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바다를 둘러싼 논쟁의 지형과 이데올로기
소리바다를 둘러싼 논쟁의 지형과 이데올로기
진보넷 사무국장, 공유적지적재산권모임 IPLeft회원
오병일 (antiropy@www.jinbo.net)
지난 8월 12일 검찰은 소리바다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기소하였다. 올해 1월 음반산업협회에서 소리바다를 고소한 후, 수 개의 소리바다 살리기 사이트가 만들어지고, 인터넷에서의 디지털 저작물 사용에 관련된 논쟁이 시작된 이후, 잠시 소강상태에 머무르다 이번 기소를 계기로 다시 한번 사회적 논쟁이 불붙은 듯 하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이 아직 어떠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있지는 않은 듯 하다. 어쩌면 벌써 합의를 운운하기에는 너무 섣부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현 단계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디지털 저작물과 저작권이 빚고 있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인식과 대안에 대한 토론이 더욱 확산되는 것이다.
소리바다에 대한 지지의 입장과 반대의 입장, 양자 모두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관점과 수위의 문제가 혼재되어 논의되고, 상이한 관점에 따른 상이한 현실 인식 역시 소통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 글에서는 현재까지 진행된 논쟁의 지형들과 저변에 깔린 이데올로기를 나름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기술적, 산업적 관점
소리바다에 대한 검찰의 기소가 늦어진 배경에는 MP3 플레이어 산업에 대한 눈치보기가 한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소리바다를 통한 MP3 유통의 활성화는 각 가정에 초고속인터넷 회선의 설치를 확산시키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며, 따라서 회선 사업자들에 대한 고려도 있었을 것이라고도 한다. 또 다른 측면에서, 저작권을 근거로 소리바다를 제재하는 것은 발전하고 있는 P2P 기술 자체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복사기, VTR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을 때마다, 저작권자들은 문화 기반이 붕괴할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현재 이 기술들은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P2P 기술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것이다. 저작권을 인정하더라도, 새로운 기술이 (저작권 위반이라는) 불법적인 목적 외의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면, 저작권을 근거로 기술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지적은 타당한 측면이 있다. 물론 이는 저작권 역시 절대적인 권리가 아니라, 여러 사회적인 필요에서 제한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이며, 모든 기술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생명공학 기술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필요에 의해 제한될 필요가 있는 기술 역시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는 기술과 저작권에 대한 가치판단 문제로 돌아간다. 즉, 저작권을 근거로 P2P 방식의 파일교환 기술(음반사 및 저작권자들이 P2P 기술 자체를 막으려함은 아니나, 적어도 소리바다를 비롯하여, P2P 방식의 비슷한 파일교환 기술을 막으려함은 분명하다)을 무력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은 기술 자체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거나, 그 기술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가 저작권에 의해 제약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이 관점에서의 논쟁은 근본적으로 저작권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정책적 고려나 이해관계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적절한 타협지점을 모색하고자 한다. 예컨대, 복사기나 VTR 등도 일방적으로 기술이 수용된 것은 아니다. 복제기기에 일정 요율의 저작권료를 부과하거나, 가정내에 준하는 장소로 복제를 한정하는 등의 정책적인 타협의 결과이다. 냅스터와 마찬가지로 소리바다의 경우도 기술적인 수정을 통한 저작권 보호 및 '서비스 유료화'를 통한 저작권료 지급 등 적정한 수준에서 타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냅스터나 소리바다가 폐쇄되거나 타협을 하더라도, 기술의 발전에 의해 MP3의 유통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을 불가능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예컨대, 중앙서버의 이용을 배제한 누텔라(Gnutella)같은 프로그램이 실용적인 수준에서의 성능 향상을 가져온다면? 이러한 주장(이라기 보다는 예측?)은 낙관적이든, 비관적이든 별 근거는 없다고 보여진다. 다만, 어느 시대든 100% 완벽한 규제는 불가능하겠지만, 한 사회의 공권력을 그렇게 만만하게 볼 수는없을 듯하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심각한 (저작권 보호를 위한) 규제 방식이 동원될 수도 있으며, 이러한 규제를 제어하는 것은 기술이라기 보다는 사회적인 투쟁이 될 것이다.
법리적 논쟁
소리바다 이슈가 중요한 이유는 소리바다와 관련된 판결이 단지 소리바다라는 특정 프로그램의 운명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의 인프라와 기술 수준에서는 상대적으로 적은 파일 크기를 갖는 MP3 음악파일이 먼저 쟁점화되었지만, 회선 대역폭의 확대와 압축 기술의 진전으로 조만간 만화, 영화 등 모든 디지털 저작물로 쟁점의 대상이 확대될 것이다. 그리고, 소리바다에 대한 판결은 결국 디지털 저작물 일반의 이용에 관한 룰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법리적 논쟁은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저작권 침해에 대한 이용자의 책임과 소리바다의 책임 부분이다. 만일 이용자가 저작권 위반의 책임이 없다면, 이용자의 파일 교환을 매개한 소리바다 역시 책임이 없을 것이므로, 먼저 이용자의 책임 부분에 대한 논쟁을 살펴보자. 저작권자들은 당연히 이용자들이 소리바다를 통해 MP3 파일을 교환하는 것은 저작권 침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용자들의 파일 교환은 개인적이고, 비영리적으로 이루어졌으므로 공정이용, 혹은 저작재산권의 예외로 취급해야한다는 의견이 있다.
참고로 저작권법은 '문화의 향상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하며, 저작자와 저작인접권자(실연자 및 음반사 등)를 보호하는 것은 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1조) 또한, 교육, 비판, 보도, 재판 등 공공의 목적이나 사적 이용의 경우 저작재산권의 적용을 제한함으로써 그 이용을 보호한다. (이를 해외 저작권법에서는 '공정이용'(fair use)이라고 한다.)
문제는 소리바다를 통한 MP3 파일교환이 공정이용에 해당하냐는 것인데, 우리나라 저작권법 {제27조 사적이용을 위한 복제}에서는 사적 이용의 범위를 '가정 및 이에 준하는 한정된 범위'로 한정함으로써 저작권법 위반의 가능성을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법의 실제적 판단은 법원에서 하는 것이고,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에서는 현행법의 한계를 넘어서 논의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개인적, 비영리적 이용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도하게 저작권자만의 이익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비판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저작권자는 소리바다를 통한 파일 교환이 과연 '개인적'인 복제인가하는 비판을 제기한다. 즉, 소리바다를 통한 파일 공유는 '불특정다수'에 대한 배포이며, 개인과 개인의 파일 교환이 뭉쳐서 집단적 저작권 침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일명 '물방울 효과') 하지만, 인터넷 시대에 기존의 관념에서의 개인 관계, 혹은 커뮤니티의 개념을 적용할 수는 없으며, 또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물방울 효과'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면, 이는 결국 사적 복제에 대한 부정이라는 반비판도 가능하다.
이런 논쟁의 맥락에서 실제 피해액의 규모 역시 논란이 되고 있는데, 실제 시장에 미치는 영향 역시 공정이용의 판단에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음반사측은 약 2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소리바다 측은 객관적인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한다. 설사 음반사들의 매출액이 감소하였더라도 이는 단지 소리바다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인 여건의 변화, 음반사의 영업 능력 등 다양한 원인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객관적 데이터가 없다는 점 역시 논쟁을 어렵게 만드는 점 중의 하나이지만, 어쩌면 객관적 데이터가 없다는 것 자체가 '창작자들 다 죽는다'라는 음반사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된다(결국 당사자의 주장이므로). 그러나,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범위내에서만 공정이용이 인정되는 현 저작권 체제의 한계 내에서라면 별 논쟁의 여지가 없어보이며, '설사 2000억원의 손실을 입었다하더라도' 라는 전제 속에서 논의가 될 때 저작권법을 뛰어넘는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더욱 근본적으로 디지털 환경에서는 '복제의 개념' 자체가 변화해야하지 않느냐하는 주장이 제기된다. 즉, 지적창작물이 책이나 음반같은 유체물에 고착되어 배포되는 경우, 지적창작물에 대한 접근과 복제는 별개의 행위였으며, 복제를 규제하는 것(그래서 Copyright)이 상대적으로 제대로 기능할 수 있었다. 하지만, 디지털 환경에서는 접근을 위해 복제는 필수적으로
수반되며(불법복제의 의도와 무관하게), 또한 개인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웹페이지에 접속하는 것 자체가 서버로부터 데이터 파일을 복제, 전송해오는 것이다) 따라서, 복제에 대한 통제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행위에 대한 통제까지 범위를 확대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자칫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지금은 소리바다만이 문제가 되고, 소리바다의 폐쇄만을 원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개인간의 파일 교환을 불법적이라고 규정하는 이상, 소리바다만이 아니라, 메신저, e-mail 등 다양한 개인간의 소통을 저작권 위반의 가능성이라는 명목으로 모니터링하는 것에 대해서 정당성을 부여해줄 위험이 있는 것이다.
만일 이용자가 저작권 위반의 책임이 있다고 했을 때, 이를 전제로 한 소리바다의 책임문제는 어떠한가? 냅스터의 경우, VTR이 저작권을 침해하는 용도로 사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VTR 제작사가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듯, 냅스터 역시 마찬가지이며, 실제로 냅스터는 비침해적인 용도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법원은 냅스터가 저작권이 미치는 파일에 대한 특정한 침해행위를 인식했고, 냅스터를 통해 그러한 파일이 유통됨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방지하는 행위를 하지 않은 경우 기여책임을 진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사이트 자체는 폐쇄되지 않았지만, 저작권이 미치는 파일을 필터링할 것을 명령하였다.
문제는 소리바다가 저작권 침해에 얼마나 개입했는가, 그리고 통제의 능력이 있는가이다. 또한, 저작권 침해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 역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에 음반사측은 소리바다는 '주로' 저작권 침해에 사용되고 있으며, 오히려 '종범을 가장한 주범'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소리바다 측은 소리바다는 중앙서버에 음악파일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냅스터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즉, 접속해있는 이용자의 위치(IP주소)만 알려줄 뿐, 실제 파일 교환에서 소리바다가 하는 역할은 거의 없고, 이를 통제할 수도 없으므로, 소리바다는 책임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소리바다가 (현재의 저작권 침해의 비율과 무관하게) 비침해적 용도로 사용될 가능성 역시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 문제는 전통적인 '인터넷서비스제공자(ISP)의 책임문제'와도 관련된다. 과연 서비스 제공자가 서비스 이용자의 불법행위에 책임을 져야하는가? 아직 명확하게 정리된 이론은 없으나, 서비스 제공자의 불법행위 인지가능성, 통제가능성 등의 여러 요소를 고려하여 판결이 내려지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제공자의 책임이 강화될수록, 서비스제공자는 이용자들의 행위를 모니터링할 수 밖에 없으며, 이는 이용자의 프라이버시 및 이용권을 침해하게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즉, 저작권 보호의 명목으로 이용자의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 이번 검찰의 기소를 두고, 직접침해자인 이용자는 가만두고, 기여침해자인 소리바다만을 기소하는 것은 법적용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복제 개념의 변화'라는 문제가 초래한 현실적인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 철학의 대립 : 공짜족들 <-> 돈에눈먼자들 (?)
대립되는 논쟁의 기저에는 '저작권'에 대한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가 깔려있다. 즉, 음반사 측은 저작권은 생산자의 천부적, 절대적인 권리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저작권을 부정하는 발언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MP3 형태든, 어떤 형태든 그들이 생산한 음원은 상품이며, 이를 허락없이 복제하는 것은 도둑질이다. 이들의 관점에서, MP3 파일을 공유하자는 것은 공짜를 좋아하는 얌체들의 뻔뻔스러운 주장일뿐더러, 생산자를 죽이는 '위험한' 주장이다.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예술창작물에 재산권을 부여하는 것은 상대적, 정책적인 문제라고 본다. 문화, 지식은 근본적으로 인류 공동의 자산이나, 창작의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한 정책적인 필요에서 '일시적으로'(현재 저작자 사후 50년) 독점권을 부여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창작자의 인격적 권리는 논외로 한다.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재산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대와 상황에 따라 정책은 달라질 수 있으며, 현재 저작권법은 현실과 많은모순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음반사들은 실제 창작자도 아니며, 음악유통의 독점을 통해 자신의 이윤만을 챙기려하는 '돈에 눈이 먼' 자들이다.
이를 좀 더 확장한다면, 음반사 측의 논리는 문화의 발전은 '문화산업의 발전'이며, 문화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저작권 보호를 강화해야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현재는 지구적 경쟁의 시대이며, 지식과 문화는 이미 시작된 미래의 중요 산업 분야이다. 정보화에 앞서나가, 제3세계를 우리의 문화 식민지로 만들자? 이런 관점에 대해 다음과 같은 비판이 가능하다. 이는 근본적으로 미국 중심의 거대 자본의 논리, 신자유주의 논리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초래한 재앙-20대 80의 사회-과 이에 대한 저항에 대해서는 여기서 상술하지는 않는다.
저작권의 측면에서 얘기한다면, 과연 저작권이 현재의 디지털 환경과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예컨데, 디지털 도서관은 우리나라같이 도서관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공공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하지만, 저작권에 의해서 디지털 도서관을 구축하고도 도서관에 직접 가서 열람해야하는 웃기는 상황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의 발전은 음악 창작자들이 '직접', 보다 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전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현재 소리바다를 통해서 음악을 향유할 수 있는 풀이 확대된 것처럼) 그런데, 그것을 저작권이라는 시스템으로 제한하는 것이 옳은가? 창작자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 저작권 밖에 없다는 것인가? 또한, 정보, 문화 영역에 있어서 최대의 소비자는 바로 창작자라고 할 수 있는데(예컨데, 책상 생산자가 책상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음악 생산자들은 사실 음악을 가장 많이 듣게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저작권 강화가 창작자 보호라는 등식은 단지 특정 순간만을 포착한 단견이며, 궁극적으로 창작자 자신에게 '환경적 제약'으로 돌아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몇 명 잘 나가는 창작자들을 제외하고) 정보공유의 논리(물론 정보공유론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스펙트럼은 무척 다양하지만)는 바로 저작권에 대한 이러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과연 대안이 무엇이냐는 반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지 않느냐는 논리는 차치하기로 한다.) 이미 실제 많은 창작자들이 (종속적이건 그렇지 않건간에) 음반사와의 결합속에서, 음반, 공연 등을 포함한 음악 시장 속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MP3 음악의 공유는 결국 그들의 생계를 박탈하는 것이 아닌가? 또한, 문화창작의 활성화를 위한 다른 공공적 정책의 실시나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의 창출(예컨데, MP3의 유통을 오히려 확산시킴으로써, 대중적 인지도를 확대하고, 이를 통해 CD 판매나 공연 수입의 확대를 꾀할 수 있다-현재 '뜨는' 가수들만큼의 엄청난 수입은 아닐지라도-는 주장도 있다.)을 기대해본다고 하더라도, 과연 거대 기업 중심의 생산시스템을 어느 정도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현재는 음악이 문제지만, 만일 디지털 영화 파일이 쟁점이 된다면?
여기서 저작권 중심의 논의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을 듯 하다. 음반 시장에서의 모순이 저작권만의 문제는 아니므로, 그 대안도 저작권에 대한 대안으로 생각해서만은 안될 것이다. 이제 논쟁이 저작권법을 포함한 음반 시장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예컨데, 현재 창작자는 정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 음반사들의 역할은 재고될 필요가 없는가, 저작권은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가 등. 앞으로 보다 진전된 논의를 기대해본다.
(이글은 웹진 대자보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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