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월드컵의 해는 밝았다

상암동 2공구 철대위 이동수 위원장은 지난 12월 31일 시청문앞에서 1인시위에 돌입했다.[사진-copyleft참세상뉴스]

31일 시청앞 광장 - 월드컵의 해를 맞기 위해 전력투구
12월31일 오후 3시 시청 앞 광장은 차량을 통제 한 채 무대 쌓기에 분주한 사람들과 각종 무대 장비로 가득차 있었다. 방송사에서 나온 발전 차, 3미터가 넘는 무대, 수많은 스텝, 벌써부터 월드컵의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분주함이 보인다. 오후부터 눈이 내릴 거라던 일기 예보가 대충 맞았는지 하늘은 우중충하기만 하고 무대를 감싸고 있는 초대형 조명을 켜놓고 타종식과 더불어 '가는해 오는해! 월드컵의 해맞이 행사'를
▶시청문앞, 월드컵 해를 맞았지만 상암동 철거민은 1인시위에 돌입했다.
들뜨게 한다. 그러나 시청 앞 광장에서 조금만 고개를 돌려 시청 문 앞을 보면, 길이 2미터가 넘는 피켓을 들고 홀로 서있는 사람이 있다.

이제 설곳은 시청 문앞 밖에 없군요.
2002년 월드컵 때문에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상암동에서 쫓겨나야 했던 철거민 이동수(31)씨. 그는 마지막 남은 상암동 철거민이다. 마지막 남은 상암동 철거민이 최후로 선택한 공간은 시청 문 앞이었다. 그는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지난 12월28일 1년 6개월 여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와 그가 서있을 곳이라고는 서울시청 문 앞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미 상암동은 공사가 들어가 자신이 살던 곳은 철제 펜스로 둘러 쌓여 있었고 함께 투쟁했던 철거민들은 임대 아파트에 들어갔거나 투쟁을 접었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이동수 위원장은 "사활을 걸었다"라며 굳은 의지를 밝혔다. 상암동 아파트 입주 완공시기가 내년 5월이기 때문에 2001년 마지막 날부터 새로운 싸움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동수씨가 2000년 7월26일 민주당 점거농성으로 인해 장흥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고 2001년 12월28일 만기 출소를 하자마자 3일만에 시청 앞문에 나와 선 이유가 있다. 그
▶시청앞 광장은 월드컵해 맞이 행사로 무대를 쌓느라 분주하다.
가 상암동이 아닌 시청 문 앞에 서게 된 이유는 이 문제를 서울시 고건 시장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건 시장에게 "가수용시설, 택지내 임대 아파트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민, 형사상 정신적, 물적 피해 보상과 전철연 , 지역 철거민대표, 시행처장(고건 서울시장), 시행사(도시개발공사), 관할 경찰서장 등의 대표들이 모여 상암동 철거 문제를 결론짓지 않는다면 끝까지 싸울 계획"이라 밝혔다.

생존권은 보신탕 보다 못하단 말인가?
지난 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철거민과 함께 보신탕 또한 외국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야 했다. 그러나 2002년 월드컵에는 오히려 문화적인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며 보신탕에 대한 반론의 여지가 만만치 않다. 국회의원들도 개고기 유통을 합법화하자고 난리다. 하지만 여전히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지켜가는 월드컵'을 하자는 이야기는 없다. 국가의 대 사업을 위해서라면 가난한 서민의 생존권쯤은 잊어도 좋다는 것이다.

12월31일 밤 시청앞 광장에는 월드컵 맞이 행사를 위해 수만의 인파가 모였다. 그러나 이동수씨는 의경들에게 들고 있던 피켓을 강탈당하고야 말았다. 월드컵의 이미지가 훼손될까봐 합법적인 1인 시위조차 방해한 것이다. 얼마 있다가 피켓은 돌려받았지만 상암 2공구의 내용과 시장실 항의전화번호가 적힌 하단이 절단된 상태였다.

▶시청문앞 1인시위, 갈곳은 이곳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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