개혁과 폐지는 잊혀졌다. 그들의 머리 속에 남은 것은 오직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켜내는 것과 임금 하락을 막아내는 것이었다. <노동자세계>의 기사에서 프레드 골드스타인은 미국노총산별회의가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익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을 투쟁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결국 미국 노동운동의 종말을 앞당기는 일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해외 노동자들과의 연대의 틀을 스스로 깨고 미국의 보수적 기득권 세력으로 편입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미국노총산별회의의 이러한 움직임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의 군사적 개입의 지지기반을 확보하고자 하는 우익세력에 의해 이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명백한 한계 보여준 워싱턴 시위
자신들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 하여 통합적 세계화의 주축인 IMF와 세계 은행에 대해 무관심하고, 자신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 하여 중국을 비난하면서 WTO의 존재는 인정하고 들어가는 미국노총산별회의는 결국 이번 워싱턴 시위에서 스스로 보수화, 관료화된 조직의 문제점을 드러냈다. IMF와 세계은행의 회의가 열린 4월 16일, 백악관 앞 공원에서 미국노총산별회의는 세계화 반대운동의 세력들과 함께 집회를 열고 대규모 행진을 벌였지만, 이들은 서로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도 매우 위험한, 악몽이 될 수도 있는 꿈을 말이다.
(강은지국제민주연대 <사람이사람에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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